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4)
585화 이걸 어떻게 풀지? (1)
은선곤은 지시한 내용을 늘 완벽하게 처리했고, 결과는 깔끔했다.
“멕시코에 파견할 식구들을 훈련할 장소가 필요해.”
강성태의 지시를 받은 그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을 뿐이었다. 그래 놓고 강원도 미시령 근방의 문 닫은 스키장과 리조트를 찾아내 임대하는 능력을 보였다.
“하아, 씨발.”
볕은 뜨겁지요.
숨은 턱까지 차오르지요.
잡목과 잡풀이 무성한 스키슬로프를 거꾸로 뛰어 올라가 깃발을 뽑는 훈련이었다. 인공 장애물까지 설치해 놓아서 군대의 유격 훈련과 다른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막말로 강성태의 지시라면 물불 안 가리던 이병렬마저 악에 받쳐 욕을 토해 내는 상황이었다. 불만이 찼다기보다는 버거운 훈련을 반복하다가 악에 받쳐 숨결처럼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욕설이었다.
그나마 욕이라도 뱉는 이병렬은 낫다.
“허억. 헉.”
그의 주변에서 거친 숨을 토해 내는 덩치들은 훈련을 포기하고 싶은 욕망을 억지로 눌러 대는 눈빛이었다.
이병렬이 그런 동생들의 감정을 모를 리 없었다.
“야! 키란!”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이병렬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구르카 용병들과 훈련을 지휘하는 키란을 대놓고 불렀다.
교관이다. 키란은.
평소 훈련에서는 이병렬마저 그를 교관으로 인정해 주었다.
“야! 키란!”
그런데도 이병렬은 성격대로 키란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그리고 또 키란은 또 그런 이병렬 앞으로 빠르게 달려와 공손한 태도를 갖췄다.
“이런 훈련을 우리 보스도 했었냐?”
“예, 형님.”
“이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을 거 아냐!”
이제는 우리말이 능숙해진 키란을 쪼아 대듯 이병렬의 표정과 말투는 거칠었다.
“큰형님은 35킬로그램짜리 돌을 짊어지고 이보다 험한 산길을 16킬로미터 달렸습니다.”
“뭐?”
“구르카 용병 선발에 모두 170명이 도전했는데, 산을 타는 훈련에서 큰형님이 가장 빨랐습니다.”
뭐를 짊어지고, 어디를 달렸는데, 170명 중 가장 빨랐다고?
솔직히 말하자.
이병렬은 동생들의 감정을 누르도록 짐짓 키란을 거칠게 대했고, 답이 빤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키란의 대답이 나오는 순간, 주변 동생들은 물론이고, 이병렬마저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짧은 침묵의 끝에서였다.
고개를 돌린 키란이 이쪽을 바라보는 다섯 명의 구르카 용병을 향해 네팔어를 쏟아 냈다. 그 직후에 부산하게 움직인 다섯 명의 구르카 용병들이 커다란 배낭 두 개를 들고 다가왔다.
“저 가방의 무게가 35킬로그램입니다, 형님.”
키란이 고갯짓을 던지자 구르카 용병들이 두 개의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쿠웅.
염병할, 뭔 가방을 내려놓는데 바닥이 울리는 건지.
이병렬에게 한없이 공손하던 키란이 날카로운 눈매를 돌렸고, 이어서 무언가를 지시했다.
뭐라는 거야?
내용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 명의 용병들이 배낭을 한쪽 어깨에 걸고 훌쩍 등에 짊어졌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는 이병렬도, 그 옆에서 지켜보는 덩치들도 얼마든지 짊어진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에서 이병렬과 덩치들은 또다시 말을 잊고 말았다.
뭔 놈의 애새끼들이?
순진하기 그지없는 표정과 얼굴을 하고서?
35킬로그램의 배낭을 짊어진 채 스키슬로프를 지그재그 방식으로 두 명이 달려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하겠나.
