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57)
838화 붙어서 이기는 놈 마음대로 하는 거지 (2)
강찬은 말이지, 사람을 압도하는 눈매와 카리스마를 지녔다. 피식 웃는 게 때로는 속을 긁는 느낌인데 그것조차 대놓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씻고 나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브리핑을 위해 모인 자리였다.
철커덕.
소총을 품에 안은 강찬이 노리쇠를 당기는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컨테이너선의 넓은 선실을 가득 메웠다. 그런 거 있잖나. 여태 집에서 사람과 함께 자란 것처럼 심드렁하게 있던 사자가 느닷없이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기 직전의 느낌, 소총을 품은 강찬은 꼭 그런 느낌이었다.
“푸흐흐흐.”
독기를 잔뜩 먹은 석강호의 웃음은 또 어떻고. 그의 눈빛과 표정만 봐서는 사자 옆에서 눈치를 살피느라 배고팠던 호랑이가 살찐 개를 발견한 바로 그 모습이었다.
씨익.
프랑스 남자가 참 매력 있구나 싶었던 제라르였다. 부드러운 음성, 온화한 표정, 시를 읊는 듯 감미로운 프랑스어 억양, 그랬던 그가 단박에 전 외인부대 특수팀 사령관이라는 명칭을 어떻게 얻었는지 보여 주는 것처럼 볼의 흉터를 우그러트리며 웃는데, 당최 직전과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다.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하나씩 받은 다음이었다. 중앙에 놓인 테이블에 천중명이 커다란 사진을 펼쳤다.
공중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미녀를 납치한 야수가 살 법한 거대한 성, 성을 방어하기 위해 파 놓은 듯 보이는 둥그런 물길, 널따란 초원, 다시 그 바깥으로 빙 둘러 펼쳐진 숲, 이 인원으로 정말 뚫고 갈 수 있을까 의심 들 만큼 방어에 유리한 형태였다.
“강성태.”
“예.”
강성태는 바로 답을 하며 강찬이 검지로 찍은 장소를 눈에 담았다.
“이 지역을 확보할 수 있겠어?”
“예?”
밀고 들어가라는 지시를 내릴 줄 알았던 강찬이 반문하는 강성태를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갑자기 질문하셔서 그랬습니다. 위에서 찍은 사진만 있어서 아래쪽 컨디션이 어떤지도 모르는 상태고요.”
피식.
저 기분 나쁜 웃음, 진짜!
“현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이것뿐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해. 어떨 거 같아?”
키란과 동료들을 돌아보았던 강성태가 강찬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더러 방어하라면 매복을 택하겠습니다. 그 점에 대비해서 들어가면 될 거 같습니다.”
“매복?”
“숲이 우거졌으니까, 나무뿌리 아래를 파고 숨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겠습니까?”
멕시코에서 키란과 둘이 버텼던 방식이라 강성태에게는 낯설지 않은 선택이었다.
강성태의 대답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지켜보던 곽대출과 도깨비 직원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뒤에 의견을 묻는 것처럼 곽대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도깨비는 원래 북파 공작원을 의미하는 명칭입니다. 방금 강성태 회장이 말한 대로 비트를 파는 것도 있고, 거기에 부비트랩을 함께 설치하면 효과가 있을 거 같습니다.”
강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암벽이 많은 장소 보이지?”
“예.”
“가장 높은 곳이 50미터쯤 돼. 정상에 적이 있다면 올라가는 동안 무조건 표적이 될 텐데, 그만큼 중요해.”
회색으로 표현된 장소를 바라보았던 곽대출이 천중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맡지요.”
그 뒤에 천중명이 단단한 음성으로 답을 내놓았다.
특수부대 복장에 소총을 목에 걸고, 방탄복, 수류탄, 권총, 대검을 몸에 건 그룹 회장과 부회장이라니,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지경이 이곳 바위 정상을 확보할 때까지, 숲의 동쪽과 북쪽을 강성태 팀이, 나머지 반은 우리가 수색한다. 명심해. 바위 정상을 확보할 때까지 숲을 넘어가지 마.”
지시를 마친 강찬은 성 주변에 펼쳐진 초원을 중심으로 커다랗게 원을 그렸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 무조건 저격수의 공격이 들어올 거다. 또 중간중간 발목 지뢰를 포함한 함정이 있을 테고. 그러니까 지경이 바위 정상을 확보해야 하고, 그 뒤에는 성에 있을지 모를 저격수를 잡아 줘야 해.”
“바위 정상에도 저격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겁니까?”
“없으면 감사한데, 여기에 있는 누구라도 저쪽 입장에 서면 저격수 꽂지 않겠어?”
