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44)
625화 이제야 같은 세상에서 사는 사람 같습니다 (3)
네 명의 정보총국 요원이 희생되었는데 얻은 거라고는 겨우 대각선 방향의 건물 옥상으로 옮겨 온 게 전부였다.
강찬은 조금 전에 총구들이 일제히 쏟아지던 건물을 빠르게 훑었다.
반군이었을까? 아니면 정부에서 민간인까지 동원할 걸까?
만약 반군이 달려든 거라면 강찬을 잡자고 지겹도록 내전을 벌이던 정부군과 반군이 손을 잡은 모양새고, 돈에 팔린 민간인이 달려든 거라면 반드시 그들의 눈앞에 돈을 흔들어 가며 유혹한 놈이 있다는 의미였다.
강찬이 주변을 살피는 사이, 제라르와 석강호가 언제고 발사할 수 있도록 AT4 다섯 문을 옥상 담벼락 안쪽에 늘어놓았다.
저거 쏘는 거 어려울 거 없다.
어깨에 걸치고서 조준한 다음 스위치를 당기면 팔 길이만 한 로켓이 허공을 가른다. 바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서 명중률이 높고, 어설프게 지은 건물쯤 주저앉힐 파괴력도 갖췄다.
다만, 더럽게 비싸다.
RPG-7은 알라의 요술봉이라 불리는 로켓을 앞에 꽂아 연달아 쏘지만, AT4는 한 번 쏘면 아예 버리고 새 걸 써야 하는 형태여서 그렇다.
누가 줬는지 모르겠는데, 이 가난한 나라에 AT4를 뿌릴 정도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강찬이 죽기를 바라는 놈이겠다.
피식.
아직 이마쯤 태양이 걸린 하늘을 힐끔 본 강찬은 피식 웃었다. 이렇게 됐으니 적의 속을 좀 더 긁어 주면 더욱 다급하게 나오리라는 짐작 덕분이었다.
“빠스칼과 함께 저격용 총을 가져올 테니까 이곳을 지켜. 상황 봐서 엄호하고,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로켓 갈겨.”
“그럴 게 뭐 있소? 그냥 간 김에 그쪽 옥상에 올라가면 그만 아뇨?”
“이곳 말고 나머지 건물은 입구가 반대편이라 적이 들어오는 걸 확인하기 어려워.”
“그럼 나랑 갑시다.”
오후로 접어든 예멘의 하늘과 그 아래로 늘어선 3층 건물들을 배경으로 석강호가 짧게 시선을 주었다.
“그쪽 경계를 빠스칼에게 맡길 수 있겠냐?”
대꾸 대신 강찬이 짧게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석강호가 불만 가득한 눈매로 빠스칼을 훑었다.
“빠스칼. 준비해.”
원래는 내키지 않았던 눈치였다. 그런데 석강호의 표정과 눈빛이 얼마나 험악했던지 빠스칼이 얼른 몸을 세웠다.
“죽고 싶어? 자세 낮춰!”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거친 억양, 아래를 향해 고갯짓하는 석강호를 본 빠스칼이 자세를 급하게 숙였다.
마음 같으면 혼자 가고 싶다. 그렇지만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시가전 상황에서 대강이라도 소총을 긁어 댈 동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가 워낙 컸다.
“간다.”
“조심하쇼.”
강찬이 앞서고, 허리를 잔뜩 구부린 빠스칼이 옥상을 빠져나갔다. 그 직후였다. 강찬을 엄호할 수 있는 입구 쪽으로 석강호와 제라르가 움직였다.
정면을 감시하는 한편, 강찬이 나간 입구 주변을 살피는 임무였다. 쉴 틈 없이 시선을 돌리던 석강호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런데 저격용 총을 가져올 필요가 있냐? 어차피 소총이나 저격용 총이나 대장에게는 비슷한 놈들이잖아?”
“하여간, 돌대가리. 아무렴 대장이 저격하려고 총을 가지러 가겠냐? 저격용 총기 종류, 액세서리를 확인하면 이쪽을 지원한 놈들이 누군지 단서가 나올 수 있으니까 가는 거지.”
