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7)
588화 어떤 경우에도 방심하지 마 (1)
강태산은 왼쪽 깃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치잇.
“전투 대기.”
한마디가 전부였다.
저녁을 준비하던 이준호가 삽시간에 바뀐 표정으로 바삐 움직였고, 외인부대원이 긴장한 눈으로 무기를 챙겼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치잇.
“외인부대. VIP 막사에 병력 배치하세요.”
치잇.
– 준비된 병력 배치합니다.
이런 사태에 대비해 지정해 두었던 외인부대 대원들이 정적을 깨트리며 급하게 움직였다. 그 뒤였다. 강태산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평화유지군이 달렸다.
준비는 끝났다.
뭐냐? 이번엔 또 어떤 놈들인데?
소총의 총구를 아래로 내린 강태산은 주변을 날카롭게 돌아보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뒤로 물러나.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어!
경고는 예사롭지 않았다.
쿵. 쿵. 쿵. 쿵.
그 증거로 심장이 가쁘게 뛰면서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 정도면 쉽지 않겠는데?
심장이 주는 경고를 받으며 강태산은 피식 웃었다.
좋을 대로 해라.
어떤 놈이든 검의 땅의 지배자에게 대든 놈들은 전부 죽여 주마.
각오를 다지는 것과 동시에 강태산은 모래를 쌓아 둔 방어막 앞으로 움직여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는 소총으로 앞을 겨눴다.
외인부대 대원 둘은 긴장한 눈빛이었다. 바로 곁에서 강태산의 눈빛을 알아챈 이준호는 적의 목에 대검을 꽂아 넣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강태산은 차민정을 떠올렸다.
차가 폭발했고, 연달아 총소리가 울려 나왔을 때도 그녀는 강태산을 덮친 채 버텨 주었다.
“이모! 이모!”
“괜찮아. 이모 괜찮아.”
그녀의 말과 달리 배 부근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요원들을 지키는 것도 책임자인 내 임무거든. 그러니까…, 이런 일에 꺾이면 안 돼. 절대 꺾이거나 포기하지 마.”
아팠을 텐데, 말하기조차 어려웠을 텐데, 그녀는 피 묻은 손을 들어 강태산의 볼을 감싸 주었다.
“이모!”
그제야 특수복 차림의 대원들이 달려왔고, 양복이 온통 피로 물든 요원들이 뛰어왔다.
“놔요! 놓으라고요!”
발버둥 치는 강태산을 향해 차민정이 고개를 저었다.
“이모! 이모-오!”
그때 본 차민정의 미소가 이럴 때면 꼭 떠오른다.
‘힘들겠지만, 이젠 네가 지켜야 할 차례인 것 같다.’
학장인 강철규의 음성도 기억한다.
강태산은 아래에 깔린 어둠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얼른 와. 누구든.
철컥.
그리고는 오른쪽에 든 소총의 노리쇠를 거칠게 당겼다.
말을 잃었던 강태산이 다시 입을 연 건 증평에서였다.
“네가 강태산이구나? 잘해 보자.”
이유슬이라는 특수부대원이 강태산과 함께 달렸고, 갖은 훈련을 곁에서 지켜 주었다.
“안 힘들어요?”
거친 숨을 토해 내던 강태산이 마침내 입을 열었고,
“아빠가 보고 계시거든.”
이유슬의 대답은 검지로 가리킨 하늘이었다.
증평에서 왼편 어깨에 거는 대검은 차동균 소장에게서 직접 받았다.
“왼편 어깨에 대검을 거는 순간 이후로, 누구도 너를 지켜 주지 못한다. 어깨에 대검을 걸친 네가 죽으면 우리가 해 줄 건 복수밖에 없다. 대신 처절하게는 해 주마.”
“감사합니다.”
후욱. 후욱.
그때,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숨소리가 들렸다면 이미 전투가 시작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직후였다.
부스럭.
어둠 속에서 수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뭐예요!”
밖으로 나오려다가 막혔는지 로일의 커다란 항의도 뒤에서 들렸다.
“전투 대기입니다. 카피땐의 지시이니 잠시만 막사 안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더는 로일의 항의가 들리지 않았다.
이곳에 들어서기 전에 있었던 교전을 보아서일 거다.
부스럭. 부스슥.
나뭇가지와 풀숲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고, 이준호와 외인부대원이 소총을 돌리는 철컥 소리가 뒤따라 나왔다.
치잇.
– 대장. 한 명입니다. 무기는 없습니다.”
치잇.
“잠시 지켜봐.”
치잇.
“위.”
저격병과의 무전이 오간 뒤였다.
