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60)
841화 결과는 항상 비슷했다 (2)
숨소리만으로도 다예와 제라르, 두 놈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사이였다.
어깨를 두드린 다예의 의도는 분명했다.
왼편으로 돌아갈 테니 숨은 놈이 움직이면 사살하라는 요구였다.
‘잠시만.’
강찬은 의심스러운 잡목을 겨눈 상태에서 다시금 왼손을 들어 다예를 말렸다. 만에 하나, 천만 분에 하나, 지금 나가려는 방향을 향해 삼각형 꼴로 다른 저격수가 있다면 미끼로 나선 다예가 먼저 죽는다.
후욱후욱. 후욱후욱.
저격수는 이래서 지랄 같다.
바닥에 엎드려 1박 2일이든, 2박 3일이든, 소변을 흘려 가며 버티는 근성과 5백 미터 안쪽에서 총구에 걸린 목표물을 놓치지 않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계속 묶여 있을 수 없으니까.
의심되는 지역을 살폈던 강찬이 들고 있던 왼손의 검지와 중지를 대각선 방향으로 내밀었다.
‘나가.’
강찬의 지시가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푸슈-우우우웅.
멀리서 터진 MP5SD의 총성이 산을 타고 달려와 메아리처럼 길게 늘어졌다.
푸슈-우우웅! 푸슈-웅!
연달아 두 발의 총성이 더 울릴 때였다.
자세를 낮춘 다예가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왼편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였다. 웅크린 다예의 머리와 상체, 놈이 건 소총의 총구가 자욱한 안개 사이로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강찬이 노리던 잡목의 이파리가 흔들렸고, 그 아래에서 줄줄이 늘어진 풀더미가 왼편을 향해 움직였다.
후욱후욱. 후욱후욱.
잡풀로 총구를 덮은 거다.
느리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강찬은 움직이는 풀더미의 안쪽, 저격수가 엎드렸다고 계산되는 방향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푸슝! 퍽! 푸슈-웅! 퍼억!
어깨에 달려드는 소총의 반동, 코에 달려드는 화약 냄새, 목표물 방향에서 터지는 충격음.
지시하지 않았다.
후욱, 그런데도 강찬이 방아쇠를 당기기 무섭게 제라르가 오른쪽으로 튀어 나갔다.
그 직후였다.
푸슝! 푸슝! 푸슝!
달려가는 도중에 제라르가 연달아 세 발을 잡목 아래로 갈겼다.
“대장!”
잡았나?
소총을 겨눈 채 강찬이 움직였고, 차동균과 우원준이 뒤를 지키며 따랐다.
멀지 않은 거리였다.
소총을 품은 제라르가 시선으로 가리킨 곳에 저격수와 그를 지키던 놈이 널브러져 있었다. 강찬의 사격에 어깨를 맞았던 모양이고, 이어서 제라르의 총격에 머리가 터진 것처럼 몸을 비튼 자세에서 이마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새끼들. 이런 식으로 섞어서 조를 짰나 봅니다.”
저격수는 일본 놈인가 싶은 동양인이었고, 지키는 놈은 덥수룩한 수염으로 봐서 체첸 출신이구나 싶었다.
부스럭.
그 뒤에 왼편으로 돌았던 석강호가 다가왔다.
“왼쪽은 깨끗하우. 그나저나 대장 아니었으면 베이스로 들어가다가 이 새끼들 총알에 뒤통수가 터졌던 거 아니오?”
새삼스러운 다예의 감탄이 쏟아질 때, 우원준은 당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저격수가 있을 거라 예상하고 차를 세웠을까?
또, 이곳에 숨은 놈을 안개 자욱한 숲에서 어떻게 발견했을까?
그의 눈에 담긴 의문이 선명하게 느껴졌으나 말했듯이 설명해 봐야 알아듣지 못할 거다. 계속해서 작전을 함께 뛰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가장 좋은 설명이 된다. 주변을 돌아보는 차동균처럼 말이다.