그건 또 그러네.
다들 강찬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처럼 바위산과 성의 중앙에 시선을 주었다.
“제이어 반 할트는 만만한 놈이 아냐. 우리가 물길을 넘는 순간에 성을 폭파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대응해. 물론 본인은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겠지.”
용병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계획을 짜는 건가?
무턱대고 밀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위험 요소를 하나씩 제거하는 사람, 강성태와 동료들이 맡은 지역 넓이를 차동균과 우원식을 포함해 달랑 다섯 명이 해결하겠다는 능력, 강성태는 조직의 우두머리로 돌아가기보다 차라리 이 상태로 강찬의 충직한 동료로 남고 싶다는 욕심이 슬며시 피어났다.
그 직후였다.
“질문?”
강찬의 음성이 엉뚱한 강성태의 생각을 자르는 것처럼 달려들었다.
“없으면 커피 마시고 잠시 쉬어.”
지시를 마친 강찬은 마치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남은 커피를 털어 넣었다. 배에서 내리면 정보총국이 버스와 트럭을 준비한다고 들었다. 남은 건 작전에 앞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일이었다.
***
테트리스의 배경 화면처럼 보이는 성의 중간 테라스였다. 분위기 즐기겠다며 저런 곳에 나가 밖을 내다보다가는 머리통이 터져도 변명할 말이 없는 꼴이 된다.
바실리는 저격이 불가능한 안쪽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쪼로록.
보드카를 잔에 채운 그는 단숨에 털어 넣고서 안주를 대신하듯 담배를 입으로 가져갔다.
정보국 세상은 냉정하다. 결과에 따라 함께 보상해야 할 일이 생기고, 심할 경우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달려든다. 그리고 지금은 오래도록 못마땅하던 구렁이가 제대로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진 꼴이었다.
쪼로록.
또다시 보드카를 단숨에 들이마신 그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재떨이에 담배를 찌그러트렸다.
“멍청한 구렁이!”
짜증 섞인 음성으로 라노크를 평가한 그는 보드카 병 옆에 두었던 스마트폰을 집었다. 그런 뒤에 버튼을 눌렀다.
– 강찬이다.
“주연께서는 아직 소식을 못 들은 모양이지?”
– 제이어 반 할트에게 다른 일이 생겼나?
멍청이들.
바실리는 눈매를 뒤틀었다. 지금 대화로 봐서는 강찬에게 부담될 것을 염려해서 말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 바실리?
“흥! 피에 물든 마드모아젤께서 다시금 이름을 떨쳤더군. SIS 총괄국장을 자동차 폭발로 제거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국에 있던 라노크가 협상을 시도하는 중이고, 한국에 있던 문바키가 급하게 비행기에 올라 이미 출발했다.”
코웃음을 시작으로 입을 연 바실리는 그의 인생에서 통화로는 아마 가장 길었지 않았을까 싶은 설명을 전했다.
– 해결 방법은?
“이봐, 주연. 그걸 나한테 묻는 건가?”
–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해 가장 연륜이 높은 사람을 찾은 거라고 믿는데?
“흥! 말이 늘었어.”
– 치료제를 전달하면 어때?
“그건 보상이지, 협상의 조건이 안 돼. 무엇보다 테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깬 거니까.”
갑갑한 속내를 드러낸 바실리는 짧게 숨을 내쉰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프랑스 구렁이가 로리암에서 인생을 마치는 게 가장 원만한 타결일 거다. 물론, 이름만 남았더라도 유럽 정보국에서 이번 일을 유감이라고 발표해야 하고, 앞으로 정보총국은 영국 정보국과의 충돌에서 양보하겠다는 협약과 함께 치료제 정도는 보상으로 내놓아야겠지.”
바실리의 해결책이 건너갔으나 강찬의 대꾸는 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일 테고, 바실리 역시 그렇게 예상했었다.
어떻게 나올래, 갓 오브 블랙필드?
바실리가 궁금해하는 만큼 온 세상의 정보국이 지켜볼 질문이었다.
침묵이 조금씩 늘어지고 있었다.
성난 맹수가 분노를 억지로 참아 내는 느낌?
“전쟁이라도 일으킬 분위기군.”
더 참지 못한 바실리가 먼저 입을 연 다음이었다. 침묵하던 통화가 뚝 끊겼다.
끊었어?
스마트폰 액정을 확인한 바실리는 독한 눈매로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
바실리와 통화를 마친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내려놓기도 전에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고, 액정에 안느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브리핑을 마쳤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작전을 세운답시고 불러서 전화만 줄창 붙잡고 있을 뻔했다.
