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50)
631화 기회 여러 번 오는 거 아니다 (3)
분명 죽었었다.
어떻게?
강태산과 시선이 마주친 직후였다.
더는 버틸 힘이 없다는 것처럼 대원의 눈꺼풀이 스르륵 감겼다.
시선만 돌렸을 뿐이다. 그래서 귀를 막아 준 소맷자락과 묶어 둔 군화 끈, 가슴에 올려 둔 두 손은 변함이 없었다.
강태산은 빠르게 손을 뻗어 대원의 목을 지그시 눌러 보았고, 이어서 코에 손등을 가져갔다. 아무리 확인해도 사망한 상태였다. 하얗게 변한 낯빛 역시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헛것을 보았을까?
황당하지만, 강태산은 분명 대원이 눈을 뜨고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보았다.
혹시?
몸을 일으킨 강태산은 시선을 돌렸다.
“내가 무전기를 사용할 거니까 입구 방향으로 이동해.”
무전기 근처에 있던 이준호와 살로이의 이동을 확인한 뒤에야 강태산은 걸음을 옮겼다. 그런 뒤에 무전기에 연결된 마이크를 들었다.
치잇.
“임우람. 강태산이다.”
치잇.
– 예, 대위님.
치잇.
“로일 박사와 교신하고 싶으니까 연결해.”
치잇.
– 알겠습니다.
로일에게 무전기를 연결하느라 잠시 틈이 있었다.
감염은 아닐 거야.
그저 마지막 순간에 우연히 보인 반응이겠지.
강태산이 아까 그 대원을 돌아볼 때였다.
치잇.
– 로일이에요. 들려요?
로일 박사의 음성이 무전기의 쇳소리와 섞여 강태산을 찾았다.
치잇.
“혹시 죽지 않는 적들의 증세나 현상이 우리에게 감염될 수 있는 겁니까?”
치잇.
– 무슨 일 있었어요? 그런 거면 증상이나 반응을 알려 주세요.
확실히 박사는 다르다.
강태산은 조금 전에 있었던 대원의 반응에 관해 빠르게 로일에게 전했다.
치잇.
– 심장 박동이나 고통에 상관없이 움직이려면 두 가지 과정이 필요해요. 하나는 맹목적으로 지시에 따르도록 만드는 과정이고, 다음은 블랙헤드의 에너지처럼 죽은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이에요. 그러니 단순한 접촉만으로는 감염이나 전염될 가능성은 무척 희박해요.
그래. 이래야지.
로일의 의견을 들으며 강태산은 나직하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치잇.
– 몸은 괜찮아요?
치잇.
“괜찮습니다. 조만간 지원군이 올 테니 그때까지만 견디세요.”
로일과의 무전을 마친 강태산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가능성이 희박하다라.’
그러면서도 강태산은 어쩐지 로일의 답변이 마음 한구석에 걸렸다.
만에 하나, 죽지 않는 적의 모습이 전염된다면, 그래서 동료가 괴물로 변한다면 동료들의 목을 갈라야 하나?
기지의 입구에 있는 이준호와 살로이를 돌아본 강태산은 쓴 입맛을 다셨다.
***
책상 하나, 그 옆으로 1인용 침대, 변기와 세면대만 달랑 있는 화장실, 마치 교도소 독방 같은 장소였다.
창도 없어서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전부인 방에서 문바키는 책상에 앉아 신문을 읽었다.
살고 죽는 거, 정보총국장에 오르면서 이미 하늘의 뜻에 맡겼다. 그 외에도 최소한의 여유를 만들어 주는 믿음이 있는데 이곳에서 죽는다면 강찬이 반드시 그놈의 목을 돌려줄 거라는 확신이었다.
마음대로 해라.
내가 잡힌 거로 무슈 강은 이미 반쯤 얻었을 테니까.
신문을 넘긴 문바키가 읽지 않은 면에 시선을 줄 때였다.
철컹.
고리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신문을 반으로 접어 내려놓은 문바키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여유롭게 시선을 들었다.
눈매가 몹시 날카로운 마흔 초반의 남자였다. 그리고 정장 차림의 남자 둘이 뒤따라 들어와 양손을 앞으로 잡은 채 그의 뒤를 받쳤다.
완벽한 은발, 날카로운 눈매, 높게 솟은 콧대와 얼굴형으로 봐서 게르만 혈통이지 싶었는데 들어선 남자는 문바키를 향해 대놓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 한심한 인간.’
표정과 시선, 그의 숨소리가 마치 그렇게 문바키를 평가하는 눈치였다.
“끝내 버티겠다는 건가?”
“질문을 하려면 먼저 본인의 이름과 신분을 밝히는 게 예의 아닐까?”
“동양인에 빌붙어 정보총국장의 자리를 차지하니까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내게 좀 더 공손한 태도를 갖추는 게 좋아.”
그런가?
고개를 갸웃했던 문바키가 시선을 똑바로 들었다.
“정보총국장인 나를 이곳에 감금하니까 세상이 만만해 보이나 본데 방금 말한 동양인의 독특한 웃음이나 라이터가 서 있는 걸 보게 되면 후회하게 될 거다.”
