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30)
611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3)
달빛과 건너편의 건물에서 달려온 빛에 의지해 견디는 참이었다. 민병대와 경찰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고는 하나 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들이 언제 달려들지 모를 불안한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정신이 복잡할 때는 단순한 일을 하는 게 좋다고 했던가.
오마르와 그의 딸 자밀라는 뒤늦게 일을 찾은 사람들처럼 상체를 기울인 채 커피 줍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말릴 이유는 없었다.
저러다가 덜컥 뭐라도 나오면 감사한 거고.
창가에 붙어선 이용우는 오른쪽 어깨를 돌려 가며 바깥을 감시했다. 은은한 달빛이 창틀을 밟고 넘어와 거실 안쪽을 슬며시 살피는 시간이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하냐?’
달빛을 확인했던 이용우는 힐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희한하게 한국과 이라크의 달빛이 다르게 느껴진다. 한국의 달빛이 능글맞고 뻔뻔한 호랑이에게 쫓기는 오누이, 아버지 등 애잔한 그리움의 느낌이라면, 이라크의 달빛에서는 억울함, 분노, 좌절의 감정이 달려들었다.
좌절? 좌절이라고?
‘포기할 줄 알아?’
도로를 다시 살핀 이용우는 빠르게 시선을 들어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았다.
‘개새끼야! 어떤 감정을 던져도 나는 포기 못 해! 안 해! 한국에서 야간 훈련으로 산속을 달리는 거 너도 봤을 거 아냐!’
울적해지는 감정을 떨쳐 낸 이용우가 몸에 밴 훈련대로 창밖을 살필 때였다.
염병!
어둠에서 피어나는 잡귀들처럼 맞은편 건물 사이의 좁은 틈에서 불쑥불쑥 고개가 삐져나왔다.
결국, 민병대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철커덕.
이용우는 권총의 노리쇠를 당겨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커피 줍기에 몰두하던 오마르와 자밀라의 시선이 빠르게 달려들었다.
“누구요? 경찰이오? 민병대요?”
“민병대 같습니다.”
“흐음.”
창을 내다보는 이용우의 짧은 답에 오마르가 신음처럼 들리는 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렇게 끝나나?
그렇다면 이 돌을 어떻게 건네주지?
최후를 각오한 이용우가 주머니에 넣은 돌의 처리를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이번에는 진동으로 바꿔 놓은 폴더폰이 울었다.
‘혹시 한국에서?’
진동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어둠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던 오마르와 자밀라의 얼굴에 달빛처럼 옅은 기대가 아슬아슬하게 올라왔다.
기대하지 말자.
이건 순전히 내가 선택한 길이고, 조국은 내게 어느 것 하나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떤 결정이 내려져도 조국과 국가정보원, 신광선을 원망할 이유 없다.
마음을 가라앉힌 이용우는 폴더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엄지로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여보세요?”
– 살아는 있냐? 이 나쁜 새끼야!
각오를 다지고 받은 전화인데 날아든 첫마디는 신광선의 거친 대꾸였다. 희한하지? 거친 신광선의 음성을 듣는 순간, 결과를 기다리느라 속 태웠던 그의 조바심과 어떤 식으로든 해결됐다는 안도의 감정이 동시에 이용우에게 달려들었다.
– 너는 이 새끼야, 하여간 만나면 가만 안 둬.
“뭡니까?”
– 프랑스 정보총국에서 갈 거다. 프랑스인과 현지 요원들이라니까 참고하고, 확인 암구어는 바그다드의 별이다. 알았냐?
“그보다 지금 민병대로 보이는 놈들을 확인했습니다.”
– 분위기는 어떤데? 달려들 거 같냐?
“그보다는 우선 감시한다는 느낌입니다.”
– 그럼 됐다. 마침 이라크 바그다드에 있는 요원들이라니까 도착할 때까지 시간 끌어. 무리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급하게 오간 대화의 끝에서였다.
– 문제도 하나 있다. 회사 내부 분위기가 안 좋아. 그래서 프랑스 정보총국이 움직이는 거거든. 회사 방침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그곳을 빠져나오더라도 귀국하지 않는 거로 알고 있어.
