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32)
613화 예멘으로 간다 (2)
공항에 도착한 신동철은 발권을 위해 항공사 창구로 먼저 이동했다. 원래대로면 여권을 보여 주고 티켓을 받는 절차였는데 오늘 발권 창구 앞에는 평화유지군 소위가 서 있었다.
“신동철 하사?”
“하사 신동철.”
처음 보는 소위인데 이미 신동철의 얼굴을 아는 모양이었다.
“여권 확인하겠습니다.”
신동철이 내민 여권과 얼굴을 확인한 소위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파일철에서 티켓을 꺼내 여권과 함께 내밀었다.
“화물이 있으면 여기 올리고, 27번 게이트로 이동해서 탑승하면 됩니다.”
“화물 없습니다.”
“그럼 출국장으로 이동하세요.”
소위였다. 신동철은 하사였고. 그런데도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소위는 신동철을 예우하는 것처럼 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는 경례를 올리는 신동철에게 소위는 또 묵직하게 손을 올려 주었다.
특수한 임무를 맡은 동료를 향한 경례, 소위의 표정과 태도는 더할 수 없이 분명했다. 눈인사를 마친 신동철은 몸을 돌려 기다리는 김옥자를 향해 움직였다.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었다. 함께 출국장으로 올라서자 김옥자는 내내 눌러 두었던 아쉬움과 슬픔이 한꺼번에 터지는 눈치였다.
“안 울기로 해 놓고 또 그런다. 이렇게 어머니의 기도가 지켜 줄 건데 뭐가 걱정이야?”
울음을 삼키는 김옥자를 향해 신동철은 십자가 목걸이를 내보였다. 일찍 아침을 먹고 나서 모친 김옥자가 준 선물이었다. 물론, 전투에 나설 때는 걸지 못한다. 그러나 굳이 세세한 규정을 설명해 선물해 준 김옥자를 실망시킬 이유는 없었다.
“우우우-.”
“아들 믿지? 건강하게 올 거야. 혹시 아프리카 아가씨하고 올지 모르니까 마음 준비하고.”
“우-. 우우우.”
‘나는 네가 선택한 사람이면 누구든 상관없어.’
씨익 웃어 준 신동철은 김옥자를 소중하게 품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김옥자는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이제 가 봐야 해.”
차마 손을 놓지 못하는 김옥자를 향해 신동철은 번듯한 자세로 경례를 올렸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칠 때였다. 먼 길을 떠나는 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싶었을까?
울음을 잔뜩 머금은 김옥자가 애써 만든 웃음을 보여 주었다.
더 길어지면 힘들다.
자세를 바로잡은 신동철은 고개를 짧게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이어서 출국장 안으로 들어선 신동철은 평화유지군을 위한 라인을 통해 검색과 출국 사실을 확인하고 곧장 27번 게이트로 향했다.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김옥자와 함께했던 시간, 눈에 담았던 풍경과 먹었던 음식 모두 추억으로 변한다. 그런 뒤에 숨통을 틀어막을 정도의 더위와 악취, 팔뚝의 솜털마저 곤두서는 긴장, 코앞을 넘나드는 죽음 속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또 보자.
대한민국의 하늘아. 땅아.
어머니 잘 부탁한다.
“여권과 탑승권 확인하겠습니다.”
하사 계급을 단 승무원이 신동철의 여권과 탑승권을 받은 뒤에 얼굴을 확인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가 돌려주는 여권과 탑승권을 받은 신동철은 바로 비행기와 연결된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중형 여객기였다.
이 인원이 전부인가?
그렇다고 쳐도 작지 않은 비행기에 탑승 인원은 20명뿐이었다.
평화유지군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거기에 아프리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이유로 전우애가 더욱 끈끈했다. 지정된 좌석으로 이동한 신동철은 안면이 있는 대원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다들 특수 임무를 맡았겠다. 그러나 공식적인 브리핑이 없어서 임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대원은 없었다.
신동철이 복도 자리에 앉은 다음이었다.
“동철아?”
“어? 형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온 대원을 본 신동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는 못 뵀는데 언제 들어오셨습니까?”
“뒤편 화장실에 잠깐 들렀었지. 어머님은 건강하시고?”
“예.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십니다.”
세 살 많은 중사 박영식이 대견하다는 듯 신동철의 어깨를 툭 두드려 주었다.
강원도 출신인 그는 얼굴에 군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말랐다는 인상보다는 마치 돌덩이를 보는 것처럼 단단한 느낌이었는데 제3공수특전여단에서 함께 훈련했었다.
“듣기로는 어마어마하던데, 그쪽 생활은 어떠냐?”
“견딜 만합니다.”
“부럽다.”
뜬금없이 내놓는 속마음이었다. 하기는, 부족 간의 분쟁, 한국인에 대한 테러, 내전 등, 특수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달려가다 보니 평화유지군에 지원한 대원 중 강태산의 팀을 희망하는 대원이 제법 있었다.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띵띵띵띵.
수다는 그만 떨고 우선 앉으라는 것처럼 좌석 벨트 시그널이 울렸다.
“남은 이야기는 이륙하고 천천히 하자.”
