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61)
642화 저런 부대가 하나만 있어도 (2)
적이 다가온다.
심장이 주는 경고를 믿는 강태산이 주변을 날카롭게 살필 때였다.
“대위님?”
뒤쪽을 맡았던 이준호가 놀란 음성으로 강태산을 불렀다.
적이 나왔다고 해도 놀라기보다는 방아쇠를 당길 대원이 이준호였다.
도대체 뭔데?
빠르게 고개를 돌린 강태산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안 돼.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야.
또렷한 햇살 아래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광경이었다. 강태산이 홀로 수습했던 평화유지군 동료들과 외인부대 대원들의 시체들이 번갈아 가며 꿈틀대는 건.
그 직후였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얼굴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로 심장이 무섭게 뛰었다.
이곳에서 나가! 제발!
심장의 경고를 들은 직후에 강태산은 왼손을 펼쳐 내려다보았다.
도망치라고? 이미 빌어먹을 아메바가 득시글대던 물을 뒤집어쓴 상태인데?
감염보다는 저들이 일어나 무기를 잡을까 봐, 그게 더 강태산은 두려웠다. 아무리 이성을 잃었다고 해도 어떻게 양동식 소령이나 동료들의 목을 가를 수 있겠냐 말이다.
“이준호.”
“예, 대위님.”
손에서 시선을 든 강태산은 냉정한 눈으로 번갈아 꿈틀대는 동료들과 외인부대 대원들의 시체를 돌아보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감염이 시작되는 거 같다. 살로이와 함께 기지 입구로 나가.”
“대위님?”
강태산은 갑갑한 눈을 하고 있는 이준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이미 아메바가 산다는 물을 뒤집어썼어. 그러니까 너랑 살로이는 떨어져 있으라고. 그리고 혹시 이쪽에서 일이 벌어지면 외인부대 기지로 가는 길을 따라 움직여.”
“지금껏 함께 있었습니다. 감염이 될 거였으면 벌써 됐지 않았겠습니까?”
“내려가. 명령이다.”
“대위니-임.”
강태산의 단호한 태도를 확인한 이준호가 매달리는 것처럼 불렀으나 그렇다고 이렇게 함께 있는 건 정말 위험하고 멍청한 행동이었다.
“다시 말한다. 명령이다. 내려가.”
강태산의 눈을 들여다보던 이준호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입구에 있겠습니다.”
이것까지는 막을 길이 없었다. 그리고 혹시 정말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다면 상황을 직접 보고 보고할 사람도 필요했다.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 얼굴의 이준호가 살로이와 함께 입구로 내려가는 동안, 강태산은 방탄조끼에 매달린 수류탄을 확인했다.
감염은 이미 각오했었다. 다만 진짜 두려운 건 죽지 않는 괴물이 돼서 적을 향해 달려들지, 아니면 이준호나 살로이를 노릴지 장담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최악의 순간에는…….’
수류탄을 확인한 강태산은 볼을 씰룩이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사이에도 시체들이 번갈아 가며 꿈틀대고 있었는데 처음보다 그 횟수가 많아진 게 확실했다.
***
기다란 먼지가 솟아나고, 그만큼이나 긴 행렬을 이룬 지프와 트럭들이 거친 도로의 노면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황야의 무법자처럼 변한 곽대출은 달려오는 지프와 트럭을 보며 바보처럼 웃었다.
수도 모가디슈에서 한 시간 거리였다.
코 흘리는 동네 꼬마들조차 해적이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빈민촌, 이런 곳에 어떤 걸 실었든 트럭이 줄줄이 나타나면, 단박에 주변 해적들이 산적이나 강도로 변해 달려든다. 그것도 해적 근거지인 하라데레가 30분 거리의 마리그라면 말 다 한 수준이었다.
‘고맙다. 강성태 회장.’
곽대출은 무엇보다 눈빛이 마음에 들던 강성태를 떠올렸다.
– 그 친구, 우리와 같은 부류 같던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천중명과의 통화에서 있었던 강성태에 대한 평가였다. 그리고 강성태가 애써 준 효과가 지금 다가오고 있었다.
부으으으응.
