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55)
636화 더 블랙은 혼자 임무를 수행한다 (2)
예멘의 부통령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말을? 그러니까 우리 말을 했다는 거지? 아랍어를?”
– 담당 병사 이야기로는 이란이나 이라크 출신으로 생각할 정도로 완벽했답니다. 거기에 우리 군복을 입고, 최신 지프를 이용했는데 안에 무기가 가득했다는 보고였습니다. 아! 신분증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보고를 들으며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요구했던 사항을 떠올렸다.
– 무슈 강이 동원하는 병력과 맞서려면 우리 국방력의 절반 이상을 동원해야 하는데…….
사우디아라비아가 꼬리를 마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면서 이미 평화유지군이 두 팀이나 예멘으로 출발했다고 했었다. 심지어 몇 시간만 지나면 도착한다.
–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 한국인이 납치되거나 살해될 경우, 무슈 강과 평화유지군에게 완벽하게 명분을 주게 되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개별적으로 입국하는 한국인이 있으면 절대 손가락 하나 다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시오.
이어진 통화의 마지막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담당자가 특히 당부했던 내용이었다.
홀로 달려오는 한국인이 있으리라는 점을 당시 통화에서 이미 짐작했다니?
무섭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보력은.
그 정도의 정보력을 지닌 사우디아라비아마저 한 수 접어 주는 무슈 강이라는 인물과 평화유지군을 상대로 달려들어? 가뜩이나 반군에게 밀리는 상황에서?
생각의 끝에서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화들짝 정신을 붙들었다.
“모른 척 넘어가! 혹시 그 남자가 다시 나오더라도 절대 건드리지 말고, 만에 하나 요구사항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협조하라고 지시해! 알았어?”
– 알겠습니다.
상대방의 답을 들은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는 반쯤 마음을 놓았다.
“현지 상황은?”
-외곽에서 지켜보는 상황이라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현재는 대치 상태입니다.
“네 명이라고 하지 않았어?”
– 예. 현재 사상자가 얼마나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반군의 절반 이상이 사망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후우-.”
무슨 전투하는 기계들도 아니고, 넷이서 이렇게 버틴다?
“다시 말하지만, 조금 전에 들어갔다는 동양인과 무슈 강 일행이 지나치더라도 그들을 자극하는 일이 없어야 해. 알았나?”
– 알겠습니다.
“특별한 사항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그나마 통화의 끝에서 체면을 지켜 낸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는 보안 전화기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걸 사우디아라비아 정보국에 알려 줘야 하나?
보안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따르릉. 따르릉.
그래도 명색이 부통령인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의 책상에 올려놓은 보안 전화기가 다시 울었다.
뭐야? 일이 생긴 거야?
철컥.
그는 빠르게 수화기를 들었다.
“부통령이다.”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가 급한, 그러나 직책이 지닌 무게를 잃지 않은 음성으로 대꾸한 다음이었다.
–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 부통령? 나는 하르트만 요하스라는 사람이오.
“누구시라고……?”
– 게르만의 집사라고 하면 아시겠소?
‘히이익!’
어쩐지 억양이 이상하더라니!
상대가 신분을 밝히는 순간에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는 오른손으로 입을 움켜쥐었다.
– 대통령궁 보안 전화기를 바로 이용했다는 사실로 내 신분은 증명했다고 생각하고, 제안할 게 있는데 들어 보겠소?
“흐음.”
막말로 찌글찌글한 예멘의 보안 전화기쯤 프랑스 정보국 수준이면 누구나 뚫는다. 그렇더라도 게르만의 집사라 알려진 아랍 세상의 그림자 이름을 함부로 팔 사람은 별로 없다. 혹여 지금 통화하는 사람이 게르만의 집사라는 호칭을 함부로 도용한 사기꾼이라면, 진짜 하르트만 요하스에게 잡혀 갈기갈기 찢겨 죽는 결말밖에 남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 믿어 본다.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 현재 에덴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곧 끝납니다. 그 전에 외곽을 경비하는 정부군을 투입하시오. 반군이 일으킨 전투를 진압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반항하는 인물들을 반군으로 판단해 사살한 거, 그게 전부요.
