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46)
827화 도깨비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진짜 괴물 (3)
물론, 돈가스를 다 먹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식당을 나선 문바키는 아예 먹방을 작정한 사람처럼 강찬이 말한 음식들을 찾아 움직였다.
고등학교 앞이었다.
느닷없이 강철규와 강찬이 들렀다는 대궐 같은 식당을 원해서 승용차로 움직여 불고기와 공깃밥을 주문했고, 다음은 갔던 길을 되돌아와서 방배동 프랑스 거리 앞쪽의 곱창집에 들렀으며, 마지막으로 카페에 들러 치즈 따위의 안주를 주문한 뒤에 와인을 반쯤 마셨다.
술도 마찬가지였다.
폭탄주를 만들어서 반 잔가량? 그리고 지금 앞에 놓은 와인 역시 반 잔을 넘기지 않았다. 그 와중에 문바키는 또 이따금 전화를 받았고, 짧은 대꾸를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프랑스 거리 안쪽에 있는 카페의 테라스였다.
“커피를 한잔 마실까 하는데 어떠십니까?”
“나를 지키려는 건가요?”
반쯤 남은 와인을 둔 문바키가 질문을 던진 김미영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 사람이 말했다는 식당을 기억할 정도라면 위치 정도는 확인했을 테죠. 인터넷으로 위치만 찾아봤어도 이런 식으로 오가지는 않아요.”
문바키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이동에 보다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동선을 이용하고 있잖아요. 하루에 한 가지씩 경험해도 충분한 요리들을 시간에 맞춰 계속 찾아다니고 있고요.”
“대장이 말했던 요리들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고 싶었던 소망을 품고 있었던 것만은 진심이었습니다. 대신, 말씀하신 대로 저와 정보총국 요원들이 함께 있는 게 대장에게 유리한 일이라고 판단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 거죠?”
이어지는 김미영의 질문에 문바키는 정보총국장으로 돌아간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떤 작전이든 위험은 어깨동무를 한 동료처럼 늘 근처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다른 시선으로 상황을 보시는 게 좋습니다.”
“설명을 부탁해도 되나요?”
“그 전에 커피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어떠십니까?”
하얀 머리칼이 잘 어울리는 문바키의 여유로운 넉살에 김미영이 가볍게 웃었다. 그런 뒤에 직원을 불러 커피를 두 잔 주문했다.
이제 설명을 부탁할까요?
김미영은 의도가 분명한 시선을 문바키에게 주었다.
“감염으로 지금까지 사망한 숫자가 대략 14만 명입니다. 의료 시설과 사회 안전망이 열악한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현재도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습니다.”
김미영의 시선에 대한 답처럼 문바키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대장이 이런 상황을 대비하지 않았다면 정보총국 소속 연구원들은 최소 2천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네요.”
“부룬디의 저수지에서 퍼올린 물을 지금도 감염이 급하게 번지는 아프리카 지역에 지속적으로 뿌리고 있습니다. 단순한 작업이지만, 인력과 비행기의 운행을 생각하면 엄청난 비용이 드는 작업입니다. 그런데도 무식해 보이는 방법을 멈추지 못하는 건 치료제의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보다 확실한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보도조차 없었어요.”
“한국의 지경그룹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진행하는 사업입니다. 그 뒤에 대장이 있습니다.”
그런 일까지 신경 쓰고 있었어?
놀라고 안타까운 감정을 감추려 김미영이 숨을 나직하게 뱉을 때, 직원이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뜨거운 커피의 향을 즐기듯 짧게 마신 다음이었다.
“흔들렸던 CIA를 대장이 제자리로 돌려놓았습니다. 내부 배신자가 반기를 들었던 정보총국을 바로잡았고, 이어서 감염균을 개발하고 퍼트렸던 범인들을 한 명씩 찾아냈습니다.”
강찬의 활약을 문바키가 덤덤하게 내놓았다.
“그 와중에 꽤 많은 숫자의 요원들과 대원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장은 그 모든 아픔을 가슴 속에 눌러 담고 마지막 단계를 위해 달리는 중입니다.”
대전현충원에서 보았던 강찬의 아픔을 김미영은 똑똑하게 기억한다. 홀로 버티고 있을 모습을 떠올린 김미영의 눈시울이 슬며시 붉게 물들 때였다.
“이런 순간에 대사님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장담하는데 누구도 대장을 말리지 못합니다.”
김미영이 당한 이후 강찬의 모습이 상상도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문바키가 고개를 저었다.
“이벤트를 하나 할까요?”
그런 뒤에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안고 재킷 안으로 손을 넣었다. 작은 팸플릿이었다. 네 겹으로 접힌 팸플릿을 꺼낸 문바키가 김미영에게 건넸다.
“이건…?”
접힌 부분을 모두 펼쳐 그 안에 담긴 화려한 사진들을 내려다보았던 김미영이 고개를 들었다.
“스위스 그린델발트입니다.”
“이걸 어떻게 가지고 있어요?”