“안느?”
– 영국과 합의가 끝났습니다. 항구에서 목적지까지 헬리콥터로 이동하고, 작전 종결을 선언할 때까지 영국 내 어떤 병력도 개입하지 않기로 협의했습니다.
당장 일이 터지지는 않았구나.
무엇보다 이 정도 합의가 도출될 정도라면 아직 영국 정보국은 SIS 총괄국장의 사망 이후를 수습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 추가 사항이 있습니다. 미국 CIA 대테러 응징팀이 제이어 반 할트를 제거하기 위해 투입됐으나 단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건 또 뭐야?
강찬은 선실 바깥에 펼쳐진 어두운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당장 느끼기에는 편안한데, 창을 통해 보이는 수평선은 느긋하게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CIA 작전을 지시한 인물은?”
–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지만, 새로 CIA 국장이 된 죤 피셜이 무리한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다른 내용은?”
– 현재는 위 두 가지가 전부입니다.
안느 역시 SIS 국장의 사망과 관련된 내용을 말하지 않고 있었다. 작전을 앞둔 강찬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는 의도일 테고, 어떤 해결책이든 본인이 감당하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었다.
“고생했어, 안느.”
짧게 고마움을 표시한 강찬은 곧바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안느를 잘 안다. 피의 마드모아젤이 어쩌고 하지만, 이번 역시 영국 안에서 작전해야 하는 강찬을 위한 지시였을 거다. 제이어 반 할트를 감싸고 도는 것만으로 SIS 총괄국장의 죄는 충분하다고 여겼을 테고. 강찬을 보조하면서 시원시원하게 제거하는 게 일종의 해결책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강찬이 나서면 당장이야 덮어지겠다, 그러나 다음번에 누군가 수장이 제거되어도 강찬은 중재를 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지?
강찬이 어두운 바다를 보며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잠깐 들어가도 됩니까?”
고개를 기울여 장난스럽게 질문했던 천중명이 강성태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중독된 거 아냐?”
“곽 부회장이 물을 많이 타는 버릇이 있어서 그렇지, 원래 서너 잔은 마셨었습니다.”
그가 내미는 종이컵을 받은 강찬의 농담을 천중명은 별것 아니란 투로 받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절대 어기면 안 되는 규칙을 내가 아끼는 사람이 어겼다. 물론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작전에 나선 나를 위한 지시였던 거고.”
“헬리콥터 지원이나 영국 병력을 막은 걸 말하는 겁니까?”
사업을 하려면 이 정도 눈치가 있어야 하는 건가?
천중명의 냉정한 눈빛을 확인한 강찬은 마음을 굳혔다. 매번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니 뭔가 묘수를 찾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3분쯤 딱히 이름을 밝히지 않은 상태로 상황을 설명한 다음이었다.
“어렵군요.”
무거운 얼굴을 한 천중명의 옆에서 강성태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웃음을 가리려는 것처럼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뭐야? 뭔데 그렇게 웃어?”
“어려운 일에 웃어서 죄송하지만, 꼭 폭력 조직 사이에 벌어진 일과 비슷하다고 느껴서 그랬습니다.”
“그래?”
비웃은 게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어서 강찬은 강성태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닌 게 아니라, 정보국끼리의 알력이나 충돌이 폭력 조직의 구역 싸움과 비슷한 구석이 많기는 했다.
“강 회장이 이런 상황을 맞았다면 어떻게 해결할 거 같아?”
“책임지고 싶으신 거 맞습니까?”
강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힘겨운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기꺼이 감당하실 겁니까?”
컨테이너선 선실에서조차 빛나는 강성태의 얼굴 안에서 더욱 강렬해 보이는 그의 눈이 답을 원하고 있었다.
“죽음은 내가 결정해.”
강성태의 강한 눈빛이 마치 정보국 세상이 던지는 개 같은 요구처럼 느껴져서 생각도 하기 전에 대꾸가 튀어 나갔다.
“이병렬이라고 저보다 나이 많은 동료가 있습니다. 때로는 가르침을 주는 스승 같고, 가끔은 더할 수 없이 믿음직한 조직원이고, 또 어떤 때는 온갖 아쉬운 점을 의논할 수 있는 멘토 같은 인물입니다.”
이병렬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바닥을 드러낸 종이컵을 내려다본 강성태가 시선을 들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힘겨운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동료가 제게 그러더군요.”
천중명이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깡패 뭐 있어? 붙어서 이기는 놈 마음대로 하는 거지.”
강성태의 화끈한 답이 떨어진 직후였다.
피식.
특유의 미소를 그려 낸 강찬이 후련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