“저 둘이서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텐데 얼마나 걸리는지 지켜봐 주십시오, 형님.”
질문했던 의도가 이런 건 아닌데…….
의도를 알아 달라는 심정에 공연히 교관으로 애쓰는 용병들을 힘들게 했나 싶었던 이병렬이 입술을 뒤틀 때였다.
“구르카 용병 선발 시험에서는 꼬박 두 시간을 달립니다. 저는 그때 넘어져서 포기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서 다시 일어설 때까지 큰형님이 기다려 주셨습니다.”
이 자식은 왜 눈이 벌게져서 사람을 곤란하게 하는 거야?
이병렬을 향해 키란은 분명 진심을 쏟아 내고 있었다.
“멕시코의 마드레 산맥입니다, 형님. 이곳보다 지형이 험합니다. 그곳에서 단 한 명의 신강남파 식구들도 잃는 일이 없게 하라고 몇 번이나 제게 당부하셨습니다.”
“야, 인마. 내가 우리 보스를 뭐라는 게 아니잖아?”
이병렬이 턱없이 볼멘소리를 내놓았을 때였다. 그사이 아래로 내려갔던 구르카 용병 둘이서 벌써 반쯤 슬로프를 거슬러 달려오고 있었다.
“네팔 출신이라 무시당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형님은 상대가 누구든 앞을 막아 주셨습니다. 우리끼리 약속했습니다. 혹시 멕시코에서 누군가 곤경에 빠진다면 우리가 가장 앞에 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말이 늘었다고 해도 아직 어딘가 어색했는데, 키란이 지닌 감정만큼은 확실하게 이병렬과 덩치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가 먼저 앞에 서는 게 큰형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준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형님.”
키란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얼굴이 시커멓게 변한 용병 둘이 키란의 뒤로 다가왔다.
“허흑. 헉. 허흑.”
가쁜 숨을 내쉬고 있지만, 둘은 아직 배낭을 내려놓지 않았다.
원한다면 더 달리겠습니다.
대신 우리를 믿고 훈련해 주십시오.
두 사람의 눈빛에 담긴 의지 역시 분명하게 이병렬과 덩치들에게 다가왔다.
“씨발. 이렇게까지 하는데 포기하면 안 되겠지?”
이병렬이 고개를 돌렸고,
“모시겠습니다, 형님.”
그 누구보다 독한 눈을 한 유충일이 몸을 세웠다.
***
사무실을 나선 제라르는 계단으로 올라가 능숙하게 디지털 도어록에 엄지를 가져갔다. 프랑스인 특유의 깊은 눈, 거기에 몸 곳곳에 숨겨진 강인함까지, 제라르는 확실히 군복만큼이나 정장이 잘 어울렸다.
거기에 비하면 석강호는…….
힐끔 옆을 보았던 강찬은,
띠루룩.
열리는 문을 향해 시선을 가져갔다.
문 바깥은 옥상이었다.
“푸흐흐흐.”
그리고, 강찬의 뒤에서 옥상에 들어선 석강호가 만족한 웃음을 흘렸다. 아닌 게 아니라 볕을 가리는 위장막, 그 아래 나무 탁자와 의자, 벤치들이 옛날의 외인부대 주둔지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처럼 보여서 강찬 역시 피식 웃었다.
“앉으십시오, 대장.”
강찬이 중앙에 앉았고, 왼편에 제라르, 석강호가 오른쪽에 자리한 다음이었다. 몸을 돌린 제라르가 그쪽에 세워 놓은 탁자를 열었다.
전기 포트, 생수, 커다란 종이컵, 그리고 봉지 커피가 꽂힌 철제 통이 보였는데, 외인부대 주둔지를 재현한다고 해도 확실히 버너보다는 저런 게 편한 걸 부인할 수는 없었다.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쯤 될 거다.
커피를 준비하는 제라르의 옆에서 석강호가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놓았다.
