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56)
837화 붙어서 이기는 놈 마음대로 하는 거지 (1)
CIA 국장으로 정식 임명된 죤 피셜은 아랫입술을 내민 채 계산에 들어갔다.
세계의 경찰로 통하는 강력한 군사력, 전 세계 경제 질서를 통제하는 기축 통화, 국민을 위해 순국의 길을 택한 게릭 웨인 대통령, 그 살해범인 압둘라 하지즈를 이라크에서 제거하는 능력, 당장 겉보기에 위대한 미국의 위상은 변함이 없었다.
문제는 정보국 사이에 떠도는 진실이었다.
CIA 본관 건물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정보조직 요원들에게 우두머리가 제거되었고, 게릭 웨인 역시 비슷하게 당했으며, 압둘라 하지즈 제거 작전에서도 미국은 항모를 보낸 게 전부였다.
정보총국에 의해 유럽에 파견돼 있던 요원들이 희생된 사건 또한 CIA의 자존감을 바닥에 처박았다.
매서운 눈초리로 고민하던 그는 시선을 들었다.
“여우 사냥을 시작해.”
그의 나직한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지켜보던 대테러 부장이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여우를 사냥한다.”라는 지시를 전했다.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며 여우를 잡는 건 영국 귀족들 사이에 유행했던 스포츠였다. 그러니 영국의 숲속에 숨은 제이어 반 할트를 잡는 작전에 붙이기에는 더할 수 없이 적합한 이름이었다.
제이어 반 할트가 중동 혹은 만만한 아프리카 지역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 영국은 함부로 병력을 보낼 수 없는 지역이었다.
그를 제거하고 나면 물론 영국의 항의가 있겠다. 그러나 그 정도는 적당한 보상으로 넘어갈 자신 있었다. 대신 이번 제거 작전이 정보국 세상에 퍼지고 나면, CIA는 다시 위상을 되찾게 된다.
‘CIA의 이름과 명성을 되찾아 와!’
온 세상을 설치고 다니는 무슈 강보다 빠른 움직임과 과감한 결단으로 CIA를 다시 일으킨 죤 피셜,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그가 야릇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
네이비씰 출신으로 CIA 대테러 응징팀 팀장을 맡고 있는 클램프는 펼쳐진 숲을 마주한 상태로 “여우를 사냥한다.”라는 지시를 받았다.
“라져.”
지시를 받은 그는 분명하게 답하고서 왼쪽 귀에 꽂아 둔 이어셋을 가볍게 눌렀다. 평소에는 동료들과 무전을 주고받는 데 사용하는 이어셋이지만, 각각의 고유 번호가 있어서 본부에서 전화를 연결할 수 있는 최신 기종이었다.
이런 기술이 적을 압도하고, 결국 작전의 성공으로 이어지도록 돕는다. 실제로 미국의 특수부대들이 이름을 떨치는 이유의 절반은 최첨단 무기들과 제한을 두지 않는 엄청난 후방 지원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거다.
오늘 작전도 그렇다.
20마일 떨어진 지역에 열 대의 버스와 트럭을 준비했고, 그곳에서 클램프 팀은 특수부대 복장과 무기를 갖췄다.
“여우 사냥을 시작한다.”
목에 붙인 마이크를 통해 지시를 전한 클램프는 같은 복장을 한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체첸과 일본인으로 구성된 용병이라고?
지난 시절 클램프가 이뤘던 성과를 알고 나면 몸서리를 치며 도주할 게 분명했다.
헬멧에 달린 야간 투시경을 내린 그가 오른쪽과 왼쪽을 향해 검지와 중지를 뻗었다. 그와 동시에 명령을 기다리던 요원들이 줄줄이 숲으로 스며들었다.
