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3)
584화 저 새끼, 오늘 운 좋았네! (3)
아포코 기지 근처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기지 앞에 펼쳐진 숲을 본 강태산은 피식 웃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염병할. 어쩐지 쉽더라니.
강태산은 말없이 왼손을 높이 들었다.
끼이익!
도로의 한쪽에 지프가 멈추는 것과 동시에 바로 뒤의 트럭이 좀 더 거센 브레이크 소리를 울리며 멈췄다.
강태산은 훌쩍 지프 밖으로 나섰다.
철컥! 철커덕!
그리고는 소총의 노리쇠를 당겼고, 이어서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밤이다.
지프와 트럭이 라이트를 꺼 버린 이곳은 완벽하게 달빛과 별빛에 의지한 세상이었다.
그가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 로일이 움찔했다.
두건 아래로 빛나는 강태산의 눈이 독오른 호랑이나 성난 사자의 그것처럼 매서워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뭐야?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바뀌어?
명령 따위 없었다.
강태산의 강인한 눈매를 받은 평화유지군 대원들이 트럭에서 뛰어내렸고, 외인부대 대원들이 파머스 소총과 그보다 두 배쯤 커다란 기관총을 들고 지프와 트럭 주변을 감쌌다.
“수색이 끝나면 무전을 하겠습니다. 채널을 열어 두세요.”
“위!”
프랑스 지휘관의 답을 들은 강태산이 대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강태산은 손으로 몇 곳을 빠르게 가리켰다. 그리고 지시를 받은 대원들이 헬멧에서 투시경을 내리고는 지시받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로일이 지켜보는 앞에서 소총을 겨눈 강태산을 어둠과 수풀이 삼켰다. 그의 왼쪽 어깨 뒤편에 매달린 대검의 손잡이가 ‘이 사람에게 관심 있어?’라고 묻는 것처럼 움직인 뒤에 수풀과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죽을지 모를 상황에 뛰어드는 군인을 로일은 처음 보았다.
꾸욱. 꾸욱. 욱욱욱욱.
낯선 동물의 울음이 들리고, 날벌레들이 달려들며, 별이 쏟아질 것처럼 고여 있는 하늘 아래에서 로일은 그녀답지 않게 조용하게 있었다.
총소리가 울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 총소리가 울리면 적이든, 조금 전에 사라진 평화유지군이든,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는 현장이었다.
밤이라 더 실감 났을까?
이제껏 헐렁해 보이던 외인부대원들의 바싹 긴장한 모습 때문일까?
로일은 이상하게 올라오는 긴장을 안은 채 강태산이 사라진 수풀만 보고 있을 때였다.
꾸욱! 꾹꾹꾹꾹!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낯선 울음이 울린 직후에,
푸슝! 푸슝! 투두두둑! 푸슝! 투두둑!
고막을 파고들어 가슴에서 터지는 듯한 총소리와 함께 수풀 안쪽이 번쩍였다.
“이쪽으로!”
외인부대 대원들이 로일의 팔을 당기다시피 지프에서 끌어 내려서 트럭과 지프 사이로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두 명의 동료까지 데려온 외인부대원들이 트럭과 지프 사이를 막아섰다.
푸슝! 투두둑! 푸슝! 푸슝! 푸슝!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귀를 막은 로일이 몸을 더욱 구부렸다.
무섭다.
투두둑! 푸슝! 푸슝! 투두두둑!
어느 것이 아군의 총소리인지, 어떤 것이 적군의 소리인지 모르지만, 저렇게 울릴 때마다 조금 전에 수풀로 들어간 누군가가 피를 흘린 채 죽었을지 모른다는 상황이 소리보다 더 무서웠다.
투두둑! 푸슝! 투두두둑! 푸슝! 푸슝!
어둠을 품은 수풀 안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어둠과 소리, 번쩍이는 불빛이 주는 공포가 로일의 심장을 꽉 움켜쥔 직후였다.
거짓말처럼 침묵이 이어졌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있던 로일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가 외인부대 지휘관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공항에서의 어리숙했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다부진 눈과 자세로 강태산이 들어간 곳을 살피고 있었다.
그가 왼손을 들어 방탄조끼의 위쪽을 눌렀다.
“위.”
짧은 대답을 마친 외인부대 지휘관이 로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복해 있던 반군을 제거했답니다, 마담.”
그는 고개를 돌려 대원들을 지프와 트럭으로 움직이게 했다.
“안에 들어간 사람들? 그 군인들은요?”
“그들은 아프리카 전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대원들입니다. 이제 지프에 타시겠습니까, 마담?”
프랑스인 특유의 느물거리는 답을 들은 로일은 떨리는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지프에 올랐다.
그 직후였다.