“뭐?”
‘그렇게 깊은 뜻이?’ 하는 얼굴로 제라르를 돌아보았던 석강호가 경계를 맡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뒤에 여전히 남은 궁금증을 풀지 못해 고개를 삐딱하게 틀었다.
묻자니 돌대가리가 되는 꼴이고, 참자니 궁금하고.
“지금 저격용 총을 가져온다고 치자. 당장 확인할 방법이 없잖냐? 어차피 하루 안에 평화유지군이 오는데 그때 가져오는 게 더 나은 거 아니냐?”
“후우-.”
차라리 돌대가리라고 욕을 해!
기다란 제라르의 숨소리에 석강호의 눈 끝이 꿈틀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문바키를 납치했다고 치자. 대장이 뭔가 힌트를 찾았다면 너는 무슨 생각이 들겠냐?”
“얼른 죽여야지.”
“그럼 대장이 정보총국장의 자리를 차지하는데 그렇게 하겠냐?”
그도 그러네.
감시하면서도 석강호는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문바키를 중간에 두고 협상하려 들겠지. 아니면 꼬리를 자르든가. 대장이 저렇게 혼자 나간 건 문바키를 구하려는 거다.”
“씨발.”
괜스레 분통이 터진 석강호가 욕을 뱉어 낼 때였다.
끼이익.
아래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힘겹게 옥상으로 달려왔다.
철컥! 철컥!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석강호와 제라르가 총구를 입구 방향으로 돌렸다. 경계하는 방향에서 미사일이 날아오든, 총알이 쏘아지든, 우선 강찬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동작이었다.
***
인천 공항을 출발한 뒤에 친한 대원, 또 얼굴만 아는 대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특수 임무에 자원한 20명 중 임무에 관해 아는 대원은 없었다. 그리고 혹시나 했던 브리핑이나 임무 전달 역시 없었다.
커피 마시고, 라면도 먹고,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비행시간이 길어질수록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이 대원들 틈에서 피어났다.
다른 건 몰라도 목적지 정도는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누구 하나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대원들의 표정에 아쉬움이 분명하게 묻었다.
“후-.”
수다도 어느 정도지, 궁금해서 구름만 보이는 창밖을 보느니 차라리 한숨 잔다.
의자에 몸을 묻은 신동철이 눈을 감을 때였다.
띵. 띵. 띵. 띵.
[대원들은 자리에 앉아서 앞에 있는 모니터에 집중하기 바란다.]기다리고 기다리던 지시가 알람과 함께 신동철의 신경을 바싹 끌어당겼다.
쉬는 시간이 끝에 교실로 들어오는 선생님을 본 학생들처럼 대원들이 자리에 앉은 다음이었다.
정면에 달린 커다란 모니터와 좌석 앞에 붙은 개인용 모니터에 똑같은 지도가 떠올랐다.
뭐지?
모니터를 보았던 대원들이 시선을 교환할 때였다.
[먼저 이번 임무에 지원한 평화유지군 대원 여러분에게 감사한다. 나는 이 비행기에 탑승한 여러분을 지휘할 중령 윤상기다.]북한에 가서 장광택 모가지를 땄다는 그 전설의 윤상기?
‘우와-.’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마이크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하던 대원들 절반쯤이 입을 벌릴 정도로 놀랐다.
[우리는 여섯 시간 뒤에 예멘의 아덴 공항에 내린다.]예멘?
대원들이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모니터에 아랍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구레나룻에서 이어진 턱수염, 외딴섬처럼 기른 콧수염, 둥근 턱, 아래로 향한 눈 끝, 그런데도 눈매는 치솟아서 이중적인 느낌을 강렬하게 풍기는 남자였다.
[예멘의 반군 수장 모하마드 알 후티다. 우리는 예멘에 도착하는 대로 반군의 거점으로 이동해 반군의 수장 알 후티를 체포하거나 제거한다.]이 정도면 목적지나 임무에 관해 먼저 말해 주는 게 오히려 이상할 수준이었다. 그렇더라도 달랑 20명이 예멘 반군 전체를 상대할 수 있나?
