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36)
617화 어련하겠냐 (3)
지경증권 외환딜링팀의 마법사 구완섭, 그와 영혼의 파트너라 평가받는 강다희는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가 데려가고 싶어 하는 인재였다.
이유를 길게 설명할 거 없다.
누가 뭐래도 중국을 상대로 맞붙어서 우리 돈 2천조 원의 수익을 낸 소위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그렇게 실적과 명성을 갖춘 두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랑 같은 생각 맞지?”
가라앉은 표정으로 건넨 구완섭의 질문에 강다희가 비슷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달러가 너무 풀렸어요. 그 바람에 미국의 구매력이 떨어졌거든요. 아무래도 희생양을 만들려는 거 같아요.”
“그게 우리일까?”
“지난번 일도 있고 하니까 중국을 흔들며 우리까지 길들이려 하는 거 아닐까요?”
근심 가득한 강다희의 의견에 이번에는 마법사 구완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의 세계에서 말이다.
사자가 살기 위해서는 사슴이든, 멧돼지든, 물소든, 약한 짐승 중 하나는 구슬프게 울며 희생되어야 한다.
금융 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 같이 잘사는 세상?
그런 유토피아는 금융 시장에 애초에 없다. 막말로 주식 투자만 해도 그렇다. 누구는 절반을 털리고, 또 누구는 깡통을 차야 반대편에 있는 상대방이 배 터지는 게 금융 시장의 생리였다.
그렇다면 사냥을 나선 사자는 어떤 놈을 먹잇감으로 정할까?
이왕이면 손쉽게 잡을 먹잇감, 그중에 또 고르라면 당연하게 살이 통통하게 오른 놈을 선택하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이제 막 선진국 반열에 발을 디딘 한국은 사자가 보기에 정말이지 먹음직한 먹잇감이었다.
무엇보다 사자가 노릴 약점이 문제였다.
주택 담보 비중과 개인 대출이 워낙 커서 금리로 때리면 빠르게 도망치지도 못한다. 또 하나, 미국은 1억 명이 파산해도 견디지만, 한국은 천만 명만 파산해도 나라 전체가 주저앉는다.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처럼 금리가 달리기 시작했다.
한국 앞에서 누군가 쓰러지면 그나마 좀 나아져야 하는데 미안하지만, 아르헨티나나 파키스탄 따위로는 배고픈 사자의 간식거리조차 안 되는 형국이었다.
방법은 금리 인상밖에 없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한국은 쉽게 미국을 따라가지 못한다. 당장 미국에 맞춰 올리면 대출이 많은 이들의 비명이 터져 나와서 그렇다. 그 결과로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한국 시장에서 환율이 요동치고 있었다.
“너무 순진하게 대응하는 것도 문제예요.”
달러를 퍼부어서 하루 이틀 환율을 붙잡는 건 헤지 펀드들에게 앞으로 원화가 더 떨어질 테니 계속해서 돈을 먹으라는 광고와 같았다.
강다희의 말대로 한국 정부는 대응했다기보다 아예 대처할 능력과 방법이 없다고 외부에 떠드는, 딱 그런 모양새였다.
환율 유지를 위해 투입한 달러를 처먹은 놈들이 ‘이거 봐? 노다지잖아?’라며 달려드는 형국이어서 구완섭과 강다희, 두 사람만으로는 막을 방법도 없었다.
“회장님께 보고했어요?”
“오전에. 아직 특별하게 지시 내려온 건 없어.”
“중국을 때렸던 방법으로 미국을 상대할 수는 없어요. 이대로 가다가…….”
그 지독하다는 강다희조차 뒷말을 삼켰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면 그때는 돌이키지 못한다는 말을 차마 내놓지 못해서였다.
***
천중명은 모니터에 올라온 보고서를 보며 검지로 눈썹을 긁었다.
국제 정세에 영원한 우방이 어디 있으며, 영원한 적이 있겠나. 더구나 상대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뒤에 숨어 아직 형체도 보이지 않는다.
놈들이 그렇게 만드는 건지는 몰라도, 믿을 만한 이들조차 모조리 궁지에 몰리고 있어서 쉽게 손을 벌리기도 어려웠다.
조각배를 타고 바다에 나섰는데 사방에서 거대한 파도가 몰려드는 상황?
모니터를 보던 천중명은 적을 마주한 느낌으로 차갑게 웃었다.
중국을 상대하는 방식을 이미 알고 있다.
지금은 달라. 그러니 얌전히 손들어.
조용하게 빠져나가겠다면 그건 눈감아 주마.
보고서에 담긴 지표를 통해 보이지도 않는 적이 천중명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인정한다. 당시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을.
무엇보다 아파트를 포함한 주택 가격이 워낙 폭등한 상황이라 과거처럼 지경그룹이 나서 매입해 주는 건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끝까지 가자는 건데…….”
모니터에 올라온 보고서가 듣는다는 것처럼 천중명은 분명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도깨비 회장이거든. 그런데 나보다 징그러운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건 아냐? 한국을 먹고 싶으면 그 사람을 먼저 해결해. 그럼 나도 반쯤 인정해 주마.”
