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63)
644화 불러 주시면 기쁘게 달려가겠습니다! (1)
먹먹한 침묵 속에서 예멘의 부통령 마호메드 압둘라 하디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VIP 라운지를 떠도는 팽팽한 긴장이 어찌나 부담스럽던지 부통령의 뒤에 서 있던 경호원과 수행원이 강찬의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침묵이 길어지는데?
이용우가 궁금한 시선을 슬며시 돌리는 순간이었다.
피식.
느긋하게 부통령을 바라보던 강찬은 특유의 웃음을 입가에 묻혔다.
“윤상기 중령. 이용우와 함께 부통령을 배웅해.”
그런 뒤에 짧은 지시를 내렸고, 더 볼 것 없다는 투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용우가 통역하지 않아서 강찬의 지시를 부통령이 알아듣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그는 또 눈치로 상황을 때려 맞춘 모양이었다.
“말하겠소.”
그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고, 이용우가 뉘앙스를 제대로 살려서 우리말로 전해 주었다.
꼭 이런 놈들이 있다.
출발할 때까지 미적대다가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손 흔들며 매달리는 인간들.
강찬은 고개만 돌려 부통령을 내려다보았다.
“늦었어. 좋게 보내 줄 때 얌전히 돌아가.”
“시간이 급한 일이 아니잖소. 지금이라도 말할 테니 잠시 앉아 주시오.”
숨 가쁘게 이용우가 말을 전한 뒤였다.
강찬은 천천히 부통령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러다가 걷어차는 거 아냐?
부통령의 경호원이 움찔했는데, 그 직후에 강철규, 곽철호, 윤상기의 매서운 눈매를 받고는 얼른 시선을 떨궜다.
“반군 기지에 떨어진 운석이 헬륨3 덩어리다. 그리고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죽어서도 움직이는 괴물들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에너지가 바로 그 헬륨3고.”
죽어서도 움직이는 괴물?
그게 뭐지?
강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부통령이 도움을 청하는 얼굴로 VIP 라운지 안을 둘러보았는데 돌아간 건 냉정한 표정과 차가운 눈빛이 전부였다.
“우리를 공격했던 반군에도 그런 놈들이 있었다. 그게 뭘 말하는 거 같나?”
당장 설명도 못 알아듣는 상태에서 질문까지 받은 부통령은 말 그대로 ‘어버버’하는 표정만 지을 뿐 입을 열지 못했다.
“너를 꼬드긴 인간이 이미 반군을 그런 괴물들로 만든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런 괴물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고. 이곳에 들어오면서 봤겠지? 공항을 지키는 그 대원들이 당장 오늘 밤에라도 괴물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말이다. 이제 좀 알아먹겠어?”
아예 한참 아랫사람 대하는 던지는 말투였는데 이용우는 또 곧이곧대로 통역했고, 심지어 강찬의 감정마저 전달하려 애썼다.
“너를 꼬드긴 놈이 누군지 몰라도 상관없어. 다만, 예멘의 부통령이 지금까지의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 손을 잡을지, 마지막까지 계산할 건지를 알고 싶어서 물었다. 그리고 넌 언제고 배신할 인간이라는 사실을 증명했고.”
“무슈 강?”
피식.
마른침을 삼키며 부르는 부통령을 강찬은 차가운 미소로 대했다. 그 바람에 감정마저 전달하려 애쓰던 이용우는 강찬의 웃음을 따라 웃을 뻔했다.
“반군에서 괴물이 만들어졌다면 너를 꼬드겼던 놈이 반군 수장 후티와도 접촉했다는 뜻이겠지? 어떤 식으로든 나는 놈을 찾아낼 거고, 반드시 손에 넣을 거다. 그때까지 네가 살아 있다면 놈과의 뒷거래가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게 좋아. 알게 되면 내가 너를 죽여 버릴 거니까.”
통역하던 이용우는 마지막 순간에 소름이 쫙 끼쳤다.