“예.”
창가 자리는 비었다.
자리에 앉은 신동철은 조금 뒤에 떠나는 공항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군인이 된 걸 후회하냐고?
시선을 내린 신동철은 검게 탄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손으로 구해 낸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다. 당장 최근에만 해도 총격을 받은 지경그룹 직원 둘을 구출했었다.
태극기 아래에 속한 땅과 사람을 지키는 임무, 비록 아프리카에서 싸우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근무한다는 자부심은 돈으로 가격을 매기기 어렵다.
“후-.”
새로운 임무를 맡았다는 현실이 불쑥 다가와서 신동철은 나직하게 숨을 뱉었다.
***
예멘 반군의 수장 모하마드 알 후티는 구레나룻에서 이어진 턱수염, 외딴섬처럼 자른 콧수염을 지닌 전형적인 아랍 남자였다. 턱이 둥글고, 양쪽 눈이 아래로 향했으나, 반대로 눈매는 치솟아서 이중적인 느낌을 강렬하게 풍겼다.
그는 누구보다 아랍의 현실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녔고, 또 그에 걸맞게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었다.
– 갓 오브 블랙필드가 이미 그쪽으로 도착했고, 한국에서 지원군이 향하고 있소. 명백하게 알사르알라 내부의 실책으로 헬륨3가 유출됐으니 해결도 알아서 하셔야겠지?
폴더폰을 통해 넘어온 조롱 섞인 비난을 들으며 알 후티는 볼을 씰룩였다.
매번 이렇다.
이슬람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내전과 학살도 따지고 보면 지금 통화하는 부류들의 장난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알았소.”
– 오호! 갓 오브 블랙필드야 과거 인물이라고 쳐도 평화유지군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텐데? 또, 그의 뒤에서 정보총국이 전력을 다한다는 사실을 짐작하고도 그리 자신하시나?
“알아서 해결하라니까 그리하겠다는 거요.”
다부진 알 후티의 대꾸에 상대방은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너 그러다가 죽어. 그러면 끝이야.’
웃음에 담긴 조롱이 글로 적은 것만큼이나 선명하게 알 후티에게 다가왔다.
‘이리보다 잔인한 인간들.’
알 후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위기를 넘기려면 이름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폴더폰 건너편 남자의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터럭만큼도 내키지 않는 게 문제였다.
– 우리 조건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어쩔 수 없지요. 혹시 몰라서 마지막으로 묻겠소. 정말 우리의 지원을 거절하시오?
다들 이렇게 시작했겠다.
무자헤딘을 대신해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오사마 빈 라덴처럼 말이다. 물론, 그 이전에 민족과 언어, 종파 따위 상관없이 찍찍 그어 버린 국경선 때문에 중동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 당장 대답하기 곤란하면 시간을 드리지. 그러나 하루 뒤면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이 도착하고, 그때부터 정보총국이 당신의 목을 노린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알아듣기 쉽게 말하자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오.
끝까지 빈정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내 손에 죽는다.
독한 각오를 떠올리며 알 후티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묶인 이슬람 세상이오.”
– 그게 알사르알라를 이끄는 당신이 처음부터 내세웠던 목표 아니었소?
“지원을 받겠다면 어떤 방식이오?”
– 정보총국의 개입 저지, 알사르알라 소속 군인들의 능력 향상, 군비, 무기, 그리고 예멘의 수도 사나를 차지한 알사르알라와 알 후티의 공식적인 정부 인정, 우선 이 정도가 될 거요.
다시 듣지만 거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욕심나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건 뭐요? 이번에는 분명하게 원하는 걸 말하시오.”
– 우리가 원하는 건 당신이 쥐고 있는 운석,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하면 예멘에 들어간 갓 오브 블랙필드의 사망이오.
“흐음.”
입술을 내민 알 후티는 나직하게 신음을 뱉었다.
“정보총국을 확실히 막아 줄 수 있소?”
– 대답과 동시에 빗장을 확실하게 막아 드리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정보총국을 막아 준다면, 그 징그러운 외인부대를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
“알았소.”
– 우리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오?
“받아들이겠소.”
–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럼 먼저 정보총국을 틀어막은 뒤에 연락드리지요.
한결 공손해진 음성이 하고 싶은 말을 마치고는 전화를 툭 끊었다.
***
프랑스 정보총국장 문바키는 눈 안쪽을 엄지와 검지로 눌렀다.
강찬 일행이 예멘에 도착했고, 한국에서 대원을 태운 비행기가 출발했으니 숨을 좀 돌려도 되겠다. 거기에 30분 정도 여유를 이용해 잠깐 눈을 붙일 수 있겠다.
‘잘 수 있을 때 자.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대신 마무리만큼은 확실하게 해.’
강찬을 떠올린 문바키는 그를 흉내 내듯 피식 웃었다.
강찬은 외면한다 해도 뭐랄 사람 없는 상황에 기어코 뛰어들어서 문바키를 구해 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라노크를 소개해 주었으며, 그 뒤에 삶의 방법을 가르쳐 준 스승과 같았다.