“개새끼들 때문에 담배만 땡기네. 얼른 갑시다. 가서 담배 하나 피워 주고 성에 처박혀 있는 개새끼 모가지 시원하게 돌려줍시다.”
다예가 목표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대장?”
저격수를 살피던 제라르가 저격용 소총을 들고서 내밀었다. AW 계열로 영군 국이 가장 먼저 사용한 총기였다. 그리고 이 저격용 소총을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빠스칼과 함께 예멘에서 아이를 구했던 거 기억납니까? 그때 대장이 저격용 소총을 챙기라고 해서 가져왔던 것과 같은 기종입니다.”
맞다. 당시에 왜 영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저격용 소총이 거기 있는지 알아본다며 챙기라고 했었다.
소총과 제라르, 강찬을 번갈아 보던 다예는 그제야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영국 놈들이 처음부터 제이어라는 새끼를 도왔다는 거 아뇨? 그것도 SAS 놈들을 동원해서? 가만?”
상황을 정리하던 다예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강찬을 들여다보았다.
“대장? 거기가 예멘이잖소?”
이미 제라르가 말했던 내용인데도 마치 방금 생각해 낸 것처럼 다예가 눈에 힘을 담뿍 담았다.
“그러면 예멘에서 우리를 죽이려는 수작에 힘을 보태 준 것도 영국 놈들이었다는 거 아뇨?”
“이 정도면 공항에서 얻어맞은 중형 미사일의 출처도 관련이 있지 않겠습니까?”
다예가 의견을 내놓기 무섭게 제라르가 의심만 하던 사실 하나를 덧붙였다.
개새끼들이 뒤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거지?
그렇다면 계산을 다시 해야지, 애덤 스캇?
강찬이 저격용 소총을 향해 차가운 눈빛을 던질 때였다.
“우리 괜찮겠소?”
다예가 뒤편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다. SAS가 뒤를 노리지 않겠냐는 의문처럼 보였다.
애덤 스캇이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확실치 않다. 반드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통화에서 느끼기에 놈은 모르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정보국 세상에서 사람을 무턱대고 믿는 건 목숨을 끊는 백한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 것과 다르지 않다.
“일단 들어가자.”
강찬이 지시를 내린 직후였다.
치이잇.
– 보고할 게 있습니다.
천중명의 음성이 무전을 타고 들어왔다.
“말해.”
– 저격수 셋, 경계 섰던 적 셋, 모두 여섯 명을 사살했습니다.
“아군 피해는?”
– 전혀 없습니다.
무전을 함께 듣고 있던 다예와 제라르가 ‘제법인데?’ 하는 표정으로 시선을 마주쳤다.
“저격용 소총 종류를 확인할 수 있겠어?”
– AW 계열을 개조한 형태입니다.
염병할, 무기를 거래하는 그룹의 회장이냐?
단박에 알아차린 것처럼 어쩌면 막힘없이 답이 나오냐?
기가 막힌 심정과 별개로 영국 놈들의 행동에 대한 분노가 토하기 직전에 꾸역꾸역 마시는 소주처럼 속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나중에 계산해 주마, 철저하게.
“이쪽도 두 명 잡았다. 조심해서 베이스로 이동해.”
– 알겠습니다.
지프로 5분 거리니까 이런 식으로 수색하며 간다고 해도 20분이면 도착해서 커피와 담배 하나 때려 줄 수 있는 거리였다. 뒤에서 SAS가 달려들지 모르지만, 당장 심장이 조용한 걸 봐서는 뒤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빨리 가서 시원하게 대가리를 돌려 주면 되니까.
“가자.”
강찬은 품고 있던 소총을 어깨에 걸었다.
***
러시아와 프랑스, 미국의 감시 위성이 모두 강찬 일행 주변으로 몰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안개 탓에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뿌옇게 보이기는 했지만, 선명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야간 투시경을 사용해서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흑백 화면에서 촘촘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구별할 정도라면 설명이 쉽겠다.
