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6)
587화 이걸 어떻게 풀지? (3)
프랑스 빼흑슈 자연공원의 암벽 박힌 산을 병풍처럼 둘러서 분지 위의 신전처럼 올라선 별장은, 라노크의 취향대로 목재를 이용해 지은 2층 건물이었다. 주변 풍광, 그곳에 완벽하게 녹아든 구조, 그러면서도 권위를 잃지 않은 위치까지, 모든 것이 대단했지만, 특히 2층에 있는 베란다의 전망이 좋았다.
자연공원을 둘러보는 2층 베란다의 테이블에서 라노크는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찰칵.
그리고 그 맞은편에 자리한 정보총국 부총국장 프레드릭 아크만이 담배를 집어 들고는 여유 있는 태도로 불을 붙였다.
“홍차를 좀 더 주겠나?”
심지어 그는 다섯 걸음쯤 떨어져 서 있는 라파엘을 향해 거만한 표정으로 요구를 전했다.
라파엘 역시 세월에 따라 나이를 먹었다. 그런 그가 꼿꼿한 태도로 다가와 기계적으로 반쯤 빈 프레드릭의 잔에 홍차를 채워 주었다.
쪼로로록.
높게 든 주전자에서 갈색의 홍차가 떨어지며 김을 피워 낸 다음이었다.
“위원장님. 무슈 강이 만든 새로운 질서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슈 강에게 직접 말하는 게 좋지 않겠나?”
라노크의 대꾸를 들은 프레드릭이 완벽하게 비웃는 듯한 미소를 그려 냈다.
“아직 그에게 기대하고 계신 모양인데, 오늘 내가 이렇게 위원장님과 단둘이 앉아 있다는 사실이 무얼 의미하는지 아실 거라 믿습니다.”
나직한 프랑스어가 빼흑슈 자연공원의 풍경과 깔끔한 정장, 하얀 테이블, 홍차와 잘 어울렸는데, 라노크는 답을 내놓지 않았고, 대신 시가를 집어 들었다.
찰칵.
볼을 뻐금거리며 시가에 불을 붙이느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후우.”
짧게 연기를 뱉어 낸 라노크는 라이터를 홍차 잔 옆에 세워 두었다.
‘취향 한번 독특하군.’
세워진 라이터를 흘끔 본 프레드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아프리카를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맡길 생각이십니까?”
“다시 말하지만, 무슈 강과 의논하는 게 좋지 않겠나?”
라노크의 권유를 프레드릭은 또 한 번의 비웃음으로 받았다.
경호원이 깔린 별장을 프레드릭은 통보도 없이 들어왔다. 그러니 지금 비웃음은 여차하면 라노크와 라파엘을 제거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고민하는 프레드릭, 태연한 라노크, 그 사이를 떠도는 긴장 따위 전혀 모른다는 투로 덤덤하게 서 있는 라파엘, 살벌한 침묵이 홍차 향을 타고 테이블 주변을 맴돌 때였다.
타아아-앙!
섬뜩한 총소리가 빼흑슈 자연공원을 요란하게 울렸고,
푸드드드득!
자연공원의 이곳저곳에서 새들이 요란하게 날아올랐다.
타아아-앙!
또다시 울린 한 발의 총소리가 긴 여운을 뿌리는 순간이었다.
‘이런 젠장!’
다급한 표정의 프레드릭이 품으로 손을 가져갔다. 안에 걸어 둔 권총을 꺼내려는 동작이었는데,
“무슈 강……?”
벌떡!
품에서 얼른 손을 내린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방아쇠 당기는 일을 망설여서는 절대 프랑스 정보총국의 부총국장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말이다. 상대가 죽음을 결정하는 검은 땅의 신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을까.
‘어떻게 여기에?’
놀란 것도 놀란 거지만,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들어서는 강찬의 등 뒤에서 아우라처럼 죽음의 기운을 피워내는 느낌이었다.
더구나 섬뜩한 눈빛과 피식하는 웃음.
