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8)
609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1)
문고리를 풀어 준 광주 덩치가 재빠르게 물러난 다음이었다.
우르르.
그야말로 개떼가 몰려들 듯 덩치들이 현관으로 밀고 들어왔다. 현관 입구가 좁았다. 그 바람에 어깨가 겹치며 밀리는 놈도 있었는데, 어쨌든 열린 문 바깥의 복도에 늘어선 인원으로 짐작할 때, 신강남파보다 최소 두 배는 넘어서는 숫자였다.
들어선 놈들이 피투성이 모습으로 바닥에 꿇어앉은 임달호와 세 명을 볼 수밖에 없었고, 또 그들을 돕기 위해 달려온 만큼 바로 배트와 회칼을 휘둘러야 했다. 그러나 몰려든 덩치들은 자세만 잡을 뿐,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가장 큰 원인은 이병렬이었다.
신강남파가 무섭게 성장할 때 한 번, 서달수를 잃었을 때 또 한 번, 마카오와 일본에 다녀오면서 두 번, 그때마다 이병렬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독기가 쌓였다. 특히나 지금같이 살벌한 상황에서 독기가 눈에 올라오면 어지간한 깡패들은 시선을 마주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지금도 그렇다.
숫자에 밀리는 상황에서도 고개를 삐딱하게 틀고서 같잖다는 듯 바라보는 이병렬은 확실히 예사 덩치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이 씨발 새끼들이 진짜? 야, 이 개새끼들아! 여수는 위아래도 없이 사냐? 어떻게, 뭘 배워 먹었기에 형님을 뵙는데 인사도 안 해?”
마지막에 문상국이 들어서는 것을 확인한 김진용이 대놓고 이죽거렸다.
“야, 인마! 너는 왜 나한테 인사 안 해?”
“개도 주인 따라간다는데 인사받고 싶으면 동생들 모가지부터 꺾으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여기 병렬이 형님이 가장 윗분 아닙니까? 인사라면 형님이 먼저 우리 병렬이 형님께…….”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덩치 커다란 김진용이 선서를 하는 사람처럼 든 이병렬의 왼손을 보고는 뒷말을 삼켰다.
“오랜만이다? 여수 문상국?”
“예, 형님.”
삐딱하게 대답했으나 문상국은 어딘가 켕기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숫자가 많다 해도 신강남파 이병렬의 이름값이 워낙 큰 데다, 뒤를 받치고 선 김진용만 해도 여수 문상국이 막 대하기는 껄끄러운 상대였다.
그뿐이냐.
고룡동을 먼저 보낸 탓에 상처가 낫지 않은 상태에서도 서럽게 우는 유충일을 지켰던 조성호 및 광주 덩치들 역시 죽으면 죽었지, 밀리지 않겠다는 독기를 피워내는 형국이었다.
“골사발 돌리지 말고 쉽게 가자. 여기 임달호 데려가려고 왔으면 얼른 연장 꺼내.”
“그게 아니고, 형님.”
“아니면 씨발 놈아. 얌전히 나가서 여수로 곧장 가든가.”
“형님?”
밀리지 않겠다는 투로 삐딱하게 대드는 문상국을 향해 이병렬은 픽 웃었다.
“뒈지게 생긴 새끼가 염병 떨고 있네. 지금 달려들어서 내 울대를 따든, 꼬리 말고 얌전히 돌아가든, 약에 손댄 거로 너는 끝이야. 알았냐? 이 멍청한 새끼야?”
어차피 이렇게 마주 선 이상 이 상황에서 아예 끝장을 보겠다는 이병렬의 의지가 담뿍 담긴 협박이었다. 거기에 경고만 던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이병렬은 회칼 든 손을 허리 옆으로 내려놓았다.
붙나? 이제 시작하는 건가?
양쪽 덩치들이 자세를 잡는 것과 동시에 김진용이 문상국의 목덜미를 날카롭게 노려볼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긴장의 틈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것처럼 이병렬의 바지 주머니 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뭐야?”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이병렬은 대놓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덤비지도 못하는 새끼들이 폼은?
비웃는 표정으로 문상국을 보았던 이병렬이 액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런 뒤에 입맛을 다셨다. 차라리 전화를 받았다면 바로 달려들었지 모른다. 그런데 천하의 이병렬이 망설이는 표정을 지은 게 또 묘하게 문상국을 붙잡는 느낌이었다.
벨이 세 차례 울린 다음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이병렬은 아예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보스. 여기 집게파 임달호와 여수 문상국이 와 있어.”
보스라고?
이병렬이 보스라고 부를 사람이라면……?
거실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이 이병렬이 든 스마트폰으로 달려갔다.
– 무슨 일 있어?
강성태의 음성이 들리는 순간, 김진용과 조성호는 이를 굳게 물었다.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무언가 울컥한 감정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집게파 임달호가 숙소 동생들하고 주변 상가 사장들에게서 삥 뜯고, 약 돌렸거든. 그거 조지는 데 여수 문상국이 달려온 거지.”
