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29)
610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2)
신광선의 보고를 받은 김형정은 ‘이거였나?’ 하는 반가움에 주먹을 지그시 쥐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마 하는 의심에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인된 사항은 아닌 거죠?”
– 말씀드린 게 전부입니다. 현재까지 커피콩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이물질이고, 우연히 오간 대화를 통해 유추한 게 전부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용우 씨와 현지인 두 명의 구출은요? 그쪽에서 방법을 고민해 봤습니까?”
– 우리 쪽에서 어떡해서든 도움을 줘야 하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였을까?
한국인 정보원과 요원들이 이라크에서 강제추방 당한 탓에 당장 도움을 주기 어려웠다. 그나마 강찬 덕분에 현지 경찰과는 협상이라도 가능한 반면, 민병대는 어떻게 나올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 본부장님. 이용우와 현지인 두 명이 희생되면 이후에 우리 회사는 어지간한 일에서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제가 직책을 걸 테니 대테러팀을 움직여 주십시오.
“후-.”
김형정이 신광선의 위치에 있었더라도 비슷한 요청을 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김형정은 짜증 섞인 얼굴로 요청을 거부할 국정원 원장 하동선을 떠올리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끊고 기다리세요.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 꼭 좀 부탁드립니다, 본부장님.
통화를 마친 김형정은 볼을 씰룩였다.
국가정보원 본부장 자리?
나라를 위한다는 사명이 없다면 구차하게 매달릴 만큼 비루하게 살지 않았다. 거기에 목숨 걸고 뛴 전직 요원을 구하는 일이라면 미련 없이 내던져야 한다고 믿는다.
각오를 다진 김형정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리저리 울리는 신호음이 몇 차례 울린 다음이었다.
– 여보세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가슴 든든해지는 강찬의 음성이 스마트폰을 통해 다가왔다.
“김형정입니다. 통화되십니까? 내용이 좀 있습니다.”
– 말씀하세요.
망설일 게 없었다. 그래서 김형정은 커피 중에서 발견한 돌멩이와 예멘에 떨어졌다는 운석, 그 외에 세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문제를 강찬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신광선 국장이 직책을 걸겠다고 합니다. 그렇더라도 원장이 승인하지 않으면 대테러팀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나중에 문제가 돼서 제가 옷을 벗어도 좋으니 우선 프랑스 정보총국의 요원들을 보내…….”
– 본부장님.
살리고 본다. 무슨 짓을 해서든, 어떤 일을 당하든 간에 위기에 빠진 이용우와 현지인 부녀를 구한다. 어쩌면 몽골에서의 끔찍했던 기억 때문에라도 김형정의 음성이 더 절박하게 나왔을지 모를 일이었다.
강찬의 음성에 뒷말을 삼킨 김형정이 이어질 말을 기다릴 때였다.
– 블랙헤드 에너지를 너무 많은 곳에서, 그리고 너무 쉽게 이용한다는 점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수십 년에 하나둘 발견되는 광물이고, 또 쪼개거나 갈라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돼서입니다.
“예.”
– 그런데 헬륨3를 이용한 에너지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미 헬륨3를 이용한 발전 시설을 구축하고 있고, 그 정도의 연구가 진행되었으니까요.
그렇구나!
강찬의 짐작대로라면 이용우의 보고가 그토록 속 태우던 적들의 베일을 벗기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
– 목숨 건 요원을 외면하는 건 내가 못 봅니다. 일단 끊고 기다리세요.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김형정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부터 강찬의 전화를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신광선, 그 뒤로 이용우가 비슷한 심정으로 전화기를 바라볼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
통화를 마친 강찬은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 석강호와 제라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잠시만 기다려.”
상황을 설명하느라 시간을 끌기보다는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른 사람 아닌 나라를 위해 목숨 건 요원과 조력자라면 무엇보다 앞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주소록에서 번호를 찾은 강찬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비상 대기 전화였다. 그런데도 신호음이 열 번쯤 울리도록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게 정말…….’
