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5)
606화 이제부터 쇼 타임 2 (1)
바이킹이라는 놀이기구가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처럼 비행기가 떨어져 내렸다.
드드득. 드드드드드득.
그 뒤에 활주로의 거친 노면이 비행기를 흔들었고, 그 충격을 강찬에게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수없이 비행기를 타고 다니지만, 하여간 착륙할 때의 이 지랄 같은 느낌은 변하지 않는다.
후우우우웅.
강찬의 성격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처럼 용을 써 가며 속도를 줄인 비행기가 활주로 끝에서 커다랗게 방향을 꺾었다.
‘바그다드라?’
달걀을 세워 놓은 듯 뚫린 비행기 창으로 시선을 돌린 강찬은 불을 켠 관제탑과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공항 건물을 눈에 담았다.
15년 만이다.
대놓고 나서는 게.
그동안 설쳐 대는 개, 고동, 멍게, 말미잘 같은 오만 잡놈들을 모른 척 외면했지만, 이번은 확실히 달랐다. 그 외에도 더 모른 척하다가는 적의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란 염려도 있었다.
“무하마드 하산 같은 놈을 굳이 직접 상대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라크 정보부 부장 무하마드 하산이 들었다면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을 문바키의 질문에 강찬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제안대로 프랑스 정보총국이 움직여 잡놈들을 제거하면?
적들이 똘똘 뭉쳐 정보총국을 고립시킬 거고, 다음으로 프랑스는 국제적인 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그 여파는 강찬의 사람이라고 알려진 문바키에게 고스란히 몰린다.
후우웅.
활주로에 표시된 길을 따라 움직이던 비행기가 완전히 멈춘 직후였다. 저 멀리에서 여러 대의 차량이 달려오는 걸 확인한 강찬은 시선을 돌렸다.
“방심하지 말고, 중간에 조금이라도 틀어졌다 싶으면 정해진 장소로 나와. 알지?”
“아까 정신 번쩍 들었소. 안심하고 있다가 봅시다.”
“이제야 내가 아는 다예 같다.”
“푸흐흐흐.”
내내 음식을 거절하던 아이가 막상 숟가락을 움직이고서야 식욕이 돋아난 것처럼 석강호는 긴장을 제대로 처먹은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과거로 돌아간 양 그의 눈이 번들거렸다.
개새끼, 진즉 좀 이러지.
“바그다드에서 시작이다. 우리 셋이 움직였다는 소문이 돌면 정보국들은 셋 중 하나를 반드시 결정해야 한다.”
제라르는 충분히 아는 내용인데 긴장을 처먹은 석강호는 엄청난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강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정체도 드러나지 않는 적에게 붙을 건지, 우리 쪽 방식에 순응할지. 그도 아니면 잡놈들끼리 똘똘 뭉쳐서 제3의 세력을 만들 건지. 그러니까 완벽하게 처리해.”
“대장은 정말 엄청나게 공부한 사람 같소.”
이놈에게 더 뭘 바라겠나.
황당한 석강호의 감상이었으나 강찬은 피식 웃는 것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대화가 끝난 직후였다.
앞쪽 문으로 들어선 게 분명한 프랑스 요원 한 명과 아랍인으로 보이는 세 명이 강찬이 있는 좌석을 향해 걸어왔다.
프랑스 요원을 확인한 강찬은 가볍게 웃으며 몸을 세웠다. 또한, 강찬이 일어서자, 맞은편에 앉았던 제라르와 석강호가 거의 동시에 몸을 세웠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샤를 피에르 루카는 마흔 후반으로 이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요원이었다. 영어로 부르면 ‘루카스’가 되겠지만, 프랑스에서는 루카라 부르니까 굳이 바꿀 이유는 없는 거다.
“바그다드에 있었어?”
“이란에 있다가 급하게 왔습니다. 총국장의 지시를 가볍게 여기면 어떤 처벌이 있는지 아시잖습니까?”
샤를 피에르를 이 작전에 발탁한 건 문바키의 결정이었다. 무엇보다 믿을 만하고, 충성심 강하며 마지막으로 강찬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을 함께 지닌 요원이라고 판단한 점이 컸다.
