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43)
624화 이제야 같은 세상에서 사는 사람 같습니다 (2)
창문에 붙은 강찬은 바깥을 빠르게 살폈다.
염병할.
한쪽은 내전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데, 이쪽은 또 성인 남자 둘이 지나려 해도 어깨를 비켜야 할 정도로 건물이 덕지덕지 몰려 있었다.
저 다닥다닥 붙은 건물 옥상, 혹은 2층과 3층 창에서 언제 불쑥 적이 나타날지 모른다. 그나마 RPG-7을 들고 고개를 쳐든다면야 머리통을 뚫어 주겠지만, 저격수가 숨었다면 뻥 뚫린 골목으로 나서는 건 사격 연습용 표적이 되는 꼴이었다.
그래도 말이다.
옥상이 완전히 박살 난 지금 건물에서 버티다가 위쪽에서 날리는 로켓을 맞고 갈가리 찢기는 것보다는 뛰어나가는 게 현명한 처신이었다.
“오른쪽 대각선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알았소.”
목표를 알려 준 강찬이 문으로 움직였고, 제라르와 석강호가 소총을 양쪽으로 돌렸다.
제발 저격수만 없어라.
후욱후욱. 후욱후욱.
날이 바짝 선 강찬은 문을 거칠게 밀었다.
끼이익. 투두둑! 퍼버벅! 투두두둑! 퍼버버벅!
문을 열기 무섭게 둔탁한 AK 소총 소리가 터지며 나무문이 거칠게 부서져 나갔다.
AK 소총 소리 사이에 저격용 소총 소리는 없다!
푸슝! 퍼억! 푸슈슝! 퍼버벅! 푸슝! 퍼억!
방향을 짐작한 제라르와 석강호가 사격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강찬은 훅 밖으로 뛰었다.
총탄이 터트린 벽에서 피어난 흙가루가 악마의 숨결처럼 흩날리는 골목이었다.
뛰쳐나간 강찬은 정면의 건물 벽에 붙었다.
철컥!
그리고는 총알이 날아든 방향으로 총구를 돌렸다.
누런 하늘, 그 아래로 촘촘하게 세워진 건물의 옥상들, 느긋하게 날리는 흙가루, 그 틈에서 적의 모습을 찾아야 했다.
됐다. 이 정도면!
‘지금!’
강찬이 시선을 짧게 던지자,
콰앙!
문을 차고 나온 석강호가 강찬의 뒤편을 지키는 자세로 달려들었고, 이어서 빠스칼과 함께 요원의 팔을 하나씩 받쳐 든 제라르가 튀어나왔다.
터억.
뛰어나온 석강호가 강찬의 등 뒤에 붙어서는 순간이었다.
왼편 대각선 건물 2층에서 AK 소총의 총구가 튀어나왔고, 창문 안쪽에 적의 형상이 어른거렸다.
푸슝! 퍼억!
강찬이 방아쇠를 당기며, 창이 깨졌고, 지저분한 유리 위로 피가 훅 튀었다.
터컥.
회수하지 못한 적의 소총이 창틀에 걸렸다가 기다랗게 아래로 떨어질 때,
“움직여!”
강찬이 외치자, 제라르와 석강호가 목표한 오른쪽 건물을 향해 달렸다. 두 놈을 지켜 주는 건 강찬의 몫이었다. 여기에서 적을 놓치면 달려가는 놈들의 이마나 심장이 뚫린다.
철컥. 철컥.
강찬은 미친 사람처럼 총구를 돌렸다.
후욱후욱. 후욱후욱.
숨소리를 들으며 시선을 돌리던 강찬의 눈에 옥상의 담벼락을 타고 불쑥 나오는 대전차 로켓의 몸통이 보였다.
제라르와 석강호가 달려간 건물 옥상이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지원했는지 모르지만, 한 발을 쏘고 나면 몸통을 버려야 하는 저 비싼 AT4 대전차 로켓이 알라의 요술봉보다 자주 튀어나온다.
철컥.
강찬이 총을 겨누는 것과 동시에 이쪽을 겨누기 위해 적이 머리를 내밀었다.
푸슝! 퍼억!
이마가 터진 적이 옥상 담벼락 안쪽으로 무너져 내릴 때, 강찬은 빠르게 총구를 돌렸다.
“다예! 그 건물 옥상에 적이 있다! 1층에도 반드시 있어!”
“알았소!”
한 놈은 문 앞과 주변을 경계하고, 다른 한 놈은 안으로 뛰어들어 안쪽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강찬은 건물 1층을 확보할 때까지 두 놈을 지켜 줘야 한다.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지켜 줄 건데, 대신 제발 좀 서둘러!
회색, 흰색의 옥상, 주황색 테두리가 칠해진 창문들, 강찬은 악착같이 앞에 놓인 건물들을 살폈다.
뭐 하냐!
강찬의 심정을 알았을까?
콰아앙! 푸슝! 푸슝! 푸슈슝!
제라르와 다예가 1층으로 뛰어드는 소리와 함께 연달아 총성이 울렸다.