강찬이 눈가를 찌푸리는 순간이었다.
– 여보세요?
칼칼한 음성이 테이블에 올려 둔 강찬의 전화기를 통해 나왔다.
“강찬이다.”
– 누구?
“부원장 강찬.”
– 허! 내가 모르는 사이에 부원장이 원장에게 반말을 하게 규정이 바뀌었나?
대꾸를 들은 석강호가 입술을 뒤틀며 그을음을 토해 냈고, 그 옆에서 제라르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 그래. 그 잘난 부원장이 내게 무슨 일인가? 왜? 업무추진비라도 결제해 줘?
이게 정말 뒈지게 맞고 싶나?
심정은 그런데 강찬은 이를 드러내며 감정을 눌렀다.
“이라크 바그다드에 있는 요원을 구출하기 위해 대테러팀을 움직이려고 한다.”
– 웃기고 있네. 바그다드에 있는 사람은 이미 사직한 민간인이야. 더구나 그곳에서 경찰에게 총질까지 한 범죄자고. 그러니 부원장은 나서지 말고 얌전히 있어.
정말 대책 없는 인간이구나.
고개를 끄덕인 강찬은 아예 미련을 버린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프랑스 정보총국의 부원장인 걸 알고도 그따위로 말하는 거냐?”
– 이봐, 부원장. 그렇지 않아도 하루 이틀 사이에 부원장 자리에서 잘라 낼 생각이었으니까 프랑스가 그렇게 좋으면 그곳 국적을 취득하고 그곳에서 살아!
하동선의 당찬 대꾸를 들은 강찬은 피식 웃었다.
프랑스 요원을 보낼 수 있다는 말을 저렇게 해석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말이다. 뭔 놈의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 때면 국민 전체가 나서서 희생하고, 그에 답하듯 생각 못 한 영웅이 툭 튀어나오는데, 먹고살 만하고, 위상이 좀 높아졌다 싶으면 별별 개잡놈이 자리를 차지하고서 설친다.
“그래? 그렇다면 매번 아쉬운 소리만 해야 하는 국가정보원 부원장 자리 나도 관심 없으니까 알아서 정리해. 대신 그동안 프랑스 정보총국을 중심으로 각국의 정보국이 제공하던 정보와 한국의 돼먹지 않은 정치인이 밖으로 나와 요청하는 면담 따위 들어주지 못하니까 그렇게 알아.”
– 흥! 국정원의 능력을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다른 나라의 도움에 매달리던 대한민국이 아냐.
에라, 이 개새끼야!
그렇게 자부심 가지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만들기 위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요원들이 얼마나 많이 별로 떴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원장이라는 자리만 내세우는 진짜 개새끼!
“성질대로 하면 내일 안으로 죽여서 본때를 보여 주고 싶은데 우리의 더러운 구석을 밖으로 내보이는 게 자존심 상해서 참는다.”
– 대한민국의 정보국 수장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거냐? 아무리 설치는 게 습관이라고 해도 생각해서 말을 해!
“후우-.”
강찬은 올라오는 분노를 뜨거운 숨으로 우선 뱉어 냈다. 그런 뒤에 미련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잘됐다. 차라리.
하루 이틀 사이에 잘라 낸다고 했으니 부담과 아쉬운 소리만 하는 국정원 부원장 자리가 이제야 끝나겠다.
진짜 자리에 미련 없었다. 그러나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요원들이 안돼서, 그놈들이 가슴에 담겨서 깔고 있던 자리였다.
대테러팀을 파견해 볼까 하는 계획이 무산된 모양새라 강찬은 이어서 바로 번호를 찾아 눌렀다. 신호음이 꼭 두 번 울린 뒤였다.
– 예, 대장.
“바그다드 알-무타나비에 있는 한국 정보원의 거점에 이용우라는 요원과 부녀 관계인 현지인 두 명이 있다. 미안하지만, 그 셋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 줘.”