“빠르게 오려고 정보총국이 움직인 게 아니라 회사 사정 때문이었습니까?”
착 가라앉은 이용우의 표정과 음성을 확인한 오마르와 자밀라가 불안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다시금 궁금한 눈빛으로 고개를 가져왔다.
–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그게 아니라 나야 내가 원해서 이런 거지만, 괜히 나 때문에 본부장님이나…….”
– 미친 새끼. 왜? 이제 와서 걱정되고, 미안하고 그러냐?
여유로운 척 툴툴대고는 있지만, 신광선의 음성은 다급했다. 민병대를 확인했는데도 정보총국 요원들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현실이 주는 다급함으로 느껴졌다.
– 우선 빠져나와. 나온 뒤에 다시 통화하자.
“예.”
통화를 마친 이용우가 폴더폰을 접었다.
“한국에서 온 전화 아니오? 뭐라고 했소? 도움을 줄 수 있답니까?”
한국말로 통화했으니 당연하게 한국에서 온 전화라고 짐작했을 테고, 결정을 알려 주었을 거라 예상하겠다. 두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용우가 전해 주는 말에 따라 천국이냐, 지옥이냐, 앞날이 정해진다.
죽음이 코앞을 뛰어다닐 때의 심정을 이용우는 잘 안다. 그러니 시간 끌지 말고…….
부으으응! 빠앙-!
그러나 이용우는 통화 내용을 알려 주지 못했다.
뭐지?
홱 고개를 돌린 이용우의 시선에 알-무타나비 저쪽 코너에서 라이트를 밝게 켜고 꼬리를 매단 것처럼 달려오는 대여섯 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경찰이오?”
“우리 쪽으로 오는 건 분명해 보이는데 아직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선 이쪽으로 오세요!”
두 손으로 잡은 권총의 총구를 내린 이용우가 말했고, 들고 있던 커피콩을 주머니에 넣은 부녀가 안쪽으로 움직였다.
“이런 부탁하기 미안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다면…….”
권총으로 쏴 달라는 이야기겠다. 원리주의자에게 붙잡혀서 맞이해야 할 지옥보다는 권총에 심장이나 이마를 뚫리는 게 훨씬 덜 고통스러울 테니까.
뭐냐? 누구냐?
오마르의 청을 외면한 이용우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무리 프랑스 정보총국 요원이라고 해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경적을 울릴 수 있을까?
만약 저들이 이라크 특수 경찰이라면 프랑스 정보총국이 구출하기 전에 사살하고자 달려온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오냐.
나같이 보잘것없는 무궁화에 맺힌 피라도 헛되이 사라지기보다는 후배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경고가 되도록 한 놈이라도 더 데려가 주마.
머릿속으로 탄알 수를 계산한 이용우는 아래로 내린 눈가를 찌푸렸다.
“이봐! 거기! 들어가!”
건물 바로 앞에 멈춘 승용차에서 내린 아랍 남자가 손가락으로 골목을 가리키고, 양복을 입은 서양 남자들이 대놓고 권총을 들고서 총구를 아래로 내린 채 주변을 살폈다.
바그다드인데…? 여기 이라크라고…?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내린 서양 남자들은 아예 소총을 앞으로 들고 있었다. 총구를 내린 그들이 차량 주변과 건물 입구를 막고 나자, 권총을 든 서양 남자들이 건물로 들어섰다.
저놈들이 진짜 정보총국이야?
숨을 짧게 내쉰 이용우는 권총의 총구를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문을 향해 움직였다.
자각. 자가락.
‘이 빌어먹을 커피콩!’
사건의 시작이고, 끝이며, 마지막 순간에도 침묵을 깨는 나쁜 새끼!
이용우가 문 옆에 몸을 기울이고 날을 날카롭게 세운 직후였다.
바삐 오는 걸음이 들렸고,
“바그다드, 비-열.”
뭔 암구어를……!
차라리 아랍어나 프랑스어로 해라!
