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31)
612화 예멘으로 간다 (1)
프랑스 정보총국의 안전 가옥은 말만 들어 봤지, 들어선 건 이용우도 처음이었다.
아파트라니? 그것도 바그다드의?
‘ㄴ’, 혹은 ‘ㄷ’ 형태로 된 4층 아파트였는데 거실 창만큼은 이라크인들의 취향에 따라 아치형이었고, 백색 건물인데도 창 주변을 주황색으로 둘러놓은 모양새였다. 설명하기 복잡하니까 이라크의 강남 또는 신도시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이곳에서 머무시면 됩니다. 좌·우측과 위층 두 개, 맞은편까지 정보총국에서 사용하고, 24시간 경계 중이라 안전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앙 출입구 안쪽의 1층, 105호로 안내한 이라크인 요원이 거실을 둘러보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냉장고에 간단한 음식과 물, 과일, 그리고 저 위쪽에 즉석식품들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 외에 필요한 게 있으면 문 옆 인터폰을 통해 요구하시고, 저쪽에 전자레인지, 기본적인 조리 도구는 싱크대 위에 넣어 두었습니다.”
이게 당최 민병대와 경찰을 피해 도망 온 곳인지, 아니면 어디 리조트에 온 건지 구분되지 않는 자상한 설명이었다.
“문바키 총국장님이 직접 지시했던 임무라 우리 요원들 모두 미스터 리와 동반자 두 분을 무사하게 모셨다는 점에 안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고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로 높은 곳에서 직접 챙길 정도의 사람이었어?
커피콩을 주우며 툴툴대던 오마르, 구출 방법을 못마땅해하던 자밀라가 존경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용우를 보는 앞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에 대답하는 것처럼 이라크 요원이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분께 프랑스 국적 여권을 발급할 예정이라 사진 촬영을 해야 합니다. 내일 오전 9시경 방문할 테니, 두 분은 그때 한국, 미국, 그 외에 제3국까지 원하는 목적지를 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
나이 든 오마르가 탄성을 뱉어 냈고, 자밀라가 그런 부친의 품에 안겼다. 살았다는 안도에 이어 원하는 곳에 함께 갈 수 있다는 희망이 두 사람을 휘감은 것처럼 보였다.
“무기를 지니고 있어도 됩니까?”
“원하시는 무기가 있다면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감동 깨는 게 취미인 것처럼 이용우가 질문을 던졌고, 이집트 요원이 곧바로 답했다.
정보총국이 무기까지 구해 준다고?
솔직히 신광선은 이런 능력이 없다.
부끄러울 만큼 더 솔직해지면 국가정보원이 온 힘을 다해도 총국장이 직접 지시를 내릴 정도의 협조를 요구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이번 일로 국정원 내부가 시끄러우니까 귀국은 천천히 생각하라는 언질까지 있었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혹시 10년 넘도록 나타난 적이 없다는 전설 속의 부원장, 그 양반이 도와준 걸까?
이용우의 눈에 담긴 의문을 빤히 알았을 텐데도 이집트 요원은 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미스터 리? 요청이 하나 있습니다.”
“뭡니까?”
“지니고 계신 돌이 있다고 들었는데 분석을 해 보도록 저희에게 넘겨주셨으면 합니다.”
자밀라가 주운 돌 이야기는 신광선에게만 전했다. 혹시 이런 대접을 해 주는 이유가 국가정보원과 정보총국이 돌의 소유권으로 협상했기 때문인가?
“상부와 의논한 뒤에 결정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협조할 의사가 있다면 인터폰으로 연락 부탁합니다.”
이용우를 이해한다는 투로 답한 이집트인 요원이 더 필요한 건 없냐는 질문을 끝으로 현관문을 나섰다.
“앉아도 되겠소?”
“편할 대로 하세요.”
붉은색이 감도는 타원형 러그 위로 소파, 주방 앞쪽에 식탁, 어느 쪽에 앉아도 상관없는 일이어서 이용우는 넉넉하게 대꾸했다.