“이쪽은 세 분의 안내를 맡을 정보총국 이라크 요원들입니다. 이라크 정보국 요원들이 공항에 상주하고 있어서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이라크 요원들의 이름조차 알려 주지 않은 채 세 사람을 소개한 루카가 몸을 돌렸다.
시간 끌수록 이쪽만 불리하다.
그를 따라 비행기를 나서자 활주로를 점령하고 있던 두꺼운 어둠과 좀 더 진한 열기가 ‘우리는 너를 환영하지 않아!’라는 것처럼 달려들었다.
양복 입고 있으니까 만만해 보이나 본데, 나나 제라르, 석강호는 이보다 더한 곳에서 살아왔다니까.
달려드는 이라크의 어둠과 열기에 경고하듯 강찬은 활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대기한 차량들과 주변에 선 요원들을 살폈으나 당장 심장이 주는 경고는 없었다.
속은 빠졌어도 강찬의 눈빛을 누구보다 잘 읽은 게 또 다예였다. 그래서 그는 강찬의 시선에 담긴 염려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빨리 끝내고 라면에 봉지 커피나 합시다. 그럼 먼저 출발하우.”
나직하게 말을 건넨 석강호가 안내원과 함께 뒤편의 승용차로 움직였다.
“대장. 끝나고 보죠.”
유도등이 번쩍이는 활주로, 불이 켜진 건물을 배경으로 짧은 인사를 건넨 제라르 역시 슈트 핏을 자랑하는 듯한 걸음으로 몸을 옮겼다.
저놈은 진짜 길다.
거기에 비율이 좋은 데다, 말없이 바라보는 눈빛에 반항아적인 분위기와 애틋함을 담고 있어서 이상스레 여성들의 시선을 끈다. 최근에는 세월이 주는 무게까지 담아서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무식한 놈 하나, 쓸데없이 매력적인 놈 하나.
다른 건 모른다. 그러나 이런 작전을 누구보다 잘 해낼 놈들인 거다.
둘이 차에 타는 모습을 확인한 강찬은 루카가 열어 주는 승용차의 뒷자리에 몸을 넣었다. 문을 닫은 루카가 조수석에 타고서 “출발해.” 하는 짧은 지시를 내놓았다.
승용차가 출발하기 무섭게 내내 기다리던 승합차가 뒤에 따라붙었는데 그건 제라르와 석강호가 탄 승용차도 마찬가지였다.
“부총국장님이 바그다드에 도착한다는 건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쯤이면 이라크 정보국도 눈치챘을 확률이 높습니다.”
강찬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부족하다 해도 명색이 이라크 정보국인데 루카가 공항 활주로까지 대놓고 밀고 들어온 걸 모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인 거다.
‘이용우라고 그랬지? 지금은 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이다.’
빠르게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강찬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국가정보원 요원을 떠올렸다.
***
국장의 보고를 듣는 순간, 무하마드 하산은 들고 있던 담배에서 떨어진 불똥이 재킷의 소매를 태운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얼굴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무슈 강과 제라르 드 미르미에, 석강호, 이렇게 세 명이 바그다드 공항에 입국한 것 같습니다.”
재차 보고를 확인한 무하마드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입국했으면 한 거고, 아니면 아니지, 한 거 같은 건 뭐야? 그래서 왜 그 세 사람이 입국했다고 판단한 건지나 말해 봐.”
“이집트로 향하던 프랑스 정보총국의 자가용 비행기였습니다. 정보총국 이라크 총책임자를 두고도 루카라는 국장급 요원이 직접 움직여 세 명을 태우고 공항을 빠져나갔습니다.”
“확인은?”
“프랑스의 정보총국 요원은 검문과 검색, 여권 확인을 하지 않는 관례에 따라 바로 공항을 빠져나갔습니다. 다만, 공항 건물에서 지켜보던 우리 요원들이 판단하기로는 무슈 강과 제라르, 한국인 석강호, 이렇게 셋과 인상착의가 같답니다.”
직접 봤다는데 달리 할 말은 없었다. 더구나 검색대를 통과하지 않은 사항도 트집 잡을 구석은 없었다.
“그들이 이곳에 온 목적이 뭐라고 생각해?”
