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57)
638화 이 새끼, 혹시 사고 친 거야? (1)
띵띵띵띵.
좌석의 머리 위에서 시그널이 번쩍이며 특유의 알람이 연달아 울렸다.
[잠시 후 우리는 예멘의 에덴 공항에 착륙한다. 상황이 급변한 관계로 예멘의 반군 수장을 체포하는 임무를 잠시 미루고, 착륙과 동시에 공항 건물로 진입한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우리 요원들을 보호한다.]이래서였구나.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좌석에 앉아 소총을 품었던 신동철은 윤상기가 마지막까지 작전 브리핑을 미뤘던 이유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교전이 벌어지면 대원들 판단에 따라 발포한다.]예멘인데?
놀라움은 연속이었다. 이번 지시를 풀어 설명하면 아예 전쟁통 한복판에 떨어진 상황과 같고, 그에 맞춰 행동하라는 의미였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인물은 위독한 상태의 암호명 석 선생, 전 외인부대 사령관 제라르 드 미르미에.]“우-.”
제라르의 이름과 신분이 나오기 무섭게 대원들 틈에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프랑스 정보총국 예멘지부장 빠스칼 쟌 르 본.]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마지막으로 전 국가정보원 부원장, 암호명 무슈 강이자 특수부대의 전설 갓 오브 블랙필드라는 분이다.]그런 분이 예멘에 있었다고?
점점 더 강도를 높이던 놀라운 소식들의 마지막이 전달된 다음이었다.
기아아아아앙-.
기다렸다는 것처럼 엔진음을 높인 비행기가 왼편 날개를 아래로 떨구고 커다랗게 방향을 틀었다.
[어려운 임무다. 다시 한번 지원해 준 대원 여러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먼저 전한다. 착륙 전에 마지막으로 각자 무기와 새로 지급한 음료 팩을 확인한다.]띵띵띵띵. 띵띵띵띵.
방송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알람이 연달아 울렸고, 이어서 비행기 안을 밝히던 조명이 빠르게 꺼졌다.
밝은 곳에 있다가 어두운 장소에 나서면 순간적으로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다. 그래서 민간 항공기도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야간 착륙에서는 조명을 낮춘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상황과 임무가 쉽지 않은 상태여서 대원들 얼굴에 긴장과 각오가 동시에 피어올랐다.
철컥! 철커덕!
신동철은 권총과 소총의 노리쇠를 당겨 상태를 확인했고, 이어서 방탄조끼에 걸어 둔 무기들을 매만졌다.
그아아아앙-. 드득. 드드드드드드득-.
빠르게 내려앉던 비행기가 활주로를 요란하게 달릴 때였다.
힐끔, 바깥으로 고개를 돌린 신동철은 어둠을 덮어쓰고 조용하게 웅크린 공항 청사를 눈에 담았다.
어둠 속에서 웅크린 공항 청사가 외로워 보여서일까?
‘어머니. 나 잘하고 돌아갈게.’
신동철은 먼저 집에 혼자 있을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기도할 때 모친의 손에 걸렸던 기다란 묵주와 맞은편에서 기도를 지켜봐 주던 성모마리아 상이 어머니를 지켜 주기를 바랐다.
드드드드드드-. 휘이이이-잉.
활주로 끝까지 달린 비행기의 엔진음과 속도가 확연하게 줄어들 때였다.
‘당당하게 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동철은 아프리카에서 처절하게 버틸 강태산과 동료들을 생각하며 다짐을 전했다.
마음의 준비를 모두 마친 다음이었다.
속도를 완벽하게 줄인 비행기가 공항 건물을 향해 움직였고, 그와 동시에 비행기 앞쪽 통로에서 장교 한 명이 나왔다.
헬멧, 방탄조끼, 소총과 권총에 대검, 수류탄과 탄창을 주렁주렁 매달아서 지휘관이라기보다는 전투 대원처럼 보였다. 그러나 쭉 찢어진 눈과 검게 탄 얼굴, 거기에 연륜과 경험을 위장크림처럼 덕지덕지 덮어쓰고 있어서 누가 봐도 진짜 야전 지휘관이었다.
