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62)
843화 고맙다 (1)
제이어 반 할트는 중요 지역에 설치해 놓은 무선 카메라를 통해 숲을 지켜보았다. 실패했던 저격수 매복과 달리 숲에 만들었다는 부비트랩이 워낙 대단해서일까?
도착할 시간이 얼추 됐는데도 기대했던 소총의 불빛은 터지지 않았고, 덩달아 총성이나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할 테냐, 바퀴벌레?’
이곳에 탱크나 헬리콥터를 가져올 수 있다면 모른다. 그러나 국지전 수준의 전투가 벌어지면 단박에 시선이 몰리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절대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제이어 반 할트는 나쁠 거 없었다. 리모컨을 이용해 성을 완벽하게 파괴하면 제이어 반 할트는 이곳에서 죽은 인물로 끝난다.
제이어 반 할트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볼 때였다.
후우웅. 후우웅. 후우웅. 후우웅.
책장 뒤편 공간에서 묘한 소리가 울렸다.
뭐지?
아무렴, 숨겨 놓은 공간에 소리가 날 만한 장치를 둘 만큼 제이어 반 할트는 허술한 인물이 아니었다.
후우웅. 후우웅. 후우웅. 후우웅.
거대한 기계가 깨어나 내쉬는 숨소리?
의아해서 돌아본 서재 뒤편 공간에서는 여전히 독특한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두고 일어서는 관람객처럼 제이어 반 할트는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달각.
그가 버튼을 누르면서 책장이 안으로 밀려들어 가는 순간이었다.
“뭐…?”
후우웅. 후우웅. 후우웅. 후우웅.
독특한 소리에 맞춘 것처럼 피어난 붉은빛이 책장 뒤 공간을 가득 메웠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
숲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저격수를 잡고 나서 가라앉았던 강찬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혹시 저 부비트랩 때문이냐?
강찬은 독한 눈매로 숲 안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인간 같지 않은 새끼들.
불과 10미터 안의 나뭇가지에 CIA 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매달아 놓았다. 아프리카에서 말이다. 죽여서 목을 매달아 놓은 건 셀 수 없이 많이 보았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양쪽 겨드랑이에 갈고리를 꽂아 걸어 놓은 건 처음이었다.
“끄으-.”
입을 어떻게 막았는지, 축 늘어진 남자가 강찬 일행을 향해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적으로 만났다.
총구를 겨눴고, 대검을 마주 잡았으니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게 특수부대원의 숙명이고, 보도 한 줄 나오지 않는 전투의 결말이었다. 그렇다고 저런 식으로 인간이 지닌 마지막 존엄을 짓밟으면 잔인하고 처절한 응징의 반복만 남는다.
강찬은 시선을 뒤로 돌렸다.
“우리가 들어갈 테니까 이곳에서 엄호해. 지경과 강성태 팀은 이 앞을 정리한 뒤에 움직여.”
지시를 던진 강찬은 제라르와 다예를 차례로 돌아보았다.
막말로 나무에 매달린 사람이 살아 있는 게 다를 뿐이지, 이런 장사 아프리카에서 숱하게 했던 거다. 영리한 척, 잘난 척, 낙엽 아래 구덩이를 얕게 파고 누워 다가오기를 기다리겠지만, 이쪽을 너무 쉽게 판단한 만큼 대가를 받으면 된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염병할 심장만 뛰지 않으면 정말 좋을 텐데.
이를 굳게 깨문 강찬은 먼저 제라르와 다예에게 목표 지점을 눈짓으로 가리켰고, 이어서 나무에 매달린 CIA 요원을 눈에 담았다.
그 직후였다.
“부원장님.”
100미터 달리기를 출발하려는 순간에 어깨를 잡는 것처럼 강성태가 나직하게 강찬을 불렀다.
뭔데?
강찬이 고개를 돌린 직후였다.
“흙냄새가 다르답니다.”
“뭐?”
“이곳까지 오는 동안 맡았던 냄새와 다른 비린내가 난답니다.”
강찬의 시선을 받았던 강성태가 설명을 중단하고는 키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직접 말씀드려.”라고 권유했다.
“흙을 뒤집으면 그 안에 있던 냄새가 올라옵니다. 낙엽이 많은 지역은 땅속에 사는 벌레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지금 그 냄새가 강하게 올라옵니다.”