아무리 봐도 30대 초반으로 여겨지던 강찬이 느닷없이 정보 세계에서 오래 묵은 이무기로 변해 있었고, 다르게는 죽음을 결정하는 사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래서였구나!
강철규, 곽철호, 윤상기, 제라르라는 전 외인부대 사령관까지, 이런 모습을 알고 있었을 게 분명했고, 그러고 나자 그들이 강찬을 대하던 태도가 단숨에 이해됐다.
“무슈 강. 뒤늦게 이런 소리를 해서 미안하오만, 현장 수색에 관해 보고를 이제야 대강 이해하겠소.”
강찬의 시선만 붙잡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투로 부통령이 간절하게 매달렸다. 그리고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내내 얌전하게 매달려 있던 넥타이가 기울인 상체를 핑계로 기어 나와 강찬을 향해 잘게 흔들렸다.
“특이하게 이미 죽었어야 할 부상자가 이십여 명쯤 살아 있다는 보고였는데, 당시에는 헛소리로 생각하고 말았소.”
이용우마저 강찬의 침묵이 두려울 정도이니 부통령은 오죽하겠나.
“반군이 그렇게 되면 예멘은 끝이오. 그러니 내가 아니라 불쌍한 예멘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오.”
염병할.
그러면 처음부터 잘하든가.
아니면 국민을 위해 정치와 행정을 제대로 돌리든지.
강찬은 잠시 부통령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마. 그 전에 한 가지 명심해. 이후에 또다시 엉뚱한 짓거리를 해서 우리 대원이 한 명이라도 희생되면 예멘을 아예 지도에서 지워 버릴 거다. 그러니 잘 생각하고 대답해.”
우와, 멋있어.
통역을 하는 도중 이용우의 표정에 올라왔던 감정이 빠르게 사라진 직후였다.
“내가 죽기를 바란 인물의 이름.”
“게르만의 집사라는 하르트만 요하스요.”
역시나 짧은 질문이 건너갔고, 이럴 거면 왜 버텼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쉽게 부통령이 답을 내놓았다.
그 새끼를 잡는 건가?
이용우가 긴장된 표정으로 기다리는 앞이었다.
피식.
이전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웃은 강찬이 볼에 난 흉터를 우그러트리는 프랑스 남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라르. 안느에게 연락해.”
“위, 카피땐.”
강찬이 지시했고, 이용우도 알아듣는 프랑스어 답을 제라르가 내놓았다.
***
이용우의 아버지인 이춘섭에게는 참 당황스러운 하루였다.
시작은 도대체 정체가 의심스러운 의사의 방문이었다.
“이용우 씨 부친, 이춘섭 씨 되시나요?”
“누구신데 그래요?”
“오전에 전화드렸던 방지병원 원장 유헌우입니다.”
불쑥 전화하고, 덜컥 찾아온 남자는 의사라기보다 얼핏 장사꾼처럼 보였다.
새로 생긴 방문 판매 방식인가?
의사가 직접 추천하는 옥 장판이니까 하나 들여놓으라고?
“관심 없어요.”
“허, 참. 뭔가 오해하신 모양인데 이춘섭 씨예요, 아니에요? 아니면 얼른 이춘섭 씨 좀 불러 주세요.”
삐뚜름하게 비튼 이춘섭의 눈매 앞에서 원장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는 한 점 밀리지 않고 꿋꿋했다.
“내가 바빠서 그러니까 이춘섭 씨 없으면 나중에 말이나 좀 전해 주세요. 아드님인 이용우 씨가 부탁해서 내려왔던 건데 자리에 없어서 간다고요. 시간 되면 서울 방지병원으로 연락 달라고요.”
당부를 전한 유헌우는 진짜 일말의 미련도 남기지 않은 채 몸을 돌렸다.
그래도 아들이 부탁해서 왔다는데?
이름도 알고 있고!
“내가 이춘섭이오.”
좁은 마당을 지나 막 문을 빠져나가려는 유헌우를 이춘섭이 급한 음성으로 붙잡았다.