긴장이 풀린 오마르가 지친 얼굴로 소파에 앉을 때였다.
이용우를 향해 자밀라가 다가왔다.
이제 와서 미쳤다고 말한 거 사과하려고 그러냐?
느낌은 분명 그랬는데 이번엔 제대로 틀렸다.
“물 마실 건데 드실래요?”
요원 생활을 접어야 하는 건지, 원.
이용우를 지나쳐 냉장고를 연 자밀라가 상체를 기울인 상태에서 질문을 건넸다.
“병이 있으면 하나 줘.”
대답을 들은 자밀라가 물병을 꺼내 이용우에게 주고는 컵이 있을 방향으로 움직였다.
아차차. 전화! 전화가 급하다.
왼손으로 뚜껑을 연 물병을 입으로 가져가고, 오른손으로 폴더폰을 꺼내던 이용우는 자밀라가 연 싱크대 위쪽 공간을 보고 침을 꼴깍 삼켰다.
햐! 정보총국 놈들 참 무섭다.
이용우의 취향을 어떻게 알았는지 싱크대 안에 진라면, 참깨라면, 오뚜기밥, 삼분 카레, 삼분 짜장 등, 눈에 익은 식품들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그렇다면 냉장고에 라면과 먹을 김치와 단무지도 있겠는데?
얼른 달려가 물을 끓이고 싶은 욕망을 누르며 이용우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어떻게 됐냐?
“안전 가옥에 도착했습니다. 내일 오전 9시에 현지에서 함께했던 두 사람의 여권 사진을 찍고, 프랑스 국적 여권을 지급할 거란 내용과 그때 가고 싶은 나라를 말해 달라는 요청도 받았습니다.”
– 하오! 됐다. 됐어.
어지간히 마음 졸였던 모양이었다. 정작 민병대와 대치할 때는 센 척, 거친 말을 해 대던 신광선이 뒤늦게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얻은 돌 있잖습니까? 분석하기 위해 넘겨줄 수 있냐는데 어떻게 할까요?”
– 우리 쪽에서 부탁한 거니까 특별한 상황 없으면 넘겨줘.
고민에 비해 워낙 쉽게 나온 대답이어서 이용우는 맥 빠지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혹시 이거 전설로만 듣던 그 부원장님이 도와준 겁니까?”
– 아이고-오. 이거저거 궁금한 거 보니까 진짜 살 만한가 보다?
“이쪽 요원이 워낙 공손한 데다, 정보총국장의 지시라는 말이 있어서 물어본 겁니다. 귀국도 미루라 할 정도로 회사 내부가 시끄러운데 이 정도로 협조를 얻어 내는 게 의아해서요.”
– 너는 신경 쓸 거 없어.
에둘러 말하는 신광선의 대꾸가 긍정의 답과 같았다.
진짜였어. 전설의 부원장이.
대테러 팀장 하다가 권총에 죽은 거로 처리됐다는 바로 그 부원장이 실제로는 살아 있었던 거야!
– 나는 이만 보고해야 하니까 그쪽 요원에게 돌 넘겨주고, 쉬어.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이용우는 반쯤 남은 물을 단숨에 마시고 다시 폴더폰에서 번호를 찾았다. 습관처럼 돌린 시선 속에서 오마르에게 물잔을 가져다준 자밀라가 무엇을 위해서인지 자그마한 냄비에 물을 붓고 있었다.
“물 좀 많이 넣어.”
“뭐라고요?”
“거기 위에 라면 먹게 물 좀 많이 넣으라고.”
어지간하면 대답 좀 하지 그러냐. 그리고 너, 아직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한 거 사과 안 했다.
냄비를 향해 돌아선 자밀라의 뒷모습을 보며 이용우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여러 차례 울린 다음이었다.
– 여보세요?
기운이 쭉 빠진 늙은 음성이 폴더폰을 통해 건너왔다.
“아버지? 저 용우요.”
– 그래! 잘 있냐? 괜찮아?