프랑스 정보총국은 영상을 김형정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그와 함께 안느는 아예 집무실 모니터에 영상을 연결해 실시간으로 현장을 지켜보았다.
부족했다.
막힘없이 장벽을 부수며 나가는 강찬의 모습을 배웠다고 생각했으나 철저한 계산과 그 앞뒤에 깔린 제약, 변수를 계산하지 못했다.
외인부대 비상령을 지시했던 문바키와 같이 결정적인 순간에 망설이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런 생각으로 지시했으나 그 결정에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에 관한 판단이 부족했다. 그러나 말이다.
지휘관이 당황한 모습을 보이면 팀원들이 흔들린다.
어떤 경우에도 당황하지 마라.
정보총국에서 강찬과 문바키를 수행하며 배웠던 대로 마드모아젤은 냉정한 눈빛으로 모니터에 집중했다. 한 번은 실수했더라도, 더는 그런 일 없도록 냉정한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안느는 더욱 차가운 표정으로 화면을 지켜보았다.
***
제이어 반 할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절대 실패할 리 없다고 하지 않았나?”
“저격수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지금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혹시 누군가 정보를 준 건 아니고?”
“저격수 배치를 제가 직접 계획했고, 지시했습니다. SAS는 물론이고, 이곳에 매복해 있는 대원들도 정확한 장소를 알지 못합니다.”
“흐음.”
제이어 반 할트는 기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지금 다가오는 바퀴벌레들의 해결 방법은?”
“CIA 대테러 응징팀조차 한 명도 돌아가지 못했을 만큼 완벽하게 매복했습니다. 저격수를 잡았다고 방심한 상태에서 다가오면 효과가 더 좋을 겁니다.”
알았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인 제이어 반 할트가 시선으로 문을 가리켰다.
지휘관이 문을 나선 다음이었다.
책상에서 몸을 일으킨 제이어 반 할트는 왼편 벽에 붙어 있는 책장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책장의 모서리로 손을 뻗었다.
후우우웅.
전기 모터가 독특한 소리를 내며 울었고, 이어서 책장이 천천히 벽 안으로 말려 들어가며 숨어 있던 공간을 드러냈다.
책장의 움직임을 기다리던 제이어 반 할트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창이 없는 공간의 벽을 타고 빽빽하게 들어찬 각종 장비들이 상태를 알리는 불빛을 반짝였고, 가장 안쪽 중앙에 세련된 모양새의 의자가 주인을 기다리는 하인처럼 조용하게 놓여 있었다.
완성 단계였다.
이 의자에 연결된 블랙헤드의 에너지로 몸의 세포를 변형시키면 절대 늙지 않는 몸이 된다. 테스트를 위해 시험했던 사람들이 죽지 않는 괴물로 변하는 과정에서 감염균마저 만들어 냈다.
늙지 않는 몸과 괴물이 되는 과정의 차이점을 발견한 상태였었다.
제이어 반 할트의 결정에 따라 괴물이 될지, 영원한 삶을 사는 신적인 존재가 될지가 정해지는 세상이 코앞에 왔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모든 걸 망쳤던 강찬이 이제는 성까지 찾아오고 있었다.
“인류가 멸망해도 바퀴벌레는 살아남을 거라더니 질기긴 하군.”
의자를 매만지던 제이어 반 할트가 그 옆 테이블에서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이곳을 너의 무덤으로 만들어 주마. 이곳에 묻혀서 내게 대항한 놈들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후대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마치 강찬이 앞에 있다는 투로 말을 뱉은 제이어 반 할트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리모컨을 들고 거실로 나온 그가 책장을 원래 위치로 돌려 놓은 다음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책상 위에 있는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성큼성큼 걸어서 책상에 도착한 그는 액정을 보며 이해하지 못한 표정으로 눈매를 좁혔다. 받아 본다. 마치 그런 표정으로 제이어 반 할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야드릭 시셰는 이미 사망했을 텐데?”
– SIS 애덤 스캇입니다.