“목적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위치는?”
“그것도…. 죄송합니다.”
점점 일그러지는 무하마드 하산의 표정을 살핀 국장이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뭐지? 왜 왔지?
눈알을 빠르게 굴리던 무하마드 하산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
“한국인 요원! 그에게 아직 경찰이 도착하지 않았겠지? 그렇지?”
간절한 소망이 담긴 질문을 무하마드 하산이 내놓았는데,
“그렇지 않아도 보고드리기 직전에 도착했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그 작고 간절한 소망마저 국장은 처참하게 짓밟았다.
“야! 이…! 얼른 연락해서 경찰 철수하라고 해! 아니지! 철수가 아니라 민병대를 밀어내라고! 절대 한국인 요원을 건드리지 말라고 해!”
숨도 쉬지 않은 채 지시를 내리던 무하마드 하산이 의아한 표정으로 국장을 보며 고개를 비틀었다.
“설마…? 아니지?”
“이미 작전 지시를 내렸습니다.”
“끄응.”
죽음이 목줄을 움켜쥔 것처럼 무하마드 하산은 신음을 뱉어 냈다.
“나가! 아니, 여기에서 당장 지시해! 얼른! 무슨 짓을 해서든 민병대 밀어내고 한국인 요원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라고!”
머뭇거렸다가는 권총이라도 꺼낼 기세였다.
“뭐 해!”
무하마드 하산의 고함이 재차 터질 때, 국장은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
아버지 오마르는 딸인 자밀라가 한국으로 떠나는 줄 안다. 반대로 자밀라는 또 마지막 순간에 이용우가 부친인 오마르를 구해 줄 거라 믿는 상황이었다.
이곳을 떠나면 그 이후로 살아서는 다시 못 본다. 시체라도 온전해야 장례를 치를 텐데 그마저도 바라기 어렵다.
사람이 그렇다.
아무리 죽음을 각오했다고 해도, 죽기 직전까지 받아야 할 끔찍한 과정을 익히 짐작하는 터라,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려운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불안, 초조, 긴장이 뒤얽힌 거실에서 이용우는 현관문과 주방을 오가며 자밀라에게서 받은 실을 길게 연결했다.
뭐 하려고?
오마르와 자밀라가 이용우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볼 때였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오마르의 낡고 오래된 스마트폰이 울었다.
“마르하반(여보세요)?”
이용우에게 눈짓을 던지는 것만 봐도 경찰이 도착했다는 전화가 분명했다. 몇 차례 알았다는 말을 되풀이한 오마르가 통화를 마쳤다.
“자밀라 외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물었고, 아래에서 기다릴 테니 내려오라고 했소.”
얍삽한 새끼들.
오마르를 불러낸 뒤에 올라와서 민병대를 밀어붙이고, 방을 열어 수색하겠다는 얄팍한 속셈이 방금 설명한 통화에 모두 담겨 있었다.
“나가세요.”
“혼자 나가면 당장 밖에 있는 민병대가 나를 그냥 두겠소?”
“자밀라를 두고 혼자만 간다면 오히려 반가워할 겁니다. 경찰도 그걸 원하는 걸 테고요.”
오마르가 없다면 안심하고 문을 따고 들어와 자밀라를 데려갈 수 있다. 거기에 그들이 정말 원하던 이용우를 발견하면 더더욱 자밀라를 데려가는 명분도 좋았다.
“그러다가…….”
이제 와서 잘못될 상황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심지어 경찰에게 이용우가 발각될 것도 두렵고. 암담한 얼굴의 오마르가 가르침을 바라는 사도처럼 간절한 눈빛으로 이용우를 바라보았다.
“내려가서 경찰을 만나면 곧바로 딸이 인질로 잡혀 있다고 하세요.”
“예?”
오마르의 고개가 불쑥 튀어나왔다.
“한국인이 권총을 들고 와서 위협하는 바람에 잡혀 있었다고 하시고, 민병대가 한국인을 노린다고 하시면 됩니다.”
“그 뒤는? 뒤는 어쩔 셈이오?”
에효, 그러게 왜 경찰을 냅다 불러요?