뭔 미친 소리야?
“한국과 아프리카에서 평화유지군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 호오. 많이 아시는구만.
아무리 찌그러진 나라라고 해도 부통령을 이토록 대놓고 무시할 수는…, 있다. 하르트만 요하스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 그곳에 있는 중요 인물 중 한 명이 지금 위기 상황이오. 뛰쳐나올 수밖에 없으니 당장 반군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도 없지 않겠소?
“평화유지군이 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넷, 그중에서 무슈 강이라는 한국인이 죽으면 정보총국의 운영권이 넘어오지. 행방을 알 길이 없어도 마찬가지고. 정보총국이 지원한다면 예멘이 어떻게 바뀔까?
“정보총국이 우리를 지원하겠다는 보장을 해 줄 수 있습니까?”
– 지금 당장 부통령 계좌에 미화 2천만 달러를 입금하지. 그보다 확실한 보장이 있겠소? 거기에 신분 세탁을 통해 원하는 나라에서 지내게 해 주겠소. 부통령과 부통령이 지정하는 인원 모두.
이 사람과 손을 잡으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는 완전히 끝난다.
어떻게 하지?
– 고민이 되는 모양인데 5분 뒤에 전화하지요.
상대는 확실히 독사였다.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의 속을 읽은 것처럼 전화가 뚝 끊겼다.
사람 감정 참 묘하다.
전화가 끊어지는 것과 동시에 마치 손안에 있던 미화 2천만 불이 훌쩍 날아가는 느낌이어서 마호메다 압둘라 하디는 연달아 입맛을 다셨다.
‘괜찮아.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조건이잖아? 개인적으로 빠져나간 거니까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에 뭐라 할 건 없잖아? 막말로 사우디아라비아도 예멘을 함부로 버리지는 못해. 알지?’
마음 한쪽에서 2천만 달러가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를 꼬드겼고,
‘정신 차려. 평화유지군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손잡고 달려들면 식사, 샤워, 하다못해 화장실에서라도 머리통에 구멍 나서 죽어! 평화유지군 몰라? 아프리카의 지배자가 달려들면 감당하겠어?’
묘하게 이마 한중간이 따끔거리는 느낌이어서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는 땀을 닦는 척하며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환하게 밝혀 놓은 부통령실에서 자리를 지킬 것이냐, 어둠에 물든 바깥으로 나갈 것이냐, 선택은 오로지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의 몫이었다.
***
이런 날이 올 거라 늘 가슴 한쪽에 준비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각오했더라도 막상 현실로 마주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얼마나 독해지면 저럴까.
석강호를 등에 업고 자세를 세우는 강찬의 눈빛과 표정에 아예 감정 따위 전혀 담기지 않았다. 석강호를 붙들어 주었던 제라르가 버릇이 된 것처럼 볼을 씰룩였고, 빠스칼은 숨소리조차 조심했다.
재킷과 벨트, 소총의 고리를 이용해 석강호를 묶은 다음이었다. 성큼성큼 움직인 제라르가 모하메드 칼리드를 들어서 등으로 돌렸다.
“꽉 잡으라고 말해 줘.”
그가 지시하자 빠스칼이 콧소리 묻은 억양으로 말을 전했고, 칼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컥. 철커덕.
노리쇠를 거칠게 당긴 강찬과 제라르가 마지막일지 모를 시선을 서로에게 주었다.
씨익.
제라르의 볼에 새겨진 상처가 우그러지며 강렬한 미소를 그려 냈는데 백 마디의 말보다 강렬하게 놈의 의지와 각오가 강찬에게 건너왔다.