멈칫했던 유헌우가 뒤를 돌아본 다음이었다.
“내가요. 이런 왕진 절대 안 오는데 도저히 거절하지 못할 사람이 직접 부탁해서 온 겁니다. 얼른 거기 앉으세요.”
다시금 바쁘게 마당을 가로지른 유헌우가 현관 앞에 놔둔 플라스틱 의자를 가리켰다.
죽을 날을 받아 둔 사람에게 끝내 옥 장판 팸플릿을 꺼내려는 건가?
한숨이 절로 나왔으나 어디 들어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이춘섭은 유헌우가 가리킨 플라스틱 빨간 의자에 앉았다.
“팔 걷으시고.”
마음대로 해 보쇼.
어차피 죽을 몸뚱이 팔 하나 걷는 게 대수겠소.
이춘섭은 또 순순히 낡은 셔츠의 소매를 푼 뒤에 위로 쭉 올렸다.
요즘 방문 판매업자는 꼼꼼하기도 하지.
옆에 내려놓은 가방에 손을 넣었던 유헌우는 혈압을 체크하는 키트를 꺼내 이춘섭의 팔뚝에 감았다. 요즘은 지방에서도 디지털 체크기를 사용하는데 유헌우는 손으로 쥐었다 놓는 방식으로 바람을 넣었고, 심지어 청진기를 귀에 걸고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찌이익.
“혈압은 괜찮네요. 어디 체온은?”
뭔 의사가 이마에 손을 대는 거로 체온을 확인해?
기가 막힌 이춘섭의 표정을 모른 척 이마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던 유헌우가 다시금 가방을 향해 몸을 숙였다. 그런 뒤에 조그만 책자 크기의 스테인리스 통을 꺼내서 열었다.
‘어?’
그제야 이춘섭은 놀란 표정과 눈으로 스테인리스 통에 담긴 주사기와 주사제, 그리고 유헌우를 번갈아 보았다.
능숙해 보였다. 유헌우는.
약병에 주사기를 꽂은 그는 주사기에 약물을 담았고, 이어서 엄지를 눌러 함께 들어온 공기를 빼냈다.
“주사를 맞으면 하루 정도는 정말 졸릴 겁니다. 그냥 주무세요.”
“이게 무슨 주사입니까?”
“6개월밖에 못 사신다면서요?”
“예?”
“이거 맞으면 교통사고로 죽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병으로 죽지는 않을 겁니다. 자, 팔 이리 내미세요.”
정말이지 ‘어? 어?’ 하는 틈에 유헌우는 알코올 묻은 솜으로 팔뚝을 닦았고, 이어서 툭 튀어나온 혈관에 주삿바늘을 천천히 찔러 넣었다.
“아드님이 우리나라를 위해 타국에서 애쓴다고 들었습니다. 그 열정에 감동한 높은 양반이 부탁했습니다. 적어도 그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외롭게 죽는 일만은 없게 해 달라고요.”
지금까지와 다르게 나직한 유헌우의 음성이 이상스레 이춘섭의 감정을 푹 찌르고 들어왔다.
이춘섭의 감정을 알아차렸을까?
바늘을 빼낸 자리를 솜으로 꾹 눌러 준 상태에서 유헌우는 이춘섭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자랑스러운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아후-.”
왜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지는지.
먼저 간 안사람에게 미안해서인지, 아들이 자랑스러워서인지, 그도 아니면 아들의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인지,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이춘섭은 느닷없이 쏟아지는 울음을 감당하지 못했다.
“주무세요. 그리고 어지간하면 주사 맞았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아드님이 하는 일처럼 이건 국가기밀에 속합니다.”
“네에-.”
늙은 음성으로 길게 답을 하고 난 뒤였다.
가방을 들고서 몸을 일으킨 유헌우가 마당을 가로질렀다.
아차차! 음료수 한잔 못 드렸는데!
