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69)
650화 위치도 모르면서 출발한다는 거요? (1)
정말이지 꽉 안았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이토록 세게 안아 준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미 생의 마지막을 보냈음에도 괴물이라는 형태로 또 다른 삶을 받아 든 양동식, 그가 보여 준 조국과 동료에 대한 끝없는 사랑, 그리고 강태산에 대한 믿음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었다.
클레이모어로 산산이 부서지기 전에 한 조각 온기를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설치 마쳤습… 니다.”
비통하기 그지없는 이준호의 보고가 등 뒤에서 들린 다음이었다.
“태산아…….”
“대위 강태산.”
지금껏 반복했던 것처럼 양동식이 꺼져 가는 음성으로 불렀고, 강태산이 답했다.
그 직후였다.
다독다독.
강렬하게 움켜쥐고 있던 양동식의 손이 풀리더니 강태산의 팔뚝을 다독여 주었다.
“소령님?”
“태산이에게…. 전해 다오. 내 피는 조국에, 영혼은 태극기에 바쳤다고.”
이를 악문 강태산의 뒤에 선 이준호가 볼을 씰룩이며 온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제 그만 가 보라는 뜻일까?
양동식은 다독여 주던 팔을 내렸다.
“어서… 가.”
순간순간 의식이 바뀌는 모양이었다. 당부처럼 말을 건넸던 양동식이 고통을 견디지 못해 상체와 고개를 비틀었다.
양동식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평화유지군과 외인부대 대원들 틈에서 꿈틀대는 숫자와 강도가 점점 거세지고, 이미 둘은 상체를 세우고 있었다.
“끄으으…….”
비명을 토해 내는 양동식을 더는 지켜볼 수 없어서 강태산은 몸을 세웠다.
“후-.”
비통한 심정을 토해 낸 강태산은 뒤로 물러났다.
“차렷. 경례!”
느리게 돌리는 영상처럼 강태산은 양동식을 향해 천천히 팔을 들어 거수경례를 올렸다. 전사자를 대하는 평화유지군의 경례였다.
강태산의 동작에 맞춰 이준호와 살로이 또한 느린 영상처럼 천천히 손을 들었다가 비슷한 속도로 내렸다.
소총을 옆으로 돌린 강태산은 제식 훈련을 하는 훈련병처럼 각진 태도로 몸을 돌린 뒤에 절도 있는 자세로 물러났다.
앞으로 이어질 장면을 차마 볼 수 없다는 것처럼 지평선을 향해 태양이 떨어지는 시간이었다. 그사이 상체를 일으킨 대원의 숫자가 다섯으로 불어나서 더는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입구의 중간까지 물러난 강태산은 다시금 양동식과 동료들, 그리고 외인부대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군인이다!”
강태산은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우리는! 용감하게 싸우고! 명예롭게 임무를 수행한다!”
어깨와 가슴을 들썩일 정도로 구호를 외친 강태산은 괴물로 변하고 있는 외인부대 대원들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Légion étrangère(외인부대)! Legio patria nostra(부대가 나의 조국)!”
외인부대의 구호를 커다랗게 지른 강태산은 이준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본다.
이 핏빛 노을 속에서.
기억하고 전해 준다.
양동식과 동료들, 외인부대 대원들의 최후를.
이들이 어떤 싸움을 했고, 명예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를.
이 정도 거리에서 클레이모어를 터트리는 건 미련한 짓이다. 그런데도 강태산은 물러나지 않았다.
“대위님.”
마지막 지시를 확인하기 위해 이준호가 불렀고, 양동식과 동료들, 외인부대를 향해 시선을 준 상태에서 강태산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핏빛 노을이 강태산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순간이었다.
태극기를 가슴에 품은 양동식과 대원들, 부대가 조국이라며 뭉친 외인부대 대원들을 향해 강태산은 더할 수 없이 경건한 태도로 마지막 경례를 보냈다.
***
이용우는 호출한 신동철과 함께 VIP 라운지를 나섰다. 더불어 빠스칼 역시 보고와 휴식을 위해 나가면서 VIP 라운지에는 수뇌부만 남았다.
이동 경로, 무기와 보급품의 지원 방침을 의논한 강찬은 강철규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감성원이라는 분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 정도는 부원장이 결정할 문제 아닌가?”
