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55)
836화 얼른 와라 (3)
통화를 요청하고 17분이 지나서였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는 애덤 스캇의 공간으로 대외협력부 담당관이 바쁘게 들어섰다.
“3번 라인에 마드모아젤입니다.”
됐어!
라노크와의 통화를 모를 리 없을 테니, 최소한 사정을 설명할 기회 정도는 잡은 거야!
급하게 전화기를 든 애덤 스캇은 곧바로 3번 버튼을 눌렀다. 전화가 연결되었고, 디지털 보안장치가 작동한다는 의미의 붉은색 불빛이 이렇게 위안되기는 처음이었다.
“마드모아젤? MI-6 애덤 스캇입니다.”
– 반갑네요. 지난주 따님의 발표회는 어땠나요?
뭐라고?
안느의 인사말을 들은 애덤 스캇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 정도는 우리가 다 들여다보고 있어.
어설픈 수작하지 말고 공손하게 협상에 임해.
‘피에 물든 프랑스 아가씨’라는 별명을 지녔을 만큼 강찬의 일이라면, 문바키가 만들어 놓은 정보총국의 위상을 위해서라면, 유럽에 있는 CIA 요원들마저 닥치는 대로 제거하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독하고 냉정한 안느였다. 그녀가 딸의 발표회를 알고 있다는 의미는 애덤 스캇뿐만 아니라 가족마저도 이미 감시망에 들어 있다는 경고와 같았다.
– 발표회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요?
“아닙니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다행이군요.
이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더욱이 라노크와의 협상을 요청하려는 순간에는 더더욱.
“바쁘실 테니 용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애덤 스캇 국장님.
용건을 말하려는 애덤 스캇의 입을 안느가 막았다.
– 선택의 기로에 있어요.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국장님의 권한이고요.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무슈 강이 만든 정보 세계의 질서를 존중할 건지, 야비한 계획을 세운 야드릭 시셰를 따라 행동할지, 답은 둘 중 하나밖에 없어요. 조언을 위해 전화했던 라노크 의장에게 엉뚱한 대꾸를 하셨다던데 그게 국장님의 뜻이라면 인정하고, 또 존중하지요.
죽을래, 우리와 손잡고 살래?
이런 협박을 살면서 애덤 스캇은 처음 받아 본다.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대외협력 담당관을 힐끔 보았던 애덤 스캇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슈 강이 만든 정보 세계의 질서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야드릭 시셰 총괄국장은 다른 의견을 지니고 있어서 제 결정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무슈 강의 질서에 동의하나요?
“동의합니다.”
확인처럼 묻는 안느의 질문에 애덤 스캇이 “I do.”라는 답을 내놓은 다음이었다.
– 이후 과정은 정보총국이 맡지요. 애덤 국장은 제이어 반 할트의 거처에서 일어나는 소란에 SAS, SBS, 경찰, 그 외에 병력이 개입하는 일이 없도록 신경 쓰세요.
이게 무슨 소리야?
대외정보 파트인 MI-6가 영국 내에서 벌어진 일을 어떻게 지휘해?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안느의 이해하기 어려운 요청을 끝으로 3번 버튼에 들어왔던 불빛이 사라졌다.
‘나더러 뭘 어쩌라고?’
멍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려놓은 애덤 스캇이 아직도 긴장한 채 바라보는 대외협력 담당관에게 시선을 드는 순간이었다.
삐익! 삑! 삐익!
특급 상황에서만 울리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애덤 스캇을 찾았다.
이런 건 생각이 필요 없다.
팔을 뻗은 애덤 스캇은 인터폰의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무슨 일이야?”
– 야드릭 시셰 총괄국장의 승용차가 폭발했고, 총괄국장을 포함한 탑승자 네 명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보고를 들은 직후에 애덤 스캇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만약 조금 전 안느에게 건방을 떨거나 반기를 들었다면 딸의 발표회까지 알고 있던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 이 시간부터 SIS 비상 체계에 따라 MI-6 국장이 총괄국장을 대행합니다. 그런 이유로 총리께서 긴급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무시무시한 여자!
‘이후 과정은 정보총국이 맡지요.’
그 말이 이렇게나 무서운 뜻이었어?
– 총리께서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지금 출발한다.”
버튼에서 손을 뗀 애덤 스캇은 곧바로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들었지? 지금부터 SIS는 모든 대외 활동을 금하고, 폭발이 일어난 지역에 SAS와 경찰 특공대를 우선 파견해. 거기까지다. 이후에 병력의 이동은 무조건 내 지시를 받아!”
재킷을 들고 책상을 벗어나던 애덤 스캇이 날카롭게 시선을 던졌고,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온 것처럼 대외협력 담당관이 “알겠습니다.” 하는 답을 내놓았다.
***
그아아아아-앙!
화물기가 바다 위를 낮게 날면서 엔진음을 요란하게 터트렸다. 민간 항공기는 고도를 낮게 비행할수록 위험하다. 또 중간에 문을 여는 것마저 안전에 치명적일 수 있었다.