강찬을 떠올린 천중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경그룹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조사한 내용은 아예 한숨을 내쉴 수준이었다.
말이나 되나?
느닷없이 각성한 고등학생이 유라시아 철도를 시작으로 드러나더니, 세계 각국의 정보국을 움켜쥐었다. 거기까지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전투란 전투는 모조리 뛰어다니며 스페츠나츠부터 영국의 SAS까지 밟았다. 아프리카에서 600명을 상대로 살아난 건 또 어떻고?
당최 설명이 되지 않는 거다.
마지막으로 강찬은 대테러 팀장으로 국제빌딩 테러 진압 후 권총에 의해 죽은 게 공식적인 결말이었다.
천중명은 픽 웃었다.
어쩐지 강찬 역시 천중명과 같은 비밀을 품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우리는 같은 부류겠지?”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겠다. 그러나 날카로운 눈빛으로 던졌던 강찬의 질문을 천중명만은 알아들을 거 같았다.
“도깨비가 둘이라니. 미국 뒤에 숨은 놈이 누군지 몰라도 골치 아프겠어.”
천중명은 믿는다.
“꼬리만 잡아 줘. 나머지는 내가 해결할 테니까.”
천중명이 꼬리를 당기면 강찬이 뛰어가서 목을 비틀어 버릴 거라고 말이다.
물론, 천중명이 강찬의 말만 듣고 적을 상대하는 건 아니었다.
누구보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올리는 것도 용납 못 하는 천중명에게 아예 밥상을 뒤엎겠다며 달려드는 적을 용서할 마음 따위 애초에 없었다.
“쉽게 죽지 마라. 재미없으니까.”
마지막으로 혼잣말을 뱉은 천중명은 책상에 놓인 인터폰을 눌렀다.
– 예, 회장님.
“미국에 있는 김준후 사장과 화상 회의를 준비해 줘.”
– 준비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시를 내린 천중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아프리카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뒤에 강찬을 흉내 내는 것처럼 피식 웃었다.
***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예멘의 정부와 반군은 초긴장 상태였다.
개막장 상태에서 정보국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다. 그렇더라도 시아파, 수니파에 연결되었고, 와하비와 알카에다, 지방 부족들이 뜨문뜨문 던져 주는 소식이 있어서 아예 귀를 막은 꼴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예멘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개입한 연합 형태여서, 그나마 그들을 통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을 통해 토막토막 들어오는 소식이 섬뜩함을 넘어서는 수준이라는 점이었다.
연달아 들어오는 급한 전화 탓에 휴대폰을 귀에 건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는 혼이 반쯤 빠진 상태였다.
– 그가 어느 쪽에 붙느냐에 따라 예멘의 미래가 정해지는 수준이오.
“한 사람, 아니 세 명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슈 강이라는 사람의 정보가 없어서 그런데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프랑스 정보총국의 부국장이라면 은밀한 방식으로 그쪽 정부에 항의하거나 문의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 프랑스 정보총국의 부총국장은 형식적인 직위라고 보시라니까. 이미 한국에서 평화유지군이 출발했고, 아프리카 군사학교에서 100명 가까이 출발한다는 정보요.
더 온다고? 병력이?
그것도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도 맞서기를 꺼린다는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100명이 더?
– 그것만이 아니오. 조금 전에 외인부대 전체 비상령이 내려졌소. 그가 정말 반군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우리도 대놓고 달려들기 거북한 수준이오. 정말 짐작 가는 게 없소?
“여기까지 와서 뭘 감추겠습니까? 그가 왜 느닷없이 입국해서 병력을 불러들이는지 정말 아는 게 없습니다.”
– 그렇다면 정말 반군과 손을 잡을 생각인가?
예멘의 부통령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는 마른침을 삼켰다. 만약 사우디아라비아가 슬며시 손을 빼면 정부군은 반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거기에 평화유지군이 들이닥치고, 여차하면 외인부대 전체가……?
“도와주십시오!”
매달릴 건 당장 사우디아라비아밖에 없었다.
– 외인부대야 프랑스와 어떻게 해 보겠는데 평화유지군은 무슈 강의 지시만 받는다고 보면 되오. 거기에 한국에서 구르카 용병을 긁어모은다는 소식도 있소.
평화유지군도 징그러운데 구르카 용병까지?
“한국 정부에 항의하면 어떻습니까?”
– 개인적으로 모으는 형태라 정부가 개입하기 불편하오. 우리가 압력을 넣을 정도로 한국이 만만한 나라도 아니고.
“그렇다면 병력을 파견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 무슈 강이 동원하는 병력과 맞서려면 우리 국방력의 절반 이상을 동원해야 하는데…….
어렵다는 답을 차마 뱉지 못한 것처럼 상대방이 말끝을 흐렸다.
어렵게 설명할 거 없다.
반군이 밀고 들어와 예멘을 차지하면 정부에서 어지간한 자리를 차지했던 인물들은 모조리 목이 잘리거나 총알에 벌집이 돼서 죽는다.
부통령이야 말해 뭐 하겠나.
– 반군의 상황은 어떻소?
“현재는 잠잠합니다.”
