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52)
633화 우리 부원장님 건드리지 마! (2)
먼저 도착한 건 지프 한 대와 트럭 두 대를 이용해 달려온 외인부대 7연대 3중대 소속 중위와 대원 25명이었다.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중 강태산은 유명하다. 그리고 이름값은 이런 순간에 꽤 도움 된다.
“잠시 멈추고 그쪽에서 대기하세요.”
도착과 동시에 참혹한 현장에 놀란 중위가 강태산의 능숙한 프랑스어 요구에 따라 입구 앞에 멈췄다.
“전염병 같은 증세라고 생각하고, 적의 시체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대원들이 연구팀을 호위하고 있으니 대원 절반 정도를 그쪽으로 보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위님.”
먼저 외인부대에 협조를 구한 강태산은,
“이준호. 무전으로 상황 전달하고, 살로이. 외인부대 대원들과 가서 연구팀을 인솔해.”
이어서 이준호와 살로이에게 지시를 내렸다.
나름 빠르게 움직인 외인부대 대원 절반과 살로이가 출발한 다음이었다.
“대위님? 혹시 감염된 겁니까?”
“확정된 건 아닌데 감염됐을 수 있습니다.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해야 하니까 차량 지원을 더 요청하고, 연구팀과 대원들이 도착하면 먼저 가까운 기지로 이동하세요.”
“알겠습니다.”
외인부대 중위는 순순히 강태산의 지시에 따랐다.
무엇보다 외인부대원들의 희생을 확인한 데다, 지금 달려온 차량으로는 시신까지 수습하지 못하는 형편이라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뭐야?”
철컥!
그 외에 꿈틀대는 적을 발견한 외인부대 대원들이 총구를 겨누는 일도 있었다.
“쏘지 마! 그대로 두면 끝나니까 일단 지켜봐!”
검은 땅의 지배자, 강태산의 강한 요구였다.
외인부대 대원들이 총구를 거두었으나 놀라고 당황한 모습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하기는, 이미 죽었어야 할 상태에서 꿈틀대는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그것 외에 외인부대 대원들이 떠들어 댈 입도 문제였다.
“후-.”
갑갑한 심정에 강태산이 숨을 내쉴 때였다.
“대위님? 연구팀을 먼저 보낼 겁니까?”
이준호가 우리 말로 질문을 건넸다.
혹시 은밀한 대화를 위해 한국말을 사용하는 건가?
외인부대 중위와 대원들이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왜?”
“그런 거면 저도 남겠습니다.”
“아무렴 나 혼자 남겠다고 할 줄 알았어?”
“에이, 혹시 그런 건 줄 모르고 괜히 걱정했습니다.”
“대원들 출발하기 전에 탄약과 물을 확실하게 챙겨 놔.”
아차!
이준호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강태산은 깜박 잊고 있던 한 가지를 생각해 냈다.
“중위님? 차량 지원 올 때, 가능하면 많은 물을 가져다 달라고 전해 주겠습니까?”
“물이라면 음료수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최대한 많은 양을 부탁합니다.”
이번에도 외인부대 중위는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강태산의 요청을 무전으로 전했다.
상황이 하나씩 정리되고 있었다.
늘 이렇다.
그 잠깐 사이에 죽은 사람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말이다.
어쩐지 미안해져서 강태산은 양동식 소령 곁으로 움직였다.
뭐가 이래?
전투에 나서서 아군만 죽음이 비켜나갈 거라 기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전까지 강태산을 걱정해 주던 양동식이 뿌옇게 먼지가 앉은 모습으로 흙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은 아무리 전투의 결과라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양동식만이 아니었다.
기지 식당에서 함께 밥 먹던 대원들 또한 양동식의 옆을 차지하고서 길게 누웠다.
정말 방법이 없었을까?
연구팀을 데리고 피신하는 게 최선이었나?
조금만 더 현명하고, 좀 더 능력이 있었다면 이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강태산이 거칠어진 감정을 누르기 위해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대위님?”
이준호가 강태산의 시선을 당겼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기지 아래쪽에서 외인부대원들이 먼저 보였고, 이어서 임우람과 이쪽으로 다가오는 연구팀이 눈에 들어왔다.
“가서 상황 설명하고 기지로 출발시켜.”
“알겠습니다.”
강태산은 먼저 이준호를 보냈다.
“중위님. 먼저 출발하세요.”
“정말 괜찮겠습니까?”
“방금 움직인 대원과 함께 남을 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뒤에 외인부대 중위에게 출발을 권했다.
최소한 몇 명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나?
외인부대 중위가 미적거리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준호와 살로이라면, 강태산과 함께 피신이라도 하지. 여기에 외인부대원을 남겼다가 뒈지지 않는 적이 또 나타나면 공연한 희생만 늘어난다.