‘마지막일지 모르지만, 제게는 미안해할 거 없습니다, 대장. 지금껏 함께한 거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위에서 쏟아지는 총알과 미사일을 뚫고 달려야 한다. 누가 죽을지, 또는 누가 살아남을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짐작해서 나온 미소와 눈빛이었다.
멍청하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석강호의 숨결이 끊어지는 걸 멍청하게 보고 있지 않을 거니까.
계단으로 시선을 돌린 직후였다.
후욱. 후우-욱.
이전과 확연하게 다를 정도로 기다란 숨소리가 강찬의 심장을 통해 파고들었다.
“간다.”
“위. 카피땐.”
제라르의 답을 들은 강찬이 걸음을 내디딜 때였다.
부으으응! 끼이이익!
어둠을 뚫고 거친 엔진 소리와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거의 비슷하게 강찬에게 달려들었다.
***
밀어붙인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밀리는 기색을 보이게 된다면, 먼저 이용우가 죽고, 다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부원장이 위험에 빠진다.
정부군의 바리케이드를 지난 이용우는 그대로 내쳐 달렸다.
“헤이!”
반군 복장으로 소총을 든 남자가 앞을 막아섰는데 상향등을 번쩍인 이용우는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그아아아앙-.
“야아-!”
급하게 몸을 던져 지프를 피한 남자가 고함을 질렀으나 그건 이용우가 알 바가 아니었다.
끼기긱. 끼긱.
급하게 비틀린 골목을 따라 핸들을 두 번 돌린 다음이었다.
부으으응!
반사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았던 이용우는 잔뜩 몰려 있는 반군을 보고는 다리가 저릴 정도로 브레이크를 세차게 밟았다.
끼이이익!
한쪽으로 피하려던 눈치였는데 골목이 좁은 데다 제법 몰려 있던 탓에 하마터면 앞에 있는 두 놈을 받을 뻔했다.
‘갑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이 바짝 올라와서 이가 드러날 정도로 인상을 긁은 이용우는 운전석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사이 몰려 있던 반군들이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이용우와 지프를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이용우는 떨어진 곳에 선 놈들이 힐끔대는 건물 옥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런 개새끼들이?
고작 이따위 반군 놈들이 전설의 우리 부원장님을 곤경에 빠트렸다는 거야?
너희는 조금 뒤에 보자.
“뭐야? 어떻게 됐어?”
“예? 누구신지……?”
대답 대신 수상쩍은 눈초리를 날리는 놈들 앞에서 이용우는 조수석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는 거칠게 문을 열고 상체를 안으로 넣었다.
먼저 AK-103의 개량형 소총을 두 개 집어서 등에 X자로 걸쳤고, 이어서 탄창을 집어서 앞주머니와 허리띠에 줄줄이 끼워 넣었다. 이어서 권총을 집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고, 수류탄을 세 개나 상의 앞주머니에 걸었다.
저 인간은 정체가 뭐야?
정부군 복장에, 동양인인데, 아랍어가 능숙하고, 반군은 구경하기조차 어려운 최신형 무기들을 ‘장난감 뽑기 기계’ 고수처럼 줄줄이 꺼내고 있어서 다들 눈치만 살필 뿐,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다.
정부군은 아니다. 가장 먼저 정부군 혼자 반군들 한 중간으로 달려와서 저렇게 무기를 꺼낸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것도 동양인이 아닌가.
저런 동양인 정부군 간부나 대원이 있다면 예멘에서 그를 모를 사람은 없다.
정말 뭐야?
이제는 경이롭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반군들 앞에서 뒷문을 연 이용우는 람보처럼 촤르륵, 거리면서 탄창을 어깨에 둘렀다. 그런 뒤에 탄창이 연결된 M249 중기관총을 아이처럼 안고서 몸을 세웠다.
철커덕.
저 노리쇠를 여기에서 왜 당겨?
반군들이 경계하는 눈으로 볼 때였다.
“어디야?”