– 미안하다고 하시는 게 길을 막는 자들을 모조리 사살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러고 보니,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미안하다는 표현을 건넸고, 하마터면 재수 없는 국정원 원장 놈 때문에 괜히 일이 커질 뻔했다.
“자꾸 부탁만 하니까 미안하다는 거지.”
– 대장도 나이 드셨나 봅니다.
프랑스어로 오가는 통화 끝에서 듣고 있던 제라르가 흐느끼듯 웃음을 토해 냈다.
뭔데 그래? 왜?
궁금해하는 석강호의 시선보다 통화를 마무리하는 게 중요했다.
“서둘러.”
– 끝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문바키와 통화를 마친 강찬은 곧장 김형정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먼저 프랑스 정보총국 요원들이 도착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따르라 했고, 이어서 간략하게 원장과의 통화 내용을 전해 주었다.
– 면목 없습니다, 부원장님.
제 손으로 벽돌 하나씩 쌓아 올렸던 집이 허물어지는 꼴을 보는 사람처럼 김형정의 음성은 참담했다.
“기운 내시고, 본부장님 판단으로 필요한 일이 있다면 연락하세요.”
–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그제야 제라르와 석강호를 향해 시선을 들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요?”
“다 설명하자면 긴데 이용우라고 바그다드에 있는 전직 요원 있잖냐? 그쪽에서 헬륨3라는 말이 나왔다.”
“그게 뭐요?”
모르는 게 당연하다. 석강호라면 더더욱 더.
“1그램으로 석탄 40톤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광물이라고 생각하면 적당해. 달에 100만 톤 정도 있다고 추측하고, 헬륨3를 이용한 발전소 건설도 진행 중이다.”
“그런 게 있으면 나오지도 않는 블랙헤드를 찾는 것보다 백번 낫잖소? 지진은요? 블랙헤드는 지진도 일으키잖소?”
“그보다는 훨씬 안전하다는데 아직 정확히는 모르는 거지. 다만, 핵융합 방식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 건데도 방사능과 폐기물이 나오지 않는다더라.”
강찬이 설명한 뒤였다.
“혹시 블랙헤드를 대신할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역시!
헤딩 외에도 머리를 쓸 줄 아는 제라르의 질문이 건너왔다.
“기존의 정보국 시야 바깥에서 움직이는 놈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 같으니까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제라르의 질문에 답한 직후였다.
“그나저나 국정원은 어떻게 할 거요?”
“지금 하는 꼴을 봐서는 오히려 국정원 원장을 통해 정보가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가뜩이나 우리 쪽만 노출돼서 이상했는데 핑곗김에 잘됐다.”
“그 짧은 순간에도 그렇게 계산해서 대한다는 게 정말 무섭소.”
아닌데? 그냥 성격대로 한 건데?
생각은 그랬는데 존경하는 눈빛의 석강호를 보며 강찬은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다.
“아차! 한 군데만 더 전화하자.”
“아프리카요?”
고개를 끄덕인 강찬은 테이블에 놓아둔 스마트폰의 번호를 찾았다.
***
많은 숫자의 시체를 해결하는 일은 쉽지 않다. 거기에 숨어 있을지 모를 적 경계해야지, 구덩이 파야지, 또 학살자들처럼 대충 던져 넣을 수는 없지, 마지막으로 오염될 수 있다는 위험까지 있었다.
양동식의 지시에 따라 강태산은 외인부대원에게 경계를 부탁했다.
“대위님이 경계를 맡으십시오. 시체를 치우는 일을 우리가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인원을 반으로 나눠서 교대로 하죠.”
어차피 쉽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외인부대 지휘관의 의견을 받은 강태산은 인원을 반으로 나눴다.
먼저 강태산이 조원들과 함께 나섰다.