급하게 눈가를 문지른 이춘섭이 밖으로 나갔을 때, 유헌우는 그가 엄두도 못 낼 고급 승용차의 뒷좌석 문을 열고 있었다.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요?”
“서운하시면 나중에 장기 기증 서약이라도 하나 써 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울컥 올라왔던 감정에 얼음물을 붓는 듯한 당부를 건넨 유헌우가 그길로 뒷좌석에 몸을 실었고, 그 직후에 승용차가 출발했다.
꿈을 꾸는 건가?
멍한 상태에서 이춘섭이 멀어져 가는 유헌우의 승용차를 바라볼 때였다.
저 앞 좁은 길에서 제법 연식이 있는 중형 승용차가 유헌우가 탄 고급 승용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게 이춘섭의 눈에 들어왔다.
뭔 차가 또 들어와?
이쪽 길 끝이 이춘섭의 집이고, 그 뒤는 먼저 간 안사람의 무덤이 있는 산이어서 어지간해서는 차가 들어올 일이 별로 없었다.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려 울음의 흔적을 닦은 이춘섭이 “후-.” 하는 한숨과 함께 감정마저 정리한 직후였다.
집 앞에 승용차가 멈췄고, 운전석에서 박중상이 내렸다.
별일이다. 오늘은.
어라?
그 직후에 이춘섭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쩐지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하면서 국가기밀에 해당한다는 주사를 놓아주더니…, 그렇다면 혹시 우리 용우가?’
“왜 나와 계세요?”
“우리…, 용우…. 용우가…….”
겁에 질린 얼굴이 된 이춘섭은 또다시 눈물을 매달았다.
“왜 그러세요?”
“차라리 나를 죽이지. 왜? 왜? 우리 용우를?”
“어? 용우한테 무슨 일이 있답니까? 언제 들으셨어요? 누가 연락한 건데요?”
이건 짐작과 전혀 다르다.
냉큼 눈물을 닦은 이춘섭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박중상을 살폈다.
“누가 연락했었는데요?”
“용우 나쁜 소식 전하러 온 거 아니었냐?”
“나쁜 소식이요?”
뭔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잠시 이춘섭을 들여다보던 박중상이 묘한 느낌으로 입맛을 다셨다.
“아버지. 용우가요.”
“이놈아. 이러다가 나 죽겠다. 그냥 얼른 말해.”
“외국에 가서 여자를 건드렸나 봐요.”
어디에 가서 뭐를 건드려?
이춘섭은 바보처럼 눈만 껌벅였다.
“그 여자분이 부친과 함께 오늘 오전에 한국에 왔거든요. 우선 좀 쉬고 나중에 찾아뵙자고 했는데도 굳이 아버지를 먼저 뵙고, 이 근처에서 묵겠다고 버텨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용우가?”
“예.”
“여자를 건드…. 크흠. 아무튼, 그쪽 아버지와 함께 나를 보러 왔다?”
답하기도 지친다는 것처럼 박중상은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러면서도 쓰디쓴 표정으로 차를 돌아보았다.
“뭐 하는 아가씨냐? 아니지. 일단 나오시라고 해. 안에 모셔서 냉수라도 대접해야지.”
“아버지. 이라크 여자분이에요.”
“뭐?”
자꾸 놀란다. 오늘 이춘섭은.
더는 설명하기 지친다는 것처럼 차로 움직인 박중상이 뒷문을 열었다.
손님을 맞이하기에는 너무 추레한 복장이라는 생각이 든 이춘섭이 셔츠를 아래로 문지른 직후였다.
점잖게 생긴 이라크 남자가 내렸고, 그 뒤에 ‘세상에!’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미모의 여자가 따라 내렸다.
지금껏 살면서 이춘섭은 지금 막 차에서 내린 여자처럼 눈이 커다란 사람은 처음 봤다.
‘저런 아가씨가 뭐가 부족해서 용우를……?’
아! 저렇게 긴 속눈썹도 처음이고, 그 모든 걸 포함해 이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를 직접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