이용우는 이런 순간에 정말 위력을 발휘하는 능숙한 아랍어로 질문을 던졌다.
“예?”
“장난해? 내가 해결해야 하는 놈들이 어디 있냐고 묻잖아?”
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긴다.
일부러 그런 표정을 지은 게 아니라 실제로 필요하다면 중기관총을 당겨서 여기에 있는 반군을 모조리 죽여 버릴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중기관총의 노리쇠를 당겨 놓았다.
“뭐 해? 대답 못 하겠어?”
“그게 아니라 원래는 밀고 들어가야 하는데 적 한 명이 부상이 심해 놈들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어서 기다리는 중입니다.”
“부상이? 그럼 셋만 잡으면 되나?”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있습니다.”
에라, 이 씨발 새끼들아!
이런 시가전에서 아이를 구해 낼 만큼 인간미 펄펄 풍기는 분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싶냐?
하마터면 이용우는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그래서 방아쇠에 걸린 검지를 꿈틀거렸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또 반군들을 두렵게 만든 모양이었다.
“저격수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잠깐 여기에서 기다리셨다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저격수?”
“예. 특수군 출신 저격수가 위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깨에 걸어 뒤로 돌린 소총 두 개와 몸에 건 탄약과 수류탄들, 안고 있는 M249의 무게가 갑자기 이용우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야, 이 씨발!”
이용우는 대뜸 우리말로 욕을 뱉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씨발’은 이제 국제적으로 통용된다고 믿어도 될 만큼 아랍 세계에도 유명해진 욕이었다.
한국인?
반군들의 시선이 이용우의 얼굴에 꽂히는 순간이었다.
“저 새끼들을 잡으러 한국에서 날아왔는데 저격수 새끼한테 양보하라고? 저격을 해도 내가 해! 어디야? 어디냐고! 저격수 새끼 있는 곳이?”
“그게 저기 3층인데…….”
반군 하나가 더러운 손으로 가리킨 건물을 확인한 이용우는 급한 걸음으로 달렸다.
쩔걱쩔걱.
들고 있는 중기관총과 몸에 걸린 무기들이 요란하게 울리며 이용우를 짓눌렀다. 그러나 과거에 받았던 훈련에서 이 정도는 가벼운 식전 운동으로 취급할 수준이었다.
콰앙!
대놓고 문을 걷어찬 이용우는 계단을 향해 뛰었다.
“뭐야?”
저격수를 지키는 놈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비켜! 안 그러면 죽여 버릴 테니까! 그리고 저기 있는 놈들은 내가 해결할 거니까 다들 얌전히 있어!”
거친 대꾸, 람보나 코만도도 아닌데 무기를 주렁주렁 달고 중기관총을 든 모습, 동양인, 아래층 반군을 뚫고 달려왔다는 현실을 인식한 모양으로 계단을 막았던 놈이 옆으로 밀려났다.
쩔걱쩔걱. 쩔걱쩔걱.
‘개새끼야! 절대 방아쇠 당기지 마라!’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뛰어오른 이용우가 3층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철컥.
오른쪽 문을 지키던 놈이 소총을 돌렸다가 이용우의 모습을 보고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비켜! 저 새끼들은 내가 잡아!”
죽일 수 있지만, 자칫하면 저격수를 반항하게 만든다.
아랍어로 고함을 지른 이용우가 문을 지키는 놈을 밀치는 순간이었다.
푸슝! 푸슝!
밖에서 MP5SD 계열의 소총 소리가 울렸다.
늦으면 저격수가…….
콰아아아앙!
문을 거세게 걷어찬 이용우가 안으로 훅 뛰어든 직후였다.
창을 통해 밖을 노리던 저격수가 놀란 얼굴을 이용우에게 돌렸다.
“개새끼야!”
우리말로 욕을 뱉은 이용우는,
철커덕.
안고 있던 M249 중기관총의 총구를 저격수를 향해 돌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