도대체 뭘 위해 이러고 사는 건지, 6개월밖에 못 산다는 아버지가 안전한 곳에서 라면 물을 올리라는 아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버지 편찮으시다면서요?”
–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아버지?”
부르기는 했는데 차마 남은 생이 진짜 6개월밖에 안 되냐는 질문을 꺼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용우와 이춘섭 모두 뒤에 삼킨 말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아버지는 괜찮아. 대신 나는 네가 외롭지 않게 살았으면 싶다.
늙었네, 그사이, 폭삭.
삶에 대한 의지가 무너진 늙은 아버지의 음성이 이상스레 심장을 헤집어서 이용우는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 돌아오면 좋은 사람과 함께 아버지 찾아와. 먼저 간 아기한테는 내가 가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할 테니까…….
염병할, 어색한 감정.
다행히 이용우는 그런 감정 깨는 전문가였다.
“치료는 받고 계세요?”
– 치료할 게 없어. 그러니까 아버지 말 허투루 듣지 말고…….
“제가 광선이 형이나 중상이에게 부탁할 테니까 일단 큰 병원에 가 보세요.”
– 뭐 하러 힘든 사람들을 귀찮게 해?
에이, 고집쟁이 노인네!
감정이 단숨에 식어 버린 이용우는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제가 지금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드릴게요. 우선 큰 병원에 가 보는 거로 알고 계세요.”
더는 들을 거 없다는 투로 전화를 끊은 이용우는 인터폰으로 몸을 움직였다. 먼저 돌을 이곳 요원에게 건네줄 생각이었다.
“물 끓는데 이대로 둬요?”
사람이 참.
6개월밖에 못 산다는 아버지와 통화한 직후이고, 돌도 건네줘야 하는데 끓는 물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을 보자 라면과 김치, 즉석밥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걷잡을 수 없이 이용우를 휘감았다.
***
비행기에 설치한 위성 기지국의 덕분이었다.
장팔모가 3분 만에 보낸 명단을 출력한 정보총국 요원이 강찬에게 A4 용지로 가져다주었다.
휴가 인원이 49명이니까 15명은 나오지 않을…….
“그런데 예멘에서 뭘 하려는 거요?”
작전을 수행할지 모른다는 흥분을 눈에 담뿍 담은 석강호가 질문을 던졌다.
“정보총국에서도 못 찾았다는 걸 우리가요? 그게 어디 있는지 아는 거요?”
이놈과 말하다 보면 이상하게 입맛을 다시게 된다.
“정보총국이 예멘에서 활동하지 못한 이유가 뭐냐?”
“중간에 사우디, 아랍에미리트와 전투가 벌어지는 바람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래. 국제적 분쟁을 염려해서 대놓고 뛰어들지 못한 거지. 그럼 내가 어떻게 할 거 같냐?”
“대가리를 잡겠다는 계획이구려.”
고개를 분명하게 끄덕인 강찬이 시선을 내린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테이블에 놓아두었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기다리던 연락이었다.
“여보세요?”
– 대장, 문바키입니다. 한국인 요원이 지니고 있던 돌이 헬륨3로 확인됐습니다.
“후-.”
하나 찾았다. 진짜 제대로.
“문바키. 예멘으로 간다. 그렇게 알고 준비해.”
– 알겠습니다.
프랑스어로 오간 대화를 제라르가 설명하는 동안, 강찬은 어두운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때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동안 숨죽인 보람이 있는 건지는 몰라도, 이라크에 파견된 정보원이 형식적으로 수입한 커피에 헬륨3 조각이 들었고, 그걸 또 은퇴한 전직 요원이 찾아냈다.
개새끼들.
이럴 줄 몰랐지?
앞으로 좀 더 놀랄 거다.
어두운 창을 보며 강찬은 피식 웃었다.
***
내일이면 출발이다.
마른반찬, 젓갈, 김, 오징어 따위를 사겠다는 모친 김옥자를 신동철은 넉넉하게 말렸다.
