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54)
835화 얼른 와라 (2)
옆 동네에 불난 걸 지켜보는데, 느닷없이 우리 집으로 불똥이 튄 상황, 영국의 대외정보국 MI-6는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느닷없이 정보총국 요원들이 밀고 들어오는 거야 강찬이 관련돼 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그렇지만, 뉴욕 본관 건물에서 수장을 잃었고, 뒤에 정보총국의 요원들에게 제거되는 수모를 당했으며, 마지막으로 대통령마저 지키지 못한 CIA가 이번 기회에 자존심을 살리겠다는 투로 들이붓다시피 요원들을 보내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정보국의 수장 애덤 스캇은 연달아 올라오는 보고에 고개를 저었다.
“무슈 강의 행적은?”
“현재 한국으로 향하는 수송기 안에 있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수송기에 탔으니 뛰어내리지 않는 한, 바뀔 리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애덤 스캇은 5분에 한 번꼴로 확인하고 있었다.
“스페츠나츠와 외인부대는?”
“아직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후-.”
숨을 길게 쉬는 그에게 안보 담당이 빠르게 다가왔다.
“감염이 심합니다. 차라리 공항과 항만을 일단 폐쇄하면 어떻겠습니까?”
듣기에는 솔깃하다.
강찬, 또 그 인간과 함께 CIA를 쑥대밭으로 만들 정도로 지랄 맞은 한국의 요원 놈들만 막을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지시를 내리고 싶다. 그러나 영국은 해안선 전체를 감시할 정도로 충분한 병력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밀입국을 통해 사람들이 드나들면 그나마 통제하던 감염마저 뚫릴 위험이 워낙 커서 애덤 스캇은 버릇처럼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겠지?”
“예?”
“제이어 반 할트가 거주하는 성으로 체첸과 일본의 병력이 들어온 걸 무슈 강도 알고 있지 않겠냐는 거지?”
“정보총국과 CIA가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 그렇다고 판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보 담당의 답을 들은 애덤 스캇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굳게 물었다.
성공에 눈이 뒤집힌 정신병자!
해외 파트를 담당하는 MI-6의 애덤 스캇과 어떤 의논조차 하지 않은 채 제이어 반 할트를 지원했고, 일본과 협력까지 해 놓았으니 당장 강찬에게 연락하려 해도 뭐라 할 말이 전혀 없는 처지였다.
‘빌어먹을 정치꾼!’
해외와 국내 파트를 총괄하는 SIS 수장 야드릭 시셰를 떠올린 애덤 스캇이 독기를 뿜어냈다.
아니,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나?
강찬은 무조건 밀고 들어온다고!
그의 성격과 지난 행적을 보면 제이어 반 할트가 죽거나 강찬이 죽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가 나와야 이 싸움이 끝난다.
“미치겠군.”
강찬이 분명 눈에 불을 켜고 들어올 텐데, 영국 정부와 영국의 정보총국 격인 SIS는 제이어 반 할트를 감싸고 있었다.
그뿐이냐.
치료제를 구하지 못했다는 엉뚱한 명분으로 눈엣가시로 여기는 애덤 스캇을 날리려는 시도마저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감염이 점점 더 번지는데도 SIS의 수장 야드릭 시셰는 치료제의 확보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연금에 기대 사는 노령 인구의 축소, 정부 재정을 축내는 빈곤층이 줄어든다고 좋아할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탐욕에 물든 야드릭 시셰를 떠올린 애덤 스캇이 결심한 표정으로 볼을 씰룩일 때였다.
“국장님?”
대외협력부의 담당관이 나직하게 부르며 다가왔다.
강찬이 왔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애덤 스캇이 그에게 시선을 준 다음이었다.
“라노크가 전화 연결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누구?”
“전 유럽 정보회의 의장으로 한국에서 대사를 지냈던 라노크 벨몽드 빠르디유입니다.”
오, 신이시여!
라노크라면 이 곤경에서 무언가 해결책을 주겠지?
대외협력부 담당관의 시선만 아니었다면 애덤 스캇은 신의 배려에 감사하는 심정으로 성호를 긋고 남았다.
“보안은? 특히 MI-5가 알면 곤란해져.”
“디지털 보안 시스템을 가동시켰습니다.”
“연결해.”
애덤 스캇의 지시를 받은 대외협력 담당관이 바깥으로 시선을 주었다가 검지와 중지를 펴서 숫자 ‘2’를 알려 주었다.
“흠. 흠.”
목소리를 다듬은 애덤 스캇은 보안 전화기를 들고서 2번 버튼을 눌렀다.
“애덤 스캇입니다.”
– 디지털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나?
“물론입니다.”
도대체 이 프랑스 구렁이가 모르는 게 뭘까?
