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52)
833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원장님! (3)
종료 버튼을 누른 강찬은 분노를 쉽게 누르지 못했다.
얼마나 억울한 죽음들이었나.
조국과 태극기를 위해 던진 목숨과 뿌린 피가 얼마나 아프고, 가슴 저린 건 줄 모르는 인간이 주머니에 든 사탕 던지듯 치료제를 선심 써? 그것도 영국과 일본에?
독기가 올라온 표정으로 시선을 든 다음이었다.
눈치는 하여간.
“대장. 이럴 땐 담배가 최고요.”
석강호가 찌르는 것처럼 담배를 내밀어 입에 넣어 주었다.
“후-.”
이쪽 역시 스피커폰으로 내용을 함께 들었다.
평소라면 강찬을 대신해 여러 동물들의 2세들을 소환했을 석강호가 얌전히 담배를 물려 줄 만큼 강찬의 눈매에 서린 독기는 진했다.
어쩌자고 송창욱이 건넨 그 빛바랜 태극기를 받아서 이토록 빚진 심정으로 살아가고, 뭘 더 얻겠다며 북한을 시작으로 온갖 곳을 뛰어다니다가 그 많은 대원들을 가슴에 담은 건지. 격납고에서 시선을 든 강찬은 저물어가는 하늘을 눈에 담았다.
곁에 있다면 묻고 싶다.
버려지고도 매번 태극기와 조국이라면 눈시울을 붉히던 비무장지대 대원들에게, 어떻게 그토록 한결같은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는지 말이다.
그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탁자에 내려놓은 스마트폰이 울어서 강찬은 시선을 내렸다.
세상 참.
하필이면 독이 있는 대로 오른 순간에 전화한 인물이 지금도 대한민국을 위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싸우는 국가정보원 본부장 김형정인 건지, 강찬은 기가 막힌 웃음을 토해내며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김형정입니다, 부원장님!
뭔데 흥분했지?
힐끔 석강호를 보았던 강찬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말씀하세요.”
– 카자흐스탄의 쿠르차토프에서 이동한 비행기의 행적을 찾았습니다!
타이밍 진짜 죽인다. 그리고 이 정도 소식이면 충분히 흥분할 만한 거다.
“놈들이 어디로 간 겁니까?”
– 쿠르차토프 기지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용병들을 바다에 떨어트렸고, 그 뒤에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상선을 이용해 이동했습니다. 상선의 최종 목적지는 영국이었습니다.
결국, 너냐?
제이어 반 할트?
잔머리를 얼마나 굴렸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조용하게 침투할 작전이 있다면 사용해보고 싶을 정도로 기발한 방법이었다.
“영국으로 갔다면 제이어 반 할트에게 합류할 가능성이 높겠는데요? 그쪽에 대한 조사도 해 본 건가요?”
– 디지털 분석실도 그렇게 추측했고,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다만, 제이어 반 할트의 거주 지역이 숲에 쌓여 있는 데다, 중요 지역이 아니라 감시 위성의 영상이 몇 개 되지 않아 합류했다는 증거는 못 찾았습니다.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놈들이 지닌 무기와 용병의 숫자거든요. 혹시 그에 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있을까요?”
– 확인해 보겠습니다.
마음 급한 김형정의 심정이 고스란히 짧은 대꾸 속에 담겨 있었다.
“본부장님. 디지털 분석실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요원들에게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기 전에 고맙다는 뜻을 전한 강찬은 그제야 종료 버튼을 눌렀다.
“영국인 거요?”
“이 새끼들이 안 되겠으니까 일단 모여서 버티려는 거 같지?”
셀 수도 없이 많은 희생, 억울하게 죽어간 대원들과 요원들, 제이어 반 할트를 떠올린 석강호가 배고픈 한밤중에 컵라면을 발견한 놈처럼 눈을 번들거렸다.
“중형 미사일을 동원할 정도면 우리도 준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정 안 되면 미국, 프랑스와 연합으로 밀고 가야 할 거 같은데요?”
그리고 예멘 공항에서 놈들을 상대했었던 제라르가 무거운 표정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영국을 유럽의 일본이라고 부르잖냐. 그쪽 정보국과 경제가 일본하고 붙어 있고. 제이어 반 할트도 그걸 아니까 남은 용병을 불러들였을 거다. 거기에 프랑스에도 일본을 편들 놈이 많으니까 연합한다고 하면 무조건 정보가 샌다.”
강찬이 제라르의 의견에 답을 준 다음이었다.
“그냥 고개 한번 숙입시다. 꾹 참고 전화해요. 치료제를 줄 테니까 증평 특수팀 보내 달라면 되는 거요.”
속에서 불이 활활 타오를 석강호가 강찬을 달래 가며 병력을 불러들이자고 요청하고 나섰다.
석강호는 이런 면이 진짜 무섭다.
더럽게 무식하고 막무가내인데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여우의 뒷덜미를 잡아서 따귀를 때릴 정도로 영악한 면을 지닌 거다. 아마도 타고난 영악함이 강찬과 함께 생활하면서 더 발전한 모양인데, 아무튼 놈이 한 번쯤 고개 숙이자고 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불리한 상황이었다.
