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44)
825화 도깨비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진짜 괴물 (1)
신문성 대통령과의 면담을 마친 문바키는 호텔로 향했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아파트 앞의 카페로 김미영을 찾아왔다.
“돈가스라는 요리를 파는 장소를 아십니까?”
“혹시 그 사람이 말했던 돈가스를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한국 방문을 생각할 때마다 가장 기대하던 요리 중 하나인데 가능하면 오늘 경험해 보고 싶어서 부탁드립니다.”
“요리라고 할 수준이 아니에요.”
웃음으로 답한 김미영이 좀 더 나은 종류를 권했으나 문바키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심지어 고등학교 앞이라는 장소까지 정하는 바람에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분식집 수준의 가게로 향했다.
하얀 머리칼에 아랍 계열 남자들 특유의 커다란 눈망울, 깔끔한 정장의 문바키와 전문직 여성의 단정함에 품위마저 갖춘 김미영이 들어서자 학생들과 일반 손님들이 힐끔거렸다.
대화나 평범한가?
흔히 듣는 영어, 일어, 중국어도 아니고, 유창하게 주고받는 프랑스어여서 다들 신기한 눈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맛있게 드세요.”
널따란 접시에 올라온 얼굴보다 큰 튀김, 단 냄새가 풍기는 소스와 하얀 쌀밥, 케첩과 마요네즈를 뒤섞어 버무린 양배추, 단무지, 그리고 건더기가 없는 국물까지, 앞에 놓인 돈가스를 내려다본 문바키가 마른침을 삼켰다.
“대장은 이런 음식이 그립고 간절했던 삶을 살았던 거군요.”
돈가스를 보며 문바키는 강찬의 과거를 짐작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살아온 강찬이 자신에게 내밀어 준 손길이 또 그만큼 고맙고 감사해서 감정이 올라온 게 분명했다.
“남편으로는 낙제점 수준이지만, 단 한 번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의 과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고 나자 그동안 보았던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더군요.”
감정을 누른 문바키가 시선을 들고서 김미영의 말을 새기듯 듣고 있었다.
“매달리는 사람을 뿌리칠 수 없다고 했어요. 아프리카에서 더욱 절실했다고도 했고요. 조금만 더 움직이면, 한 번만 더 손을 뻗으면 살아날 수 있는 사람들의 비명을 외면하지 못한다고요. 나중에 아버님의 사연을 듣고 나서 그게 그 사람의 피에 담긴 의지라는 것도 알았고요.”
“학장님을 말씀하십니까?”
“그래요. 우리 이제 이야기는 그만하고 맛을 볼까요? 나도 너무 오랜만이라 살짝 흥분되네요.”
“대장의 스타일이 있다고 하던데, 아십니까?”
“실망할 텐데요?”
“부탁드립니다.”
가볍게 웃은 김미영이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서 고기를 일정한 간격으로 잘랐다. 그런 뒤에 다시 네모난 크기로 또 잘랐고, 마지막에 밥과 샐러드를 돈가스 소스와 버무렸다.
“이렇게 해서 젓가락으로 먹는 방법인데 나는 이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버무린 접시를 문바키에게 건네준 김미영이 아직 손대지 않은 돈가스를 받았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이 작은 행복마저 시샘하는 듯 문바키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알로?”
돈가스를 내려다본 상태에서 문바키는 나직하게 대꾸했고, 잠시 상대방의 말을 들었다. 그런 뒤에 시선을 들어 김미영을 살폈다.
자리를 옮길까, 그냥 여기에서 받을까?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CIA와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잖나. 그러니 예멘에서의 불행한 사태를 일으킨 주범으로 모하마드 암만 압둘라 하지즈를 지정하면 되겠지. 그를 제거하는 공로를 미국의 CIA에게 넘긴다면 양쪽 모두 만족할 만한 조건이 아닐까?”