“뭔지는 모르는데 민병대가 찾는 물건을 한국인이 지닌 것 같다고 하시고, 그걸 이용해 민병대와 협상하는 눈치라고 하시면 됩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오마르는 아예 얼이 빠진 느낌이었다.
“혹시 경찰차에 타고 있으라고 하면 내가 2층 베란다에서 감시하고 있어서 일단 자가용에 타고 있어야 한다고 하세요.”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요?”
아니, 진짜 이 양반이?
설명을 길게 늘어놓아야 하는 상황이 갑갑했지만, 창을 살핀 이용우는 나직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따님이 인질로 잡혀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경찰은 어차피 올라와 민병대를 밀어낼 계획일 겁니다. 그들에게 명분 하나를 더 주는 거니까 나머지는 내게 맡기고 어서 움직이세요.”
오마르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방법이 없고, 따르자니 뭔가 암담한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시간이 더 늘어지면 밖에서도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가세요.”
“알았소.”
굳게 답한 오마르가 살아서 마지막으로 보는 딸의 얼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두르시라니까!”
감정이 뭉클 솟아나는 그 짧은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투로 이용우가 나섰다. 오마르가 문 앞으로 가는 순간, 배웅하는 것처럼 자밀라가 그의 뒤에 섰다.
주방에 붙은 이용우가 고개를 끄덕인 뒤였다.
철컥.
문의 잠금장치를 연 오마르가 나섰고,
콰앙. 철컥.
곧바로 문을 닫은 자밀라가 잠금장치를 잠갔다.
아버지를 내보낸 불안함, 복도에 깔린 민병대에 대한 두려움, 다시는 지금 나선 아버지를 못 본다는 현실이 주는 슬픔, 자밀라는 잠금장치를 잠근 문에 머리를 기댔다.
‘비켜.’
이번에도 이용우는 감동을 여지없이 파괴했다. 그녀의 팔을 잡아 문에서 떼어 낸 이용우는 내내 들고 있던 줄의 끝을 현관문의 고리에 묶었다.
이게 도대체 뭐라고?
서운하고, 아쉽고, 갑갑한 시선으로 자밀라가 바라볼 때였다.
“내 딸이 안에 있다. 아무렴, 내가 딸을 혼자 두고 도주할 가장으로 보이나?”
당찬 오마르의 음성이 들려왔고, 멈칫한 뒤에 “보내 줘.” 하는 음흉한 음성이 방으로 들어왔다.
됐다. 오마르는.
이용우는 주방 앞으로 연결해 놓은 실의 끝을 뚫어뻥 손잡이 끝에 묶었다. 그런 뒤에 주방 위편의 선반에 걸쳐 놓았다.
그 직후였다.
철커-억. 철컥.
잠금장치를 풀기 위해 밖에서 억지로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부수기 전에 좀도둑 스타일로 잠금장치를 열어 보려는 눈치였다.
어쩌면 예상을 하나도 빗나가지 않냐?
픽 웃은 이용우는,
찰칵. 찰칵.
라이터를 켜서 팔을 높게 든 뒤에 알코올을 뿌려 둔 뚫어뻥의 끝에 불을 붙였다. 어둠 속에서 파란 불꽃이 일었고, 그 끝에서 감아 놓은 바지가 타는 냄새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거의 다 됐다.”
민병대의 음성이 자밀라를 다급하게 만드는 눈치였다. 이어서 경찰들이 올라왔는지, “뭐야?” 하는 반항과 “모두 밖으로 나가!” 하는 고함이 연달아 터졌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숨을 뱉어 낸 이용우는 주방으로 움직여 주방 칼을 집어 들었다.
‘불붙인 뚫어뻥과 주방 칼로 민병대랑 싸워요?’
그럴 리가?
당황해하는 자밀라의 시선을 보며 이용우는 픽 웃었다. 그런 뒤에 가스 줄을 잡고서 위쪽을 절반쯤 갈랐다.
피시이이이-.
가스 차단 장치나 경보 장치 없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이럴 때 이용우는 낙후된 이라크의 환경과 시설이 오히려 고마웠다.
“준비됐어?”
“뭐가요?”
“쇼-타임.”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하겠지.
훅 이용우가 다가서자 반사적으로 자밀라가 몸을 움츠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