1조와 2조가 무사히 진입할 동안 경계 임무를 섰던 클램프는 소총을 어깨에 겨눈 자세로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총구를 돌리는 그의 시선에 꼿꼿하게 서 있는 나무들과 그곳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무식하고, 잔인한 인성이 전부인 체첸 용병에 잠수함마저 분실하는 일본 출신 군인들이 적이지만, 방심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조심조심, 걸음을 내디디던 클램프는 혹시나 숨어 있을지 모를 적을 찾기 위해 눈빛을 빛냈다.
10분쯤 걸어 들어간 다음이었다.
목표했던 둥그런 바위가 앞에 보였고,
– 그레이. 바운드 확보.
– 하운드. 바운드 확보.
10명씩 구성된 1조와 2조 역시 목표로 했던 1차 지역을 확보했다는 보고가 무전을 통해 들어왔다.
확실히 용병들은 외곽 경계가 허술하다. 그러니 이제부터 들어가는 2차 지역에서는 반드시 적을 만나게 된다.
“다들 긴장해.”
다시 출발하기 전에 혹시나 방심하는 팀원이 나오지 않을까를 염려한 클램프가 나직하게 지시를 전한 직후였다.
– 끄윽.
이어셋을 타고 거북한 비명이 들렸다.
“무슨 일이야?”
클램프가 나직하게 질문을 던졌고, 함께 무전을 듣던 팀원들이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 Fuck!
이번에는 욕설과 함께 낙엽이 가득한 바닥에 누군가 처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미끄러진 건가?
“무슨 일인지 보고하라고!”
– 부비트랩입니다. 끄으으!
젠장! 고작 용병 놈들의 부비트랩에 당하다니!
분통이 터졌지만, 클램프는 작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었다.
“베이스로 움직여! 서둘러!”
– 끄윽.
“그레이! 하운드! 베이스로 이동해!”
지시를 던진 클램프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체첸과 일본인 출신 용병들이 전부라고 들었다. 부비트랩이라고 해 봐야 인질 몸에 폭탄이나 감아 두는 수준일 텐데, 거기에 당한다는 게 말이나 되나?
이것들이 설마 비트를 이용했나?
섬뜩한 느낌을 받은 클램프가 팀원들이 서 있는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는 순간이었다.
파아악.
왼편 바닥이 터지는 것처럼 흙과 낙엽들이 솟구쳤고,
“아아-악!”
다리를 잡힌 요원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철컥! 푸슈슝! 푸슈슈슝!
이미 허리까지 빨려 들어간 팀원을 비켜나는 것처럼 소총을 아래로 깊숙하게 내린 클램프가 방아쇠를 당기면서 어둠이 전부였던 숲에 번개가 치듯 불빛이 번쩍였다.
그 직후였다.
뒤늦게 동료를 구하고자 팀원 두 명이 구덩이를 향해 달렸다.
“움직이지 마!”
클램프가 급하게 외쳤으나,
쉐엑! 쉐에엑!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 위쪽에서 날아든 칼날이 두 팀원의 목덜미와 팔뚝을 파고들었다.
“끄응.”
파악! 파아악!
그러나 상처를 감싸며 자세를 웅크린 대원 곁에서 다시금 흙과 낙엽이 솟구쳤고, 곧바로 대원 두 명을 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푸슈슈슝! 푸슈슝! 푸슈슝!
클램프와 팀원들이 주변 바닥에 소총을 갈길 때,
“아아-악!”
1조와 2조가 있는 곳에서도 처절한 비명과 함께 소총 소리와 불빛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당했다. 완벽하게.
더구나 토끼처럼 바닥에 굴을 연결해 두었는지 빨려 들어간 동료들은 아예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런 구덩이에 수류탄을 던지겠다며 시간을 끌다가는 남은 팀원마저 잃을 위기여서 클램프는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베이스로 물러나!”
지시를 내린 클램프가 뒤로 물러나는 순간이었다.
스스슥! 푹!
낙엽 사이로 뱀이 스치는 소리가 들린 직후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정강이를 제대로 파고들었다.
철컥!