“상황은?”
“콩고로 연구진이 출발했습니다.”
“프레드릭은?”
“라노크 위원장을 만날 속셈인가 봅니다. 빼흑슈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대답을 들은 강찬은 피식 웃었다.
모가지가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닐 텐데, 프랑스 정보총국의 부총국장이 강찬 몰래 움직였단다. 그사이 제라르가 펄펄 끓는 포트를 기울여서 달달한 커피 향이 옥상을 맴돌았다.
“자! 두 봉짜리 커피입니다!”
“담배랑 같이 즐겨 줘야지.”
잔을 앞에 놓아 주는 제라르 옆에서 석강호가 담배를 집어 들었다. 셋이서 담배를 입에 물고서 불을 붙인 다음이었다.
“커흐! 이거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석강호가 탄성을 터트렸다.
석강호가 감탄을 터트리는 옆에서 강찬은 건물 바깥을 둘러보았다.
아프리카는 확실히 많이 변했다. 누런 하늘과 태양은 그대로였지만 그 아래의 모습은 이전과 확실히 달랐다.
“대장. 블랙헤드를 이용하거나 파괴하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포착됩니다.”
커피를 마신 강찬이 잔을 내려놓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제라르가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블랙헤드를 파괴한다고 그게 깨지냐? 발전소를 폭파해도 남는 건데?”
궁금한 석강호가 질문을 내놓았고,
“그쪽 연구가 제법 진행된 모양이다. 먼저 에너지를 상쇄해서 블랙헤드의 발전 성능을 떨어트리는 연구를 진행하고, 그 방식을 이용해 나를 제거하려는 눈치고.”
강찬이 제라르를 대신해 답을 주었다.
“누가요?”
“아프리카 해방군.”
“그 새끼들은 반군이 이름만 바꾼 거 아뇨?”
이놈은 나이를 안 먹는 대신 식욕을 발전시키더니 이제는 지능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석강호의 반문에 목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으나 강찬은 당장 내색하지 않았다.
“반군이 어떻게 연구진과 자금을 만들고, 거기에 우리 정보망을 피하겠냐?”
“얼래? 그걸 알아보러 연구진이 출발한 거 아뇨?”
“그러니까. 그와 동시에 움직이는 놈들이 범인이겠지. 조금 전에 누가 움직였다고 했어?”
“프레드릭인가 하는 인간 말이오?”
강찬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끼는 언제 해결할 거요?”
“바로 가야지?”
“푸흐흐흐.”
눈빛을 번들거리며 웃던 석강호가 느닷없이 표정을 바꾸고는 눈을 껌벅였다.
“가만, 아까 콩고라고 그랬소? 그럼 연구진은 물론이고, 우리 쪽 대원들도 위험한 거 아뇨?”
“대장. 나도 그게 궁금하고 걱정스럽긴 했습니다. 정말 콩고 쪽은 태산이에게 맡겨 놓으실 생각입니까?”
“그게 좋아.”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는데 제라르는 입을 열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다 할 수는 없다. 만에 하나 우리 셋에게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뒤를 지켜 줄 누군가가 있어야 하고.”
제라르가 입술에 힘을 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저쪽이 달려들면 믿을 사람은 문바키와 태산이밖에 없어. 그러니 지금은 그 둘이 경험을 쌓도록 지켜 주는 게 최선이지.”
“아, 쉽지 않소.”
석강호의 탄식을 들으며 강찬은 담배를 새로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다음은 뭘 할 거요?”
“우선 대사님을 찾아봬야지.”
“그래서요?”
이놈이 사람 말을 듣기는 들었나?
끝을 알 수 없는 석강호의 단순한 질문에 강찬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인내를 키워 냈다.
“프레드릭을 해결해야지 않겠냐?”
“아!”
이제 잠시나마 조용하겠다.
“그런데 반군 놈들이 한다는 연구가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는 거요?”