그까짓 위험쯤이야.
띠잉. 띠잉. 띠잉.
시그널이 세 번 울리고 나자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의 스페츠나츠 대원이 레버를 힘껏 당기면서 화물기의 뒷문이 길게 열렸다.
후우우우욱!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을 이기기 위해 한 팔로 벽에 걸린 안전바를 움켜쥔 대원이 주먹 쥔 다른 손에서 엄지를 치켜들었다가 다시 검지와 중지로 바깥을 가리켰다.
피식.
그를 보고 웃어 준 강찬이 가장 먼저 밖으로 튀어 나갔고, 이어서 제라르, 석강호, 차동균, 우원준, 강성태, 구르카 대원들 순으로 줄줄이 검은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낙하산을 매단 커다란 나무 상자를 스페츠나츠 대원이 연달아 아래로 떨어트렸다.
퍼르르륵.
독특한 소리를 터트린 낙하산이 펼쳐지면서 거침없이 떨어지던 강찬의 몸이 불쑥 위로 솟구쳤다.
염병할, 제이어 반 할트.
지랄 같은 놈 때문에 한밤중에 낙하산을 타고 바다로 떨어지고 있는 거다. 시선을 들어 펼쳐진 낙하산을 확인한 강찬은 주변을 돌아보았고, 마지막에 다시 바다를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먼저 저 멀리에서 지경그룹의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보였고,
반짝. 반짝. 반짝. 반짝.
1마일가량 떨어진 장소에서 새하얀 불빛이 일정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아래를 내려다보며 강찬은 천중명을 떠올렸다.
곽대출이야 도깨비 대원 출신이라도 되지, 기록상으로 천중명은 확실히 천호득의 아들이었고,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으며, 지경화장품을 맡기 전까지 개차반이었던 인물이었다.
강렬한 눈매, 감성원을 위해 달려가는 강단, 이해하기 힘든 특수부대 출신의 움직임, 이런 작전에 참여하겠다는 의지까지, 정보총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한 그의 비서 성창욱의 경력과 성격이 천중명에게서 고스란히 나왔다고 봐야 했다.
‘너도 혹시 블랙헤드와 연관이 있는 거냐?’
아래를 내려다보던 강찬은 피식 웃었다.
세상에는 굳이 알 필요 없는 일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
아주 잠깐, 비행기 안에서 의식을 찾았던 최종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병원에서 다시금 눈을 떴다. 꽤 긴 시간 수술을 진행했고, 혈액과 링거팩, 첨단 장비들을 아낌없이 제공한 병원은 최종일을 호텔 스위트룸이 부럽지 않은 병실에 넣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여기 어디냐?”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하고요.”
상체를 기울여 가며 다가온 이두희가 보고했고, 우희승은 바깥의 의료진을 부르러 달려 나갔다.
“부원장님께 연락드렸어?”
“통화했습니다.”
“지금 어디 계신데?”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힘겹게 숨을 내쉰 최종일이 잠시 뜸을 들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문자 드려. 깨어났으니까 안심하시라고.”
“알겠습니다.”
이두희가 문자를 넣는 동안 달려온 의료진이 최종일을 살폈고,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얼마나 쪼았으면 저런 반응을 보일까?
하기는, 왕족이 직접 나서서 무조건 살려야 한다고 윽박질렀다는 걸 보면 이후의 인생 정도는 걸렸겠다.
하루만 지켜보자던 의료진이 나간 다음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이두희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이두희입니다, 부원장님. 예. 하루만 지켜보자는데 위험한 상황은 넘겼다고 생각한답니다.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스마트폰을 내린 이두희가 스피커폰 버튼을 누른 뒤에 최종일의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최종일입니다.”
최종일이 힘겹게 이름을 밝힌 뒤였다.
– 푸흐흐흐.
석강호의 독특한 웃음이 먼저 스마트폰에서 튀어나왔다.
– 잘했어. 다른 생각하지 말고 몸 추스른 뒤에 보자.
“어디에 계십니까?”
강찬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듯한 석강호의 웃음, 묵직하고 거대하게 들리는 엔진음, 작전에 나간 게 아닌가 하는 염려에 최종일이 질문을 던진 다음이었다.
– 지경그룹 회장과 항해 중인데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거든. 서울에서 보자.
예상대로 작전에 나선 눈치였다.
“몸조심하십시오.”
실제로 작전에 시간이 필요한 모양인지, 강찬에게 당부를 전하고 나서 바로 전화가 끊겼다.
“형수님이 문자 여러 번 하셨던데 아예 통화하고 좀 주무시죠?”
“그러자.”
어지간해서는 절대 연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문자를 여러 번 했다면 그만큼 급한 일이라는 의미도 되겠다.
최종일의 스마트폰을 가져온 이두희가 번호를 찾아서 스피커폰 버튼을 눌러 주었다.
두르르륵. 두르르르륵.
하울링 묻은 신호음이 두 번 울렸고,
– 여보세요?