“정보총국이오! 시간이 없으니 문을 열겠소!”
콧소리 가득한 프랑스어 억양으로 바그다드를, 주문처럼 들리는 우리말 ‘별’을 외쳤던 남자가 이어서 능숙한 아랍어로 뜻을 전했다.
끼익.
어설프지만 한국말 암구어, 그리고 총을 마구 갈겨 대도 될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여는 문까지.
“묶어 뒀으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암구어부터!”
이용우는 우리말로 “바그다드의 별!”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문을 여세요.”
이어서 아랍어로 요구가 와서 이용우는 문고리를 감아 두었던 선풍기의 코드를 풀어냈다.
끼이익.
문이 열리며 벌어지는 틈으로 정장 차림의 서양 남자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미스터 리?”
“맞습니다.”
“현지인 부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안쪽에 몸을 피했습니다.”
“나오라고 하고, 서두르세요.”
살았나?
이용우가 고개를 돌린 곳에서 오마르는 감정을 억지로 삼키는 얼굴이었고, 자밀라는 한껏 올라온 눈물을 이겨 내려는 것처럼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
통화를 마친 강태산은 양동식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소령님. 잠시 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화기를 확인하는 것처럼 고개를 내린 강태산이 혼잣말처럼 건넨 요구였다.
“거참.”
양동식의 반응은 뭔가 귀찮은 지시를 받았다는 투로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었다.
“참 번거롭게 한다.”
날카롭게 찢어진 눈으로 최선의 연기를 펼친 양동식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강태산을 향해 손짓을 던졌다. 누가 봐도 따라오라는 의미였다. 또, 귀찮은 지시를 적당하게 넘기려는 의도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여기면 되겠다. 뭐냐?”
아래쪽이 내려다보이는 기지 끝에 선 양동식이 힐끔 시선을 주었다.
시간 끌 거 없다. 그래서 강태산은 통화 내용을 빠르고 간략하게 전했다. 여유를 갖고 적당한 때에 말해도 될 거 같지만, 적의 특수부대가 언제 달려올지 모를 상황을 감안하면 한시도 미루기 어려웠다.
“수색해서 연구 시설을 찾으면 좋고, 아니어도 특수부대가 나올 때까지는 적의 신경을 긁으라는 건데…. 어렵다.”
입술을 뒤틀었던 양동식이 연구팀과 외인부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수색이 급하기는 한데 한꺼번에 가자니 번거롭고, 인원을 나눴다가 적의 특수부대가 한쪽만 노리고 달려들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잖아?”
“지역을 나눠서 밤에 제가 팀원들과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밤에?”
“어둠이 깔릴 때 들어가서 새벽까지는 돌아오겠습니다.”
의도를 알아내겠다는 것처럼 양동식은 강태산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미끼가 되겠다는 거냐?”
“수색을 통해 적의 신경을 긁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지 않겠습니까? 야간 수색이라 적들도 더 신경 쓰일 테고, 인원이 적어서 달려들기도 쉬울 거 같습니다.”
“네 곳으로 나눈다고 해도 나흘이 꼬박 걸린다. 대원들의 체력은 물론이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계산해야지.”
말끝에서 양동식은 쥐가 파먹은 것처럼 군데군데 뻥 뚫린 밀림을 돌아보았다.
“이렇게 하자.”
그런 뒤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와 내가 대원들을 데리고 양쪽을 동시에 수색하자. 어느 쪽에서든 교전이 일어나면 저기 헬리콥터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양동식의 제안대로라면 이틀 안에 근처를 어느 정도 살필 수 있다. 또, 적들이 더욱 긴장할 테고, 연구 시설이 있는 방향으로 나선 수색팀을 그냥 두고 지켜보기는 어렵겠다. 거기에 헬리콥터는 교전이나 탈출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해.”
“예, 소령님.”
의논하는 것과 명령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그리고 지금 양동식이 내린 건 분명 명령이었다.
“야간 수색에 나서야 하니까 네가 이끄는 대원들 전부 교대시켜.”