그가 아래로 총구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세상이 온통 허물어지는 것처럼 바닥이 꺼졌고, 총구를 내린 클램프는 그대로 시커먼 흙구덩이로 빨려 들어갔다.
***
간혹 무거운 눈빛을 할 때는 있었다. 그러나 김미영과 함께 보내는 시간 동안 문바키는 내내 부드러운 표정을 유지했고, 이따금 유쾌한 웃음마저 터트렸다.
비유가 이상하기는 한데, 전 프랑스 정보총국 총국장의 한국 방문을 전 프랑스 주재 한국 대사관의 대사가 안내하는 특별한 관광이었다. 수행원이 있다고 누가 뭐랄 사람 없는데, 시종일관 김미영이 운전했고, 문바키는 조수석에 앉아 마치 한국, 그중에서도 서울을 가슴에 담는 것처럼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굉장하군요.”
거대한 팥빙수를 본 문바키가 진심에서 나온 듯한 감탄을 터트렸다.
“사진 안 찍어요?”
“찍어야 합니까?”
엉뚱한 반문에 김미영이 웃은 뒤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진동음을 울리는 스마트폰을 꺼낸 문바키가 버튼을 눌렀다.
“알로?”
처음이었다. 둘이 시간을 보낸 이후로.
상대방의 내용을 듣던 문바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이어서 정보총국장의 위치로 돌아간 사람처럼 냉혹한 눈빛을 지었다.
“의장님의 현재 위치는?”
라노크의 안위에 문제가 생겼나?
공연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김미영의 신경이 어쩔 수 없이 문바키의 통화 내용으로 쏠렸다.
“라파엘에게 연락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의장님을 붙잡으라고 전해 줘.”
이후 조용하게 상대방의 말을 듣던 문바키가 종료 버튼을 눌렀다.
“전화 한 통을 더 해야 합니다.”
“편하게 하세요.”
양해를 구한 문바키가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영국으로 출발한다. 현재 위치에 차량이 있나?”
영국으로 간다고?
김미영이 스마트폰에 주었던 시선을 든 직후였다.
“마담을 경호할 인원을 남긴다. 그리고 의장님과 전화를 연결해. 최대한 서둘러.”
나직한 프랑스어로 지시를 전한 문바키가 통화를 마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감정을 정리하는 사람? 혹은 아쉬움을 삼키는 모습?
시선을 내려 스마트폰을 보는 문바키가 김미영의 눈에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의 시간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면 안 되는 거겠죠?”
“나중에 알게 되실지는 몰라도 당장 대장과 관련된 일은 아닙니다.”
“아슬아슬하네요. 그런데 은퇴하지 않았나요?”
남은 일정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이대로 떠나는 문바키가 위험한 일에 말려들지 모른다는 불안한 예상에서 건넨 질문이었다.
“경호, 자가용 비행기, 그밖에 최소한의 인원을 보장받는 만큼 의무는 아니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적당할 겁니다.”
“어렵군요.”
강찬부터 다들 이렇게 산다. 그런데 김미영조차 정작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어떤 위험을 감당하는지 세세하게 알지는 못한다.
떠나기 전에 한 숟가락 맛이라도 보라고 할까?
아직 손도 대지 않은 팥빙수를 보며 김미영이 아쉬움을 삼킬 때였다. 정장을 갖춰 입은 프랑스 남자 두 명이 계단을 통해 올라와서는 문바키 앞으로 다가왔다.
“가 봐야 할 거 같습니다.”
문바키가 일어섰고, 김미영이 뒤따라 몸을 일으켰다.
“대장이 살던 세상을 마담과 함께 돌아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뵙겠습니다.”
“꼭 다시 오세요.”
새하얀 머리칼의 문바키, 강인한 체형에 정장을 입은 프랑스 남자,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김미영, 가게에 있는 시선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연습했던 모양이었다.