– 왜?
왜라니?
너무나 태연한 강성태의 반문에 이병렬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웃었다.
“문상국이 임달호 데려가겠다는 거지. 숫자가 우리보다 최소 두 배는 많아.”
이병렬의 보고 뒤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
뭐라고 할까, 강성태는?
우습게도 문상국마저 긴장한 표정으로 강성태의 반응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 문상국이 끝까지 반항하면 하고 싶은 대로 처리해. 대신 내가 지금 지경그룹 전용기로 한국에 가는 길이거든. 하루 반나절이면 도착하니까 공항으로 식구들 불러서 내리는 대로 여수로 갈게.
“보스가 왜 그렇게까지 해?”
– 문상국을 만난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강성태의 말이 잠깐 끊기는 틈이었다.
“정훈이 보내 줄 때 병원에서 인사드렸습니다, 형님.”
뭐 이런 병신 새끼가?
황당해하는 이병렬의 시선을 외면한 문상국이 다급한 음성으로 스마트폰을 향해 고함쳤다.
조직에서 보스의 위용은 이렇다. 그게 어영부영 동생들 삥 뜯어 말밥 주거나 도박판에서 사는 게 아니라 가장 앞에서 주먹 날리는 강성태라면 더더욱 더.
– 문상국? 이병렬이 개인적으로 내게는 형이고, 조직에서는 스승 같은 존재라는 거 알고도 대드는 거냐?
“그게 아니고, 형님……!”
– 내가 도착하기 전에 병렬이와 계산 끝내. 여수에 조직이 몇 개나 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도착한 뒤에도 다른 말이 들리면 그 이후로 여수에는 신강남파 구역만 남는다.
많이 늘었네.
이병렬이 히죽 웃는 순간이었다.
– 그만 끊을 테니까 가서 보기로 하고, 할 일 많다. 다치지 마라.
“알았어.”
종료 버튼을 누른 이병렬이 어떻게 할 거냐는 투로 시선을 들었다.
“형님? 오해가 있었습니다. 이제 풀렸으니까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형님.”
뭐 마려운 강아지 표정으로 변한 문상국이 적당하게 끝내기를 바라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보스가 온다는데 그렇게 가 버리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랄 떤 잣밥이 되잖아? 약 어디에서 얻었냐? 우선 그거부터 털어놔.”
에이, 씨발.
질문을 받은 문상국이 원망 가득한 시선으로 꿇어앉은 임달호를 노려보았다.
***
자동차로 달려와 올라간 사무실은 처참했다.
이용우가 선풍기까지 동원해 묶어 두었던 문은 반쯤 열려 너덜거리고, 멀쩡했던 커피 박스까지 온통 뜯겨서 원두를 밟지 않고는 한 걸음도 움직이기 어려웠다. 더구나 불을 켜는 일조차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오?”
문을 닫고 돌아서는 이용우를 향해 사무실 중앙에 선 오마르가 건넨 질문이었다.
“잠시만요.”
붕대 감은 왼손으로 오른쪽 팔뚝을 받쳐 든 이용우는 문 옆 벽으로 이동했다.
“후우. 후.”
숨을 두 번 고른 뒤였다.
퍼윽.
오른쪽 어깨를 세차게 벽에 들이박은 이용우는 꼬챙이에 찔린 악어처럼 몸을 비틀었다.
“혹시 어깨가 빠져서 그런 거요?”
따님이 워낙 가벼워서요!
차마 대꾸하지 못한 이용우가 이를 악문 채로 뜨거운 숨을 내쉴 때였다.
“오른팔을 위로 들어서 돌려도 되는 건데 왜 의사인 나를 두고 그렇게 무식한 방법을 택한 거요?”
어안이 벙벙해지는 오마르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이런 건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이용우는 이 정도면 됐다는 투로 오른팔을 돌려 가며 다시금 문을 선풍기 코드로 꽁꽁 묶었다.
사람의 적응력이 참.
처음에는 얼굴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던 사무실이었는데 지금은 바깥에서 달려드는 불빛과 달빛에 의지해 표정을 읽을 정도는 되었다.
“이쪽에 있으면 우리 회사에서 방법을 찾아 줄 겁니다. 우선 도착했다고 연락부터 하겠습니다.”
이어서 이용우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게 폴더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 도착했냐?
“예. 그런데 진짜 여기 있어도 됩니까?”
– 방금 들어온 정보로 보면 경찰이 오히려 민병대에서 너를 지켜 줄 거다. 너랑 함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냐?
“의사 아버지와 딸, 그렇게 두 명입니다.”
내용을 알지 못하게 하고자 이용우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신광선의 질문에 답했다.
– 그 두 사람이 한국으로 오면 되는 거지?
“미국도 괜찮답니다. 그나저나 여기에서 찾는 물건이 뭔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습니까?”
통화하던 이용우는 힐끔 시선을 돌렸다.