“라노크 대사님처럼 대장이 그곳에서 남은 생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답니다. 적당한 지역을 물색하라는 지시를 조쉬에게 내렸는데, 그가 보고한 덕분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늙지도 않아요.”
“대장이 말한 남은 생의 주인공이 누구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준비를 하고 있었어?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을 더 힘들게 했던 건 아닌지, 강찬 역시 사실은 이렇게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건 아닌지, 왈칵 올라온 감정을 누르기 위해 김미영은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저는 대사님에게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 변할 대장을 감당할 자신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이렇게 안내를 부탁드릴 겁니다. 협조해 주시겠습니까?”
붉어진 눈을 든 김미영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
인공위성이 촬영한 지상의 근접 사진은 정말이지 차량의 종류를 알아볼 정도였다. 김형정과 신광선은 글자 그대로 눈알이 빠지도록 모니터에 집중하며 영상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것도 최근 한 달 사이에 정기적으로 찍은 감시 영상 중 카자흐스탄, 그중에서도 쿠르차토프 근처를 담은 장면을 날짜별로 악착같이 뒤졌다.
“본부장니-임!”
희한하게 이런 걸 신광선은 정말 잘 찾는다!
그가 부르는 음성의 마지막이 길게 늘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형정은 벌떡 몸을 일으켜 앞쪽에 있는 신광선의 책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에어컨을 켰는데도 며칠째 이렇게 지내는 바람에 책상 모니터를 향해 상체를 기울이는 순간, 신광선의 몸에서 풍기는 땀냄새가 훅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런 건 정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민간 항공기입니다! 이게 세 번이나 이 지역을 통과했습니다!”
모니터에 볼펜을 가져간 신광선이 쿠르차토프 지역을 담는 것처럼 둥그렇게 돌렸다.
“진짜 잘했다! 이거 출발지나 목적지를 찾을 수 있겠어?”
“찾아봐야죠! 찾아낼 겁니다!”
“날짜와 시간도 확인해.”
“바로 나옵니다.”
“지금 영상을 내 컴퓨터에도 보내 주고.”
신광선의 어깨를 다독여 준 김형정은 다시금 자리로 돌아왔다.
용병들이 임시로 지내던 기지라고 우습게 보면 당한다.
특수부대 출신답게 위장막을 워낙 잘 활용해서 항공 촬영으로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어쩌겠나.
눈알이 빠지든, 혈관이 터져 핏물이 고이든, 이런 식으로 영상을 뒤져 지원하는 다른 세력은 없는지, 보급품 수준은 어떤지를 알아내는 게 아군의 피해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정보가 되는걸.
자리에 앉은 김형정은 모니터를 보며 최종일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친구도 이제 제법 나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이 현역으로 나서는 마지막 작전이 될지 모를 만큼 말이다.
‘얼마 안 남았다. 이번 일 마치고 나면 삼성동 짬뽕집에 가서 다같이 실컷 마시자. 그러니 무사히 돌아와.’
간절한 바람을 품은 채 김형정은 모니터에 집중했다.
***
카자흐스탄의 카르스 임시 공항에 착륙한 전투기가 몸을 감추듯 구석에 멈춘 다음이었다. 캐노피를 올리는 동안, 기다리던 직원 두 명이 달려와 사다리를 걸어주었다.
염병할.
몸을 일으켜 사다리를 잡고 내려선 강찬은 나오려는 욕을 삼켰다. 바닥에 내려설 때 스펀지를 밟듯 활주로가 푹푹 꺼지는 듯한 느낌도 지랄 같지만, 왼편 날갯죽지 부근에 칼을 꽂아놓은 것처럼 욱신대는 상처도 예사롭지 않았다.
움직임이 평소와 달랐던 모양이었다.
“대장? 괜찮습니까?”
뒤늦게 내린 제라르의 시선 앞에서 강찬은 상의 지퍼를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는 힘겹게 왼쪽 팔을 뽑아냈다.
“어후!”
“왜?”
“피가 엄청 나왔습니다. 안쪽이 다 젖었는데요?”
어지간한 상처는 대강 아무는 강찬의 몸에서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고개를 돌린 제라르가 의무실을 물어보자 직원이 손으로 차를 가리켰다. 타고 가야 한다는 의미가 분명했다.
“고생했어.”
강찬이 영어로 던진 인사에 파일럿이 경례로 답한 다음이었다.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트럭에 올랐다.
공항인 건지, 벌판을 가로지른 도로 중간을 잘라서 공항이라고 우기는 건지. 활주로를 벗어난 트럭이 덜커덩대며 흙바닥을 달려서는 격납고처럼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의무실이라며?
구석에 책상 하나가 달랑 놓였고, 그 위에 병원을 상징하는 하얀 십자가 표시를 매달았으며, 뒤편에 세워 둔 진열장 안에 담긴 약품이 전부였다.
트럭을 운전했던 직원이 진열장을 열고는 탈지면과 소독약, 핀셋을 들고 오는 것을 본 강찬은 기가 찬 표정으로 제라르에게 눈짓을 던졌다.