“대원 차렷! 경례!”
누군가 외친 지시에 앉은 자세에서 신동철이 손을 올렸고, 앞에서 나온 윤상기가 단단하게 대원들에게 답례했다. 그리고 그는 사명감에 불타는 눈으로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한마디만 당부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모두 함께 돌아간다. 여러분과 함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 영광이다. 이상.”
길지 않은 당부이자 바람이었다. 그런데 윤상기의 강렬한 눈빛과 산전수전 다 겪은 야전 지휘관의 껄껄한 음성이 더해지자 신동철을 비롯한 대원들이 품었던 각오가 더욱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
철커덕.
말이 필요 없다는 듯 윤상기가 소총의 노리쇠를 당겼고, 교육받은 대로 대원들 역시 전투 상황에 대비해 마지막으로 무기들을 점검했다.
“앞에 대원 둘! 입구를 확보해!”
윤상기가 지시한 앞쪽 대원 둘이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로 향한 다음이었다.
[도어 오픈.]기내 방송을 통해 기장의 멘트가 나왔다.
이미 대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완벽하게 전투에 대비한 상황이었다.
윤상기가 입구에 선 대원 두 명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란 레버를 아래로 누르면 비행기의 도어가 열린다.
대원 한 명이 레버를 누르는 순간, 십여 개의 소총이 입구로 향했다.
덜컹, 밖으로 밀려난 문이 옆으로 벌어지면서 게이트 통로가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대장?”
경험과 연륜, 관록을 위장크림처럼 덕지덕지 바른 완벽한 야전 지휘관 윤상기가 믿기 어렵다는 것처럼 입구에 선 사람을 불렀다.
“고생했어.”
얼핏 보면 아들뻘이잖아?
저 젊은 사람이 전설의 갓 오브 블랙필드는 아닐 건데?
생각은 그런데 다만, 눈빛만큼은 세상 그 누구를 앞에 데려다 두어도 절로 시선을 떨굴 정도로 강렬한 남자였다.
힐끔대는 대원들 앞에서 윤상기는 올라오는 감정을 억지로 누르는 얼굴이었다.
“석 선생은 어떻습니까?”
“드라큘라처럼 내 피를 처먹고 잠들었지.”
이어진 윤상기의 질문에 대원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대꾸가 건너왔다.
“영감님과 곽철호도 곧 도착한다니까 이제 움직일까?”
“알겠습니다.”
영감님도 그렇지만 곽철호를 또 그냥 이름만 달랑 불러?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대원들 앞에서 윤상기는 완벽하게 직속상관을 마주한 태도로 젊은 남자를 대하고 있었다.
***
아직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고속도로였다.
참 오래 달린다 싶은 순간에 헤드라이트의 조명을 받아 파랗게 빛나는 이정표에 ‘여수’라는 글자가 보였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여수가.
“멀긴 머네.”
이병렬이 새삼스럽다는 투로 혼잣말을 뱉었을 때였다.
“진짜 예전에는 여자들 납치해서 팔았어?”
강성태가 건넨 질문에 이병렬이 시선을 주었다.
“취업을 위해 올라오는 여자들 노리고 역이나 터미널에서 작업하는 개새끼들이 주종이기는 했는데, 거, 왜 뉴스에도 나오고 했었잖아? 갑자기 승합차 세우고, 길 가는 여자 냅다 납치하는 거.”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돌린 이병렬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야비한 새끼 중에는 자기가 사귀던 여자들 데리고 와서 푼돈 받고 넘기는 놈들도 있었고.”
“그럼 당한 여자들은 어떻게 됐냐?”
“말해 뭐 해.”
빠르게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이병렬이 쓴 약을 삼킨 사람처럼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오늘 삼치 형님 좋게 끝나기는 글렀네.’
답을 들은 강성태의 눈빛이 서늘하게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묵직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승용차가 여수로 향하는 진입로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시내를 뚫고 달리는 틈에 슬며시 어둠이 밀려나는가 싶더니, 터널과 다리를 건너 바다가 보이기 시작할 때는 어느새 날이 뿌옇게 밝았다.