“어차피 한 시간만 지나면 교대입니다. 지켜보는 놈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한 시간 뒤에 교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소령님과 움직일 대원들을 알려 주시면 제가 적당한 핑계로 작업에서 빼겠습니다.”
“그래.”
말리고 싶은 눈치였다.
야간 수색 전에 조금이라도 더 쉬라고 붙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강태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양동식은 입맛을 다시는 거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
이집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 한국인 요원과 현지인 부녀를 무사히 구출했습니다. 현재 이라크의 정보총국 안전 가옥으로 향하고 있고, 내일 오전에 터키로 이동해서 한국이든, 미국이든, 원하는 최종 목적지를 선택하게 할 예정입니다.
테이블에 올려 둔 스마트폰을 통해 더할 수 없이 만족스러운 문바키의 보고가 건너왔다.
“고생했다. 그리고 문바키. 한국인 요원이 지녔다는 돌멩이가 있는데 그게 헬륨3인지 알아봐. 만약 그게 헬륨3라면 적들이 블랙헤드 대신 사용하거나 사용하려는 에너지원이라는 뜻이 된다.”
– 헬륨3라고 하셨습니까?
“맞아. 헬륨3.”
뭐가 있나?
강찬과 제라르가 스마트폰에 집중했고, 프랑스어를 끝내 익히지 않은 석강호가 갑갑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 67일 전에 예멘에 운석이 떨어졌었는데 그쪽 반군이 손에 넣었다는 정보원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우리 요원들이 확인하려고 했으나, 하필이면 예멘의 반군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가 차례로 교전하는 바람에 더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거 봐?
강찬만 놀란 게 아니었다.
‘대장?’
통화를 함께 듣고 있던 제라르 역시 비슷한 시선으로 강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멘이라, 그곳의 지독한 반군을 생각하면 어설프게 접근했다가 피 보기 좋았다.
“알았다. 일단 한국인 요원이 지닌 돌멩이부터 확인해 봐.”
– 알겠습니다, 대장.
통화를 마친 직후였다.
뭔 일인지 강찬이 새로운 번호를 찾는 동안, 제라르가 통화 내용을 석강호에게 전해 주었다. 눈만 껌뻑이는 석강호가 가련해 보였을 수 있겠다. 조금 뒤에 투덕대겠지만 말이다.
번호를 찾은 강찬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장팔모 소령입니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지만, 비밀리에 수행할 작전이 있을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아프리카를 벗어나 있는 평화유지군 대원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 아프리카를 벗어난 인원은 휴가를 위해 한국으로 귀국한 대원들밖에 없습니다.
“휴가가 언제 끝나나요?”
– 한국 시각 내일 오전 10시 비행기로 귀대를 위해 출발합니다.
강찬은 테이블 위에 둔 스마트폰 액정에 올라온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여러 나라를 휘젓다 보니 한국 시각을 확인하는 데 잠깐 시간이 걸렸다.
“소령님. 우선 휴가자 명단을 받아 보고 싶은데요.”
– 번호를 주시면 3분 안에 보내겠습니다.
“그럼 문자로 번호를 전해 줄 테니 그리 보내세요.”
통화를 마친 강찬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가 인원을 확인한 게 혹시 조용하게 예멘으로 보내려는 거요?”
“적이 우리를 살피는 거 같으니까 눈에 띄지 않게 보낼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우선 확인해 보려고.”
“예멘은 반군이라고 해도 정규군 출신이 꽤 된다는 거 알 거 아뇨? 그 징그러운 IS를 위선자라고 할 정도로 강한 시아파라서 어지간한 지휘관이 아니고는 힘들 거요.”
아랍에 관한 의견만큼은 석강호가 확실히 정확했다. 전에 없이 번득이는 의견을 내놓았던 석강호가 마지막에 ‘설마?’ 하는 표정으로 강찬을 보았다.
“혹시 대장이 직접 지휘하려는 거요? 갓 오브 블랙필드가?”
“상황 보자.”
석강호의 질문을 받은 강찬은 답을 뒤로 미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