“비무장지대에서의 인연으로 연락한 분이니까요. 소말리아에 가서 그쪽 대원들과 합류했으면 하고, 이후에 체첸인으로 구성된 민간군사기업의 진짜 대가리가 누군지 알아보는 일에 도움을 받을 생각입니다.”
뭘 그런 일에 내 의견을 물어?
강찬을 향해 유일하게 피식하는 미소를 던지는 강철규가 의미가 분명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준비가 다 끝났다.
한 시간 뒤에 각자의 임무를 위해 출발할 사람들이었다. 이런 순간에는 계획을 다시 살피기보다는 잠시의 여유가 훨씬 좋다.
커피라도 한잔할까?
강찬이 제라르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쿠우웅.
심장이 느닷없이 커다랗게 내려앉았다.
뭐지?
두근거리지도 않았고,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위험을 알려 주지도 않았다. 심지어 단 한 번 울린 뒤로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다른 경고도 없었다.
이런 적이 처음이라 강찬은 반사적으로 강철규를 찾았다.
“동식이…….”
비슷한 울림을 받은 모양이었다. 또한, 그는 심장의 울림이 전해 주는 의미마저 알아챈 모양이었다.
볼을 씰룩댄 강철규가 이를 악문 얼굴로 몸을 세웠다.
“부원장. 잠시만 바람을… 쐬고 오겠다.”
힘겨운 얼굴로 말을 건넨 강철규가 몸을 돌려 VIP 라운지를 나섰다.
다들 아포코 기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강철규가 나간 문을 바라보던 강찬은 탁자에 내려 두었던 스마트폰을 들었다.
단 한 번 들렸던 심장의 울림이 양동식과 관련된 거라면 누구 한 사람이라도 강태산을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
아직 새벽이 오지 않았다.
어둠을 뚫고 거칠게 달려오는 지프의 헤드라이트가 보이는 순간, 구르카 용병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소총을 겨눴다.
부아앙. 덜컹! 덜커덩!
흔들리는 지프의 조수석에 앉았던 곽대출이 앞 유리를 붙들고 몸을 세웠고,
아군이다!
그를 확인한 구르카 용병 한 명이 왼팔을 커다랗게 돌렸다.
부아앙!
깊은 밤, 전기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환경이어서 지프의 엔진 소리가 다른 곳보다 요란하게 마리그를 깨웠고, 헤드라이트 또한 멀리 퍼졌다.
임시 막사에서 뛰어나온 주인영과 지경그룹 직원들, 결과가 궁금한 마리그 주민들이 기다리는 앞이었다.
거칠게 달려온 세 대의 지프가 줄줄이 멈췄다.
“오오! 마이야르!”
두 번째 지프에서 마이야르를 발견한 모친이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달려들 때, 부상자를 든 대원들이 막사로 움직이고 있었다.
‘다녀왔어.’
주인영을 향해 시선을 준 곽대출이 눈짓으로 인사할 때였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malag mas’uul ah”를 외치며 곽대출 주변에서 뛰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런 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원. 그나저나 곽대출은 마리그 주민들이 반복적으로 외치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라는 거야?”
“수호신이라는 뜻입니다.”
별걸 다.
직원에게서 답을 들은 곽대출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이런 걸 바라지 않았다.
영웅이 되고자 달려갔던 것도 아니고.
그렇더라도 최소한 마리그 주민들의 믿음을 얻기는 한 모양이었다.
“아까 다친 직원이 있던데 괜찮을까요?”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 같은데 봐야지. 응급치료 마치고 병원에 보내기로 했으니까 결과 보자.”
“고생했어요. 다친 곳은 없어요?”
“나는 괜찮아.”
아직 놀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주인영의 등을 곽대출은 점잖게 다독여 주었다.
***
천중명은 책상에 앉아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미국 국채를 매각한 뒤로 요동치는 환율, 15세 소녀를 구출하기 위해 달려간 곽대출, 숨죽이며 활동하는 황성규와 안느의 연락까지, 돌아가는 상황이 천중명을 잔인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진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천중명은 모니터에 시선을 주었다.
전투에 직접 나서는 게 무색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한편으로 득시글대고 있으니 천중명은 돈으로 싸우는 싸움에서 괴물이 되어야 한다.
얼마든지.
아무렴, 도깨비 회장이 꼬리 내릴 거라 기대하는 건 아니지?
천중명이 옅게 웃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기다리던 번호가 액정에 올라왔다.
진짜 달려가서 함께 총질하고 말지, 결과를 기다리다가 액정에 뜬 번호를 확인하고 급하게 받는 건 적성에 더럽게 안 맞는 일이었다.
