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58)
839화 붙어서 이기는 놈 마음대로 하는 거지 (3)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밤하늘을 가르는 헬리콥터의 꼬리 부근에서 붉은색 불빛이 날카롭게 반짝였다. 거칠게 파고들었다가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강찬은 옆자리에 앉은 제라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다음이었다.
무슨 생각인지 다예를 돌아보았던 제라르가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몽골 작전에 참여하면서 봤을 때 기억합니까?”
헬리콥터에 타고 있는 사람 중에 알아듣는 이가 없도록 제라르는 나직한 프랑스어를 건넸다.
“갓 오브 블랙필드와 다예라는 코드명을 들었을 때는 정신이 멍했습니다.”
“마찬가지야. 중닭이 된 너를 봐서 놀랐고 반가웠었지. 다예랑 비슷했다.”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헬리콥터의 엔진음 사이로 오간 대화였다. 그리고 이런 순간에 절대 빠지지 않는 석강호가 상체를 기울이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왜 갑자기 프랑스 말을 지껄여?”
본인 욕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석강호의 찢어진 눈 속에 가득했다. 그래 이게 맞다. 그동안 이상스러울 만치 두 놈의 관계가 좋았던 거지, 원래는 마주 앉기 무섭게 투덕대던 놈들이었다.
헬리콥터의 엔진음, 들이닥치는 바람, 군복과 소총이 주는 감촉, 이런 상황에 놓이면 정해진 것처럼 아프리카에서 보냈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때도 그렇고, 그 뒤로도 한동안 대장이 아프리카에 다시 발을 디딜 줄은 몰랐습니다. 평화유지군 본부를 만들고, 지경그룹을 끌어들인 거 모두 낙후된 아프리카를 일으키려는 거 아닙니까?”
이런 말에 무슨 대꾸를 하겠나.
피식 웃은 강찬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말라 버린 아이의 커다란 눈에 죽음의 전조처럼 달라붙었던 파리 떼, 지겹도록 고생만 하다가 평균 수명 40마저도 못 채운 채 움막의 흙바닥에 죽어 있던 주민들, 부족 전쟁과 독재자들의 하수인에게 끌려가 AK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던 열네 살가량의 아이들, 제이어 반 할트의 눈에 그들의 삶 정도는 얼마든지 뺏어도 될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염병할 개새끼.
많이 가졌으면 베풀면서 함께 살 생각을 해야지, 혼자 오래도록 잘 처먹겠다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그 짧은 삶을 뺏어?
소총에 손을 얹은 강찬은 처음 아프리카에 떨어져서 만났던 엔조를 떠올렸다.
“아프리카의 노을이 핏빛인 이유를 내일 전투에서 알게 될 거다. 체스판의 말이라도 피는 붉은색이니까.”
감성원을 그리워하는 강성태의 심정이 이럴까?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많이 먹는 놈과 기다란 놈이 함께 있었다면, 엔조도 여태 살아서 어디 공기 좋은 곳에서 홍차를 마시고 있지 않을까?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뭔 생각을 그렇게 하쇼?”
입이 근질거렸던 모양이었다. 모처럼 떠올린 엔조와 아프리카의 삶을 걸걸한 석강호의 음성이 멀찍이 날려 버렸다.
“내일 아침은 무슨 색일 거 같냐?”
“뭔 소리요?”
강찬을 삐뚜름하게 들여다보던 석강호가 알 거 같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얼른 끝내고 한국 갑시다. 가서 갈비탕이랑 낙지볶음 시켜서 뜨끈하고 얼큰하게 먹는 거요. 그렇게 기운 차려서 다음 날 가평에 가면 끝이오.”
“가평에?”
“그곳에서 백숙 하나 먹어 주면 없던 여유도 생길 거요.”
그래.
이놈이 있어서 그래도 기다란 놈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 의지할 수 있었고, 지금껏 견딘 걸 거다.
“먹자. 닭백숙.”
“푸흐흐흐.”
만족한 듯 웃은 석강호가 시선을 앞으로 가져갔다.
***
애덤 스캇은 네 통의 전화를 차례로 받았다. 그러는 동안, 놓치고 있던 칼자루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깨달았다.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은 지금 마주 앉은 라노크였다. 정보 세계라는 살벌한 세상에서 오랜 세월 힘을 떨쳤던 그마저도 세월에 얻어맞아 눈 아래쪽이 길게 늘어졌는데, 대신 눈빛만큼은 속을 읽지 못할 만큼 깊었다.
정보총국의 자존심을 위해 목숨을 던질 각오로 찾아온 프랑스 구렁이.
죽음의 문턱을 여러 차례 밟았고, 부인을 테러로 잃었으며, 그 테러에서 현 정보총국장인 딸 안느는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런 그가 사건을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애덤 스캇을 찾았다.
SIS가 운영하는 회원제 클럽이었다.
여러 개의 테이블이 놓인 홀을 벗어나 창에 붙은 특별한 공간에서 애덤 스캇은 시선을 돌렸다.
