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47)
628화 대신 너희는 전부 죽어 줘야지! (3)
“하사난(حسنا, 괜찮아).”
석강호에게서 짬짬이 배운 생활 아랍어였다. 그리고 이 이상은 대화하기 어려웠다.
염병할 아랍어를 배우든가 해야지, 원.
그나마 짧은 아랍어가 효과가 있는지 눈물 가득한 아이의 눈이 강찬을 향해 돌아왔다.
“하사난(حسنا, 괜찮아).”
다시 한번 생활 아랍어를 건넨 강찬은 고개를 돌려서 아이의 허리와 가슴, 손목을 살폈다.
다행히 폭발물은 없는 거 같고.
혹시 자살 폭탄을 설치했나를 살핀 강찬은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죽어 있는 일반인 남자를 보는 아이의 얼굴에 공포와 슬픔, 절망의 감정이 확연하게 담겼다.
손을 뻗어 잡아당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지금 아이에게 너무도 잔인한 행동이었다.
아이를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인 강찬은 놀라지 않도록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런 뒤에 바닥에 엎드려 있던 남자를 돌렸고, 이어서 머리와 다리를 들어 침대에 눕혔다.
정확하게 심장을 뚫었다.
그것도 단 한 발로.
침대에 눕힌 남자의 가슴 부위를 보며 강찬은 나지막이 숨을 내쉬었다.
정면에서 심장을 뚫리면 열에 아홉은 뒤로 넘어지고, 나머지 하나는 옆으로 쓰러진다. 그러니 저렇게 엎드린 자세로 죽으려면 심장이 뚫린 직후에 그야말로 악착같이 몸을 비틀어야 한다.
아이를 지키고 싶었을까? 거기에 하얗게 변한 얼굴을 볼 수 없도록 고개를 돌리기까지 하고?
침대에 있던 이불로 그를 덮어 준 강찬이 몸을 세운 다음이었다.
바닥에서 아이가 기어 나왔다.
하기는 어차피 강찬에게 발각된 상황이었다. 거기에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를 강찬이 들어서 침대에 올린 다음이라 더 숨어 있어 봐야 소용없다는 사실을 이제 갓 일곱이나 여덟쯤 된 아이가 짐작하는 눈치였다.
“빠바-.”
아버지를 부르는 아랍어였다.
침대에 누운 남자에게 달려든 아이가 눈물범벅인 얼굴로 죽은 아버지의 머리를 안았다.
“빠바! 빠바-!”
내내 침대 밑에서 숨죽였을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다가 손바닥으로 작은 자신의 머리를 마구 내리쳤다. 슬픔을 주체하지 못할 때 나오는 아랍인들 특유의 표현이었고, 특히 수니파들이 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든 더럽고 추악하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비극과 슬픔을 어린아이에게까지 강요한다.
“빠스칼! 아랍어 할 줄 알아?”
“예, 부총국장님.”
“현관문 닫고 이리 와.”
그렇지 않아도 안을 기웃거리며 놀란 눈을 하던 빠스칼이다. 강찬의 지시를 받은 그가 빠르게 문을 닫고는 곧장 방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봐.”
지금 여기서?
이럴 시간이 있습니까?
의문을 던졌던 빠스칼이 무겁게 변한 강찬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 뒤에 프랑스어 억양이 가득한 아랍어를 던졌다.
“반군이 문을 열라고 하자 아버지가 곧바로 침대 아래에 숨어 있으라고 했답니다.”
울음 가득한 아이의 음성을 정확하게 알아들으려는 것처럼 귀를 기울이던 빠스칼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문을 열고 방까지 밀려온 뒤에, 혼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바로 총을 쏴서 아버지를 죽였답니다.”
침대 옆에 쓰러졌던 남자의 위치, 바닥에 고인 피를 강찬은 무겁게 내려다보았다.
예상대로였다.
내전이 일상인 나라에서 총을 든 반군이 문을 열라고 했으니 이 남자는 자신의 미래를 짐작했을 거다. 그래서 문을 열기 전에 아이를 침대 아래 숨겼을 테고.
아이가 발각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악착같이 엎드린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흔적은 검게 변한 카펫 위의 핏자국이었다.
‘내가 어떡해서든 감출 테니 제발 이 아이를 살펴 주시오.’
강찬은 그 핏자국이 아들을 당부하는 아버지의 외침처럼 느껴졌다.
강찬은 시선을 돌려 죽은 아버지와 그가 지켜 낸 아들을 보았다.
“반군이 언제 왔는지 물어봐.”
빠스칼이 질문을 던졌고, 아이가 빠르게 답했다.
“아침을 먹은 뒤였답니다.”
강찬은 천천히 시간을 계산했다.
갑자기 골목에 감시 인원이 늘었다고 석강호가 툴툴댄 시간이었다.
정부군의 협조가 있었다는 거지?