키란의 곁에서 구르카 대원 세 명이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은 계속해서 새로운 경고를 던지고, 시간은 늘어지는데, 구르카 용병은 느닷없이 땅에서 올라온 벌레들 특유의 냄새를 맡았단다. 아프리카에서는 숨어 봐야 잡목이나, 움막의 뒤고, 코를 찌르는 누린내와 악취가 전부여서 강찬에게는 생소한 의견이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여기 나무뿌리에서부터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고 싶습니다.”
어디에서 뭐를 파?
강찬뿐만 아니라 다예와 제라르, 차동균이 비슷한 표정으로 키란을 바라보았다.
“통로를 팠다고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인질들이 매달린 아래에 분명 통로가 있을 겁니다. 한쪽만 연결되면 그 안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잡을 수 있습니다.”
질문을 던진 건 천중명이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것처럼 키란이 답을 내놓았다.
“천 회장은 또 어떻게 알아?”
“키란의 말을 듣고 생각난 게 있습니다. 그건 곽 부회장이 말씀드리는 게 좋겠는데?”
“북으로 침투하는 훈련을 받을 때, 과거 비무장 지대에서 사용했던 부비트랩에 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적들이 제일 두려워했던 게 시선을 뺏은 다음 아래에서 불쑥 나오는 대원들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세상 참.
돌고 돌더니 영국의 숲에서 비무장 지대에서 사용했던 부비트랩에 관해 들을 줄은 몰랐다.
“한쪽은 바닥에 통로를 뚫어서 끌고 들어가고, 그 주변에서 구덩이를 얕게 파고서 흙과 낙엽을 덮고 누운 대원들이 튀어나오는데, 무기가 부족한 북한군이 오래도록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배웠습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은 일정한 수준에서 뛸 뿐, 더 강한 경고를 던지지는 않고 있었다.
“땅을 파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지?”
“잠깐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강찬이 질문을 던진 뒤였다. 고갯짓으로 동료 둘을 부른 키란이 가장 가까운 나무로 향해서는 느닷없이 땅을 파는 진돗개처럼 양손으로 낙엽과 그 아래 흙을 긁어냈다.
이걸 말하는 건가?
실제로 구르카 대원 셋이 바닥을 긁기 무섭게 누릿한 흙 비린내가 올라왔다. 말한 대로 그렇게 땅을 확인한 키란이 동료 두 명과 함께 강찬 앞으로 돌아왔다.
“이 정도 흙이면 몸을 감출 정도의 구멍을 파는 데 5분이면 충분합니다. 저기 나무에 걸린 남자 주변에 반드시 적이 파 놓은 구덩이나 굴이 있을 겁니다. 30분만 주십시오.”
강찬은 복면 위에서 빛나는 키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놈들이 파 놓은 구덩이를 찾는다고 쳐도 연결되는 순간에 적이 사격을 시작하면 몸조차 돌리기 어려운 굴 안에서는 피할 방법이 없잖아? 그에 대한 대비는?”
“세 명씩 두 조로 움직이겠습니다. 적이 뚫어 놓은 부분과 연결하기 전에 알 수 있습니다. 작은 구멍을 먼저 뚫고 수류탄을 던져 넣으면 됩니다.”
이게 진짜야?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멕시코에서 키란과 둘이서 나무뿌리 아래 숨어서 적의 추적을 피한 적도 있습니다.”
강찬의 시선을 받은 강성태가 곧바로 답을 내놓았다.
뭐라고 해도 아군의 피해를 줄이는 게 우선이었다.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땅 파는 데 드는 노력과 30분가량의 시간만 낭비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거다.
“시작해.”
강찬이 지시를 내리자 키란이 곧바로 두 명을 손으로 찍었고, 이어서 다시 세 명에게 눈짓을 던졌다. 소총을 등 뒤로 돌린 여섯 명이 나무를 향해 움직였는데, 남은 구르카 대원들 역시 무언가 도울 일이 있다는 것처럼 함께 행동했다.
“혹시 모르니까 지경 팀이 경계와 엄호를 맡아.”
천중명에게 짧게 지시한 강찬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30분은 여유가 있다니까 이쪽도 준비를 해 두는 게 좋겠다.
“우원준. 이쪽으로 와.”
우원준을 부른 강찬은 입술을 가리는 듯 고개를 돌리고는 무언가를 조용하게 알려 주었다.
“이해했어?”
“알겠습니다.”
능력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런 순간에 딱딱하게 얼지 않은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계속해서 던지는 본능의 경고에 따라 강찬은 시선을 돌렸다.
뭔 인간들이?
조심스럽게 돌린 강찬의 시선 앞에서 구르카 대원 한 명이 벌써 나무뿌리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강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냄새 말이다.