“자리를 비켜 주지?”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 경호를 위해 서 있던 SIS 요원들이 조용하게 홀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요원들을 확인한 애덤 스캇은 라파엘에게 고개를 돌렸다.
“라파엘. 지금부터 나눌 대화가 밖으로 나갈 경우 제거될 수 있습니다. 무슈 강도 동의한 내용입니다. 함께 듣겠습니까? 아니면 자리를 비켜 주겠습니까?”
무슈 강이 동의했다고?
라노크가 눈가를 좁힌 순간이었다.
“마드모아젤과 문바키 전 총국장이 차례로 연락했었고, 마지막으로 무슈 강이 전화했었습니다.”
“보다시피 우리는 함께 늙어 왔지.”
“그렇다면 함께 듣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전화에 관해 설명한 애덤 스캇이 지친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야드릭 시셰 총괄국장은 이슬람계 체첸 용병에게 살해당했습니다.”
“흥미롭군.”
“제가 임시로 SIS 총괄국장을 대행하고 있지만, 치료제를 얻게 된다면 정식으로 임명됩니다. 이 점은 이미 총리와 협의한 내용입니다.”
치료제의 제공이 나왔다면 확실히 강찬이 약속한 내용이겠다.
“치료제의 제공과 더불어 몇 가지 제한을 두기는 했지만, 제가 SIS 총괄국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그리고 은퇴한 뒤에도 누군가에게 피격, 납치, 테러를 당할 경우, 철저한 응징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또한, 제이어 반 할트의 제거 작전을 성공하면 제가 지휘한 것으로 보고하게 됩니다.”
“무슈 강의 약속인가?”
“그렇습니다.”
답을 들은 라노크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시가를 하나 해도 될까?”
“이곳은 시가와 홍차를 즐기는 클럽입니다.”
“고맙군.”
라노크가 시선을 돌리자 내내 공손하게 서 있던 라파엘이 옆에 내려놓았던 고풍스러운 가죽 가방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절대 무기를 꺼내는 게 아니다.
천천히 움직일 테니 의심하지 말고 지켜봐.
정중하게 움직이는 그의 태도에 담긴 의도가 애덤 스캇과 홀에서 지켜보는 요원들에게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라파엘이 작은 상자를 테이블에 올려 준 다음이었다.
“함께할 텐가?”
“담배를 끊었습니다.”
“현명한 결정이군.”
시가를 권했던 라노크가 끝을 자른 뒤에 라이터를 켜고 불을 빨아들였다.
“몇 가지 제한을 두었다고 했는데, 내용을 알 수 있겠나?”
“프랑스의 영광에 위해가 되는 일. 한국의 안보와 경제를 위협하는 일. 라노크 의장님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행동.”
제약을 전하던 애덤 스캇이 잠시 말을 끊고는 맞은편에 서 있는 라파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라파엘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였습니다.”
다시 시선을 내린 애덤 스캇의 앞에서 라노크는 시가를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라파엘만 알아보았다. 시가를 가져가는 라노크의 새끼손가락이 떨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자네는 동의했나?”
“물론입니다. 테러의 범인이 이슬람계 체첸 용병이라고 보고했고, 곧 발표가 있을 겁니다. 또한, 조만간 범인을 공개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범인이 지금은 제이어 반 할트와 함께 있겠군?”
“여기까지입니다.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고맙네.”
“영국 방문은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랍니다.”
질문에 대한 답치고는 엉뚱한 요구를 전한 애덤 스캇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였고, 그를 둘러싼 요원들이 클럽 밖으로 나섰다.
“뭔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 눈치인데?”
혼잣말을 뱉은 라노크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무슈 강이 어떤 인물인지 이제 확신할 수 있겠나, 라파엘?”
라노크의 시선에 담긴 라파엘은 올라온 감정을 누르기 위해 애쓰는 얼굴이었다.
“무슈 강이 방문하시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차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나도 함께 맛볼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대사님. 두 분께 차를 드리는 일이 제게도 가장 큰 행복입니다.”
연륜과 경험의 힘을 알려 주는 것처럼 별것 아닌 대화의 끝에서 라노크와 라파엘 모두 평소의 표정을 되찾고 있었다.
***
사우디아라비아의 배려는 놀라울 정도였다.
병원에 있겠다는 이두희의 요청에 따라 한 층을 모조리 비워 주었고, 남는 병실을 임시 숙소로 사용하도록 침대와 몇 가지 가구까지 준비해 주었다.
어디에서 구했을까?
복도 가장 안쪽 병실에는 한국의 마트를 털어 온 듯, 과자, 음료, 라면, 즉석밥, 김치, 그 밖에 냉동식품을 채워 두어서 전자레인지만으로도 식사를 해결하기에 충분했다.
특실이 쭉 이어진 복도 의자에 앉은 이용우는 이해하기 힘든 얼굴로 자밀라를 들여다보았다.
“진심이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응원해 준다면서요?”
“정말 요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받아 준다고 했다니까요. 훈련에서 낙오하면 그때는 다른 소리 하지 않을게요.”
“후-.”