그의 인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번째 인물, 물론 다예와 제라르가 있지만, 두 사람은 부록처럼 한꺼번에 처리되니까 뒤로 미루고, 라노크 벨몽드 빠르디유는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 살라는 당부와 함께 정보총국장의 자리로 이끈 후견인이었다.
민족 간의 학살과 부족 전쟁이 없는 중동과 아프리카라니?
엄청나기는 하다. 두 사람이 바라는 세상은.
말도 안 되는 그 목표를 향해 문바키는 기꺼이 목숨을 던졌다. 다시는 문바키 자신과 같이 불행한 아이들이 나오지 않게 만들겠다는 각오는 덤이었다.
가능하기는 할까?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민족 학살, 부족 전쟁의 가장 큰 이유는 강대국들이 임의로 찍찍 그어 놓은 국경선이었다. 수백 년을 싸우던 민족을 반반씩 갈라서 하나로 묶어 놓았고, 말과 언어가 통하지 않던 부족을 국가라는 틀에 가뒀다.
막말로 프랑스와 영국을 반반씩, 폴란드와 독일을 또 반반씩, 한국과 일본을 반반씩 갈라서 하나의 나라로 만들고 함께 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강찬과 라노크가 정한 방향은 더없이 선명했다.
아프리카의 완벽한 경제적 자립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돌아가는 교육이었다. 그 점에 관해 문바키도 완벽하게 동의한다. 막말로 돈이 없고, 못 배웠다는 현실이 일곱, 여덟 살에 무기와 담배를 손에 쥐고, 열댓 살에 죽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말이다.
완벽한 경제적 독립과 공평한 교육이 어디 쉽겠나.
“참 대단한 양반들이지?”
30년을 화초 가꾸듯 이리저리 보듬고 살펴도 성과가 언제 있을지 모를 일인데…….
푸슝! 푸슝! 푸슝!
혼잣말을 중얼대던 문바키가 퍼뜩 시선을 드는 순간이었다.
콰앙.
문이 거칠게 열렸고,
철컥! 철컥! 철컥!
곧바로 권총의 총구 세 개가 달려들었다.
경호 요원이 권총을 들이밀다니?
경호를 위해 여섯 명을 배치했는데 그중 셋이 나머지 셋을 살해하고 뛰어든 게 분명했다.
어차피 늦었다. 권총을 꺼내기에는.
또 하나, 문바키를 죽이려 했다면 바로 방아쇠를 당겼을 텐데, 들어선 요원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까지 침묵했던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거다. 다른 건 몰라도 정보총국 내부에서 너를 노릴 상황에 대비해.”
강찬이 해 주었던 경고를 떠올린 문바키는 고개를 삐딱하게 틀고서 권총을 겨눈 요원들을 바라보았다.
정보총국의 총국장이 된 순간부터 각오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믿었다. 어떻게, 어떤 이유로 죽든 강찬이 처절하게 복수해 주리라는 믿음이었다.
“최근에 보았던 우리 요원들 중 가장 강렬한 모습이어서 인상적이기는 한데, 타이밍은 좋지 않았다. 내 평가는 그렇고, 이제 자네가 이렇게 총을 들이민 이유를 들어 볼까, 알프레드?”
“더는 프랑스의 영광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와 우리의 근거를 줄이는 일에 사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 그렇다면 방아쇠를 당겨.”
아예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처럼 문바키는 여유만만이었다.
“그 전에 하나만 기억해 둬. 내가 어떻게 죽든 너희 세 놈과 가족, 너희와 통화했던 수상한 자들, 그리고 너희와 1유로라도 거래했던 자들은 모두 죽는다.”
“부총국장을 믿는 거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겁니다.”
“멍청한 놈.”
문바키는 들어서서 권총을 겨누고 있는 세 명의 요원을 확인하듯 돌아보았다.
“군인과 정보국 요원은 개인적인 판단을 해서는 안 돼. 그걸 금지시킨 이유를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닐 테니, 둘 중 하나겠지? 네가 조금 전에 지껄인 대로 식민지로 여겼던 아프리카와 중동을 토해 내는 게 프랑스의 영광을 해치는 일이라는 단순한 생각 하나.”
말을 한 문바키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웃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면 어떤 놈인지 몰라도 헬륨3가 발각돼서 마음이 급해진 탓에 너희를 꼬드겼거나? 아닌가?”
알프레드는 대꾸가 없었다. 더 정확하게 판단하자면 대꾸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중동이고, 아프리카고, 자원은 이미 빨릴 대로 빨렸다. 그들이 우리 상품과 문화, 하다못해 바게트라도 하나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래도 모르겠나?”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프랑스의 영광을 위한다면 중동과 아프리카를 포기하는 정책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
“후-. 자원이 바닥난 중동과 아프리카에 싸구려 무기를 팔아먹는다 해도 30년이면 끝이다.”
말을 하던 문바키는 지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너 따위와 토론을 하고 있다니? 귀찮으니까 얼른 방아쇠를 당겨.”
죽음을 편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것처럼 문바키는 아예 의자에 등을 묻었다. 그런 뒤에 뭐 하냐는 투로 시선을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