지금은 엔진 소리마저 들렸다. 그리고 가장 앞에 선 지프와 뒤편 트럭의 지붕을 확인한 곽대출은 또다시 만족한 웃음을 그렸다.
지프에는 중기관총을 걸었고, 뒤편 트럭의 운전석 지붕을 의지해 서서 소총을 겨누고 있는 대원들이라면, 분명 강성태가 선발했다는 구르카 용병이겠다. 그 순간, 곽대출은 그동안 쌓였던 힘겨움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지프에 실린 무기와 구르카 용병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부회장님?”
도깨비 대원이 곽대출에게 다가왔다.
우선 막을까, 아니면 이대로 지켜볼까, 의견을 묻는 의미였다.
“회장님께서 저 트럭에 선물을 실었다고 하시던데?”
이게 무슨 소리야?
혹시나 있을지 모를 최악의 사태에서 곽대출을 지키겠다는 것처럼 다가왔던 도깨비 대원들이 귀를 세운 채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돼지갈비를 잔뜩 실어 두셨다고.”
“돼지갈비라고 하셨습니까?”
“라면하고 김치, 즉석밥도.”
화장실에 거꾸로 매달려 밥을 먹는 게 일상일 정도로 끔찍한 훈련을 감당했던 대원들이었다. 그런데도 곽대출이 말한 음식들을 듣자 입에 고이는 침을 어쩌지 못하는 눈치였다.
오냐. 배불리 먹고 이제부터 제대로 해 보자.
줄줄이 달려오는 트럭에 실린 샌드위치 패널로 임시 학교를 짓고, 다음으로 생필품을 저장할 장소와 대원들의 공간도 만든다.
곽대출이 품고 있던 계획을 떠올릴 때였다.
“어?”
다가오던 지프와 트럭을 살피던 대원이 놀란 소리를 내며 눈가를 좁혔다.
뭐가 잘못됐나?
지프를 노려보던 곽대출은 진짜 바보가 된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고, 이어서 고개마저 앞으로 내밀었다.
5백 미터쯤 떨어진 지프의 조수석이지만, 곽대출은 바로 알아보았다. 뜨거운 햇살과 먼지를 막기 위해 히잡처럼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여자는 분명 주인영이었다.
– 내가 준비한 게 있거든. 코피 흘리지 마.
술을 많이 마시지 말라는 뜻으로 들었었다. 천중명이 농담처럼 건넸던 말을 말이다. 천중명의 조언을 떠올린 곽대출은 무심결에 오른손 검지로 코 아래를 문질렀다.
***
이용우는 평화유지군이 제공한 군복을 입었다.
무기까지 받아서 어깨에 건 소총을 앞으로 돌렸고, 방탄조끼에는 탄창과 수류탄, 무전기를, 허리와 발목에는 권총과 대검도 걸었다.
그뿐이냐.
더 블랙 요원으로 늘 외롭게 싸우던 이용우 곁에 동료들이, 그것도 실력이 쟁쟁한 특수부대 대원들이 잔뜩 깔렸다. 심지어 평화유지군 대원 중에는 함께 훈련받던 얼굴도 있어서 그 든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는 맛 난다, 진짜.
군복과 무기를 확인한 이용우가 흥분한 감정을 누르기 위해 숨을 “후! 후!” 하며 토해 낸 다음이었다. 문이 열리고 눈매가 고약한 평화유지군 간부가 들어섰다.
오? 대령?
비록 평화유지군 소속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특수부대 출신일 게 분명해서 이용우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이용우 요원?”
“그렇습니다.”
단단하게 답하는 이용우를 향해 간부는 고약한 눈매에 웃음을 묻혔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나는 평화유지군 곽철호 대령이다.”
“요원 이용우!”
반둔두의 영웅, 곽철호 대령?
하마터면 튀어나올 뻔한 탄성을 억지로 삼킨 이용우는 초인적인 의지로 관등성명을 토해 냈다. 그런 이용우가 곽철호는 또 기특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그가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라크에서 있었던 일을 잠시 듣고 싶은데 지금 괜찮나?”
“예, 그렇습니다!”