밤새 운전한 조봉진은 여수항이 내려다보이는 가게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1층은 횟집, 2층은 커피숍으로 된 건물이었다.
“아후.”
강성태와 함께 차에서 내린 이병렬이 어깨를 뒤로 젖히며 나직한 탄성을 뱉었다. 듬직하게 서 있기는 해도 김진용 역시 온몸이 뒤틀리는 건 마찬가지지 싶었다.
풍광은 참 좋았다. 그리고 새벽의 눅눅함이 묻어 있던 지난밤이 비릿한 바닷바람에 쓸려나가고, 빈자리를 새로운 날의 활력이 조금씩 차지하고 있었다.
“바다 좋네.”
항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끝으로 움직인 이병렬이 담배를 꺼냈다.
찰칵.
“후우-.”
김진용이 내민 라이터에 고개를 숙였던 이병렬이 연기를 길게 뿜었다.
그 직후였다.
인도를 따라 급하게 달려온 덩치 셋이 강성태 일행을 향해 상체를 깊게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충일이 형님 지시받고 온 순천 이막재입니다, 형님.”
인사 참 거창하다.
급하게 인사한 놈이 뭔가 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빠르게 입을 열었다.
“옆에 있는 횟집으로 오시는 줄 알고 그곳에서 기다리는 바람에 바로 인사 못 드렸습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형님.”
“우리가 그곳에서 보기로 했었냐?”
“아닙니다, 형님.”
“아니기는 씨발. 봉진이 새끼가 차를 잘못 댄 거구만. 됐고. 이제 어디로 가면 되냐?”
조봉진이 옆 건물에 차를 세우는 바람에 기다리던 덩치들이 달려온 거라는 상황이 이병렬의 한마디로 완벽하게 이해됐다.
“대광이 형님은 어젯밤에 술을 드시고 저 아래 관광호텔에서 주무십니다, 형님.”
“삼치 형님 혼자 마셨어?”
“손님이 있기는 했는데 누군지는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이막재는 진짜 한 아름 되는 통나무를 세워 놓은 체형이었다. 그 탓에 정장을 입었어도 유난히 촌스러워 보였는데 반대로 얼핏 봐도 깡패구나 싶은 인상을 풀풀 풍겼다.
뒤에 선 두 놈도 체형과 인상은 비슷했는데 그런 세 놈이 또 최대한 공손한 표정과 태도를 하고 있어서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었다.
“데리고 있는 동생들은?”
“수발드는 애들 두 명 있는데 생활하지는 않습니다, 형님. 그리고 형님. 동생들을 호텔 앞에 둬서 내려오시면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형님. 기다리시기 지루할 테니 아침 먼저 드시면 어떻겠습니까, 형님?”
어떻게 하지?
강성태의 의견을 묻는 것처럼 이병렬이 시선을 주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급할 거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았으니까.
강성태는 공손한 태도로 결정을 기다리는 덩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막재라고 했지?”
“예, 형님.”
강성태가 이름을 기억해 준 것만으로도 황송하다는 것처럼 이막재가 고개를 급하게 숙였다.
“뒤에 있는 식구들은 이름이 어떻게 돼?”
“예? 형님?”
이름을 물을 거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못 했다는 반응이었다.
“여기 동생이 제 한 다리 아래 고상래고, 형님.”
“고상래입니다, 형님.”
“이 동생은 상래 또래 변기용입니다, 형님.”
“안녕하십니까, 형님? 변기용입니다, 형님.”
한숨이 절로 나올 소개와 번거로운 인사가 있었는데 강성태는 이막재부터 시작해 인사하는 순서대로 손을 내밀어 한 명씩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이렇게 얼굴 본 김에 부탁 하나 하자.”
“뭐든 말씀만 주십시오, 형님.”
지시만 하면 당장 달려가서 조대광에게 칼이라도 주겠다는 것처럼 이광재의 눈에 독한 각오가 피어나 있었다.
“우리 일반인은 절대 건드리지 말자. 동생들 통장에 들어가는 돈 손대지 말고. 마지막으로 우리 구역에서 엉뚱한 놈들이 약 팔고, 돈놀이하는 것만은 막자. 쉽지 않을 테니까 힘들면 바로 연락 주라. 부탁한다.”