상대방의 설명이 있었는지 잠시 침묵하던 문바키가 “마드모아젤에게 보고하고 결과를 알려 주겠나?” 하는 요구를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먹지 않고 뭐 하는 거야?
안쪽 테이블에 앉은 주인이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젓가락의 중간을 잡은 문바키가 집는다기보다는 아예 끼워 넣는 것처럼 억지로 집은 돈가스 조각을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조금씩 나오는 프랑스 요리를 음미하듯 돈가스 조각을 씹는 문바키에게 김미영이 포크를 건넸다.
“이걸 이용해서 잔뜩 떠야 해요. 그리고 한입에 다 넣어요.”
“한입에요? 대장이 정말 그런 식으로 먹습니까?”
“실제로 보면 이 음식이 싫어질 수도 있어요.”
김미영의 농담에 가벼운 웃음이 흐른 다음이었다. 포크를 이용해 커다랗게 떠서 힘겹게 넣은 문바키가 오묘한 표정으로 입을 놀렸다.
“문바키. 그 사람이 내밀었던 손을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런 문바키를 향해 김미영이 나직하게 고마움을 전했고,
“이 요리는 맛보다는 이 안에 담긴 감정이 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지금 막 깨달았습니다.”
이어서 문바키가 멋진 감상을 덧붙였다.
***
천중명은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천중명입니다.”
– 김준후입니다, 회장님. 통화되십니까?
“말씀하세요.”
– 방금 CIA 금융 담당 부장의 전화가 있었습니다. 샤롤 클루얀을 체포해서 연행했고, 이후로 더는 한국의 환율과 채권 시장에 개입하는 일이 없을 테니, 지경그룹 측도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 지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마법사 구완섭, 진짜 대단한데?
천중명이 옅게 웃을 때였다.
– 매각하신 미국 채권을 회수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회장님.
김준후가 추가로 요구조건을 전달했다.
CIA가 자국에 있는 헤지 펀드의 대표를 체포했단다. 김준후가 전해 주는 반가운 소식을 듣는 순간, 천중명은 강찬을 떠올렸다.
해낸 거다.
CIA 건물에 뛰어 들어가 그곳의 수장을 제거했고, 예멘 공항에서는 미국의 대통령을 순국시키더니, 이제는 CIA가 나서서 상황을 진정시키게 만들었다.
전쟁의 위협이 없어졌으니, 미국이 꼬리를 만 걸 테고, 막말로 강찬이 활약하지 못했다면 체포되는 건 클루얀이 아니라 천중명과 구완섭, 강다희였을지 모른다.
– 죤 피셜 상원의장이 CIA 차기 수장으로 내정된 모양입니다. 30년 만기 미국 국채를 한화로 5천조 원에 맞춰 발행해서 넘기겠답니다. 또한, 마누엘 야닉의 계좌에 있던 자금 역시 문제 삼지 않겠답니다.
“미국은 중국과 달라서 회계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기 어려울 텐데요? 당장 채권 판매 금액을 어떤 식으로든 맞춰야 하지 않습니까?”
– 클루얀이 운용하는 헤지 펀드의 자금을 국고에 넣되, 그걸 채권 발행 비용으로 처리하겠답니다. 다만, CIA가 중간에 모종의 작업을 할 텐데, 그 점만 눈감아 달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어지간히 급했구나.
천중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요. 그런데 죤 피셜 상원의장에게 그 정도의 권한이 있습니까?”
– 부통령과 막역한 사이라서 승인에 문제는 없을 거라고 하고, CIA가 나서서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하겠답니다. 다만, 내용이 알려지지 않게 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런 건 비밀로 한다고 숨겨지지 않습니다. 잘 아시잖습니까?”
– 그때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 언급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이럴 때, 덥석 ‘콜’을 외치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고민해 보고 10분 내로 답을 드리죠.”
– 기다리겠습니다, 회장님.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을 향해 돌아섰다.
“최소한의 방어선은 만든 셈이군.”