“현역이 아니니까 딱딱하게 할 거 없어. 실제로 평화유지군도 좀 더 편안하게 지내고. 그럼 갈까?”
몸을 돌린 곽철호를 따라 이용우는 복도로 나섰다.
VIP 라운지를 사용한다고 들었다.
곽철호를 따라 걷는 동안 코너마다 대원들이 날카롭게 서 있었는데 이용우를 알아보는 대원들은 눈짓으로 인사를 건네주었다.
내가 말이지.
전설의 부원장님을 구했고, 또 반둔두의 영웅 곽철호 대령과 인사하고 함께 걷는! 어! 다 하는 사이야!
‘이걸 중상이가 봐야 했는데, 아깝다.’
들뜬 감정을 누르는 이용우 앞에서 곽철호는 공항 청사를 가로지르다시피 걸었다. 그런 뒤에 방향을 틀었는데 그 바로 앞에 문이 있었다.
고개를 돌려 눈짓을 던진 곽철호가 먼저 들어섰고, 이용우가 뒤따랐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곽철호만큼 눈매가 고약한 중령이었고, 다음은 계급장이 없는 군복을 입은 인자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이 친구가 대장을 구해 낸 이용우 요원입니다.”
곽철호는 인자한 노인네에게 이용우를 먼저 소개했다.
‘누구신데 곽 대령님이 이렇게 공손하지?’
의아해하는 이용우에게 노인네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눈을 들여다본 채로 손을 내밀었다.
“고생 많았다. 강철규라고 한다.”
흐익!
반둔두의 진짜 영웅!
매킨지와의 혈투에 나오는 바로 그 주인공!
“요원 이용우!”
강철규의 손을 잡을 때, 이용우는 진짜 신화 속으로 뛰어든 느낌이었다.
특수부대원이라고 해서 평소에도 독이 오른 눈빛과 표정을 보일 거라 여기면 오해다. 진짜 특수부대 생활이 몸에 밴 사람들은 그저 몸 좀 좋고, 성품 털털한 동네 총각, 혹은 아저씨들로 보인다. 그러나 말이다. 임무를 받거나 무기를 들고 나면, 표정과 눈빛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특히,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 본 대원들의 눈빛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 면에서 이용우는 임무를 위해 방아쇠를 당기는 일에 주저한 적 없다. 나름 더 블랙 요원으로 쌓은 경험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이용우의 손을 잡은 강철규가 어깨를 다독여 줄 때는, 발톱과 이빨을 안으로 갈무리한 사자가 거대한 앞발을 다정하게 어깨에 올리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다. 지금은 아군이니까. 그러나 이 양반과 적이 돼서 맞서게 되면 곧바로 무시무시한 이를 드러내 목덜미를 씹어 부러트리거나, 그도 아니면 거대한 앞발과 날카로운 발톱으로 얼굴을 무너트릴 게 분명했다.
지금도 미국의 몇몇 특수부대는 매킨지의 사망을 치욕으로 느낀다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병신들. 이런 양반에게 당했으면 영광으로 알아야지.’
이용우의 생각을 강철규는 알 길이 없겠다.
“후배처럼 나라를 위해 애쓰는 요원을 만나서 고맙고 반갑다. 선배라고 해도 우리는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 서운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우리 조국과 태극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 다오.”
대신, 강철규는 진심이 묻어나는 태도로 이용우에게 당부를 전했다.
왜 그럴까?
강철규의 덤덤한 음성이 늘 존경했던 아버지가 남기는 마지막 당부처럼 들려서, 혹은 홀로 외롭게 싸우던 이용우의 아픔을 모두 알고 다독여 주는 손길처럼 느껴져서 순간, 이용우는 울컥 눈물이 올라왔다.
이런 분이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실망하겠나.
“죄송합니다, 요원을 그만뒀습니다.”
“태극기에 대한 열정이 없어진 건 아니잖아? 그랬다면 홀로 예멘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고. 그렇지?”
“명심하겠습니다.”
어깨를 다독여 준 강철규가 몸을 돌리자, 지금껏 밀려나 있던 현실이 이용우에게 훅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지켜보고 있던 곽철호 대령과 중령 계급장을 단 다른 간부도 눈에 들어왔다.
