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5)
586화 이걸 어떻게 풀지? (2)
먼지 폴폴 날리는 방으로 돌아온 이용우는 오는 길에 산 커피를 다른 컵에 반쯤 따르고는 물을 섞었다. 같은 커피라도 이쪽은 이용우에게 워낙 진해서 이렇게 물을 타야 마시기 좋았다.
잔을 두고 탁자에 앉은 다음이었다. 느닷없이 달려드는 군가의 한 소절이 떠올라서 이용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젊음을 함께 사르며 깨끗이 피고 질 무궁화?
조국을 위해 죽을 각오 했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다. 사명감을 온몸에 두르고 목숨 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홀로 견디던 이용우의 처가 음주운전에 죽기 전까지 말이다.
“씨발 새끼.”
조문조차 오지 않은 놈이 재판에서는 변호사를 앞세워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한다는 말을 잘도 뱉었다.
죽을죄를 지었으니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그걸 죽은 사람이나 내가 아니라 왜 판사한테 하는데, 이 씨발 새끼야!”
분통이 터져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 그 인간을 죽여 버릴 거 같아서 이용우는 거친 욕을 뱉었다.
갑자기 속이 후끈하게 달아오른 이용우가 물 탄 커피를 벌컥벌컥 마시고 난 다음이었다.
쾅쾅쾅.
노크라고 치기엔 너무도 거친 소리가 낡은 문짝을 통해 방으로 달려들었다.
쾅쾅쾅.
“코리안?”
하필이면 독이 있는 대로 오른 순간인데, 이 새끼가 진짜 죽고 싶어 환장을 했나?
죽이려다가 먼저 죽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나씨르의 목소리를 확인한 이용우는 푸시업을 하는 사람처럼 바닥에 엎드렸다. 확실히 살짝 뜬 문 아래로 보이는 건 나씨르의 발 두 개가 전부였다. 그렇더라도 대꾸하는 동시에 총을 갈겨 댈 수 있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겠다.
문 옆의 벽에 붙어선 이용우는 고개만 슬쩍 내밀었다.
“무슨 일이냐?”
능숙한 아랍어가 건너간 다음이었다.
“도움이 필요해서 왔어요.”
“관심 없으니까 가라.”
“코리안과 관계된 건데요?”
이 새끼가?
사람 마음이 참 묘해서 코리안과 관계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용우는 문가를 향해 눈가를 좁혔다.
일단 한번 들어 봐?
마음을 정한 이용우는 팔만 뻗어 문고리를 돌리고 문을 밀었다.
“코리안?”
놈이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홰액! 콰등!
멱살을 잡아챈 이용우는 놈의 목을 왼쪽 팔뚝으로 누르며 세차게 밀었다.
오른손으로 빠르게 놈의 몸을 뒤진 다음이었다.
“컥! 커헉!”
비명을 지르는 놈의 허리춤에서 예의 화약 냄새가 가득한 권총을 찾아낸 이용우는 빠르게 노리쇠를 당겼다.
또 권총을 가져왔다 이거지?
철컥.
놈의 이마에 권총의 총구를 들이민 이용우는 당황하는 나씨르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나씨르. 불행하게 내가 기분이 안 좋아. 너는 아침에 운을 한번 써서 더는 기회가 없고.”
“그게 아니라…….”
“쉿!”
왼손 검지를 입 앞에 세운 이용우는 떠벌이려는 놈의 입을 막았다.
“내가 너라면 이런 순간에는 얌전히 듣기만 할 거 같은데? 그만큼 내 기분이 지랄이거든.”
경고와 동시에 이용우는 검지로 방아쇠를 슬며시 당겼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방아쇠가 검지를 따라 뒤로 밀렸고, 그와 동시에 놈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알겠냐?
마지막 간극까지 방아쇠를 당기는 능력과 여차하면 너 하나 죽이는 거 일도 아니란 사실을?
방아쇠를 당길 의지도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이런 놈을 죽여서 일을 만들면 신광선을 볼 낯이 없어서 또 한 번 참을 뿐이었다.
“아까 말한 코리안은 뭐냐?”
“커피 중개상을 하는 코리안을 죽이려고 합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구불거리는 수염을 길게 기른 나씨르의 눈을 이용우는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누가?”
“이곳에서 처음 보는 남자 셋입니다.”