그러나 석강호는 강찬의 예상을 완벽하게 부수며 단순한 질문을 내놓았다.
“로일 위긴스 제네거 박사가 이번 탐사에서 밝혀내야지.”
“태산이가 진짜 괜찮겠소?”
강찬은 피식 웃으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지금 믿을 건 아프리카 평화유지군밖에 없어. 그러니 지켜볼 수밖에. 그러다가 드러나는 놈이 있으면 우리가 달려가는 게 최선 아니겠냐.”
“태산이 어깨가 무겁겠소.”
석강호가 모처럼 다예루 같은 눈빛을 하고 말을 뱉었다. 입가에 묻은 커피만 아니었다면 훨씬 보기 좋았을 거다.
***
지프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자 위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도로를 타고 올라가는 그 길에서 대원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강태산을 향해 엄지를 세워 보인 뒤에 기지가 있는 방향을 검지와 중지로 가리켰다.
여긴 괜찮습니다, 계속 전진하십시오.
로일도 알아볼 정도로 단순한 신호였다.
맞다! 총소리가 났었고, 반군이 있었다고 했었잖아!
그럼 저 수풀 속에 반군의 시체가 있는 거야?
손짓을 보낸 저 대원과 강태산이란 저 동양인 지휘관이 조금 전에 사람을 죽였던 거야?
모든 것이 어수선한 로일을 위로하는 것처럼, 위로 향한 길을 달리던 지프가 평지에 올라섰다.
‘오! 하느님!’
천막으로 만들어 놓은 막사가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그리고 그 주변을 넓게 둘러싼 평화유지군이 이토록 든든하게 느껴질 줄은 정말이지 상상하지 못했었다.
트럭에서 내린 대원들 몇이 평화유지군이 선점한 자리로 뛰었고, 몇 명은 막사를 확인했으며, 몇 명은 불을 피우려는 것처럼 중앙에 있는 화덕으로 움직였다.
“이곳에서 쉬시면 됩니다, 마담.”
가장 가운데 막사로 로일을 안내한 외인부대 지휘관이 곤란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뭐가 남았나요? 숙박비 계산이라도 해요?”
“이곳은 식사, 숙박, 그 외에 커피까지 모든 것이 무료입니다. 다만, 화장실이 불편한 것만큼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아차!
그건 어떻게 하지?
로일의 시선을 받은 외인부대 지휘관이 어색한 표정으로 막사와 막사 사이의 천막을 가리켰다.
“대원들은 모두 다른 곳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여성 전용입니다, 마담.”
말이나 못 하면!
한숨을 푹 내쉰 로일은 가방을 끌고서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생각보다 넓었다. 흙바닥 막사 안에 책상, 그리고 구멍이 숭숭 뚫린 모기장과 그 안쪽으로 간이 침상이 있었다.
털썩!
모기장을 밀친 로일은 가방을 한쪽에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막사에는 그녀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위잉. 위이잉. 윙. 위이잉.
아닌 밤중에 횡재를 맞이한 것처럼 모기들이 극성스럽게 파티를 즐기듯 달려들었다. 그녀를 노린 모기의 날갯짓 소리가 요란할 때, 밖에서 불을 피운 모양인지 불빛이 천막 위로 어른거렸다.
목도 마르고, 배가 고팠으며, 모기향도 필요했다.
로일은 침대에서 일어나 천막을 밀치고 밖으로 나섰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물과 모기향이 필요해요.”
“준비하겠습니다.”
뻔뻔한 프랑스 지휘관은 말과 달리 시선으로 한쪽의 책상에 올려진 물병과 잡다한 물품들을 가리켰다. 저렇게 뺀들거리는 인간을 진지하게 상대하다가는 공연히 이쪽만 마음에 병이 생기기 좋았다.
책상으로 움직인 로일은 모기향과 뿌리는 해충제거제를 한쪽으로 빼놓고 물병을 들어 뚜껑을 열었다.