대원들이 각자 복잡한 표정으로 화면에 올라온 반군의 지도자를 바라볼 때였다.
이번에는 모두가 아는 얼굴이 모니터에 올라왔다.
[우리 외에도 아프리카에서 강철규 학장님이 곽철호 대령, 대원들 70명과 함께 출발했다. 우리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거나 아니면 비슷하게 도착할 거로 예상한다.]다른 사람 아닌 강철규가 직접?
그것도 윤상기보다 무게감 있는 곽철호 대령과 함께?
평화유지군이 예멘에 이렇게 대놓고 날아가는 것도 그렇고, 반군의 수장을 체포하거나 사살한다는 임무, 마지막으로 강철규와 곽철호, 윤상기가 지휘한다는 사실이 그 어떤 설명보다 대원들의 본능을 일깨우고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착륙 후에 다시 브리핑하겠다. 행동이나 대화에 제약은 없으나, 이 시간 이후로 외부인과 통화는 금지한다.]그거야 당연하지.
신동철이 고개를 끄덕인 뒤였다.
[남은 비행 동안 최대한 편하게 휴식한다. 이상.]대원들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윤상기의 음성이 뚝 끊겼다.
***
반군 수장 모하마드 알 후티는 표정과 눈매가 뒤틀려 있었다.
목표는 정보총국 요원 다섯 명과 그들에게 합류했다는 셋 해서 모두 여덟 명이었다. 모두 죽일 필요도 없었다. 원하는 건 단지 한 사람, ‘무슈 강’이라는 한국인만 제거하면 목표 달성이었다.
– 우리가 원하는 건 예멘에 들어간 갓 오브 블랙필드의 사망이오. 그런데 엉뚱하게 정보총국 요원 넷을 제거했더군요. 그리고 당신이 보낸 정규군 출신은 모조리 전사했소.
“끄응.”
– 특수부대 출신으로 구성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특수부대 출신으로 저격수를 포함한 대원들 20명과 반군 소속 대원 30명을 보냈소.”
알 후티의 대꾸가 건너가기 무섭게 픽 하는 웃음이 전화기를 타고 건너왔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
웃음이 전하는 의미가 말로 하는 것만큼이나 선명하게 알 후티에게 달려들었다.
– AT4와 저격용 총까지 지원했는데 결과가 이렇다면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기는 어려울 거 같은데요?
속이 뒤집히는 상황에서도 알 후티는 믿는 게 있었다. 누가 뭐래도 저들은 운석을 손에 넣을 때까지 연결을 끊지 않으리라는 믿음이었다.
– 한국에서 평화유지군이 출발했다는 소식은 전했고, 그 외에도 아프리카에서 70명의 평화유지군이 추가로 출발했소. 또 하나, 외인부대 전체 비상령이 내려진 상태요.
왜 이렇게 일이 커지지?
운석을 쥐고 있다는 마지막 믿음을 놓지는 않았지만, 연달아 받아 드는 암담한 현실에 알 후티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면서 확실히 정보총국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어쩌지?
운석을 건네줄 수도, 그렇다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을 수도 없어서 알 후티는 거친 숨소리만 뿜었다.
– 마지막 제안을 드리지요. 대원 50명을 선발해 주시오. 날이 밝기 전에 그들 50명을 지옥에서 온 전사로 만들어 드리지요.
“저격수를 포함한 50명이 가서 살아남은 숫자가 고작 일반 대원 아홉이요. 그리고 훈련이라면 우리도 나름…….”
– 지옥에서 온 전사라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아 적의 몸뚱이를 갈가리 찢는 대원은 단순한 훈련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서 알 후티는 눈가를 찌푸렸다. 한편으로는 정말 하룻밤 사이에 그런 능력을 키워 준다면 오히려 알 후티가 매달려서 부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 그들마저 전사한다면 어떻게 할 거요?”
– 그렇다면 지원한 무기를 양도하고 물러나지요.
“어떤 조건도 없이?”
– 운석을 포함해 어떤 요구도 없을 겁니다.
성공하면 대원 50명이 지옥의 전사로 변하는 거고, 실패하면 값비싼 무기를 얻는다.