한국식으로 공손하게 상체와 고개를 숙여 보인 문바키가 움직였고, 그 뒤를 두 명의 프랑스 남자가 뒤따랐다.
자리에 앉은 김미영은 작은 스푼을 들어 팥빙수를 조심스럽게 떴다. 문바키가 그토록 바라던 팥빙수라서 이렇게라도 아쉬움을 대신하고, 혹 나중에 맛이 어땠는지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게 말이다.
달다. 김미영의 입에는.
한입을 먹은 김미영이 스푼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정장 차림의 삼십 대 여성과 캐주얼 차림의 이십 대 여성이 계단을 올라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경호원이구나.’
보면서 바로 알았다. 그리고 김미영의 추측에 답하는 것처럼 시선이 마주친 삼십 대 여성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건너편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
승용차의 뒷좌석에 앉은 문바키가 눈빛을 가라앉힌 채 창밖을 바라볼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오른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라노크인가?
기대하며 바라본 액정에 올라온 이름은 안느였다.
“알로?”
– 무슨 일이죠?
당황한 감정 반, 불쾌한 심정 반, 안느의 음성에 담긴 감정이 선명하게 문바키에게 달려들었다.
“야드릭 시셰를 제거하라고 지시했습니까?”
– 그게 왜 문제가 되죠?
한숨이 절로 나왔으나 문바키는 냉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야드릭 시셰는 영국 SIS 총괄국장입니다. 정보국의 수장을 제거하는 건, 그를 지휘할 권리가 있을 것, 완벽하게 범죄가 드러났지만, 법의 처벌 바깥에 있을 것, 마지막으로 다른 정보국 수장들이 반발하지 않을 것, 위에 나열한 조건들을 모두 충족했을 때 가능합니다.”
– 그가 기존의 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취했고, 제이어 반 할트를 지키겠다며 SAS에 비상령까지 내렸어요. 우리와 CIA가 공동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서도요.
“마드모아젤. 그런 이유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현재는 직전 유럽정보국 총회 의장이셨던 라노크 벨몽드 빠르디유와 다음 대 의장인 무슈 강, 두 분밖에 없습니다.”
당황한 모양이었다.
반문하거나 불쾌한 감정을 표시할 줄 알았던 안느는 대꾸가 없었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당장 SIS와 CIA가 마드모아젤의 제거 작전을 꾸밀 겁니다. 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상대 정보국의 수장을 제거하겠다고 나설 겁니다. 그런 방식의 테러와 암살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럽정보국 총회를 만드신 분이 라노크 전 의장입니다.”
– 설마?
“부인을 잃으셨고, 마드모아젤이 다리를 다친 이후로 라노크 의장님이 가장 이루고 싶어 하시던 일 중 하나였습니다. 무슈 강이 차기 의장을 맡았던 이유 중 하나도 의장님과 마드모아젤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규칙을 유지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이제야 현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안느의 무거운 숨소리가 들렸다.
“부탁이 있습니다.”
– 말하세요.
“이번 사건을 중재하기 위해 라노크 의장께서 영국의 누군가를 만나려 하실 겁니다. 그것만 막아 주십시오.”
– 나 대신 목숨을 내놓으신 건가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내가 영국에 도착할 때까지만 시간을 벌어 주십시오.”
– 알았어요.
통화를 마친 문바키는 종료 버튼을 누르고서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라노크가 중재에 나설 경우, 최악의 결과는 모든 책임을 대신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삶을 로리암의 지하에서 보내는 걸 테고, 중재에 실패하면 영국의 길바닥에서 차가운 시체로 발견될 거다.
그런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한국식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을까?
잠시나마 서울에서 머물렀고, 강찬이 말했던 음식들도 대부분 먹었다. 아쉬운 건 강찬을 보지 못한 건데, 사람이 어떻게 원하는 걸 모두 이루며 살겠나.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린 문바키는 파란 서울의 하늘을 보며 강찬을 흉내 내듯 피식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