정보총국이 지닌 ‘검은 땅의 신’에 관한 정보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프레드릭은 들어서는 강찬을 보며 반쯤 얼이 빠졌다.
피식.
다가선 강찬은 먼저 프레드릭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한동안 조용히 지냈더니 별 병신 같은 게 뒤에서 이렇게 움직인다. 그사이 반대 세력이 이 정도로 자신을 얻었다는 의미였고,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결정적인 계획을 수행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었다.
프레드릭 아크만에게서 시선을 돌린 강찬은 라노크에게 고개를 숙였고, 이어서 라파엘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뒤에 대놓고 프레드릭이 앉았던 자리로 움직였다.
뭐 해?
의자를 내려다보았던 강찬은 프레드릭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여기 앉으십시오!”
피식.
강찬은 프레드릭이 몸을 빼고 등받이를 잡아 주는 바로 그 자리에 앉았다.
“라파엘. 홍차를 부탁해도 될까?”
“물론입니다, 무슈 강.”
마치 이 순간만을 내내 기다렸던 사람처럼, 왼손에 냅킨을 걸친 라파엘이 자부심 가득한 표정과 공손한 태도로 다가와 잔을 놓은 뒤에 홍차를 따랐다.
이럴 때 뒤에서 권총을 꺼내?
유혹처럼 찻잔에 담긴 갈색의 홍차가 하얀 김을 피워 내는 순간이었다. 석강호와 제라르, 문바키가 베란다로 들어섰다.
“바깥에 있던 놈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문바키의 보고에 강찬은 냉정한 표정으로 받았다.
“죄송합니다, 무슈 강.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강찬이 고개를 끄덕인 직후였다.
“문바키 총국장! 나는 그저…….”
“프레드릭. 위원장님의 라이터를 봐.”
강찬은 튀어나온 프레드릭의 변명을 고갯짓으로 잘라 냈다.
프레드릭의 시선을 따라 문바키, 석강호, 제라르의 시선이 움직였고,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라파엘이 시선을 주었다.
“대사님이 라이터를 세워 놓았다는 말이 밖으로 돈 적은 없다. 저걸 본 사람은 항상 결과가 같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뒤처리를 어설프게 하는 꼴을 못 봐. 문바키?”
“위, 무슈 강.”
“치워.”
철컥!
지시를 받은 문바키가 거침없이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는 프레드릭의 이마에 댄 채 그의 뒤편 난간을 향해 밀었다.
주춤주춤.
“총국장님! 오해입니다!”
터억.
프레드릭의 허리가 베란다의 난간에 걸리는 순간이었다. 문바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아-앙!
요란한 권총 소리와 함께 프레드릭의 몸뚱이가 뒤로 넘어갔고,
털써-억!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조금 뒤에 들렸다.
“무슈 강은 늘 나를 놀라게 하는군요.”
“앞으로는 놀라시는 일이 없도록 일찍 오겠습니다.”
미소 띤 라노크가 서 있는 이들을 돌아보았다.
“손님들에게 라파엘이 자랑하는 홍차를 대접하고 싶은데, 어떻습니까?”
“감사합니다, 위원장님.”
강찬의 눈빛을 본 석강호와 제라르, 문바키가 라노크의 뒤편으로 움직여 테이블에 앉았다.
“이제는 문바키 총국장이 더 나이 들어 보이는군요.”
“다예와 제라르까지 그런 것을 보면 폭발을 막으러 들어갔을 때 감당했던 블랙헤드의 영향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면 나도 무슈 강을 따라 폭발을 막으러 들어갔을 텐데, 이제 보니 아쉽군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모시고 가겠습니다.”
“하하하. 이제는 그럴 기력이 없어요.”
정말 많이 늙었다. 라노크는.
서른쯤으로 보이는 강찬을 그는 마치 아버지 같은 표정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나마 짧지만 유쾌한 대화가 오간 다음이었다.