도대체 몇 놈이나 와 있는 거냐?
이를 악물고 시선을 돌리는 강찬의 눈에 이번에는 대각선 2층 창에서 총구와 사람의 흔적이 들어왔다.
철컥! 푸슝! 퍼억!
유리가 깨지며 그 위로 붉은 피가 튀는 것까지는 이전과 똑같았다. 그러나 확실히 다른 것도 있었다.
뭐지?
혹시 우리 목에 상금을 걸었나?
철컥! 푸슝! 퍼억! 철컥! 푸슝! 퍼억! 철컥! 푸슝! 퍼억!
작정한 것처럼 주변 창가와 옥상 곳곳에서 AK 소총의 총구와 사람의 형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탄창 교환! 빠스칼! 엄호해!”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세 발 남았다.
“야, 이 개새끼야! 엄호하라고!”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뭐 하냐!
그냥 다 죽자고?
터걱! 철컥! 철커덕!
오른손 엄지로 빈 탄창을 떨어트린 강찬이 총구를 겨눈 상태에서 새로운 탄창을 꽂아 넣는 순간이었다.
투두두둑!
불쑥 튀어나온 AK 소총이 먼저 불을 뿜었고,
푸슈-슝!
간발의 차이로 빠스칼이 방아쇠를 당겼다.
퍼버버벅! 퍽! 쨍강! 퍽!
AK 소총은 강찬의 위쪽 벽을 터트렸고, 빠스칼은 창문 위편을 부쉈다.
시가전은 이렇다.
빤히 표정과 눈빛을 읽을 정도인데도 제대로 조준하지 못한 상태로 일단 방아쇠를 당긴다. 그게 정규군이 아닌 반군이라면 더더욱 더.
푸슝! 퍼억! 푸슝! 퍼억! 푸슝! 퍼억!
강찬은 마치 태엽을 감아 놓은 인형처럼 방향을 틀어 대며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그때마다 창가와 옥상에서 피가 튀었다.
투두둑! 퍼버벅! 푸슈슝! 푸슈슝!
그 외에 빠스칼이 바쁘게 방아쇠를 당겼는데 적이 함부로 머리를 내밀지 못하게 하는 효과는 있었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두 놈의 이마를 더 터트린 뒤였다.
피가 튀어서 검붉게 변한 창가를 제외하고 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합니까?’
욕을 처먹고 정신이 번쩍 든 것처럼 빠스칼이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푸슈슝! 푸슝! 투두둑! 푸슈슝!
다시금 두 놈이 들어간 건물에서 요란한 총소리가 울렸다.
빌어먹을!
차라리 직접 들어갈 걸 그랬나?
주변을 살피던 강찬이 스치듯 시선을 던질 때였다.
콰앙!
“대장!”
소총을 가슴 앞에 든 석강호가 강찬을 커다랗게 불렀다.
놈의 곁에서 제라르가 반 박자 느리게 문 안쪽에서 소총을 겨눴는데 어깨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저 새끼는 문 안쪽만 수색하면 어깨를 다친다.
“서둘러요!”
총구를 이리저리 돌리며 석강호가 고함칠 때였다.
“붙들어!”
강찬은 벽에 기대앉은 요원의 팔을 당겼다. 빠스칼과 함께 요원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고 몸을 세운 직후였다.
푸슈슝! 푸슝! 푸슝!
석강호가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서둘러요! 좀!”
이 악물고 달리는 거 안 보이냐!
푸슝! 푸슈슝! 푸슝!
강찬은 빠스칼과 함께 부상당한 요원을 질질 끌다시피 움직였다. 그런 뒤에 소총을 갈겨 대는 석강호와 제라르를 지나쳐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푸슝! 푸슈-슝!
몇 발 더 갈긴 석강호가 뒷걸음질을 이용해 문 안으로 들어왔다.
좁은 복도에 반군으로 보이는 세 놈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여기 방을 다 조사하느라고 시간이 걸렸소. 옥상에서 두 놈을 치웠는데 거기 AT4가 다섯 문이나 있다는 거 아뇨? 괜히 엉뚱한 놈들이 넘어와서 그거 쏴 대면 곤란하니까 내가 우선 올라가 있겠소.”
석강호가 저렇게 냉철한 판단을?
감동한 강찬 앞에서 실제로 석강호는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하여간 애새끼가 결정적일 때 꼭 짐이 돼.”
그러면서도 계단을 돌기 직전에 제라르를 향한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저, 이 씨…! 야!”
분통을 터트리는 제라르를 외면한 채 석강호가 계단을 올라간 다음이었다.
“내가 나서지 않았으면 저 돌대가리 머리통이 터졌을 겁니다.”
피식.
“대장? 진짜 저 돌대가리가 죽을 뻔한 걸 구하느라고 이렇게 됐다니까요!”
창을 통해 바깥을 살피면서도 제라르가 강찬에게 억울함을 토해 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강찬도 어깨를 다쳤으니까.
거기에 석강호가 올라간 뒤에도 총성이 없는 것으로 봐서 옥상 역시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였다.