이놈이고, 저놈이고, 하여간 죽고 싶은 놈들 참 많은데 다들 그 소원을 꼭 이뤄 주마.
“다른 가족은?”
“없답니다. 아버지와 둘이서만 생활했다고요.”
아버지의 직업이 궁금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여기에 있으면 반군이 다시 온다고 말하고, 우선 우리와 함께 가자고 해.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기회 봐서 프랑스로 보내 주겠다고 하고.”
“아직 아이라 그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빠스칼?”
서둘러 의견을 냈던 빠스칼이 강찬의 반응을 확인하고는 아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가겠답니다.”
“그럼 내가 아이를 데려갈 테니까 밖에 있는 저격용 소총을 들어.”
“예, 부총국장님.”
강찬이 손을 내밀자 아이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그런 뒤에 식어 버린 아버지의 머리를 꼭 끌어안고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트렸다.
저격용 총을 확보한 빠스칼이 안을 들여다볼 때였다.
“가야 해. 그래야 아버지가 피로 남긴 소망을 이뤄 줄 수 있다.”
한국말로 나직하게 마음을 전한 강찬은 손을 내밀었다.
못 알아들어도 상관없다.
아이에게 내민 손이면 원하는 바를 전하기에 충분했다.
“빠바-.”
마지막이라는 듯 아버지의 머리를 꼭 끌어안은 아이가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런 뒤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강찬에게 다가왔다.
위험하니까.
강찬은 침대에 걸터앉는 것처럼 등을 내밀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자 의미를 알아챈 것처럼 아이가 강찬의 등에 매달렸다.
아이를 업은 강찬이 거실로 나온 다음이었다.
저격수의 시체를 본 아이가 강찬의 뒷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그사이 강찬은 빠스칼의 손에 들린 저격용 소총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AW 계열로 영국군이 가장 먼저 사용한 총기였다.
물론 현재는 대한민국에서도 사용하니까 이것만으로 누군가를 족치기는 어렵다. 대신 범위가 좁혀지는 것만은 분명했다.
“먼저 나갈 테니까 문을 열어. 나간 뒤에는 뒤편을 엄호해.”
“위.”
“아이에게 목을 꽉 붙들고 있으라고 해.”
빠스칼이 프랑스어 억양 가득한 말로 지시를 전한 다음이었다. 강찬의 목을 안은 아이의 팔과 허리에 걸린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열어.’
강찬이 고갯짓을 던지자 벽에 붙어 선 빠스칼이 문을 열었다.
바깥은 조용했다.
이쪽을 지켜보고 있을 석강호와 제라르가 총질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특별히 위험한 상황은 없는 것으로 보였다.
방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내내 강찬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있던 아이가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를 살해한 반군의 최후를 눈에 담아 두고 싶은 모양이었다.
전쟁과 내전은 이런 결과를 만든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사람이 죽고, 피로 씻어야 할 원한이 쌓이며, 마침내는 왜 싸웠는지 이유조차 희미해진 상태에서 죽고 죽인다. 또 하나, 이런 죽음을 부추긴 놈들 역시 총에 맞아 이마나 심장이 뚫리면 반드시 죽는다.
그걸 깨달은 이 아이가 총을 들고 적의 심장을 겨눌지, 평화를 되찾기 위해 뜨거운 피를 흘릴지는 온전히 본인이 결정할 몫이었다.
철컥!
계단 아래를 겨눈 강찬은 벽에 붙은 자세로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
투두둑! 퍼버벅! 투둑! 퍼벅!
자세를 낮춘 강태산의 머리와 등 위로 터진 나뭇조각들이 요란하게 떨어졌다.
첫 번째 물웅덩이로 들어서는 입구였다.
투둑! 퍼벅! 투두둑! 퍼벅! 투두둑! 퍼버벅!
사격한 곳을 노리는 강태산의 방식을 놈들은 완전히 파악한 눈치였다.
그 증거로 한 놈이 사격하고 나면, 강태산이 반격할 타이밍을 계산한 것처럼 연달아 총알이 날아들었다.
어설픈 반군이라면 벌써 빠져나가서 뒤나 옆을 노렸다. 그러나 지금 달려드는 놈들이 날린 총알은 거의 1미터 안쪽에 박히고 있었다.
알겠냐? 목표는 너야!
투둑! 퍼벅! 투두둑! 퍼버벅!
심지어 연구팀에는 관심도 없다는 것처럼 아예 추적을 포기하고, 강태산을 포위한 채 좁혀들고 있었다.
푸슝! 푸슝!
강태산이 두 발을 갈긴 직후였다.
투두둑! 투둑! 투두둑! 투둑!
기다렸다는 것처럼 총알이 날아들어서 주변 나무와 바닥을 사정없이 터트렸다.
이 지랄 같은 새끼들!
총알로 이마를 뚫어 줬다면 당연히 죽어 자빠져야 하는데, 머리통이 터진 놈들이 움찔했다가 다시 반격하는 염병할 전투였다.