외인부대 중위가 공연히 강태산의 눈치를 살필 때였다.
연구팀에게 움직였던 이준호가 급한 걸음으로 돌아왔다.
“대위님? 로일 박사의 말이 웅덩이에 있는 아메바에 감염이 의심되는 거라면 굳이 남아 있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러고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주었다.
감염이 의심되는데 괜찮다고?
강태산이 시선을 돌린 기지 바깥에서 로일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전사한 아군을 이대로 두는 건 도리가 아니니까 여기에 남는다. 대신 너와 살로이는 나중에 나와 함께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외인부대 중대장이 출발을 위해 대원들을 지휘할 때였다.
기껏 돌아갔던 이준호가 이번에는 로일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참 번거롭게 하네.
가뜩이나 감정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전투에 지친 대원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고집을 피우는 모양새여서 로일을 지켜보는 강태산의 눈매가 곱지 않았다.
“웅덩이 물에 닿았다면 다른 반응이 있을지 몰라요.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조치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남아야 해요.”
“약이 있으면 주고 가세요.”
“그보다는 증세에 따라 비상약을 사용해야 해요. 그리고 이런 과정이 나중에 감염된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도움 될 거예요. 또 하나는 아까 무전으로 말했던 반응이 있을지 모르니까 남아서 확인할 필요도 있어요.”
조사와 연구를 위해 이곳에 왔으니 그녀의 뜻을 이해한다. 그러나 이곳에 또다시 적이 들이닥치면 로일은 완벽하게 짐이 된다.
“적이 다시 올지 모릅니다. 그때 박사가 있으면 피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먼저 기지로 가세요. 지원팀이 오면 바로 기지로 갈 겁니다. 이상한 현상이 보이면 기지에 돌아가서 말할 테니 그때 확인하세요.”
강태산의 요구를 들은 로일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긴 숨을 내쉬었다.
“대원들이 많이 지쳤습니다. 그리고 적이 언제 올지도 모르고요.”
“알았어요. 기지에서 봐요.”
더는 우기지 못한 로일이 강태산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몸을 돌렸다.
잠시 후였다.
지프와 트럭에 올라탄 일행이 출발했고, 숨을 몇 번 쉬고 나자 시야에서 사라졌다.
언제까지 양동식의 곁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서 강태산은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무전을 위해 헬멧을 교체했고, 탄창을 꺼내 확인했다.
“내가 경계 설 테니 둘이 먼저 쉬어.”
“차라리 커피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래도 좋고.”
짧은 대화 끝에서 강태산이 기지 입구로 시선을 돌릴 때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느닷없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또 오냐?
이번에는 그 정도로 긴박한 경고가 아니었다.
두근대지만 말고, 진짜 위험이 뭔지도 좀 알려 줘 봐!
염병!
그렇더라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이준호! 전투 대기!”
철커덕! 철컥! 철커덕!
강태산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표정을 확인한 대원 셋이 노리쇠를 당겼다.
“물을 있는 대로 가져다 놔!”
이어서 커피를 준비하려던 살로이가 바쁘게 움직였다.
차라리 여기로 와라.
오는 족족 목을 갈라 줄 테니까.
심장의 경고를 들었는데도 강태산은 오히려 독기를 잔뜩 눈에 담았다.
***
밤이 깊어지면서 석강호의 눈이 점점 더 아프리카에서 날뛰던 다예의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살인마!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만큼 눈을 번들거리는 석강호가 옥상 벽에 걸친 자세로 고개를 돌렸다.
“세상이 원래 더럽게 불공평해. 누구는 프랑스 부자의 집에서 태어나고, 또 누구는 알제리에서 도망쳐서 밑바닥에서 살고. 그런데 그게 우리가 바란 것도, 또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담요를 두른 채 웅크리고 있던 칼리드가 겨우 눌러 두었던 공포에 다시금 잡힌 얼굴로 석강호를 돌아보았다.
못 들은 척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워낙 살벌한 눈빛이라 괜히 무시했다가 호되게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기도 했다.
“뭐라는 거야?”
“그게…….”
강찬이 묻자 아랍어를 아는 빠스칼이 당황한 음성으로 내용을 전해 주었다.
“지금부터 아랍어로 하는 말을 그대로 전해 줘.”
지금 빠스칼이 본인이 하는 말을 번역해서 전달한다는 것 정도는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이쪽을 힐끔 보았던 석강호가 다시 고개를 가져갔다.
“칼리드. 끝이 없다는 뜻의 이름이지? 네가 여기에서 포기하면 평생 겁에 질려 끝나는 거고, 당당하게 맞서서 싸우면 마지막까지 너를 지켜 준 아버지의 용기를 빛나게 하는 건데, 어떻게 할래?”