팔을 허벅지에 걸친 자세로 상체를 기울인 이용우는 답답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니, 압둘라 하지즈를 제거하는 작전 과정에서 그렇게나 놀랐던 자밀라가 느닷없이 아랍의 현지 요원이 되겠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뒷좌석에 앉아 있던 현지 여자 요원과 속닥이는 모습이 이상하기는 했다. 거기에 박중상 역시 뭔가 있는 것 같다고 언질을 주었었다. 그렇더라도 느닷없이 현지 에이전트가 되겠다고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답답한 속을 어느 정도 토해 낸 이용우는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낙오하면 한국으로 올 거지?”
“당연하죠. 대신 요원이 되면 아랍에서 필요한 일들을 내가 도와줄게요.”
누가 누굴 도와?
기가 찼던 이용우는 자밀라의 커다란 눈을 들여다보았다. 하기는, 어차피 훈련을 통과한다고 해도 정보원 수준의 요원이 될 테니, 나중에 이라크나 이란에서 활동할 때 도움은….
아차차! 무슨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쓴 입맛을 다시는 이용우의 시선에 복도 끝에서 배불리 먹고 나오는 박중상과 유인강이 들어왔다.
“밥 안 먹냐?”
“속 편해서 좋겠다.”
냉동 음식이 가득한 방을 가리키는 박중상을 향해 이용우는 혼잣말 같은 대꾸를 던졌다.
***
두크두크두크. 두크두크두크.
헬리콥터가 내려앉은 다음이었다.
강찬을 시작으로 두 대의 헬리콥터에서 무장한 일행이 줄줄이 내렸다.
“SAS 그린우드입니다.”
강찬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SAS 특유의 군복에 준위 계급을 단 지휘관이 프로펠러의 바람을 피하는 것처럼 상체를 숙인 채 다가왔다. 뭔 숲에서 이렇게 많이 태어난 건지, 녹색 나무, 황색 나무, 하다못해 골프로 유명한 호랑 나무까지, 영국과 미국에는 이상하게 이름에 나무를 단 놈들이 많았다.
“차량을 준비했습니다.”
“가는 길에 경계는?”
“수송만 맡았습니다. 필요하시면 앞과 뒤를 우리가 맡을 수 있습니다.”
심장에서 주는 경고는 없었다. 그러나 이 새끼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무기를 든 놈들을 주변에 두고 싶지 않았다.
“지프 세 대, 트럭 두 대가 필요해.”
“충분합니다.”
그린우드가 헬리콥터의 뒤편을 가리켰다.
“팀별로 지휘관은 지프를 이용하고, 팀원들은 트럭으로 이동해.”
어차피 세 팀으로 나뉜 참이었다.
강찬의 지시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천중명과 곽대출, 강성태와 키란, 그리고 도깨비와 구르카 대원들이 조용하게 움직였다. 구르카 용병들을 알아본 그린우드가 뭔가 묻고 싶은 눈치였는데, 그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에서 작전 지역까지 거리는?”
“30분이면 도착합니다.”
고개를 끄덕여 준 강찬은 가장 앞에 있는 지프의 조수석에 올랐다.
염병할, 영국 날씨.
가뜩이나 눅눅한 날씨에 한밤중의 습기까지 잔뜩 머금어서 군복과 소총에 이슬이 맺힐 지경이었다.
“출발해.”
부르르릉.
강찬이 탄 지프를 시작으로 천중명과 곽대출, 강성태와 키란이 탄 지프, 그 뒤로 도깨비와 구르카 대원들을 태운 트럭이 줄줄이 흙길을 달렸고, 잠시 뒤 포장도로에 올랐다.
축축한 안개를 헤치고 달리는 길이라 단박에 지프의 앞유리창에 물방울이 맺혔고, 그걸 지우겠다며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였다.
CIA 요원 놈들이 밀고 들어갔다가 한 놈도 못 돌아왔다고 했다. 체첸 놈들이라면 얼마든지 CIA 요원들을 산 채로 나무에 걸어 두고 그 몸뚱이에 뭔가를 설치하고 남는다.
더럽게 잔인한 밤이 되겠다.
날이 밝아 아침이 오면 제이어 반 할트가 처박혀 있던 성이 어떤 색일지 모를 만큼 말이다.
부아아앙!
구불구불한 도로를 빠져나간 지프가 직선 도로를 만나면서 속도를 높였다.
부비트랩?
염병을 해라.
아기 몸에 감긴 폭탄, 함께 다가오는 엄마와 딸의 손이 떨어지면 폭발하는 기폭장치, 피투성이로 쓰러져 신음하는 아이의 몸 아래 감춰진 C4, 아프리카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게 되면 그런 짓 쉽게 못 할 거다.
뭉쳐 있는 안개를 헤치며 달리는 지프 안에서 강찬이 눈빛을 가라앉힐 때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지금껏 조용하던 심장이 느닷없이 뛰었다.
어쩐지 쉽게 간다 싶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죽음은 내가 결정해.
갓 오브 블랙필드가.
심장의 경고를 삼킨 강찬은 가라앉았던 눈빛에 독기를 잔뜩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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