손해 볼 게 없는데?
실제로도 아쉬운 건 가난한 예멘의 반군이지, 돈이 썩어나는 것처럼 뿌려 대는 저 인간은 아니었다.
“좋소. 어디로 보내면 되겠소?”
– 30분 안으로 훈련용 스토리지를 보낼 테니 대원들을 준비해 주시오.
맨땅에서 훈련하는 게 아니라, 아예 훈련용 스토리지를 준비한단다. 있는 놈들은 확실히 다르다.
“그럼 30분 뒤에 연락하시오.”
전화를 마친 알 후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폴더폰을 내려다보았다.
최신 장비를 온몸에 휘감는다고 해도, 대원들 개개인이 장비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데까지는 수개월이 걸린다. 그렇지 않고 장비를 걸치면 오히려 전투에 방해만 된다. 그 정도 기본을 모를 리 없는데 뭘 믿고 저토록 큰소리를 치는 걸까?
궁금한 것과 별개로 알 후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능력이 뛰어난 대원 50명을 선발하기 위해서였다.
***
한경미는 무릎이 좋지 않았다.
조금만 자세를 삐끗해도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달려들어서 집안일을 하는 것조차 조심한다.
달칵.
그런 한경미가 거실의 작은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커피를 마실 거면 말을 하지? 무릎은?”
“이런 일에 당신을 부를 정도는 아냐.”
오른쪽으로 꺾인 소파에 앉은 한경미는 잔을 들었다. 그러나 마시지는 않고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둘, 언제나처럼 소위 ‘다방 스타일’을 받아 든 차동균이 후루룩 커피를 마신 뒤에 무슨 일인가 하고 눈치를 살필 때였다.
“어떻게 할 거야?”
시선을 든 한경미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졌다.
“당신, 멍하니 창만 보고 있잖아? 어젯밤에는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뒤척였고.”
답을 못하는 차동균 앞에서 한경미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나 있잖아. 최 장군님의 뜻을 외면하지 못한다는 당신 이해해서 야전 생활 반대 안 했다. 하사 부인이 와도 물 한 방울, 찻잔 하나 옮기지 못하게 했고.”
나이 든 차동균이 시선을 똑바로 준 채 묵묵하게 듣고만 있었다.
“대한민국을 위해 당신 할 만큼 했어.”
“정말 그랬을까?”
차동균의 눈을 본 한경미가 아픈 미소를 얼굴에 담았다.
“얼마나 있다가 올 거야?”
“뭘?”
“당신 아프리카 가고 싶어서 그런 거 아냐? 그쪽 하늘이라도 보려고?”
말문이 턱 막힌 눈치였다. 차동균은.
“가면 언제 출발할 거야?”
“오늘 밤에 김형정이란 분이 출발한다는데…….”
“아효.”
기가 막힌 모양으로 한경미가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는 계면쩍어하는 남편 차동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 무릎 안 좋아.”
“수술하기로 했어? 그러면 수술 끝나고…….”
“그게 아니라 다쳐오면 당신 병수발 못 들어 줘. 그러니까 멀쩡하게 돌아와.”
왜 그럴까?
마지막 당부를 전한 한경미의 눈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고, 그걸 지켜보던 차동균은 또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려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왜 당신더러 가라는 건 줄 알아?”
차동균은 고개만 저었다.
“어젯밤에 당신 정말 잠깐 잤어. 그때 잠꼬대로 그러더라. 당신 피로 조국을 지킬 수 있다면 당신은 행복하다고. 대위 차동균이라고 관등성명 말한 뒤에…….”
뭐가 복받쳤을까?
말을 하던 한경미가 손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지금 출발합니다, 장군님이라고 했어.”
최성곤을 떠올린 차동균이 볼을 씰룩인 다음이었다.
“얼른 짐 싸. 그리고 아프리카에 가. 대신 당신 피가 아니라 능력으로 조국을 지키고 건강하게 돌아와.”
뭐라 할 말이 없는 차동균이 머쓱하게 웃은 다음이었다.
“아이고, 좋은가 보네?”
눈물을 매단 한경미가 밉지 않은 표정으로 차동균을 흘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