아이가 선택하기에는 너무도 큰 용기가 필요한 질문이었다.
거기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와서일까?
칼리드의 커다란 눈에서 뜬금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느닷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울어?”
칼리드의 눈물을 본 석강호가 히죽 웃었다.
“그러지 말고 여기 있는 사람들을 봐.”
급하게 소매로 눈물을 닦은 칼리드가 최면에 걸린 것처럼 시선을 움직여 강찬, 제라드, 빠스칼을 차례로 보았다.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려고 이러고 있지. 너를 구해서 이리 데려온 것처럼.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설마 아이에게 총을 쏘라거나 탄창을 채우라는 건 아닐 거다.
아무리 무식해도…….
“총소리, 미사일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도 절대 소리 내서 울지 마. 그게 적들에게 우리 상황을 알려 주니까. 할 수 있겠어?”
아무렴 아이 울음이 이곳의 상황을 적에게 알려 주겠나. 그러니 저런 당부를 하는 데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겠다.
칼리드는 답이 없었다.
겁에 질린 아이가 대뜸 그러겠다고 답을 하기도 어렵겠다. 그런 면을 이해해서인지 석강호는 더 이상 답을 기다리지 않고서 히죽 웃은 뒤에 시선을 가져갔다.
실제로 적이 오는지 감시해야 하는 형편이기도 했다.
뭐, 어쨌든 결과가 시원찮은데 그래도 상관없다.
아이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주절댄 석강호의 노력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니까.
관심을 끈 강찬이 어둠 속에 잠긴 예멘의 에덴을 돌아볼 때였다.
“약속할게요.”
어둠에 눌린 것처럼 나직한 칼리드의 음성이 강찬의 시선을 당겼다.
힐끔 시선을 준 곳에서 어깨에 둘렀던 담요를 풀어낸 칼리드가 석강호를 향해 몸을 세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용기를 빛내는 사람이 될 거예요. 그래서 나도 나쁜 놈들을 모조리 죽일 거예요.”
“푸흐흐흐.”
염병, 애를 살인마로 만든 꼴인데 웃음이 나오냐?
생각은 그런데 둘을 지켜보는 강찬 역시 피식하는 웃음이 나왔다.
버텨라, 칼리드. 어떡해서든.
괜히 용서니 뭐니 하는 생각 따위 하지 말고, 용기 내서 세상과 맞서. 진짜 용서는 힘을 길러서 죽기 직전까지 패 준 뒤에 살려 달라며 울고불고 매달리는 놈들을 보며 고민하는 거다.
이왕이면 깔끔한 뒤처리를 위해 불쌍한 심정을 품고서 죽여 주는 게 최선이고.
피식 웃은 강찬이 맡은 구역을 향해 시선을 돌린 직후였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가슴 전체를 울리는 것처럼 심장이 커다랗게 뛰었다.
“제라르! 다예! 온다!”
강찬이 짧게 말을 건넨 다음이었다.
철컥! 철커덕!
두 놈이 반사적으로 노리쇠를 당겼다.
“다예. 칼리드를 옥상 문 안쪽에 데려다 놔. 그리고 상황 봐서 태산이가 말한 적들이 오면 제라르, 네가 빠스칼과 함께 욕실로 내려가고.”
강찬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석강호가 칼리드를 안았다.
다시금 두려움에 사로잡힌 얼굴로 석강호에게 들린 칼리드가 확인처럼 시선을 돌렸고, 강찬과 눈이 마주쳤다.
피식.
‘이럴 때 웃을 수 있어요?’
아이의 눈이 그렇게 묻는 것처럼 보였다.
“너는 반드시 살려 준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
한국말로 강찬이 던진 말을 옥상 문으로 움직이는 석강호가 아랍어로 빠르게 전했다.
문을 나서기 직전이었다.
“대장! 반드시 살아나는 걸 어떻게 아는 거냐고 묻습니다.”
칼리드를 안은 석강호가 고개를 돌리고 우리 말로 물었다.
“내가 죽음을 결정하는 사람이니까.”
강찬은 칼리드가 이해하지 못할 짧은 답을 던졌다.
진짜 짧은 답이었는데 그걸 설명하는 석강호의 아랍어가 꽤 길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갓 오브 블랙필드”라는 닉네임이 흐르는 것처럼 들렸다.
그 직후였다.
이럴 여유가 있어?
그러지 말고 피해!
두근두근. 두근두근.
강찬의 심장이 좀 더 강하게 뛰었다.
진짜 시작이네.
철커덕!
어둠을 향해 선 강찬은 노리쇠를 거칠게 당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