답을 한 애덤 스캇은 어쩐지 너무 저자세를 취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붉은색이 들어온 2번 버튼으로 시선을 주었다.
– 애덤 스캇 국장. 선택을 해야 하지 않겠나?
“어떤 선택을 말씀하시는지요?”
반문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가벼운 웃음이 수화기를 타고 건너왔다.
왜 이러지?
이어지는 침묵에 애덤 스캇이 눈알을 굴리는 순간, 2번 버튼에 올라왔던 붉은색 등이 사라졌다.
“라노크 의장님?”
혹시 몰라 불러 보았으나 확실히 전화는 끊겼다. 그리고 확인하겠다는 것처럼 입구를 지키던 대외협력 담당관이 들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라노크 의장이 전화를 끊었다.”
바보! 멍청이!
라노크를 상대로 내숭을 떨다가 기회를 날려?
책상에 앉아 전화기를 들고 있는 애덤 스캇을 내려다보는 담당관의 시선이 마치 그렇게 소리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쪽에서 연락할 방법은 없나?”
애덤 스캇의 질문에 대외협력 담당관이 고개를 저었다.
“걸려 온 번호가 있을 거 아닌가?”
“그가 사용하는 모든 번호를 정보총국에서 관리합니다. 우리가 역추적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볼을 씰룩이던 애덤 스캇은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모르게 마드모아젤과 연결해.”
“정보총국입니까?”
애덤 스캇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타마타키 시온은 어릴 적부터 잔인했고, 그만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며 성장했다.
피가 그럴까?
그의 조부 역시 관동군 소속 비밀 요원으로 조선의 독립군을 체포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붙잡은 독립군들을 이송하기보다는 목을 잘라 머리를 들고 사진 찍는 잔인함과 독기로 유명세를 떨쳤다.
운명의 날, 8월 15일이 지나고, 8월 17일에 그의 조부는 조선인 세 명에게 둘러싸인 채 칼에 찔려 살해되었다.
“조센징!”
그의 부친은 평생 ‘조선인은 은혜를 모른다.’거나 ‘지고도 승복할 줄 모른다.’라는 식의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그 연장선으로 지금의 한국이 근대화된 게 모두 일본의 덕이라며 떠드는 혐한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아침이면 방에 모신 조부의 영정 사진에 무릎 꿇고 하루를 시작하던 타마타키 시온에게 관동군 군복과 모자 복장을 하고, 장검을 왼손에 잡은 조부의 모습은 영웅, 그 자체였다.
“우리가 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까지 개입한단 말이냐!”
혐한의 대표 주자였던 부친의 외침, 조부를 살해하고도 반성은커녕 참배까지 욕하는 한국인에 대한 복수심, 근대화를 이뤄 준 일본에 대한 감사를 원한으로 표시하는 한국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친 타마타키 시온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체첸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아이, 여자, 노인을 가리지 않고 온갖 끔찍한 살상을 일삼는 체첸 용병들에게조차 잔인함으로 인정받는 동료가 되었다.
‘얼른 와라.’
숲에 몸을 감춘 타마타키는 욕망에 물든 눈을 하고서 대검을 매만졌다.
원래대로면 강원도 접경 지역의 해안으로 들어가 비무장 지대에 침투할 예정이었다. 그곳에서 북한군으로 위장해 국지전을 펼치며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게 1차 계획이었다.
막말로 약을 올리는 거다.
이렇게 당하고 참아?
자존심도 없어?
참혹하게 죽은 병사들의 시체를 인터넷에 올리면 민심은 금방 들끓게 된다. 그래도 한국군이 버티면 2차는 시내에서 테러를 일으키는 방식이었다. 그 상황에서 마약에 물든 놈들이 공권력에 대항하며 감염을 퍼트리면 중국과 일본의 개입은 당연한 일이 된다.
마지막으로 상하이 3인방이 내려보낸 중국 병력을 체첸 용병들이 살해하면 전쟁의 모든 단추가 끼워지는 거다. 현재 양쪽 정권 모두 계산이나 이성보다는 즉흥적인 지도자인 점도 전쟁을 일으키기에는 최적이었다.
한 입으로 두말하는 간교한 조선인들에게 달려가 여자, 남자, 아이, 노인 할 것 없이 목에 칼을 박고 온몸을 찢어 죽이겠다며 훈련했었다. 용병으로 살아왔던 타마타키마저도 죽겠구나 싶을 정도로 강도 높게 훈련했다.
“후.”
사람 일이 어디 뜻대로 되겠나.
한국에 괴물 같은 놈이 있어서 미친 짓을 해 댔고, 그 때문에 일이 완전히 틀어졌다.
“고드 오브 블랙쿠삐루도.”