수풀 안에서 기어 나오는 사람이 보였다.
“끄으으…….”
그가 막사를 향해 손을 뻗고는 알아듣기 어려운 말 한마디를 흘렸다.
철컥! 꽈악!
강태산은 당황해서 방아쇠를 당기려는 외인부대원의 소총 앞을 손으로 눌렀다.
“뭐라는 거야?”
“죽여 달랍니다.”
뭘 어떻게 해 달라고?
강태산의 시선을 받은 이준호가 고개를 짧게 저었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끄으.”
비명을 지르는 남자가 바닥을 한 번 더 기어온 직후였다.
강태산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
염병할.
지금껏 많은 적을 상대했지만, 이마를 뚫어 준 적이 기어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대위님?”
“봤어. 저놈 분명히 내가 이마를 뚫어 줬던 그놈 맞다.”
안전을 위해 가까이서 확인했던 놈이라 분명히 기억한다.
회색일 텐데 때에 절어 검게 보였던 저 늘어진 셔츠까지 확실하게.
“고통스러우니까 죽여 달라고 합니다. 저게 도대체?”
강태산은 수풀 너머를 살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른다. 다만 지원군이 저 안에서 기관총에 탄약을 걸고 기다릴 수도 있고, 기어오는 놈의 몸뚱이에 C4가 감겨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더라도, 이마가 뚫린 놈이 저리 다가오는 건 정말이지 처음 보는 광경이고, 지켜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강태산은 먼저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치잇.
“내가 사격하겠다. 살로이. 혹시 수풀 안에 다른 적이 있는지 살피고, 판단에 따라 저격해.”
치잇.
– 위, 카피땐.
지시를 마친 강태산은 소총을 어깨에 걸고 버둥대는 적을 겨눴다.
간혹 뇌의 왼쪽이나 오른쪽이 비어 있는 인간이 있다. 실제로 심장이 오른쪽에 있는 놈들도 있었고.
바라는 대로 죽여 준다.
그것도 이마가 뚫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이라면 더더욱.
그만 가라. 너희가 원하는 천국으로.
눈과 눈 사이, 미간을 겨눈 강태산은 검지를 당겼다.
푸슝! 퍼억!
엎드려 꿈틀대던 놈의 머리가 뒤로 크게 젖혀졌다가 바로 바닥에 떨어졌다.
이번엔 정수리다.
잔인하지만 확실하게 보내 주겠다는 의도에서였다.
푸슝! 퍼억!
반군의 머리가 흔들렸고, 이어서 목과 등까지 튀었으니 죽음은 확실해 보였다.
죽지 못해 기어 나온 놈 때문에 심장이 뛰었다고?
강태산이 수풀과 죽은 적의 몸뚱이를 차례로 보았을 때였다.
꿈틀.
엎어져 있던 놈의 어깨와 손이 움직였다.
“어?”
이준호가 당황한 눈으로 강태산을 보았고, 외인부대 대원 둘은 아예 무언가에 홀린 놈들처럼 멍한 얼굴이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전투가 시작되면 침묵하던 심장이 다시 뛰었다.
이상해. 이건 정말 이상한 거야.
처음이었다.
목에서 시작한 소름이 턱까지 올라온 것은.
강태산은 뒤편을 빠르게 살폈다.
뇌가 빈 놈들을 박박 긁어서 모은 게 아니라면, 이제부터는 저렇게 죽지 않는 놈들이 달려들 가능성이 높았다.
이번 임무는 VIP를 지키라는 거니까.
강태산은 무전기 버튼에 손을 올렸다.
치잇.
“기지를 버리고 뒤로 움직인다. 살로이, 나오는 적이 있으면 무조건 사살해. 외인부대, 플랜 B로 움직인다. 후방 가드로 이동해.”
강태산의 지시를 들은 외인부대 지휘관과 살로이의 답이 연달아 있었다.
“이준호. 내가 지시하면 여기 대원 둘과 함께 빠져.”
“예, 대위님.”
강태산은 자세를 낮추고 막사를 향해 움직였다.
“뭐예요? 왜요?”
이번에 강태산에게 건넨 로일의 질문은 반항이 아니라 놀라서 다급하게 나온 비명 같았다.
“적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서두르세요.”
그녀의 눈과 뒤로 돌렸던 강태산의 눈이 마주친 직후였다.
로일이 막사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곧바로 가방을 끌고 나왔다.
“가방 받아! 서둘러!”
“위!”
강태산의 지시를 받은 외인부대 대원이 가방을 들었고, 그사이 로일의 동료 밀러와 융언이 사파리 상의와 반바지 차림으로 튀어나왔다.