천성이 저런 건지, 생활하는 모습이 나온 건지는 몰라도 허리를 숙인 자밀라가 이삭 줍는 여인처럼 원두를 집어 들고 있었다. 창을 통해 어슴푸레 들어오는 불빛에 의지해 상체를 기울여서 그런지, 진짜 그림처럼 보였다.
– 뭔가 커피에 섞여 넘어온 건 분명한데 우리도 그게 뭔지 몰라서 미치겠다. 본부장님 쪽에서 관련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까 우선 대기하고 있어. 지시 내려오는 대로 연락하마.
“예.”
– 너 때문에 본부장님하고 나, 회사에서 밀려날지 몰라, 이 새끼야. 그렇게 되면 나 보기 무서울 거다.
내내 이용우를 챙기던 신광선이 벼르는 듯한 말을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세상 참 편하게 살아요.
그 짧은 통화 사이에 지금은 오마르까지 자밀라를 도와서 바닥에 떨어진 커피를 줍고 있었다.
“한꺼번에 쓸어 버리게 이쪽으로 나오세요.”
“밟힌 것들이 많아서 그렇게 하면 모두 버려야 하오. 땀 흘려 얻은 걸 버리느니 하나라도 제대로 된 걸 건지는 게 낫소.”
“커피에 대해 좀 아십니까?”
“아랍인이라면 모두 재스민차나 마시는 줄 아셨소?”
좋은 의미에서 건넨 질문에 뾰족한 대꾸가 날아들었다.
뭐 때문에 뒤틀린 거야?
의아하기는 했으나 당장 오마르가 뾰족하게 대답한 이유를 알기는 어려웠다.
알아서 풀리겠지.
성격대로 판단한 이용우가 권총을 꺼내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커피를 줍던 자밀라가 몸을 세우고는 엄지와 검지 끝으로 붙든 작은 덩어리를 유심히 살폈다.
혹시?
권총에서 돌린 이용우의 시선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커피콩처럼 생겼는데 돌멩이였어요.”
“돌멩이? 이리 줘 봐.”
이용우가 다가서자 자밀라가 순순히 손바닥 위에 작은 덩어리를 놓아 주었다.
눈가를 좁힌 이용우가 보기에도 어둠 속에서 확인하기에는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커피콩과 크기와 형태가 비슷한 돌이었다.
염병. 뭔가 발견한 줄 알았더니 진짜 돌멩이가 섞여 있었던 건가?
이리 보아도 돌, 저리 보아도 돌이었다. 모양이나 색이 워낙 비슷해서 선별이나 포장 작업 중에 섞여 들어간 게 분명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진짜 혹시 모르는 거니까.
이용우는 만지작거리던 돌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여기는 어떻게 아는 곳이오?”
“한국에서 온 커피 매매상이 사용하던 사무실입니다. 예멘에서 커피를 수입해 한국으로 수출하던 곳인데 느닷없이 출국 요청이 있어서 이렇게 두고 떠났습니다.”
“박스를 뜯은 모양새나 바닥에 커피를 쏟아 놓고 밟아 댄 걸 보면 뭔가를 찾은 거 같은데, 민병대가 노리는 게 이거요?”
적당하게 답변하던 이용우는 불편한 표정으로 오마르를 보았다. 느닷없이 심도 있는 질문을 연달아 건네는 게 어쩐지 싸하게 느껴져서였다.
“내가 연방 경찰국 소속이다 보니 정황을 보며 하나둘 추측하는 버릇이 생겨서 그런 거요.”
이용우의 눈빛에 눌린 것처럼 오마르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래 놓고는 어색하고 미안한 감정을 감추려는 것처럼 허리를 숙여 커피콩을 골랐다.
“예멘에서 왔다고 했소?”
아니, 이 양반이 진짜?
“두어 달 전인가? 예멘에 운석이 떨어졌다는데 그걸 찾는 사람이 엄청난 돈을 벌 거라는 말을 들어서 그렇소. 내 딸이 주운 게 돌이기도 했고.”
뭐가 떨어졌는데 뭐가 돈이 돼?
이용우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멩이를 꺼냈다.
이게 운석이라고?
아무리 봐도 그냥 돌멩이인데?
“혹시 아오? 달에 있는 헬륨3일지? 1그램이 석탄 40톤의 에너지를 지녔다는데 그 정도 가치라면 민병대가 미친 듯이 찾을 만도 하잖소?”
오마르의 말이 끝났을 때, 이용우는 마치 커다란 쟁반으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고, 다음으로 냉수를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헬륨3를 구분하는 방법도 아십니까?”
“방사능이 없다는 사실 정도 알고.”
커피콩을 든 손을 동그랗게 만 오마르가 이용우를 향해 몸을 세웠다.
“핵융합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만 아오.”
뭐야?
결국, 모른다는 소리잖아?
심오한 표정으로 숨을 내쉰 이용우는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폴더폰을 꺼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