“아, 그냥 해요, 전화!”
“지금은 그게 소용없어. 당장 대통령이 치료제를 주겠다는 곳이 영국과 일본 아니냐? 영국은 제이어 반 할트가 버티는 곳이고, 용병에 일본 놈들이 있다는데, 그 두 곳이 파병을 지켜보겠냐고?”
“대통령한테 치료제를 줄 테니까 파병만 허가해 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뇨? 그 뒤에 오산에서 조용하게 출발하면 일본하고 중국에서 어떻게 알겠소?”
“대통령의 입을 못 믿어. 민정수석도 마찬가지고. 어쩐지 이전에 파병 요청한 걸 막은 것도 놈들이 손을 쓴 거 아닌가 싶다.”
“에이, 씨발.”
강찬의 분노를 짐작해서 참고 참았던 석강호가 마침내 걸쭉한 욕을 뱉어냈다.
“대장? 외인부대를 조용하게 동원하는 건 말이 새지 않을 거잖습니까?”
“야! 프랑스 외인부대가 영국에 몰래 들어갔다가 사고가 터지면, 이라크에서 압둘라 하지즈를 제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 막말로 그거로 영국이 프랑스를 침공하면 뒷수습은 어떻게 할래?”
“조용하게 안 끝나겠지요?”
“중형 미사일까지 동원했던 놈들이라니까. 제이어 반 할트 하나 잡다가 세계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감염은 아예 뒤로 밀려.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끝도 없이 죽을 테고.”
“젠장.”
의견을 내놓았던 제라르가 입술을 뒤틀며 숨을 푹 내쉬었다.
비밀리에 영국에 들어간다고 치자.
무기는 어떻게 조달하고, 또 병력은 무슨 수로 채워 넣지?
강찬이 눈매를 좁힐 때였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용병들의 거처를 확인하기 위해 갔던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격납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먼 곳에서 다가오는 헬리콥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 강찬이 비무장팀 대원들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싶었을까?
헬리콥터의 뒤편에서 배경처럼 뭉친 하얀 구름이 어쩐지 남일규와 양동식의 얼굴처럼 보였다.
‘아시겠죠, 부원장님?’
그 직후에 하늘을 보던 강찬은 피식 웃었다.
뭐야, 왜 웃어?
그 곁에 있던 석강호와 제라르가 강찬과 헬리콥터를 번갈아 보았으나 두 사람이 이유를 알기는 어려웠다.
***
방역 시스템이 없다시피 한 지역을 중심으로 감염이 빠르게 번졌고, 그만큼 희생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아프리카까지 찾아온 허선영과 특별한 여행은커녕 근처조차 제대로 돌지 못했지만, 하루에 한 번은 함께 식사하고, 마주 앉아 커피도 마셨다. 그마저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건 불가능해서 늘 쫓기듯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었다.
그뿐이냐.
감염자들을 색출하는데 사용하는 물과 구호한 사람들을 위한 식품과 텐트 지원까지, 숨 돌릴 틈 없이 일이 밀려드는 바람에 허선영은 물론이고, 주인영마저 그 급한 식사와 커피를 사치처럼 느끼며 지냈다.
“그렇게 웃는 모습 아프리카에 와서 처음 봐요.”
“내가 그랬어?”
천중명이 왜 힘들지 않겠나.
허선영 또한 불편한 환경에 적응하느라 지친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치료제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라 모처럼 여유가 넘쳤다.
“치료제를 생산하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샘플과 제조 방법을 받는 대로 살펴보고, 기존에 사용하던 장비 중에 이용할 수 있는 것들 먼저 보내기로 했는데, 그렇더라도 부족한 장비들을 구해야 하고, 시설도 지어야 하니까 당장 생산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허선영의 질문에 천중명이 답한 직후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테이블 한쪽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액정을 확인한 천중명은 미안하다는 눈짓을 던지고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천중명입니다.”
– 물어볼 게 있는데 거절해도 괜찮아.
“뭔데 그렇게 어렵게 시작합니까?”
누군데 이렇게 전화를 받지?
허선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앞이었다.
– 카자흐스탄의 쿠르차토프에 있던 체첸과 일본 용병들이 영국에 들어갔다는 정보다. 외인부대를 비롯해 병력을 넣었다가는 전쟁으로 번질 수 있고, 요원들을 밀어 넣자니 적의 화력이 워낙 크고. 대충 짐작하지?
강찬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뻑뻑한 상황을 메뉴판에 적힌 재료들을 알려주는 것처럼 빠르게 전했다.
“확실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내용이군요. 그래서 내가 거절할 수 있는 내용이 어떤 겁니까?”
천중명의 대꾸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곧바로 강찬 특유의 피식하는 웃음이 답처럼 넘어왔다.
– 숫자가 너무 부족해. 영국으로 들어갈 방법도 필요하고.
곽대출과 도깨비 대원들을 요구하는 전화였다.