우리가 맡았다면, 낙엽 아래 숨어 있을 놈들도 구르카 대원들이 땅을 파헤치는 냄새를 맡지 않을까?
오래된 나무들, 바닥에 쌓인 낙엽, 어둠, 언젠가 북한과 연락을 위해 들어갔던 비무장 지대와 느낌은 다르지 않았다.
강찬은 조용하게 무음으로 해 놓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번호를 찾아 눌렀다.
***
두근두근. 두근두근.
침대에 누웠던 강철규는 이불을 걷어 낸 뒤에 다리를 아래로 하고 앉았다.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방지병원이었다.
총기를 사용하면 온 나라가 벌컥 뒤집힐 정도로 법과 감정이 날카로워지기 때문에 깡패들마저 회칼을 품고 다니는 세상이었다.
칼을 들고 누가 들어온다면?
강철규는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마음과 달리 천천히 움직인 손가락이 반 박자 이상 느리게 접혔고, 단단함의 강도도 확실치 않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뭘까? 느닷없이 본능이 주는 이 경고는?
강찬에게 달려가는 위험이라면 그러지 말고 이리 와라.
늙은이 하나 상대하는 게 더 쉽지 않겠냐?
독한 각오를 끌어 올린 강철규가 병실 문을 향해 시선을 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침대 옆 탁자에 올려 두었던 스마트폰이 울었다.
젠장!
오른손을 내밀었던 강철규는 아직 주먹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얼른 왼손을 내밀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위험한 상황을 맞았을까?
액정에 올라온 건 강찬의 이름이었다.
“여보세요?”
– 상황이 급해서 바로 물어볼게요.
“내가 도움이 된다면 뭐든 괜찮다.”
혹시 지금이라도 날아오라는 요구가 아닐까?
긴장한 상태에서 집중한 강철규는 강찬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고개를 갸웃했다.
– 구르카 대원들이 굴을 파고 들어가고 있는데, 혹시 놓치는 게 있습니까?
“CIA 요원을 걸어 뒀다고 했지?”
– 예.
강철규는 시선을 떨구고 잠시 과거의 모습을 떠올렸다.
들을수록 오래전 강철규가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물론, 처음은 좀 달랐지만, 남일규, 양동식이라는 준괴물들이 들어오면서 바닥에 굴을 파는 것까지 발전했었다.
“알겠지만, 비무장 지대에서는 함부로 총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개 매복하거나 부비트랩을 설치해서 놈들을 상대했었지.”
비무장 지대에 스며든 어둠 속으로 돌아간 것처럼 강철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당시를 풀어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그러는 와중에도 심장은 여전히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또렷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사람을 매달았다는데, 당시에 우리는 적을 그렇게 한 게 아니라 옷을 매달았었다.”
– 옷을요?
“물론 적의 군복을 걸어 두어서 그걸 확인하기 위해 다가오는 놈들을 올가미로 걸었지.”
강철규는 방법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올가미에 걸린 놈이 발버둥 칠수록 시선을 빼앗기지. 그때 아래에 있던 일규나 동식이가 남은 적을 당겨서 해결하고, 동시에 매복해 있던 내가 튀어 나가는 방식이지.”
설명이 건너간 직후였다.
강찬 특유의 피식하는 웃음이 들렸다.
– 이제 찾았습니다. 나뭇가지가 확실히 휘어 있네요.
“그렇다면 그 주변에서 몸을 숨길 만한 굵은 나무, 아래로 잡목이 우거진 곳을 찾아봐. 거기에 누군가 매복해 있다가 적의 우두머리, 혹은 가장 강해 보이는 상대를 찾아 튀어나올 거다.”
– 재미있네요.
강철규가 조언한 내용을 확인한 듯한 강찬의 대꾸가 들렸다. 강찬이라면 실수해서 당할 수준이 아닌 거다. 믿어도 된다. 그런데도 강철규는 심장이 주는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심장이 크게 뛰는데 혹시 다른 문제는 없을까?”
–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심할 테니까 편하게 계세요. 여기 끝나면 같이 불고기 먹으러 가야죠.
고맙다, 강찬의 이런 말은.
뭐 하나 제대로 해 준 게 없는 늙은이를 챙겨 주는 마음도.
“끝나고 전화 부탁한다.”
– 수술 잘 받으셨다니까 선물로 생각하고 전화하겠습니다.
강찬의 대꾸가 건너온 다음이었다.
강철규와 강찬이 동시에 피식 웃었고, 그 뒤에 전화가 끊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