– 우리 쪽에서 동원할 인맥이 있는데 워낙 연세가 많은 데다, 예멘에 개입하는 걸 반대했던 분이라 쉽지 않소. 최선을 다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니 기다려 보고, 특이사항이 있으면 바로 알려 주시오.
“알겠습니다.”
–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 한국인이 납치되거나 살해될 경우, 무슈 강과 평화유지군에게 완벽하게 명분을 주게 되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개별적으로 입국하는 한국인이 있으면 절대 손가락 하나 다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시오.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부진 답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도대체 왜?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고민해 봐도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는 강찬과 두 명이 입국한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강찬을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솔직히 두려워서 그러기도 어려웠다. 그곳에 함께 있을지 모르는 반군 중 하나가 대뜸 방아쇠를 당기면 어쩌라는 말인가.
‘제발.’
휴대폰을 내려놓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신께 자비를 구하는 게 전부였다.
***
반군이라고 해도 원래는 예멘에서 군 생활을 하던 정규군 출신이 제법 많았다.
당연하게 반군 역시 강찬의 입국 사실을 알았다.
도대체 왜?
반군의 수장 알 후티 역시 같은 의문을 품었고, 하던 짓이 있다 보니 정부군보다 더욱 공포에 사로잡혔다.
“평화유지군이 출발했고, 외인부대 전체 비상령이 떨어졌다면 그의 목표가 정부군과 손잡고 우리를 밀어붙인다는 뜻 아니오?”
– 혼란스러운 프랑스 정보총국 상황을 바로잡을 의도인 거 같은데 우리 쪽에서 제법 많은 인원을 보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거요.
사람을 보낸다고?
알 후티는 눈알을 굴리며 앞뒤를 빠르게 계산했다.
“그들도 눈이 있을 텐데 쉽게 당하겠습니까?”
– 어쌔신이라는 단어가 어디에서 생겼는지 정도는 아시겠지? 아랍인들이 포함된 특수부대원들이오. 그것도 숫자가 꽤 많소.
“믿어도 되겠습니까?”
– 결과를 봅시다.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하기는, 달랑 셋이서 수십 명을 어떻게 상대하겠나.
“후-.”
우선 고비를 넘기겠다는 기대에 알 후티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
프랑스 정보총국의 능력은 무섭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안전 가옥을 나온 이용우는 공항으로 이동하는 승용차의 뒷좌석에서 새로운 여권을 받았다.
“이게 뭡니까?”
“예멘은 한국 국적으로 입국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국적 여권을 만들었습니다.”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조수석에 앉은 이라크인 요원이 내놓은 답변이었다.
나는 사진도 찍지 않았는데?
여권의 속지를 확인한 이용우가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한국 요원들의 자료 중에서 사진만 꺼냈습니다.”
마치 질문을 짐작했다는 것처럼 이라크 요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에이, 양심 없는 새끼들.
속도 단속 카메라도 최소한 얼굴은 가리고 딱지를 보내는데 남의 얼굴을 자기들 마음대로 가지고 있어?
국가정보원 요원의 정보를 임의로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속이 뒤틀렸으나 이런 모습이 국가정보원과 프랑스 정보총국의 능력 차이일 테니 당장 바꿀 방법은 없었다.
“알려 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이용우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라크인 요원이 계속 말을 이었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에서 부원장이 직위해제 되었고, 본부장과 팀장이 대기발령을 받았습니다.”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럼 아래쪽 루트가 모조리 잘리는 건데?
이용우의 놀란 표정을 본 이라크인 요원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본부장과 중동 담당 팀장을 비롯해 두 명의 팀장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이미 수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망했네, 국가정보원.
신광선이 중동 정세에 관해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지녔고,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지 안다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다.
“전해 드릴 내용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한국에서 직위해제 된 부원장이 예멘에 있습니다.”
“예?”
“평화유지군 선발팀이 이미 한국에서 출발했고, 후발대가 아프리카 군사학교에서 조금 뒤에 출발할 예정이며, 외인부대 전체 비상령이 내려졌습니다.”
“그걸 왜? 혹시 그 지시를 내린 분이……?”
이용우의 멍한 질문에 이라크인 요원이 고개를 분명하게 끄덕였다.
“공식 호칭은 무슈 강, 닉네임은 갓 오브 블랙필드, 현재 프랑스 정보총국의 부총국장의 직위에 계신 분입니다.”
씨발! 진짜였어!
전설로만 떠도는 부원장이… 실존하는 인물이었던 거야.
그것도 예멘에.
“그런 이유로 한국인으로 입국하면 원하지 않는 사건에 휘말릴 수 있어서 급하게 프랑스 여권을 만든 겁니다. ”
“내가 예멘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죄송하지만, 미스터 리의 소식은 보안등급으로 3급 이하라 묻지 않으시면 보고드리지 않습니다.”
아무렴, 어떠냐.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했었다. 그러나 전설로만 떠도는 부원장이 예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부터, 이용우의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좀!’
일부러 숨을 길게 내쉬었으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국가정보원 요원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이용우의 소원 중 하나가 바로 그 전설적인 부원장을 직접 만나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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