천중명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당장 앞에 허선영이 있기 때문이었고, 그런 위험한 장소에 곽대출과 대원들을 보냈다가 아픈 일이 생기면 다른 층에 있는 주인영 팀장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 천 회장은 지금껏 기대 이상으로 잘해 줬고, 또 치료제를 생산해야 하는 기지의 관리와 운영도 해야 하니까 편하게 생각해.
“궁금한 게 있습니다. 우리가 가더라도 그쪽 용병과 맞붙으면 반드시 국지전 수준의 전투가 발생합니다. 뒤처리를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용병과 맞붙고, 국지전이 벌어진다고?
거기에 ‘우리가 가더라도’라는 말을 하는 거 보면 직접 가려는 건가?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있던 허선영이 끝내 놀란 시선을 가져왔다.
– 비무장팀 알지?
“아프게 보내 드린 분을 제가 마지막에 품었습니다.”
감성원을 떠올린 천중명이 독하게 답한 다음이었다.
– 방법을 고민하는데 답을 주더라고. 그들의 방식대로 하면 어떠냐고?
강찬의 답이 건너온 순간이었다.
“출발 시간, 들어가는 데 준비해야 하는 것들을 알려 주십시오.”
– 천 회장? 직접 나서는 건 곤란해.
“내가 왕도깨비입니다. 감성원 선배가 마지막으로 우리 직원들에게 했던 말을 모두 전해 들었고, 그분의 마지막을 똑똑하게 기억합니다. 시간과 장소,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려 주십시오.”
– 후우.
“치료제의 생산에는 전혀 문제없을 겁니다.”
– 10분 뒤에 전화하지.
“알겠습니다.”
천중명의 답이 건너간 뒤에 전화가 끊겼다.
“누구예요?”
용병, 국지전이라는 단어 뒤로 다시 감성원의 마지막 모습을 말하며 눈빛을 빛내는 천중명을 지켜보았던 허선영의 눈에 걱정이 좀 더 진하게 담겨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인정한 사람.”
“중명 씨가요?”
고개를 끄덕여 준 천중명은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상황 판단, 결단, 움직임이 그 양반처럼 무서운 사람은 처음이었어. 다른 쪽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지, 사업을 했다면 두고두고 골치 아픈 인물이 되었을 거야.”
“그래서, 뭐 하는 분인데요?”
허선영의 질문을 받은 천중명은 잠시 멈칫했다.
정보국의 실세라든가, 죽음을 결정하는 검은 땅의 신이라는 대꾸를 했다가는 이어질 설명이 너무 길어질 테고, 그 뒤에 허선영이 안아야 할 걱정과 두려움이 너무 크다는 판단에서였다.
왜 답을 못하지?
궁금한 허선영을 향해 천중명은 넉넉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까 특별한 직업은 없는 거 같은데?”
“중명 씨가 무섭다고 할 정도인 분이 브로커인 거예요?”
브로커?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갈등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비슷하니까.
재미있다는 투의 표정을 한 천중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격납고에 들어선 차동균과 강성태 일행은 수색 작업을 보상받는 듯한 봉지 커피를 하나씩 받아들었다.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흙먼지, 어두워지는 세상, 아무리 쉬운 임무라 해도 긴장이 풀린 뒤에 맡는 달달한 향, 구르카 용병들까지 기분 좋게 마신 다음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구르카 동료 한 명에게 종이컵을 넘겨준 강성태가 전보다 훨씬 친근해진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놈들이 숨은 곳을 알아내기는 했는데 쉽지 않아.”
“숫자가 부족해서 그런 겁니까?”
구르카 동료들을 돌아본 뒤에 강성태가 다시 건넨 질문이었다. 이놈은 믿을 만하다. 그의 눈을 들여다본 강찬은 천중명과의 통화까지를 빠르고 간결하게 알려 주었다.
“언제 출발입니까?”
“이번 건 달라.”
강찬의 대꾸를 들은 강성태가 그런 소리를 할 줄도 아냐는 표정으로 웃었다.
세상의 이치가 태어나는 모습이 불공평하다고는 해도 군복에 흙먼지 묻은 얼굴로 웃는 놈의 표정이 이렇게 매력적이어도 되는 걸까?
“게릴라전을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어라?
강찬의 시선을 받은 강성태가 숨을 차분하게 내쉬었다.
“구르카 용병들이 원래 산을 뛰어다니며 살던 출신들이라 게릴라전에 강합니다. 수풀이 우거진 곳이면 더 좋습니다.”
이놈이 왜 이렇게 적극적이지?
강찬의 시선 앞에서 강성태가 고개를 돌렸다.
“게릴라전이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
“형제를 따라 왔습니다! 형님이 가면 우리도 갑니다!”
우리 말이 능숙한 키란이 대표로 대답했고, 곁에 있던 구르카 용병들이 뜻을 알리는 것처럼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 강성태가 시선을 가져왔다.
“학장님과 감성원 선배가 비무장지대에서 싸우던 방식을 택한 거라면 최고의 용병을 구하신 겁니다.”
그런 뒤에 뜻을 밝히는 강성태의 눈에서 느닷없이 독기가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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