쩔걱쩔걱.
강태산이 대원 한 명과 수풀에서 나왔다.
“반군입니다. 기지까지 도로를 확보했으니 이동하겠습니다. 외인부대 저격수를 트럭 위쪽에 배치해 주세요.”
“위, 카피땐!”
외인부대 지휘관이 그의 지시를 받아 대원들을 바쁘게 배치했다.
“출발해!”
부르릉! 크르릉!
시동을 건 지프의 앞에 섰던 강태산이 먼저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는 좌우를 살피며 걷는다.
가슴 앞으로 돌린 소총의 총구를 아래로 향한 채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그리고 지금은 헬멧을 썼다. 그의 뒷머리 쪽에서 록가수의 머리칼처럼 두건의 끝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밤이었다.
그런데도 유독 또렷하게 강태산의 어깨 뒤에 걸린 대검과 허리에 걸린 권총, 다리 양쪽 발목에 번갈아 걸린 대검과 권총이 로일의 눈에 들어왔다.
뜨거운 커피, 가능하다면 갓 만든 소금빵과 오믈렛. 아프리카의 한중간에서 로일은 터무니없는 소망을 떠올렸다.
***
신의 정원이라 불리기도 하고, 아라비안나이트 속 배경이기도 한 도시 바그다드였다. 엘 자프래니야에서 시르완강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나름 화려한 쇼핑센터와 편의점도 있는데, 그곳에서 골목 하나만 들어서면 남루한 방을 덕지덕지 품고 있는 회백색 건물들의 세상이었다.
역사책에서 보았던 티그리스강을 외면한 이용우는 시르완강 바로 옆의 노천카페에 앉았다. 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으나 물을 끌어다 쓰기 좋아서 그런지 노천카페 바로 건너편은 세차장이었다.
염병할 흙먼지, 참 꾸준하기도 하다.
그 와중에 뭔가를 요란스럽게 떠들어 가며 차를 닦는 남자 셋을 보며 이용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동료 좋지.
707, 해군특수전전단, 국가정보원, 마지막으로 증평에서의 훈련을 마친 이용우에게도 당연하게 동료가 있었다. 누구는 증평의 특수팀에 남았고, 누구는 제대했고, 또 누구는 형사가 됐는데, 이용우는 ‘더 블랙’이 되었다.
국가정보원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파견한 요원을 ‘블랙’이라고 부른다. 무역업, 카페, 식당, 상사 주재원, 다양한 직업으로 위장하는데 그들의 임무는 해당 지역에서 얻은 정보를 본국의 정보국으로 보내는 데 있었다.
이름은 비슷하지만, 이용우가 속한 ‘더 블랙’은 전혀 다른 조직이었다. 위장해서 생활하던 블랙이 위험에 빠지거나, 혹은 은밀하게 탈출시켜야 할 때 나서는 게 바로 ‘더 블랙’이었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국가정보원 해외 요원이 적게는 다섯 명, 많게는 오십 명까지 희생된다. 북한의 중요한 인물을 데려오는 작전에는 필리핀에서만 무려 27명의 요원이 희생되기도 했었는데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했다.
그들이 흘린 땀이 높은 산과 깊은 골에 스몄고, 흘린 피가 군가의 가사처럼 노송과 바위, 그리고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 선명하게 남았는데…….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인 개새끼가 집행유예란다.
“염병.”
피를 뒤집어쓴 얼굴로도 동료를 염려하던 한 맺힌 눈동자를 잊을 방법이 없는데, 벽돌 냄새와 흙먼지 가득한 바그다드에서 무슨 지랄을 떨고 있는 건지.
부으응.
세상 참.
잠깐 과거를 생각했을 뿐인데 신광선이 전화하더니, 한국을 떠올리는 순간에는 ‘한동축산’이라는 한글을 또렷하게 새긴 트럭이 앞을 달려간다.
다른 곳도 아닌 바그다드에서.
빠르게 살핀 운전석에서 나이 든 남자는 코란을 읽기 전에 일을 마치려는 것처럼 급한 표정이었다.
아버지…….
간혹 집에 내려갈 적이면 부친은 늘 갈라지고 메마른 손에 작은 비타민 음료병을 들고 돌아왔다.
“요즘 사람들은 이게 그렇게 좋은가 보다. 툭하면 이런 걸 줘.”
“활력이 난다던데요. 어차피 받은 거니까 그러지 말고 드세요.”
“아서라. 이런 거 마시면 입이 달아서 괜히 물만 켜. 버리기도 그렇고, 너 마셔.”
행여나 사양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부친은 매번 그 메마른 손으로 뚜껑을 열어서 건네주었다. 좋은 적도 있었고, 그날따라 싫을 때도 있었는데 손을 뻗은 부친의 주름진 눈을 실망시키기 싫어서 군소리하지 않고 마셨다.