“여보세요?”
– 곽대출입니다. 납치됐던 소녀를 구해서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부상자 한 명 외에 크게 다친 대원은 없습니다.
“고생했다. 부상자 상태는?”
– 관통한 게 아니라 조금 깊게 스친 상태라서 위독한 건 아니랍니다.
설명을 들은 천중명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대원은 도착하는 대로 내가 살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는 진짜 괜찮냐?”
– 멀쩡합니다.
주인영이 옆에 있나?
평소라면 ‘나를 어떻게 봤기에 그런 질문을 하시나?’ 했을 곽대출의 대꾸가 꽤 점잖았다.
– 참, 회장님. 해적들 말입니다. 마약을 한 거로 보였습니다.
“그놈들이 약을 했다면 분명 값싼 걸 텐데, 확실히 루트가 확보되기는 한 모양이다. 그건 따로 알아볼게.”
– 그리고 이번 일로 소말리아 정부와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마리그의 독자적 운영권을 확보한 상태잖아. 해적이 15세 소녀를 납치했는데 지켜보기만 했다면 오히려 우리를 우습게 볼걸? 그렇더라도 혹시 모르니까 날 밝는 대로 정부 측과 접촉해 볼 테니 너무 마음 쓰지 마.”
–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점잖게 나오는 곽대출의 대꾸가 천중명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대출아? 너 혹시 너무 지친 거 아니냐? 잠시라도 좀 쉴래?”
– 뭐래, 이 회장님이?
그러나 이어진 질문에 곽대출은 누르고 있던 성격을 툭 드러냈다.
– 부상당한 대원에게 미안해서 그래. 내가 능력이 좀 더 있었으면 안 다쳤을 건데 싶어서. 회장님이라면 좀 더 잘했을 거 같고.
“다음에 세 배로 갚아 줘. 그래야 곽대출이지.”
– 어후! 그 소리를 들으니까 기운이 확 나네!
이어서 오간 대화에서 곽대출은 확실히 기운을 되찾은 음성이었다.
“아, 참. 강성태 회장이 찾던 분이 내일 그리 갈 거다. 비무장팀 대원이었다는데 일단 만나 봐. 그럼 알 거다.”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스마트폰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도깨비 회장을 하려니까 돌발 변수 참 많다.
부상당한 대원과 마음 무거울 곽대출을 생각한 천중명이 검지로 눈썹을 긁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책상에 내려놓았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천중명입니다.”
– 황성규입니다. 통화되십니까?
“말씀하세요.”
이 통화 역시 내내 기다렸던 참이어서 시간은 문제가 아니었다.
– 마드모아젤이 송금한 달러가 조금 전 입금되어서 전화드립니다, 회장님.
또 하나 해결됐구나.
천중명은 황성규에게 들리지 않도록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천중명은 습관처럼 강찬을 떠올렸다.
이런 순간을 대비했던 것처럼 비밀 정보 조직을 만들었고, 수장으로 안느를 두었는데, 그녀의 코드명이 바로 마드모아젤이었다.
“실험실 준비는 어떻게 됐나요?”
– 요구하는 수준과 품목을 모두 갖추기가 쉽지 않아서 좀 더 시간이 걸릴 거 같습니다. 대신 준비된 것들만 모아 큐브 형태로 배송할 예정이어서 이틀 후면 기본 연구 정도는 진행할 수 있으리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군요. 그렇더라도 계속 신경 써 주세요.”
– 예, 회장님.
하여간 수월한 일은 하나도 없는데 꾸역꾸역 움직여서 로일 박사팀을 위한 연구 시설도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 혹시 다른 지시 사항이 있으십니까?
“혹시 가능하다면 체첸인들로 구성된 민간군사기업이 생겼다는데 그 내용을 좀 알아봐 주세요.”
– PMC 말씀하시는 건가요? 체첸인들로만 구성된?
“그렇게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소규모 테러로 위장한 탓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실제 창립자, 설립 목적 등을 알아봤으면 합니다. 위험한 일이니까 특히 조심하시고요.”
– 알겠습니다, 회장님. PMC를 포함해서 특별한 사항이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의자를 돌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아프리카의 숲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일을 벌이는 걸까?
창을 바라보던 천중명은 천천히 몸을 세웠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새로운 하루를 향해 도전하는 사람처럼 다부진 눈으로 펼쳐진 광경을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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