그때였다.
지치고 힘든 오늘 하루를 보상할 정도로 달달한 향기가 그녀의 코를 간질였다.
“대위님?”
강태산은 이준호가 내미는 주둥이가 좁은 컵을 왼손으로 받았다.
“저녁은 정리가 끝난 뒤에 준비하겠습니다.”
두 봉짜리 커피를 입으로 가져가던 강태산과 책상에서 이쪽을 바라보던 로일과 눈이 마주쳤다.
“커피?”
“먹어도 되면요.”
강태산은 이준호를 향해 고갯짓으로 로일을 가리켰다. 잡다한 일은 외인부대원들이 모조리 맡고 있어서 잠시 뒤에 이준호가 로일에게 믹스 커피가 담긴 잔을 건넸다.
고개를 돌린 강태산은 뜨겁고 달달한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반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어설픈 놈들로다가 열댓 명이.
“다친 사람은 없나요?”
그때 강태산의 뒤에서 로일의 질문이 들렸다.
“아까 숲에서요.”
로일이 오른손 검지로 앞쪽의 숲을 가리키며 궁금한 투로 물었다.
“컵을 위에서 잡아요. 이렇게. 손바닥으로 입구를 가리지 않으면 냄새를 맡은 벌레들이 뛰어듭니다.”
로일이 얼른 시키는 대로 했는데, 강태산이 보기에는 이미 깨알만 한 날벌레 몇 마리쯤은 마시고 남았다. 이미 먹은 걸 뭐 또 굳이 알려 줘서 서로 속 거북할 필요 있겠나.
“총소리를 이렇게 가깝게 들은 건 처음이었어요.”
흙먼지를 살포시 뒤집어쓴 로일이 홀린 사람처럼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강태산은 답 대신 어깨를 들썩여 보이고 말았다. 저렇게 놀란 얼굴에 대고 적을 안 만나는 날이 더 신기하다는 답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서웠거든요. 몸이 안 움직이는 건 처음이었어요.”
“그럴 땐 숨소리를 들어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로일은 궁금한 눈빛이었다.
“자기 숨소리에 집중하면 조금은 나아질 겁니다.”
“숨소리 말이죠? 후우. 후우. 이렇게 하는 숨소리요?”
“예. 위험한 순간이면 한번 해 보세요.”
“앞으로 이런 일이 자주 있을까요?”
갈색 머리칼, 녹색과 파란색 중간의 눈빛, 귀엽기도 하고 깜찍해 보이는 사이사이로 고집과 아집을 머드팩처럼 바른 로일의 질문이었다.
“콩고에서는 준비해 두는 게 좋습니다.”
뒤쪽에 피워 놓은 모닥불에서 달려온 불빛이 두 사람의 뒤를 밀치고서 저 앞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여기는 안전해요?”
커피를 다 마신 것이 아쉬운 모양으로 컵을 내린 로일이 돌아서며 던진 질문이었다.
“저 아래에 두 명, 위쪽에 두 명, 그리고 좌우를 외인부대원이 경계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안에 있는 동안은 안전할 겁니다.”
“고마워요.”
말을 마친 로일이 책상으로 걸어갔다.
“어머! 이게 뭐야!”
그리고는 내려놓던 컵을 들여다보며 비명을 질렀다.
강태산은 픽 웃으며 앞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뒤쪽에서 로일의 동료 두 명이 다가와 컵 안의 벌레를 들여다보았고, 외인부대원들이 저녁으로 먹을 전투식량을 꺼내 나눠 주느라 분주했다.
피식 웃은 강태산이 남은 커피를 훌쩍 마신 뒤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느닷없이 심장이 평소와 다르게 뛰었다.
피식.
이럴 줄 알았다. 헬리콥터를 못 타게 할 때부터, 같잖은 반군이 앞을 막고 있을 때 짐작했던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