“이 정도면 무슈 강이 몸을 감춘 이유는 충분히 증명된 셈입니다.”
프레드릭의 사건을 말한 라노크가 언제까지 몸을 숨기고 있을 생각이냐는 질문을 내놓지 않았다.
“당분간은 대사님과 함께 지내 볼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나야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이왕이면 바실리도 보는 게 어떻습니까? 가뜩이나 무슈 강이 찾아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는데, 이곳에서 나와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후유증이 꽤 있을 겁니다.”
“러시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아군이라면 한 번쯤 다독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강찬이 몸을 감춘 동안, 불안해할 주변을 다독이라는 조언이었다. 다른 사람 아닌 라노크의 조언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여야 할 내용이기도 했다.
“이리 불러 볼까요?”
“빼흑슈가 몹시 시끄러워지겠군요.”
늙어서도 여전히 독한 바실리의 작은 눈을 떠올린 강찬이 피식 웃었고, 그 맞은편에서 라노크가 인간적인 미소를 그려 냈다.
머리끝만 남긴 태양이 빼꼼히 바라보는 저녁 무렵이었다.
***
멀쩡한 상태였다.
병상에 누운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병원비를 밀린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방지병원에 들어선 강성태는 원장실로 향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오랜만에 듣는다. 유헌우의 음성을.
어쩐지 문을 두드린 대신 현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거 같아서 찜찜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 성태 씨? 어서 오세요.”
들어선 강성태를 유헌우는 정말이지 반갑게 맞이했다.
“여기는 커피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바깥에 자판기에서 가져와야 하는데, 혹시 동전 있어요?”
그럼 그렇지.
기가 막혀서 강성태는 웃음을 터트렸다.
“없어요? 지폐나 카드도 되는데?”
“차는 마시고 왔습니다.”
“이럴 때 자판기 좀 이용해 주면 얼마나 좋아요? 한잔 마실 때마다 나한테 300원씩 떨어지거든요. 그럼 커피는 다음에 마시기로 하고 앉지요.”
서운한 얼굴로 자리에 앉은 유헌우가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멕시코로 출발할 때가 돼서요.”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유헌우는 언제 어떻게 빈 곳을 찌를지 모른다. 그래서 강성태는 유헌우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서라대학병원과 합의해서 그곳에 병원이 생기잖습니까? 우리 안다미 선생도 그곳으로 가고요.”
“예.”
“그 병원 운영 말인데요. 아무래도 전문가가 맡는 게 낫지 않겠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혹시 의사분을 추천해 주시려는 겁니까?”
“에이!”
강성태의 짐작에 유헌우는 몹시 서운하고 실망했다는 반응을 대뜸 내놓았다.
“쉽지 않은 곳이잖아요? 이래저래 다치는 사람도 많을 테고. 그런 이유로 내가 맡을까 하는데 어때요?”
“예에? 원장님이요?”
“아니, 뭘 그렇게 놀라는 얼굴을 해요?”
진심인가?
의아한 심정으로 살폈는데 유헌우의 표정이 전에 없이 진지했다.
“카르텔인가 하는 범죄 조직이 성태 씨와 근로자들을 노린다면서요? 생명이 위태로운 사건이나 환자가 많을 텐데, 그걸 빤히 알면서 나 혼자 어떻게 여기에서 편히 지내겠어요?”
“정말 병원을 맡겠다는 겁니까?”
“내가 지금 장난치는 거로 보여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강성태의 답에 확신을 얹는 것처럼 유헌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때문에 이런 병원을 두고 멕시코에 간다는 거지?
강성태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병원을 맡겠습니다. 조건은 딱 한 가지입니다.”
설마……?
“치료에 관한 비용은 모두 현찰입니다. 그것 하나만 보장해 주세요.”
“원장님?”
“그거만 해 주기 미안하면 자판기랑 현금지급기, 이런 거 운영권도 줍시다.”
기대에 가득 찬 유헌우와 멍한 강성태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이 피어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