“아닙니다, 형님. 무슨 일이 있어도 형님 말씀을 뼈에 새겨서 반드시 말씀 주신 대로 살겠습니다, 형님.”
‘염병, 또 보스의 열성 추종자 셋 생겼네.’
감동해서 볼을 씰룩이며 답하는 이막재를 보며 픽 웃는 이병렬의 표정과 눈매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분위기를 바꾸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여기는 뭐가 맛있냐?”
“물메기로 만든 탕이 있습니다, 형님. 모시겠습니다, 형님.”
이병렬이 묻고 이막재가 답한 직후였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이막재의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 우는 소리가 울렸다.
“괜찮으니까 받아.”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몸을 돌린 이막재가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갔다.
“여보세요? 그래? 알았다.”
정말이지 짧은 통화였다. 그리고 통화를 마치고 몸을 돌린 이막재의 표정에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대광이 형님이 커피숍에 내려왔답니다, 형님.”
“거기 있는 숫자는?”
“예? 형님?”
“혼자 있지는 않을 거 아냐?”
“아, 예, 형님.”
이어서 실례한다는 말과 함께 이막재가 급하게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짧은 통화였다.
“상국이 형님이 여수 식구들 열 명 정도 데리고 왔고, 형님. 어젯밤에 함께 술 마신 남자 두 명도 함께 있답니다, 형님.”
통화 내용을 들은 이병렬이 픽 웃었다.
“지금 호텔로 가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너희는 차에서 내리지 마.”
“아닙니다, 형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형님.”
“시끄러워, 이 새끼야. 다른 건 몰라도 삼치 형님 일에 끼면 족보 씹었다고 나중에라도 너희 셋한테 시보레할 수 있어서 그런 거니까 얌전히 있어. 알았어?”
“예, 형님.”
최악에는 유치장이든, 구치소든 달려갈 수 있는 상황이라 셋을 빼낸 모양이었다. 하여간 조직 세계에서의 이런 배려와 능숙한 대응만큼은 강성태가 배워야 할 모습이었다.
“가셔야지, 보스?”
강성태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재촉한 이병렬이 승용차를 향해 움직였다.
얼른 가서 차를 빼야 하지 않냐?
그런데 또 이막재는 강성태 일행을 위해 문을 하나씩 잡고 열었으며, 상체를 깊게 숙인 뒤에야 문을 닫았다. 그런 뒤에 차를 꺼내기 위해 죽어라 뛰었다.
저런 모습을 없앨 방법은 없나?
나직하게 숨을 내쉬는 사이, 이막재와 동생 둘이 탄 승용차가 도로로 나왔다. 그리고 당연하게 조봉진이 그들이 탄 승용차를 따라 움직였다.
언덕에서 여수항 시장으로 내려가는 도로였다.
새벽이라 차가 별로 없어서 나름 빠르게들 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서울에서의 조급함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진용아.”
“예, 형님.”
“너는 이 새끼야. 문상국이 싸가지 없이 말해도 느닷없이 머리통 깨지 말고 이번엔 좀 지켜봐. 알았냐?”
“예, 형님.”
이게 과연 신강남파 넘버 투와 세상이 다 알아주는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나눌 대화인가 싶은데, 이 역시 최악의 상황을 짐작한 이병렬이 미리 조율하는 과정이라 보는 게 적당했다.
이리저리 구부러지는 도로의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다, 섬처럼 보이는 작은 산과 주변 산책로, 식당과 커피숍, 인도로 잘 정비된 여수항을 보며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호텔 가졌다며?
건물도 세 개인가 네 개 있고.
젊은 날, 인신매매를 포함해 온갖 추악한 짓을 했고, 그 덕에 개 같은 호텔과 건물 쥐고서 떵떵거리며 살았다면, 삶을 짓밟혔던 사람들에게 죄스러워서라도 반성이나 참회라는 걸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당장 뒈져도 모자랄 판에 마약을 뿌려서라도 더 쥐고 싶던?
차창에 비친 강성태의 눈이 점점 더 서늘하게 내려앉았고, 그 모습을 이병렬이 무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