창문 옆 벽에 붙은 제라르의 어깨를 살폈던 강찬은 이어서 쓰러진 요원에게 다가갔다.
빌어먹을.
허리 아래가 온통 젖었을 정도로 심한 상처와 출혈에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 요원은 당장 강찬의 피를 넣는다고 해도 늦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가느다란 호흡을 억지로 잇던 요원이 자세를 낮춘 강찬을 힘겹게 바라보았다.
이름도 모른다. 이놈은.
이전에 경력이 어떤지, 병아리인지, 중닭인지도. 그러나 정보총국을 흔든 개새끼 때문에 억울하게 죽는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강찬을 향해 겨우 한마디를 뱉어 낸 요원의 초록색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면서 고통스럽게 잇던 숨이 멈추었고, 그렇지 않아도 늘어져 있던 몸뚱이가 좀 더 아래로 처졌다.
미안하다.
대신 이 죽음이 헛되지 않게 악착같이 싸울 테니까 지켜봐. 그리고 나중에 지옥에서 보자.
하얗게 변한 요원의 손을 가슴 위로 모아 준 강찬은 굳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제라르, 올라간다.”
“위!”
몸을 일으킨 강찬이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움직일 때였다.
“서둘러.”
“위.”
날카롭게 변한 제라르의 지시에 빠스칼이 급하게 소총을 집어 들었다.
***
천중명은 연달아 번호를 눌렀고, 지금은 황성규와 통화 중이었다.
– 준비했던 시스템을 모두 가동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셨던 평화유지군의 이동과 프랑스 국적 한국인의 인도에 관해서는 정보총국과 협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여유를 지녔던 황성규의 음성이 지금은 분명 긴장한 느낌이었다.
“황 선생님. 알고 있겠지만, 플랜 A를 가동하는 건 정보총국도 믿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 그 점에 대비해서 이중, 삼중으로 체크하고, 대상 국가의 경찰 정보망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상이 있으면 바로 보고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황성규와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확실한 적이 누군지 천중명도 알지 못한다. 다만,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연합의 형태, 그것도 국가 단위로 움직인다는 것 정도는 짐작한다.
표면적으로는 아프리카를 두고 벌어지는 전쟁이었다.
좀 더 선명하게 설명하자면, 앞으로 최소 50년, 길게는 100년쯤 되는 세계의 패권을 쥐기 위해 시작된 싸움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창밖을 보던 천중명의 생각을 스마트폰이 진동으로 뚝 잘랐다. 액정을 확인한 천중명은 바로 스마트폰을 들었고, 이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우즈만입니다.
우즈만의 아랍어 아래에서 나직하게 들리는 통역의 음성이 반 박자 느리게 천중명에게 넘어왔다.
– 킹 파드 국제공항에서 프랑스인 샤를 아베르가 공식적으로 체포되었고, 잠시 뒤에 프랑스로 인도될 겁니다. 그리고 천 회장이 부탁한 한국인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새로운 여권을 이용해 예멘으로 출발했습니다.
“무리한 청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신 점에 감사합니다, 왕세자님.”
천중명이 인사한 다음이었다.
– 불행한 관계에 빠질 뻔한 한국과의 분쟁을 숙부께서 중재하신 적이 있습니다.
“국제빌딩의 테러를 말씀하십니까?”
– 그 이면에 숨겨진 내용이 있는데 혹시 알고 있습니까?
천중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치 당연하다는 것처럼 우즈만 역시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 숙부께서는 우리에게 내려오는 속담대로 그 당시에 이미 바람을 등지고 씨를 뿌렸습니다. 당신이 아니더라도 우리 중 누군가 그것을 수확할 것이란 믿음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외환 사건에서 우리를 도와준 점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천 회장님.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해서 몸을 돌려 씨를 뿌리는 일은 없겠지만, 대놓고 맞서지도 않을 것입니다.
만약, 강찬과 천중명이 밀린다면 더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냉정한 뜻을 우즈만이 멋진 비유로 전하고 있었다.
“이해합니다, 왕세자님.”
– 그렇게 받아 주니 이런 뜻을 전할 수밖에 없는 내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 이해해 줘서 고맙습니다, 천 회장님. 신의 가호가 우리 천 회장님과 뒤편에서 부는 바람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좋은 말을 끝으로 우즈만 알하리 무라파 왕세자와의 통화가 끝났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천중명은 책상에 걸터앉은 자세로 창밖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이곳에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저 하늘 어디에선가는 총성이 울리고 있을 테고, 또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싸움이 본격적으로 벌어졌다는 의미였다.
어쩌겠나.
도깨비 회장이 힘을 감추던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도착지가 어디일지는 모르지만, 일단 끝까지 가는 수밖에…. 더구나 힘을 감추던 호랑이가 지금 잔뜩 화가 난 상태여서 내릴 방법도 없었다.
언젠가 곽대출과 함께 절벽에서 뛰어내리던 때를 떠올린 천중명은 픽 웃었다. 그런 뒤에 아프리카의 숲이 펼쳐진 창을 배경으로 책상을 향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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