“얼른 소개하지. 여기는 윤상기 중령.”
“요원 이용우!”
북한에 뛰어가 장광택을 사살했다는 특수부대의 전설?
이제 이용우는 이순신 장군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서 단군 할아버지가 나와도 믿길 판이었다.
“이제 들어가야지?”
짧게 인사를 마친 윤상기가 안쪽에 있는 문을 시선으로 가리켰다. 예상대로라면 구출 과정에서 급하게 인사했던 강찬 부원장이 저 문 안쪽에 있겠다.
‘후우-.’
이용우는 표시 내지 않으려 애쓰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직후에 윤상기가 문을 열면서 안으로 줄줄이 들어갔다.
피식.
이용우를 본 강찬의 반응은 특유의 웃음이었다.
얼굴에 자잘한 상처가 가득했고, 어깨와 가슴에 붕대를 감아서 재킷 안쪽이 불룩하게 올라와 있었다.
“뭐라고 했기에 저렇게 딱딱하게 굳었어?”
“학장님을 뵙더니 저럽니다.”
희한하지?
새파랗게 젊어 보이는 강찬은 반말을 던지는데, 곽철호와 윤상기는 존댓말을 쓰는 게? 그리고 그게 정말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도.
“나를 구해 줄 때 패기는 어디 갔어?”
“아닙니다!”
대답하고도 이용우는 아차 했다. 훈련소에서 막 자대 배치받은 신병이나 할 법한 대꾸여서 그랬다.
피식하는 웃음을 남긴 강찬이 고개를 돌렸다.
“인사부터 하자. 여기는 전 외인부대 사령관 제라르 드 미르미에.”
이용우 진짜 출세했다, 진짜!
물론 구출 과정에서 이미 본 적 있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가 전 외인부대 사령관인 줄은 정말 몰랐었다. 당연하게 제라르 역시 갈라지고 찢어진 상처가 얼굴과 손에 가득했는데, 그 역시 붕대를 감은 것처럼 재킷이 불룩했다.
강찬의 소개를 받은 제라르가 자리에서 몸을 세우더니 볼의 상처를 보기 좋게 우그러트리며 손을 내밀었다.
“아까는 고마웠어.”
눈을 감았다면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억양까지 완벽한 인사였다.
“요원 이용우!”
특수부대의 선배로, 그리고 강찬과 강철규, 그 옆에 서 있는 전설들이 인정하는 남자라고 생각한 이용우는 관등성명과 함께 그의 손을 잡았다.
씨익, 웃었다. 제라르는.
“여기는 프랑스 정보총국 예멘지부장 빠스칼 쟌 르 본.”
그런 뒤에 자잘한 상처들이 가득한 프랑스 남자를 소개했다. 물론 강찬과 제라르도 상처가 가득했는데, 두 사람은 훈장처럼 보였고, 방금 소개받은 빠르칼은 실컷 얻어맞은 상처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특수부대 선배도 아니고, 뭐.
이용우는 조금이나마 편한 자세로 빠스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어쭈, 하는 표정을 지었던 강찬이 자리를 권했다.
“이제 이용우가 이라크에서 겪었던 일을 잠깐 들을까? 아! 이용우? 아랍어 수준이 어느 정도야?”
“현지인의 80퍼센트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잠시 뒤에 예멘 부통령이 이곳에 올 텐데 통역을 부탁해도 되겠어?”
“맡겨 주십시오!”
피식.
마치 마음에 든 후배를 보는 선배의 웃음, 이번 강찬의 웃음은 그런 의미로 이용우에게 다가왔다. 지금은 저렇게 웃지만, 반군에게서 탈출 당시 강찬의 눈빛을 이용우는 분명하게 기억한다.
세상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려도 물러서지 않을 사람, 그때 강찬의 눈빛과 태도, 그리고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사격 솜씨를 떠올린 이용우의 생각이었다.
확실히 자리에 앉기 무섭게 표정들이 바뀌고 있었다.
‘이제 감춰졌던 모습을 보이겠네.’
그리고 이용우의 예상을 증명하는 것처럼 강찬을 비롯해 방 안에 있던 이들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