답을 하는 나씨르의 눈에 적대감이 가득했다. 시아파의 세상 이라크에 수니파의 인물이 들어서면, 지금 나씨르처럼 등을 동그랗게 만들고 꼬리와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반응한다.
“수니파냐?”
이용우의 질문을 받은 나씨르가 빠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입을 열지는 않았으나 ‘그것까지 짐작해?’ 하는 표정이었다.
“놈들이 커피 중개상을 노리는 이유는?”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내게 원하는 게 뭐냐?”
“커피 중개상을 빼내 줄 테니 그가 지닌 이곳의 재산을 우리가 나누게 해 주십시오.”
지친다, 지쳐.
마지막 답을 들은 이용우는 권총을 내렸다. 그리고는 탁자로 움직였다.
“아까 코리안이 한 명 더 왔습니다.”
그리고 탁자에 앉는 이용우의 시선을 나씨르가 당겨 갔다.
“둘이서 차로 움직이려는 모양인데, 아시잖습니까? 출발하는 순간, 콰아앙!”
이용우는 날카롭게 시선만 던졌다.
“차 바닥에 폭탄을 설치했습니다. 새로 온 코리안도 모르는 눈치입니다.”
차가워진 시선이 무서워서인지, 이용우를 꼬드겨 돈을 챙기고 싶어서인지는 몰라도 나씨르가 빠르게 입을 놀렸다.
이런 일에 끼어들면 결국 이용우의 정체가 드러날 테고, 조용하게 처리하려면 말이 나오지 않게 지금 떠벌리는 나씨르를 제거하고 움직여야 한다.
어쩌지?
이용우의 표정을 살피던 나씨르는 망설이는 이유를 오해한 모양이었다.
“커피 중개상이 코리아의 정보원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탁자와 문의 중간에 선 나씨르가 나불나불 엄청난 말을 지껄였다.
블랙이었나? 커피 중개상이?
한 명 더 왔다는 코리안이 블랙을 구하러 온 더 블랙 박중상이고?
“커피 중개상이 코리아의 정보원이라면 코리아 정부에서 보상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런 말은 어디에서 들었냐?”
“수니파 세 명 말입니다. 그들에게 우리 경찰이 협조하고 있습니다.”
나씨르의 대꾸를 들은 이용우는 피식 웃었다.
지금 답을 듣고 나니 하나는 분명하게 짐작하겠다.
이놈이 왜 이따위 권총을 들고 있었는지, 어떻게 수니파 정보원과 국정원의 블랙에 관해 꿰뚫고 있는지도. 그렇다면 도움을 핑계로 이런 정보를 이용우에게 전해 주는 이유가 돈 때문이 아닐 수도 있었다.
“앉아.”
문을 돌아보았던 나씨르가 뻔뻔한 태도와 표정으로 이용우의 앞에 앉았다. 아까까지는 몰랐는데, 맞은편에 앉기 무섭게 노린내와 썩은 양파를 문지른 듯한 역겨운 냄새가 이용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니파 정보원, 커피 중개인으로 위장한 한국의 블랙, 그를 구하러 온 더 블랙 박중상, 이라크 경찰, 그 모든 걸 알아내고 달려왔을 정도면 이놈도 종일 바쁘게 뛰어다녔겠다. 그래서 이렇게 역한 냄새를 풍기는 걸 테고.
달칵.
이용우는 먼저 권총을 탁자 중앙에 조용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양손을 탁자 아래 다리 위로 올렸다. 만약 나씨르의 정체가 짐작한 대로라면, 이런 방법이 아니고는 놈이 진짜 원하는 걸 말하기 어렵다.
“대답이 마음에 안 들면 이대로 너를 죽이고 바그다드를 떠날 거니까 빨리 끝내자.”
나씨르의 시선이 탁자로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해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의도가 분명한 표정과 눈빛으로 이용우는 차갑게 웃었다.
잠깐 망설이던 나씨르의 시선이 올라온 다음이었다.
“이란 민병대가 이 일에 끼어드는 이유?”
이용우가 질문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나씨르의 눈이 분명하게 흔들렸다. 정체를 들켰으니 이제 나씨르의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이용우에게 달려들거나, 솔직하게 원하는 걸 말하든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수니파라고 했던 셋이 이라크의 특수 경찰입니다. 그 셋을 죽여 주십시오.”
“흐음.”
이용우는 올라오는 신음을 한숨처럼 내쉬었다.