대신, 모든 계획을 망친 인간이 분명히 이곳으로 오리라는 언질을 들었다.
놈을 잡아 숨통을 끊으면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다시금 일본에 충직한 기관이 된다고 들었다. 게다가 느닷없이 세상에 이름을 떨치던 한국의 특수부대 위상 절반이 무너지고, 프랑스 정보총국과 러시아도 돌아설 거란다.
“얼른 와라, 얼른.”
잡놈들은 동료들에게 맡긴다.
그사이 타마타키 시온은 한국 특수부대와 국가정보원의 정신적 지주라는 강찬의 목을 잘라 대가리를 높이 치켜들어서 위대한 일본의 힘을 과시한다.
“요오-시.”
강찬의 머리를 높게 든 모습을 상상하던 타마타키 시온이 쾌감을 이기지 못한 탄성을 나직하게 질렀고, 근처에 있던 일본과 체첸 동료들이 그런 광경에 익숙하다는 듯 히죽 웃었다.
***
본인의 능력을 완벽하게 보이겠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바실리는 큰소리친 대로 민간 항공사의 화물기를 준비해 주었고, 그 안에 사각형 컵라면부터 김치, 즉석밥, 봉지 커피를 넣어 두었으며, 낙하산과 수류탄, 휴대용 미사일, 마지막으로 스페츠나츠와 KGB 요원 두 명씩을 대기시켰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싸움이었다.
빨리 갈수록 유리한 싸움이기도 했다.
강찬 일행은 곧바로 화물기에 올랐고, 그대로 북해를 향해 날았다.
화물기는 탑승하는 승무원을 위한 기본적인 좌석만 있다. 그런 점을 배려해서인지 텅 빈 화물칸에 기다란 의자를 이리저리 고정시켜 두었다.
화물칸의 기다란 의자에 앉은 강찬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단계를 넘어섰다.
이제 남은 건 이대로 날아가 천중명 일행과 합류한 뒤에 제이어 반 할트의 머리를 시원하게 돌려 주는 일이었다.
“스페츠나츠를 붙여 줄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봅니다.”
“휴대용 미사일 봤지?”
“여러 대 있던데요?”
뒤를 돌아보았던 제라르가 시선을 가져온 다음이었다.
“내가 CIA 때처럼 대놓고 밀고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자칫하면 러시아와 영국의 전면전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도 한 거 같고.”
“아!”
강찬의 설명을 들은 제라르가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어설프게 바스첸코와 대원들을 보냈다가 강찬이 밀고 들어가라고 지시하면 영국 내에서 러시아 특수군이 전투를 벌인 꼴이 된다.
“바실리가 진짜 나이 들었나 봅니다.”
“계산이 빠른 거지. 이제 막 체계를 잡아 가는 스페츠나츠를 영국에서 잃어버리면 당분간 믿을 구석이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제라르와 대화를 나누는 중간이었다.
“푸흐흐흐흐!”
강성태 일행과 앉아 있던 석강호가 특유의 웃음을 터트렸다. 함께 웃고 있는 강성태와 구르카 대원들은 아마 모를 거다. 석강호의 지금 웃음에 아까부터 조금씩 처먹은 긴장이 묻어 있다는 걸 말이다.
본능이 주는 확실한 경고를 알아채는 강찬과 달리 석강호는 이상스레 웃음이 달라진다.
석강호가 긴장할 정도로 제이어 반 할트가 철저하게 준비했을까?
석강호를 보았던 강찬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후-.”
연기를 뿜어낼 때였다.
뒤편에서 엄지와 검지에 종이컵을 끼워 든 차동균이 다가왔다.
“커피입니다.”
“장군이 직접 타 왔어?”
“비행기 안에 있는 누구도 제가 장군인 걸 안 먹어 줍니다.”
하기는, 또 그렇네.
기다란 의자를 당겨 돌린 차동균이 마주 앉는 것처럼 자리했고, 셋이서 커피를 마셨다.
“이번이 마지막 싸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쳐서 그래?”
“마음은 안 그런데 몸이 따라 주지를 못합니다. 곽철호가 다친 것도 그런 이유 같고요. 그러고 보면 학장님이 정말 대단하신 거지요.”
강찬은 가볍게 웃은 뒤에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함께하던 사람들이 나이 들어 가면서 기운 빠지는 모습을 보는 건 일종의 고문 같았다.
이렇게 계속 지내다가 어느 순간 차동균과 최종일이 엄지환의 노모처럼 훌쩍 떠나면 그 뒤의 시간을 어떤 모습으로 보내게 될까?
“푸흐흐흐!”
하여간, 뭐 좀 생각을 못 하게 해요!
시선을 돌렸던 강찬은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한 석강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저 무식한 새끼, 여기저기 다 긴 새끼, 이 두 놈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