그런 뒤에 문바키는 그의 경고를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네 마음대로 해 보라는 문바키의 덤덤한 태도에 조금은 눌린 모양이었다.
“프랑스 정보총국장을 이곳에 데려다 놓으려면 어느 정도의 힘과 능력이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 게다가 앞으로 48시간 안에 자네가 믿는 동양인과 평화유지군의 70퍼센트가 사라지게 돼. 그래도 버티겠다는 말인가?”
조금은 바뀐 그의 말투를 봐서는 문바키를 설득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문바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총국은 특별한 규칙이 있지. 정보총국장의 유보 시 부총국장이 지휘권을 행사한다. 정보총국장이 살해되면 그 원인을 파악할 때까지 임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협조하기를 바라는 모양인데…….”
말을 줄인 문바키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죽으면 무슈 강이 정보총국의 지휘권을 행사하게 되는 건데 내가 지금 협조할 이유가 있을까?”
당당한 문바키를 백발의 남자가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마치 지금 죽일 건지, 아니면 좀 더 살려 둘지를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재미있는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또, 그런 남자의 반응에 상관없다는 투로 문바키가 입을 열었다.
“최근 10년 사이 독재 정권의 숫자가 부쩍 늘었지. 그리고 선거가 있는 나라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 대통령 선출에 개입하는 경우도 많았고.”
달다 쓰다 대꾸하지 않았지만, 백발 남자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문바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언론, 정치, 영향력 있는 인물들에게 뿌리는 막대한 돈을 계산해 보면 굳이 아프리카를 차지할 필요도 없을 텐데 도대체 왜 첫 번째 목표가 아프리카였을까?”
“내게 묻는 건가?”
남자의 반문이 재미있다는 것처럼 문바키가 옅은 미소를 그렸다.
“대강 짐작이야 하지. 무능한 데다, 욕심 많은 대통령을 만들어 해당 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파탄 내면, 힘들어진 국민들이 분노를 터트릴 곳이 필요해지지. 결국, 전쟁을 원하는 게 아닌가?”
“그걸 굳이 내게 말하는 이유는?”
문바키의 설명을 백발의 남자는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로 치부하는 눈치였다.
“게르만의 집사가 그렇게 말하면 서운하지. 안 그런가? 하르트만 요하스?”
그러나 이어진 문바키의 지적에 남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법은 다르지만, 오래전에 비슷한 계획을 꾸몄다가 죽은 인간이 있지. 게르만의 후손이 먼저 죽은 유대인 주인의 뜻을 이루려 하다니 나름 감동적이긴 하군.”
비아냥이 분명한 문바키의 질문에도 요하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제조하는 값싼 마약, 폭력 조직을 통한 유통, 선거에 투입되는 막대한 자금, 독재자들의 선출과 자금 은닉, 국지전, 부족 전투, 내전, 지금까지는 꽤 흥미로웠어. 이제 결정적인 한 방을 내놓을 때가 된 모양인데, 역시 먼저 죽은 주인의 뜻을 잇겠다는 거겠지?”
“역시 정보총국장은 무섭군.”
알아줘서 고맙다는 의미처럼 문바키는 어깨를 들썩이며 양손을 벌렸다.
그다음이었다.
“이제 내가 죽는 일만 남은 건가?”
문바키가 질문을 던졌고,
“그보다는 좀 더 오래 살게 해 주지. 아주 오랫동안.”
요하스가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과 음성으로 답을 던졌다.
***
강성태가 귀국했다는 소식은 초대형 깃발에 적어 펄럭이는 것만큼이나 전국에 퍼졌다.
이병렬만 해도 징그러운 판에 강성태까지?
물론, 일반인들이야 알 길도 없고, 관심도 없는데, 반대로 여수 문상국은 그야말로 뒤가 타서 밥도 안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씨발.”
약쟁이들이란 게 워낙 잔인하고 반드시 앙갚음을 한다는 점도 문상국은 켕겼다. 막말로 이틀 뒤에 약 대 주는 놈들을 강성태에게 넘기고 나면 문상국은 그 좋다는 여수 밤바다를 돌아다닐 때도 뒤통수를 조심해야 한다.
어쩌지?
버티자니 신강남파가 징글징글하고, 약쟁이들을 넘기자니 소위 관리하는 구역에서조차 머리를 감추고 살아야 하고.
“뭔 씨발 깡패가 약을 못 돌리게 해?”
아무리 머리를 긁어 대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은 문상국이 억울하고 답답한 심정에 혼잣말을 뱉었을 때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조직원 한 놈이 안으로 들어섰다.
“대광이 형님 오셨습니다, 형님.”
“대광이 형님께서?”
반문하면서도 문상국은 삐딱하게 돌려 앉았던 회전의자에서 몸을 세웠다.
들어오라고 할 것도 없이 문상국이 몸을 세운 직후에 기다란 외투 안으로 화려한 머플러를 감은 조대광이 안으로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형님?”
“바쁘냐?”
“아닙니다, 형님. 이리 앉으십시오.”