무서울 정도로 가라앉은 대꾸가 스마트폰을 타고 넘어왔다.
“무슨 일이야?”
– 많이 다쳤어?
뭔가 들었든가, 짐작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거기에 최종일의 부인은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해 봐야 전혀 먹힐 여자가 아니었다. 눈만 돌려서 이두희를 보았던 최종일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른쪽을 길게 맞았어. 옆구리, 엉덩이, 허벅지가 터졌는데, 수술 잘 됐으니까 내일까지 지켜보재.”
억지로 기운을 쥐어짜 조금이나마 씩씩하게 들리도록 애쓴 최종일이 말라붙은 입가를 혀로 적실 때였다.
– 당신에게 볼 곳이라고는 엉덩이랑 허벅지밖에 없는데 이제 그것도 끝이네.
상상하지 못했던 대꾸가 건너오면서 이두희와 우희승이 웃음을 참으려 인상을 버럭 찌푸렸다.
– 나 훈련하다가 부상당해 전역했을 때, 그 전날 꿈에서 돌아가신 아빠를 봤거든. 어젯밤 꿈에서 아빠가 보였어. 커다란 기와집 꼭대기에 위태롭게 서서 태극기 끝을 양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계속 펄럭이시는데 이상하게 울고 계시더라고.
억지로 웃음을 참던 이두희와 우희승이 느닷없이 경건한 표정을 지을 만큼 화제가 확확 바뀌고 있었다.
– 혹시 최악의 상황이라면 다른 거 다 잊어도 당신의 부인이, 대한민국 606 예비역 대위 이지숙이,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가, 606 특임대 특급 대원, 국가정보원 특수작전팀 팀장 최종일을 존경한다고 꼭 말해 주고 싶었어.
이지숙이 이런 말을?
겨우 깨어나 기운이 달리는 데다, 감정마저 올라온 최종일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 바람에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 야, 최종일?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너 혹시 자냐?
606에서도 유명하던 이지숙의 날카로운 음성이 스마트폰을 타고 뛰쳐나와 최종일이 삼키던 감동을 단박에 깨트렸다.
***
이산가족 상봉이냐?
비상용 보트에서 컨테이너선으로 올라간 구르카 대원들과 바깥에 나와 기다리던 도깨비 대원들이 가슴 앞으로 든 손을 마주 잡거나, 혹은 얼싸안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오느라 고생 많았지?”
그 앞에서 눈매 더러운 거로는 석강호에게 뒤지지 않겠다는 듯 험악한 곽대출이 강성태를 다정하게 맞아 주었다.
“씻고 나서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먼저 드시고 씻을 겁니까?”
“뭘 먹는 건데?”
“봉지 커피지요.”
밀수범처럼 무기가 잔뜩 담긴 상자들을 올리느라 분주한 갑판 위였다. 수건을 건넨 천중명이 뻔한 걸 물어보냐는 투로 대꾸를 내놓았다.
강찬은 수건으로 머리와 얼굴에 묻은 바닷물을 닦아 냈다.
“인사부터 하지? 어차피 브리핑도 해야 하니까 커피는 씻고 옷 갈아입은 뒤에 마시는 게 좋겠는데?”
천중명에게 답을 준 강찬은 컨테이너선을 돌아보았다.
어마어마하게 큰 놈이었다. 실제로 중간 부분까지 컨테이너가 테트리스 벽돌처럼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문제는 말이 새 나가는 건데?
배를 둘러보는 강찬의 시선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선박에 탄 모든 인원을 도깨비와 해군특수전전단, 공수부대 전역자로 채웠습니다. 지경그룹 부회장 곽대출이 관리하는 그룹 비상 구호팀이라 말이 새 나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쩐지 바다에 떨어진 강찬 일행을 능숙하게 건져 내더라니.
피식 웃은 강찬은 차동균을 시작으로 제라르, 우원식을 소개했고, 인사를 나눈 천중명은 곽대출과 주변에 있던 대원들을 인사시켰다. 적당하게 인사를 마친 다음이었다.
“모두 회수했습니다.”
보트를 이용해 강찬 일행을 건져 주었던 직원이 다가와 나직하게 보고했다.
돈 있겠다, 이렇게 훈련받은 인물들 가득하겠다, 이런 배를 하나쯤 전투용으로 개조해 달라고 해도 천중명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어둠을 품은 바다를 하얗게 가르는 배 위로 눅눅하고 비릿하며 차가운 바람이 맴돌고 있어서 인사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브리핑도 해야 하니까 인사는 이만하고, 씻고 옷 갈아입자.”
강찬이 지시를 던지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일행이 갑판을 가로질렀다. 천중명과 함께 가장 뒤에서 걷던 강찬은 앞에서 걷는 이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강철규, 차동균이 나이 들어 물러나더라도 이런 인물들이 있다는 걸 보았다면 하늘에 있을 송창욱이나 남일규, 양동식이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제이어 반 할트, 이 멍청한 새끼야.
어쩌자고 이런 괴물들을 한자리에 모았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