‘아프리카의 지배자? 그 별명도 오늘로 끝이다.’
투두둑! 투둑! 투둑! 투두둑!
또다시 강태산의 주변이 요란하게 터져 나갔다.
미칠 일은 또 하나 있었다.
아포코 기지에서 이따금 적의 소총 소리만 들릴 뿐, 외인부대의 총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뒈지지 않는 적이라고 해도 양동식 소령이 쉽게 당하지는 않을 거다.
강태산은 바로 뒤에 있는 웅덩이를 돌아보았다.
‘저 물을 마시면 나도 안 죽는 괴물이 되나?’
어차피 포위돼서 사살당할 거라면 차라리 물을 처마시고 똑같은 괴물이 될까 싶었다. 물을 마시면 괴물이 된다는 보장만 확실하다면 말이다.
강철규 학장이나 강찬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타고난 피는 그렇게 무섭다.
노력만으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안 되는 게 있는 거다.
강태산은 이를 악물었다. 그런 뒤에 바닥에 바싹 붙은 자세로 웅덩이를 향해 움직였다.
심장이 뚫리나, 뇌를 파먹히나.
무슨 짓을 해서든 너희는 다 죽이고 죽을 테니까 보자.
투두둑! 투둑! 투두둑! 투두둑!
강태산의 반격이 없자, 적들이 대놓고 총을 갈기며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연구팀을 아예 외면한 채 강태산이 있는 방향으로 사격이 집중된다는 점이었다.
조금만 더 가까이.
나무에 붙은 강태산이 거리를 짐작할 때였다.
치잇.
– 대위님! 연구팀은 포위망을 완전히 빠져나왔습니다. 네 명이 지원할 거니까 준비하십시오.
염병아!
지금 대답하는 건 위치를 알려 주는 꼴이라고. 거기에 지금 오면 다 같이 뇌를 파먹혀.
칫. 칫. 치잇. 칫.
강태산은 마이크의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칫. 치잇.
우리말로 ‘노’라고 하는 모스 부호였다.
치잇.
– 뒤편에서 대기합니다.
모스 부호를 보낸 의미를 알아챈 이준호의 음성이 넘어온 뒤였다.
왼손을 움직인 강태산은 가슴에 걸어 두었던 수류탄을 두 개 꺼냈다.
한 손에 수류탄을 두 개나 들고서 안전핀을 뽑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강태산은 그 미친 짓을 조용하게 해냈다.
투두둑! 투둑! 투두둑!
적은 진짜 바로 코앞까지 와 있었다.
대놓고 총질하는 덕분에 적의 위치를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지금부터는 좀 다를 거다. 아니면 말고.’
숨을 짧게 내쉰 강태산은 웅덩이를 향해 수류탄 두 개를 툭 던졌다. 그리고는 첨벙 소리가 나기 무섭게 바닥에 처박히듯 엎드렸다.
‘하나, 둘.’
콰으으응! 콰으응!
숫자를 센 직후에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바닥이 흔들렸고, 물기둥이 높다랗게 치솟았다.
부스스스스-.
그리고 강태산의 머리 위로 흙가루와 물이 떨어져 내렸다.
‘제발! 뇌를 내놓고 한 짓이라고!’
강태산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졌을까?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끄으-.”
“끄아아-.”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고, 몸을 숨겼던 적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기다란 나뭇잎과 넝쿨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물을 처맞으면 온몸이 비틀리잖아! 그렇지?
뒤덮다시피 수북하게 떨어진 흙을 뒤집어쓴 채로 강태산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빠르게 적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총을 쏴도 뒈지지 않으니까!
스응.
어깨에 걸린 대검을 뽑아 든 강태산이 가장 근처에 있는 적에게 달려들었다.
죽고 죽이는 전투에서 망설이거나 양보할 이유 없다.
콰윽! 서걱! 콰악! 서거-억!
두 놈의 목을 반 이상 가른 강태산은 빠르게 달렸다. 그런 뒤에 비명을 토해 내는 적에게 또다시 달려들었다.
콰악! 서걱!
첫 번째 놈의 목을 가른 뒤였다.
꿈틀, 두 번째 놈이 뜻밖에도 몸을 비틀며 강태산에게 물러났다. 이놈들은 물을 얻어맞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회복한다는 의미였다.
어딜 가, 이 새끼야!
목을 갈라 놔야 조준이 안 될 거 아냐!
강태산은 물러나는 적의 멱살을 잡고서 대검을 깊게 그었다.
서거-억! 푸시시시-.
멱살을 잡은 탓에 하얗게 갈라졌던 놈의 목에서 뿜어진 피가 강태산의 가슴과 팔, 손을 적셨다.
감염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했었다.
감염? 상관없어! 뇌를 줬으니까!
대신 너희는 전부 죽어 줘야지!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도 강태산은 적을 향해 내달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