“힘들지 않냐?”
걱정하는 부친의 질문에 이용우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태극기를 팔에 걸었다는 사명감, 국가정보원 ‘더 블랙’이라는 자부심을 어떻게 말로 설명하겠나.
“쉬엄쉬엄해.”
공수부대, 해군 특작 부대, HID, 707 특임대대의 훈련을 쉬엄쉬엄한다고?
아버지를 떠올리던 이용우는 식어 버린 홍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이제 뭘 하지?
잔을 내려놓은 뒤였다.
나씨르와 같이 구불거리는 수염을 기른 카림이 늘 먹던 토스트, 달걀 프라이 두 개, 도저히 적응하기 어려운 후블스라는 둥그런 빵과 입에 붙지 않는 짠맛의 향신료를 탁자에 내려 주었다.
이게 8달러였다.
우선 먹고.
훈련이나 임무를 수행할 때면 뱀만 봐도 반가웠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나씨르가 들어와 권총을 들이대서인지, 그도 아니면 바그다드의 후끈한 날씨 탓인지는 몰라도 토스트와 달걀 프라이가 이상하게 입에서 따로 놀았다.
토스트와 프라이를 껄끄러워하다니?
팔자 좋아졌다는 생각을 하며 우걱우걱 토스트를 씹던 이용우는 홍차를 마시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직후였다.
일회용 라이터의 불꽃처럼 짧은 순간, 지나치던 남자와 시선이 스쳤다.
‘어……?’
이용우는 시선을 떨구고는 상체를 모로 틀었다.
어떻게…? 왜, 무엇 때문에 박중상이 사파리 차림으로 바그다드 시르완강 앞을 지나고 있을까?
“야, 이 새끼야! 그냥 교관을 해! 아니면 아버님 곁에 가 있든가! 이런 꼴을 제수씨가 보았다면 뭐라고 하겠냐!”
전역을 신청했을 때 으르렁거리던 박중상의 눈빛과 음성이 떠올랐다.
그냥 지나쳤다. 박중상은.
더 블랙의 훈련을 수행한 그가 바그다드의 카페에 앉은 이용우를 확인하고도, 엉뚱한 장소에서 본 한국인 관광객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이다.
수니파, 시아파, 쿠르드 자치군, 정부군, 염병할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 다가오는 놈이라고는 화약 냄새 역겨운 권총을 든 나씨르가 전부인 장소에 박중상이 있었다. 그러고는 덤덤한 태도로 카페를 지나쳤다.
‘작전이구나!’
스쳐 간 박중상의 시선과 태도가 말로 하는 설명보다 더 정확한 증명이었다.
***
한국에 도착한 신동철은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군복을 입었다.
유치한 짓이란 거 안다. 아는데,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서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모처럼 예쁘게 차려입은 김옥자가 군복 입은 아들의 모습을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우. 우우우. 우.”
‘피곤하면 안 가도 돼.’
그러고도 김옥자는 집을 나서기 직전에 검지와 중지를 붙여 얼굴 앞에서 돌린 뒤에 왼손바닥을 자르는 시늉을 보였다.
‘뭔 소리야? 그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신동철은 수화를 한다.
어머니와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익혔는데, 대신 수화를 할 때 신동철은 이상하게 입이 나오면서 표정이 멍해진다.
“우. 우우우. 우우.”
‘괜히 엄마 때문에 너 망신 당하면 어쩌지?’
‘쓸데없는 소리를 해? 얼른 가요.’
그렇게 모자는 집을 나섰다.
서른을 넘겨서 얻은 아들 신동철이 벌써 스물여덟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언젠가 TV에서 나온 갈빗집을 혼자 가기 어려워서 늘 아쉬워하던 김옥자를 위한 외출이었다.
병점에 사는 신동철과 김옥자는 수원 갈비를 먹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그렇게 달리는 택시 안에서 신동철은 아프리카에 있을 13연대 3중대를 떠올렸다.
벌써 보고 싶다, 강태산이.
이렇게 김옥자와 함께 있는 것도 좋지만, 불쑥 지옥으로 변하는 아프리카에서 강태산은 신동철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고, 신앙 같은 지휘관이었다. 이런 심정 이해하려나 모르겠다. 지휘관인 강태산이 보고 싶어서, 그의 곁을 지키고 싶어서 아프리카에 빨리 가고 싶은 심정을 말이다.
신동철은 행복한 표정으로 웃는 모친 김옥자를 보았다.
‘어머니, 미안해.’
그곳에 있는 동안, 신동철이 전부인 세상에 혼자 남아 가슴 졸일 김옥자에게 미안한 생각이긴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