“먹는 건 여기보다 좋아요. 라면도 종류별로 다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고생하는 동료들이 반가워할 음식을 싸 주고 싶은 모친의 마음을 왜 모르겠나. 그러나 말한 대로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은 적어도 먹는 거로 아쉬운 적이 없었다. 반둔두 전투에서 활약했던 체육 선생 덕분이라는데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직업도 그렇다. 위장하기 위해 그런 거겠지, 아무렴 진짜 체육 선생이 그 처절했다는 반둔두 전투에서 위력을 발휘했겠나.
아무튼, 아쉬워하는 김옥자와 시간을 보낸 신동철이 늦게 침대에 누웠다.
내일이면 간다네, 아프리카로.
강태산 대위의 팀원으로 또다시 검은 땅을 휘젓겠지.
지이이잉. 지이이잉.
잠이 오지 않던 신동철의 잡생각을 날리는 것처럼 스마트폰이 울었다.
누구지?
발신인을 확인했던 신동철은 빠르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동철입니다.”
– 장팔모 소령이다. 거기 밤이지?
“예, 소령님. 새벽 2시 27분입니다.”
– 늦은 시간에 미안한데, 의견을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다. 귀대하는 대신 비밀리에 수행하는 특수 작전에 참여할 생각이 있나?
“예? 죄송합니다, 소령님. 특수 작전인데 참가할 의사가 있는지 질문하신 거로 들었습니다.”
신동철은 평화유지군이었다.
명령을 받으면 일단 따라야 하는 군인 말이다.
작전 지역까지 가서 마지막 순간에 못 하겠다고 손을 들 수는 있겠지만, 처음부터 참가 의사를 묻는 작전은 처음이었다.
– 기밀을 요하는 작전이라 지역과 내용을 알려 주지 못한다. 우리 쪽에서 다이렉트로 인원이 이동하면 작전에 관한 내용이 새 나갈 소지가 있어서 휴가 중인 너에게 연락하는 거고.
아프리카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하는 작전이구나!
깨닫는 것과 동시에 신동철은 강태산과 팀원들을 떠올렸다.
이런 제안을 거절했다고 하면 강태산은 피식 웃고 말 인물이었다. 대신 서운해할 거다. 실망할 거고. 그 모든 걸 떠나서 강태산의 팀원으로 작전을 거부할 마음 따위 없었다.
“명령을 주시면 따르겠습니다, 소령님.”
– 좀 더 들어. 이번 작전은 극도로 위험해서 조금이라도 내키지 않으면 편하게 거부해도 된다. 혹시 꿈자리 뒤숭숭한 거 있었어?
“없었습니다, 소령님. 휴가 동안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작전에 꼭 넣어 주십시오.”
– 알았다. 내일 오전에 귀대하는 일정에 따라 공항으로 나와. 도착하면 사정으로 인해 비행편이 둘로 나뉘었다고 할 거다. 그렇게 알고 지시에 따르면 된다.
“알겠습니다.”
– 가족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작전에 관한 말이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돌아와서 보자.
“감사합니다, 소령님.”
통화를 마친 신동철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갑자기 목이 마른 느낌에 물이라도 마실까 해서였다. 조용하게 방문을 열고 나선 신동철은 컵을 찾아서 정수기의 물을 마셨다.
‘주무시나?’
김옥자가 사용하는 방문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신동철이 아는 모친 김옥자는 날 밝으면 떠나야 하는 아들이 걱정돼서, 그리고 아쉬워서 쉽게 잠들지 못할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장난이라도 좀 칠까?
징그러워하겠지만, 옆에 누워?
그렇더라도 사람 일은 또 몰라서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컵을 내려놓은 신동철은 고양이 걸음으로 움직여 방문을 슬며시 열었다. 아프리카에서 강태산에게 배운 신동철은 진짜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문을 연 신동철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침대 옆의 창을 향해 무릎을 꿇은 김옥자가 기다란 묵주를 손에 걸고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천주교 교인이니 성모마리아에게 아들인 신동철을 지켜 달라며 매달리고 있겠다.
김옥자의 뒷모습을 잠시 보던 신동철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