책상 앞으로 돌아 나온 문상국은 상석을 조대광에게 권하고는 그 앞에 앉았다.
여수 수산시장 상인조합이라는 명목을 단 사무실이었는데 이름이 그렇지, 문상국의 개인 사무실이었다.
“차 하시겠습니까, 형님?”
“커피 말고 아무거나 주라.”
문상국이 시선을 돌리자 말귀를 알아들은 조직원이 상체를 깊숙하게 숙이고 방을 나섰다.
“어쩐 일이십니까?”
“호텔이랑 건물들 돌아보는 김에 얼굴이나 볼까 하고 왔다.”
“잘 오셨습니다, 형님.”
문상국이 고개를 조아릴 때였다.
문을 두드린 조직원이 들어와 찻잔을 놓아 주고 나갔다.
“드십시오, 형님.”
문상국의 권유를 받은 조대광이 몸에 밴 거만한 동작으로 흉터 가득한 손을 뻗어서는 녹차를 마셨다.
“힘들지?”
“예? 형님?”
“나 때만 해도 봉투 하나 찔러 주면 이거저거 걸리는 거 없이 먹고살았는데 요즘은 인터넷이니 뭐니 해서 뭐 하나 하려 해도 걸리는 게 워낙 많잖냐?”
“안 그래도 속이 터집니다, 형님.”
“흠흐흐.”
문상국을 이해한다는 투로 조대광이 소파의 팔걸이를 문질렀다.
“내 별명이 여수 삼치인 건 이 바닥이 다 아는 거니까 말할 거 없는데 사람들이 나를 왜 삼치라고 불렀는지 아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러나?
문상국의 시선을 본 조대광이 히죽 웃은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성깔이 지랄 같아서 죽으면 죽었지, 수족관에 안 살아서 삼치다. 나 한창때야 밀수는 말할 거 없고, 여자 잡아다가 팔아먹는 일이 흔했거든. 알지? 그때 번 돈으로 내가 관광호텔에 상가 건물 다섯 개를 움켜쥔 거.”
건물 하나를 뚝 떼서 주겠다는 건 절대 아닐 테고 뭔 말을 하려고 서두가 이렇게 길지?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문상국이 눈가를 좁히는 순간이었다.
“여수가 어디냐? 세상 사람이 다 아는 거북선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왕이 도망칠 정도로 조선을 다 잡아먹었던 쪽발이들도 이곳을 못 먹었어. 그런데 네가 신강남파에 고개 조아린다면 제일 먼저 거북선부터 치워야 하지 않겠냐?”
에라, 이 태풍에 쓸려서 삼치밥이 될 인간!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귀를 쫑긋했던 문상국은 튀어나오려는 거친 말을 꿀꺽 삼켰다.
“형님? 무슨 말씀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부산 깡치 형님도 제낀 놈들입니다. 인천, 광주, 부산, 다 잡아먹었고, 서울 재개발부터, 부천 중고차 시장까지, 대놓고 칼부림해도 구속 한번 안 되는 놈들을 어떻게 저 혼자 상대합니까?”
대신 문상국은 억울하고 갑갑한 심정을 있는 대로 털어놓았다.
“알지. 검찰하고 방송국이 신강남파를 싸고돈다는 거. 거기에 멕시코 공사인가 뭔가 해서 재벌들도 조심한다는 말은 들었지. 그래서 말인데.”
문상국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말을 뱉던 조대광이 상체를 기울였다.
“검찰이나 방송국, 재벌들도 한 수 접는 곳에서 너를 밀어주면 어떻게 할래?”
“예? 형님?”
“마약도 아니고 진통제 돌린 거 아니냐고? 우리야 진통제 좀 돌린 거라 처벌도 크지 않을 텐데, 밀고 온 놈들은 다른 거 아냐? 네가 마음만 굳게 먹으면 뒤는 내가 알아서 할 건데, 어떠냐?”
헛소리할 인간은 아닌데?
느닷없는 제안이라 문상국은 쉽게 답을 내지 못했다.
“네가 답답하게 나오니까 저쪽에서 나한테 다리를 놔 달라고 하더라.”
“약쟁이들이 형님을 찾아갔었습니까, 형님?”
“인마. 달호가 신강남파에 달려서 박살 났고, 네가 갔다가 빈손으로 왔는데 저쪽이 그걸 여태 몰랐을 거 같냐? 신강남파 이병렬이 이리 온다는 것도 다 알고 있더라.”
에이, 씨발! 큰일 났네.
문상국의 반응을 본 조대광이 비릿한 눈매로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저쪽에서 꽤 높은 곳에 힘을 쓴 모양이더라. 이리 와 봐.”
그런 뒤에 문상국을 불러서 귀에 대고 뭔가 속삭였다.
“예에?”
“쉿!”
놀라는 문상국을 향해 조대광이 검지를 입 앞에 세웠다.
“사람이 기회 여러 번 오는 거 아니다. 그러니 이참에 너도 신강남파랑 제대로 붙어서 은퇴할 기반 닦아야 하지 않겠냐?”
그런 뒤에 넌지시 문상국을 꼬드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