솔레마니의 장례식에서 민병대에 총기를 난사한 사건부터, 이라크의 모솔에서 경찰특공대가 시아파 민병대를 사살한 일까지, 시아파 민병대인 나씨르가 수니파에게 이를 가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블랙을 빼내는 과정에서 이라크 특수 경찰을 셋이나 죽여야 한다는 데 있었다.
“씨발.”
본 적 없는 국가정보원 블랙 때문이 아니라, 느닷없이 박중상과 배경처럼 화려하게 핀 무궁화 꽃이 떠올라 이용우는 뜬금없는 욕을 뱉었다.
다시는 조국 따위 돌아보지 않겠다며 나선 길인데…….
시선을 권총으로 내린 이용우의 맞은편에서 나씨르가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곽대출은 곧장 복도를 걸었다.
왼편에 방문을 지키는 것처럼 맞은편에 기다란 테이블이 놓였고, 한국인 두 명, 현지에서 고용한 인원 셋, 모두 다섯 명의 비서가 몸을 일으켰다.
“계시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국인 직원이 나서서 회장실의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였다.
밖으로 나온 직원이 안으로 들어가라는 듯 한쪽으로 비켜섰다. 고맙다는 투로 시선을 던진 곽대출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회장님.”
“뻑뻑하다. 둘이 있을 때는 좀 편하게 하자.”
“그럴까?”
뻔뻔한 곽대출의 대응에 천중명이 보기 좋게 웃었다. 그리고는 녹색이 짙은 창을 배경으로 자리한 소파를 가리켰다.
“이거? 미숫가루 아냐?”
“너 온다고 해서 맞춰 준비한 거다. 얼른 마셔 봐.”
소파에 자리한 곽대출이 감탄과 함께 얼음 담긴 미숫가루 잔을 들었다. 사양할 곽대출이 아니었고, 체면 따질 천중명이 아니어서 두 사람 모두 단숨에 잔을 비웠다.
“캬하! 진짜 좋네.”
“그러게. 이런 거 두고 여기에서 뭐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에이. 지경그룹의 백 년을 책임질 곳이 아프리카라고 이끈 회장님이 그런 소리를 하면 곤란하지.”
“그런가?”
웃는 얼굴로 나눈 대화였다. 그러나 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천중명과 곽대출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알아봤냐?”
천중명이 질문을 건넨 다음이었다.
“모가디슈 현지 책임자가…….”
스마트폰을 꺼낸 곽대출이 빠르게 내용을 확인했다.
“맞아. 모하메드 카슐라 모히드! 책임자는 우연한 사고로 믿는 게 확실해. 평화유지군도 그렇게 사건을 종결했고. 그런데 그룹 기획실에서는 시아파 반군인 민병대가 우리 직원을 노린 정황이 있다고 판단하고 조사 중이야.”
“아프리카에 흐르는 자금은?”
“조사는 하는데, 그룹 기획실에서도 아직 답을 못 찾았어. 부정 축재는 분명 아니고, 성격도 달라. 그나마 갱단이나 지하조직에서 풀어내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 정도? 아직은 그게 전부야.”
“흐음.”
보고를 들은 천중명은 늘어진 나무숲이 내려다보이는 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회장님.”
그런 천중명을 곽대출이 나직하게 불렀다.
“강성태와 은선곤이 움직일 모양인데 한번 만나 보시지?”
“때가 된 거 같기는 한데, 기회를 봐야지. 그건 그렇고, 박승양 회장은?”
“그 양반이 의외로 소심하더만. 멕시코에 직접 가 보겠다니까 조만간 답을 주긴 할 텐데 어떤 쪽으로 결정할지 모르겠더라고.”
“지하에서 움직이는 돈을 찾아내는 데 그만한 사람 없다.”
박승양을 떠올렸는지 곽대출은 지쳤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를 만나서 어찌나 코를 큼큼대는지, 원. 돈 냄새가 진하다고 매달리면서도 막상 나서기는 켕기는 얼굴이던데, 버텨 봐야 결국 회장님 뜻대로 움직일 거 아냐?”
은근 기대하는 곽대출의 질문에 천중명의 표정은 무거웠다.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기는 하지. 그렇다고 해도 억지로 데려오기는 어려워.”
“멕시코도 그렇고, 이곳이 쉽지는 않지.”
대꾸하며 독기가 오른 모양이었다. 탁자 아래 내려 둔 곽대출의 엄지가 습관처럼 꺼덕거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