제이어 반 할트의 도발이 오히려 천중명에게 방패 하나를 쥐여 준 모양새였다.
“괴물이야. 도깨비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진짜 괴물.”
창을 통해 드러난 소말리아의 숲을 보며 천중명은 강찬을 단적으로 평가했다.
***
통화하는 라노크를 보며 죤 피셜은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있는지, 지금껏 벌인 환율 전쟁을 무마하고자 샤롤 클루얀을 체포했고, 이어서 지경그룹에는 5천조 원에 해당하는 미국 채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는데 고민하겠다는 건 뭔지.
그뿐이냐.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라노크 앞에서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마드모아젤과 하는 통화인데?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라노크가 하는 말을 들으며 상대방은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또 무슨 꿍꿍이지?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꾹꾹 누르는 죤 피셜 앞에서 라노크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모하마드 암만 압둘라 하지즈를 게릭 웨인의 살해 주범으로 정하자는 의견인데 어떤가?”
식어 버린 홍차를 마시려던 죤 피셜이 동상처럼 굳은 상태에서 눈만 들었다.
“동의하는 즉시 한국과 프랑스 요원들이 그가 있다고 판단되는 저택을 기습해서 사살하겠다는데, 그렇게 된다면 부통령과 자네의 입지가 더욱 단단해지지 않나?”
젠장! 속을 보이면 안 되는데!
표정을 굳히며 악착같이 버티던 죤 피셜이지만, 어찌나 솔깃한 제안인지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원하는 게 뭐요?”
“이런! 정치인이라서 그런가,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제안을 계산하려 드는군.”
라노크가 순수한 마음을 보인다고?
하마터면 죤 피셜은 그의 앞에서 코웃음을 칠 뻔했다.
“정보총국과 CIA의 불편한 관계를 이번 일로 털어 버리자는 뜻이지. 그 정도면 서로 만족할 수준 아닌가?”
“진심이오?”
“이 홍차를 걸고 맹세하지.”
시선을 내렸던 죤 피셜은 아직 들고 있던 찻잔을 그제야 내려놓았다.
라노크에게 홍차란?
중요한 건 확실한데, 믿어도 되는지는 의심이 부쩍 들어서 뭐라 대꾸하기도 어려웠다.
“압둘라 하지즈를 제거한 요원들이 무사히 나올 수 있도록 조치해 주면 더 좋겠지만, 불편하다면 정보총국이 직접 사우디, 이란과 의논하겠다네.”
“결국 우리더러 뒤처리를 하라는 소리 아니오?”
“내가 했던 제안을 제대로 듣지 못한 모양인데 불편하면 정보총국이 하겠다고 분명하게 밝혔네.”
“게릭 웨인을 살해한 주범을 제거하는 작전의 마지막 과정까지 모두 정보총국이 해결했다고 하면, CIA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소?”
“그렇다면 CIA가 맡으면 되잖나?”
그럼 그렇지.
라노크가 순수하게 돕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의 제거를 우리가 맡겠소.”
“그렇다면 우리와 한국의 요원들을 모두 철수시키지.”
“압둘라 하지즈가 그곳에 있는 게 확실한 겁니까?”
“그가 없다면 무능한 CIA가 엉뚱한 사람을 압둘라 하지즈로 오인하는 바람에 애꿎은 피해가 발생한 게 되겠지. 그러니 지금부터 그가 그 장소에 있는지 알아보는 게 순서겠지?”
“후-.”
태연하고 뻔뻔해 보이는 라노크의 대꾸에 결국 죤 피셜은 기다란 숨을 토해 내고 말았다.
“알겠소. 그를 제거하고 나면 CIA가 이란 정부와 협상을 통해 뒤처리를 맡도록 하지요.”
“현명한 판단이지. 묶어 둔 자금 일부만 풀어 줘도 이라크 정부는 크게 문제 삼지 않으리라 보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야 그렇지.