이름을 들은 제이어 반 할트는 잠시 놓고 있던 여유를 되찾은 표정으로 창가를 향해 움직였다.
“승진을 축하해 달라는 거면 선물을 보내 드리지.”
– 야드릭 시셰가 SAS를 이용해 용병 훈련과 무기 조달, 테러 계획을 세웠다는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관련자들을 색출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뛰어나시군. 그런 말을 내게 하는 이유는?”
– 지금이라도 투항하면 영국 법에 의해 정당하게 처벌하겠습니다.
“흐하하하하!”
창을 향해 몸을 돌려 책상에 기대앉은 제이어 반 할트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모처럼 웃었어.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한 가지만 말해 주지. 내가 지닌 자료들이 세상에 나가게 되면 영국 정부와 SAS는 감염과 테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텐데, 그래도 괜찮겠나?”
애덤 스캇의 답은 없었다.
“못 하겠지? 그러니 정당하게 처벌하기보다는 조용하게 나를 제거하려고 들지 않을까?”
– SIS가 책임지고 신원을 바꿔서 남은 삶을 보장하겠습니다.
“SIS는 그럴 수 있겠지. 그렇다면 이곳으로 오고 있는 무슈 강이라는 인물은 어떨까? 그를 설득해서 돌려보낼 수 있겠나?”
이번에도 애덤 스캇은 대꾸하지 못했다.
“곤란하겠지? CIA가 그토록 숨겼던 데이비드 주마저도 미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 사살할 정도로 독한 인간이니 설득이 어려울 거야.”
침묵을 알 것 같다는 투로 제이어 반 할트는 말을 이었다.
“영국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곤란하겠지. 무슈 강이라는 인물이 이곳에서 확보한 자료를 발표할 것도 두렵고. 이렇게 하면 어떤가?”
– 원하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곳에서 내가 살아 나가면 따로 연락하겠다. 물론, 무슈 강이라는 인물과 그가 데려온 떨거지들이 이곳에서 사망한 다음일 테니 자네에게도 부담이 적지 않을까?”
– SAS는 더 이상 도움을 드리지 못합니다.
“이런, 새 총괄국장은 계산이 느리군. 놈은 내가 알아서 처리해. 대신 폭발이 있고 나면 바로 달려와. 또 하나, 무슈 강 일행을 야드릭 시셰의 살인범으로 발표해. 내가 원하는 건 그 두 가지다.”
– 쉽게 답할 내용이 아닙니다.
“SIS의 총괄국장이라면 영국 정부와 SAS의 부끄러운 모습이 세상에 나가는 걸 막아야 하지 않나?”
제안을 건넨 제이어 반 할트는 여유로웠고, 결정해야 하는 애덤 스캇은 시간을 끌었다.
차가운 미소를 그렸던 제이어 반 할트는 스마트폰을 내려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애덤 스캇은 절대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감염균을 퍼트린 일과 오만, 예멘에서 일어났던 테러에 SAS가 개입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국은 앞으로 얼마나 막대한 배상을 해야 할지 계산조차 서지 않기 때문이었다.
***
헤드셋을 착용한 직원이 속기사처럼 키보드를 두드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영어로 입력했다. 그토록 오래 영어를 공부했건만, 대화는 알아먹기 어려운데, 이렇게 타이핑해 놓은 건 또 바로 이해된다.
“뭐야, 이게?”
대화를 읽어 내려가던 기수호가 멍한 표정으로 소진천을 돌아보았다. 이해한다.
말이나 되나, 이게?
다른 곳도 아니고 영국 SIS와 제이어 반 할트가 사용하는 디지털 방지 장치를 뚫은 덕분에 이런 정보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정작 엄청난 성과를 거둔 소진천이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눈만 끔벅이는 건 또 어떻고?
그야말로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보드를 두드리던 직원이 헤드셋을 벗었다.
“전부 입력했습니다.”
“김형정 본부장님께 보내.”
“알겠습니다.”
직원에게 지시한 기수호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김형정의 번호를 눌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