두건으로 머리를 묶고, 군복 상의를 벗은 강태산은 마치 진지 구축을 위해 나선 대원처럼 보였다.
‘군대는 말이다. 삽질로 시작해 삽질로 끝나. 자대배치 때 받은 삽날이 반쯤 사라지면 제대하는 거다.’
증평에 펑펑 눈이 내리던 날, 차동균이 해 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강태산은 처참한 적들의 시신을 들었고, 구덩이에 얌전히 눕혔다.
죽음은 이렇다.
권력이고, 돈이고, 아무리 쥐고 있어도 죽음을 맞이하고 나면 이렇게 흙으로 돌아가는 거로 끝난다.
어깨와 목덜미 아래로 흉터들이 드러난 강태산이 연달아 시체들을 수습할 때였다.
기지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양동식입니다. 예. 예.”
양동식이 저렇게 통화할 사람이 누가 있지?
궁금해서 힐끔 시선을 주는 강태산을 향해 양동식이 손짓을 던졌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런 뒤에 다가서는 강태산을 향해 전화기를 내밀었다.
‘누구입니까?’
시선으로 묻는 강태산에게 양동식이 턱짓을 던졌다. 그리고 그 즉시 강태산은 전화한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대위 강태산입니다.”
– 듣기만 해.
“예.”
무언지는 몰라도 듣기만 하라는 강찬의 말로 봐서 중요한 내용이 분명했다.
– 로일 박사가 이용했다는 에너지가 블랙헤드에서 나온 게 아니라 헬륨3를 이용한 건지 몰라.
하마터면 강태산은 ‘헬륨3입니까?’ 하는 질문을 건넬 뻔했다.
– 그리고 지금 수색하는 주변에 헬륨3를 이용하던 연구 시설이 있을 확률이 높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 이해했습니다.”
헬륨3가 뭔지는 몰라도 전한 내용은 알아들었다.
빠르게 둘러본 주변에서 햇살 아래로 드러난 강태산의 흉터와 단단한 체형을 로일 박사 일행과 외인부대원들이 각각의 표정들로 지켜보고 있었다.
– 그쪽에서 수색할수록 적의 공세가 심해질 거다. 마지막에는 특수부대가 나타날 테고. 우리 쪽에서 대대적으로 지원하면 좋은데 적들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시설을 폭파할 위험이 있다. 다른 일로 출동했던 양동식 소령을 전투가 벌어진 뒤에 보낸 것도 그런 이유고.
그랬구나.
이래서 아포코 기지로 오는 길에 헬리콥터를 지원하지 않았고, 빤히 달려올 수 있는 양동식 소령의 팀이 반걸음 늦게 왔구나.
궁금했던 일들이 풀리며 강태산은 머릿속이 확실히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 왜 그런지 놈들도 그쪽 연구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러니 특수부대가 나타날 때까지 버텨. 그리고 시설이나 관련 자료를 찾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겠어?
“이곳에서 놈들의 꼬리를 붙들라는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강태산의 답이 건너가자 피식하는 웃음이 대견하다는 칭찬처럼 건너왔다.
– 질문?
“헬리콥터 수색은 안 됩니까?”
– 그렇게 알아낼 거 같으면 위성 사진으로 찾았겠지.
“통화 내용을 끝까지 비밀로 해야 합니까?”
– 헬륨3라는 단어가 당장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려는 거니까 양 소령을 포함해 내용을 전하는 건 현장에서 판단해. 지금 그쪽에서 특수부대를 감당할 사람이 너밖에 없다. 믿어도 되겠지?
“반드시 잡아내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나 싶었을 때였다.
– 얼른 끝내고 고기 먹자!
함께 듣고 있었는지 석강호의 걸걸한 음성이 먼저 건너왔고,
– 이제 중닭은 된 거 같은데?
나직한 제라르의 평가가 전화기를 통해 귀를 파고들었다.
피식.
강태산이 웃는 순간이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강찬과 연결됐던 통화가 끊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