이런 상처의 소독이나 치료는 차라리 제라르가 낫다.
특히, 전투 중에 다친 상처는.
등받이 없이 빙글 돌아가는 의자에 앉은 강찬은 허리까지 벗어둔 항공복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 직후였다.
‘아흑.’
어깻죽지를 찢냐?
인상이 버럭 쓰였지만, 제라르의 손길로도 이렇게나 고통이 심한데, 만약 어설퍼 보이는 공항 직원에게 치료를 맡겼다면 이곳에 온 이유를 모두 털어놓고 남았을 거다.
전원을 켠 스마트폰에 문자와 통화 연결 실패 기록이 줄줄이 올라왔다.
‘뭐야, 이건?’
강찬은 가장 급하다고 판단한 김형정의 번호를 눌렀다.
– 부원장님!
“문자 봤는데 이게 어떤 상황인 거죠?”
– 시간으로 봐서 예멘 공항에서의 상황을 확인한 뒤인 거 같습니다. 그곳에 있던 용병들이 모두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용병들의 이동과 관련한 것으로 보이는 특이한 통화가 잡혔습니다.
바로 옆에 노트북, 혹은 녹음기를 둔 모양이었다. 김형정의 보고 뒤에 영어로 오가는 통화가 흘러나왔다.
– 제이어 반 할트의 통화입니다. 들리십니까?
– 1차로 모두 이동했습니다. 시선을 끌 것을 염려해서 철거 혹은 파괴하지 못한 시설이 약간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신원을 파악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 집결지에서 출발은 언제로 잡았습니까?
– 곧바로 출발합니다.
대화가 끝나면서 스피커폰 버튼을 해제했는지 다시금 소리가 가라앉았다.
– 여보세요? 부원장님?
“통화 내용은 들었습니다. 제이어 반 할트가 이곳 용병과 관련 있다는 의미로 보이네요. 놈들을 어디론가 보낸 거고요.”
통화 내용을 말하던 강찬은 격납고 바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미사일과 헬리콥터를 이동시킨 놈들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용병을 이동시킬 정도면 의심 가는 쪽은 한 곳밖에 없었다.
“본부장님. 한국에서 이쪽으로 오는 인원을 다시 돌려보내면 놈들에게 여유가 생깁니다. 그 사이 누가 당할지 모르고요. 중형 미사일, 헬리콥터를 제공한 놈, 그리고 이번 용병 이동을 담당했던 놈들을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정말 힘들겠지만,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바로 날아갈 수 있을 만큼 빠른 시간 안에 찾아주었으면 싶습니다.”
– 디지털 분석실과 연락하고 바로 답을 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직후였다.
강찬의 눈앞으로 제라르가 핀셋을 내밀었다.
끝에 달린 소독 솜에 녹슨 철가루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대충 닦았습니다. 닦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꿰매야 할 거 같습니다.”
“뭐? 누가 그걸 해?”
“전에도 제가 했었잖습니까?”
“야! 십 년도 전에 했던 거잖아? 그때 네가 꿰멨던 자리 뒤틀려서 나중에 다시 치료했던 거 기억 안 나? 철분이 몸에 좋다고 일부러 약도 먹는다는데 차라리 그냥 막아 놔.”
“어차피 이곳에서 작전 틀어진 거 아닙니까? 상처나 우선 꿰매면서 시간 보내죠.”
맺힌 게 있었나?
용병이 사라졌다는 통화 내용을 빤히 들었을 제라르의 관심이 온통 상처에 가 있었다.
“하지 말고 담배나 하나 줘.”
돌아가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던 강찬은 인상을 버럭 찌푸렸다.
뭐냐, 진짜?
제라르가 핀셋으로 헤집어 놓은 탓인지 왼쪽 상체 전체가 찌르르 울리는 통증이 해일처럼 달려들었다. 더럽게 아쉬운 표정으로 거즈를 붙여준 제라르가 담배를 내밀었고, 이어서 라이터를 켜 주었다.
찰칵.
“후우-.”
역시 고통에는 담배가 가장 큰 위안이 된다. 이럴 때 달달한 커피까지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담배 연기를 뱉어낸 강찬이 입맛을 다실 때였다.
그아아아아-앙.
격납고 위쪽에서 수송기의 묵직한 엔진음이 들렸고, 잠시 후에 활주로에 내려앉는 타이어의 비명이 날카롭게 달려왔다.
왔냐?
상의를 허리까지 내린 강찬이 격납고를 나서는 순간이었다. 흙먼지를 일으킨 수송기의 꼬리가 아래로 내려왔고, 그 안에서 지랄 맞게 생긴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피식.
강찬이 웃었고,
“푸흐흐흐.”
멀리 있는 석강호의 독특한 미소가 눈에 들어오면서 들릴 리 없는 웃음이 박히는 것처럼 귓가에 떠올랐다.
개새끼. 진짜 반갑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