마치 그런 투로 라노크가 입술을 내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 뒤에 잊고 있었던 게 떠오른 사람처럼 고개를 들었다.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이러지?
이번에는 말려들지 않겠다는 독한 의지를 가득 담은 죤 피셜이 나올 이야기에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지경그룹이 CIA의 제안을 수락하겠다고 통보했다던데 혹시 연락받았나?”
“그 내용을 왜 정보총국이 먼저…?”
“나는 이미 은퇴한 사람이니까 꼭 정보총국에 알려 줬다고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
“지경그룹의 천 회장과 친분이 있습니까?”
대답을 좀 하든가!
죤 피셜의 속을 빤히 알 텐데도 라노크는 서양 가면을 뒤집어쓴 얼굴을 하고서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직후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토록 기다리던 금융 담당 간부의 번호를 액정에 올린 죤 피셜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후속 조치를 서둘러야 할 테니 일어나야지? 오랜만에 봐서 반가웠고, 현역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즐거운 시간이었네. 또 보세.”
지이이잉. 지이이잉.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길 신에게 기도할 거요.”
씹듯이 인사를 뱉은 죤 피셜이 자리에서 일어선 다음이었다.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니 충고 하나만 하지. 무슈 강이 만든 질서를 흔들지 않는 게 좋을 걸세. 그러지 않으면 다음 타깃이 자네가 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테니까.”
진정한 라노크의 두려움은 지금처럼 감정을 전혀 담지 않은 눈매로 전하는 경고에 있는 게 아닐까?
나직하게 숨을 뱉은 죤 피셜은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
마법사 구완섭은 주문을 멈췄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 지내던 팀원들 모두에게 더는 주문을 넣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내가 연락할 테니까 일단 지켜봐. 그럼, 알지. 고마워.”
이번만큼은 호텔에 준비한 거래팀에 합류했던 강다희가 통화를 마친 직후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몸을 떠는 액정을 확인한 구완섭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회장님이시다.”
구완섭이 통화 버튼을 누르는 그 짧은 틈에 특실에 있던 여덟 명이 모두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바꿨다. 그리고는 긴장한 표정으로 구완섭에게 집중했다.
“구완섭입니다, 회장님. 예. 강다희 상무를 포함해서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
귀를 쫑긋했던 구완섭이 이가 드러날 정도로 흥분한 표정을 짓고는 오른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성공인가?
저쪽에서 백기를 흔든 거야?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렇게 전하고, 서류 준비해서 올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통화를 마친 구완섭이 종료 버튼을 누르고는 “후우-.” 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뭔데 시간을 끌어, 진짜!
마음은 그런데 구완섭에게 독촉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법사 구완섭은 그 정도의 능력과 카리스마를 지녔다.
“미국이 항복했단다.”
“와아-!”
복싱 경기에서 승리한 사람들처럼 양손 주먹을 치켜든 팀원들이 함성을 한껏 터트린 다음이었다.
“강다희 상무는 해외 헤지 펀드들이 투입한 금액을 확인해서 10퍼센트의 수익을 보장해.”
“앞으로 마법사님 말씀이라면 집이라도 팔아서 덤비겠네요.”
깜찍한 음성으로 답한 강다희가 계속해서 시선을 주고 있었다.
우리 몫은요?
그녀의 눈이 던지는 질문을 알아차린 구완섭이 씨익 웃었다.
“딜링을 맡은 우리 모두에게….”
꿀꺽, 침 넘기는 소리가 분명 들렸다.
“월 스트리트 최고 수준에서 인센티브를 지급하신단다.”
“전무님? 그럼 거래 금액에 따라 지급하신다는 겁니까? 금액이 너무 크잖습니까?”
“투입된 금액이 3천조 원이 조금 넘으니까, 막내가 받는 인센티브가…, 3백억이 조금 넘겠지?”
인센티브가 너무 크다고 생각해 질문을 던졌던 막내 직원은 대꾸조차 못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