“먼저 올라가!”
“위!”
외인부대 지휘관이 대원들을 지휘해 막사의 뒤편으로 움직일 때였다.
“당신은요?”
로일이 그들 틈에서 뛰어나와 강태산에게 다가왔다.
참 당돌하기는 하네.
“우리는 이런 작전에 능숙합니다. 염려하지 말고 대원들과 움직이세요.”
“정말 약속하는 거죠?”
이 이상은 불편한데?
강태산의 눈빛이 굳어지는 것을 본 로일이 입술을 샐쭉한 뒤에 몸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치잇.
“대장! 적입니다!”
무전이 들렸고,
부슈-웅! 푸슝! 푸슝!
저격용 소총과 소음소총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외마디 비명을 지른 로일과 두 명의 동료를 둘러싼 외인부대원이 뒤편으로 움직이는 동안, 강태산은 아까 그 자리로 뛰었다.
철컥.
소총을 겨눈 강태산의 앞에 이해하지 못할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꿈틀. 꿈틀.
이게 뭐지?
악몽을 꾸는 건가?
조금 전에 미간과 정수리에 총알을 얻어맞은 인간이 다시 버둥대며 기어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숲에서 미간을 뚫린 적들이 기형적으로 몸을 뒤틀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언데드? 좀비? 그런 거 아닙니까?”
“미친 새끼! 일단 후퇴해. 상황을 보자.”
강태산은 대원들을 뒤로 물렸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대원들이 후퇴하는 동안, 강태산은 수풀에서 나온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적은 무기가 없다. 그렇다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총에 맞아 이마가 터지고, 가슴이 터진 채 자빠졌다가 다시 일어날 뿐이었다.
지원군도 없어 보인다.
그저 쓰러졌다가 끊임없이 다시 일어나고 있어서 얼핏 보면 오락실에 있는 기분 더러운 게임기 앞에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쿠웅. 쿠웅. 쿠웅. 쿠웅.
별것 없는 놈들을 상대하는 데 왜 심장이 이렇게 뛰는 건지.
치잇.
– 대장. 뒤로 나오세요.
저격수 살로이의 무전을 들은 강태산은 소총을 겨눈 자세로 뒤로 물러났다.
멀리 떨어진 적과 교전을 하다 보면 때로는 장난치는 건가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장갑차가 밀고 들어가기 전에는 그저 적이 있을 법한 위치를 가늠해 방아쇠를 당기곤 하는데, 그럴 때면 심지어 농담마저 주고받는다.
지금처럼 근거리 교전은 상황이 또 다르다.
눈 바로 앞에 적들이 뛰어다니는데, 조준할 여유 따위 바라기 어렵다. 뛰는 놈의 대가리를 조준하느라 시간을 끌다가는 이쪽 머리통이 먼저 터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근거리 교전에서는 특수부대가 월등히 위력을 발휘한다. 대가리가 불쑥 올라오는 순간 방아쇠 한 방으로 끝낼 실력을 갖춘 덕분이었다.
푸슝! 퍼억!
염병할, 그런데 저렇게 대가리가 터진 놈이 다시 일어나는 건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강태산은 배운 적이 없었다.
뭐가 이래?
막사를 품듯이 둘러싼 산의 뒤편으로 올라간 강태산은 무전기의 버튼에 손을 올렸다.
치잇.
“살로이, 빠져.”
치잇.
– 위.
저격수인 살로이가 몸을 빼는 동안, 강태산이 지킨다.
아무리 다시 일어난다고 해도 몸이 너덜너덜해진 적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대신 죽지 않은 채 바닥에서 힘겨운 몸짓을 계속할 뿐이었다.
“이준호. 아까 저놈들이 분명 죽여 달라고 했었지?”
“예. 확실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강태산은 그사이 막사의 바로 앞까지 기어온, 너덜너덜해진 시체이면서 시체가 아닌 적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적으로 만났다.
총구를 겨눴고, 방아쇠를 서로 당겼으며, 우리는 살았고, 저들은 죽었다. 그렇게 끝났어야 했다. 그런데도 저렇게 움직이는데 만약 자의가 아니라 타의라면 죽고 싶다는 말이 진심일 수도 있겠다.
도대체 어떤 개새끼들이 이런 짓을 했지?
정말 좀비 따위를 만들었다는 거냐?
강태산이 앞을 노려보며 눈매를 날카롭게 떴을 때였다.
치잇.
– 로일 박사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답니다.
외인부대 지휘관의 무전이 있었다.
치잇.
“연결해 주세요.”
잠시 뒤였다.
치잇.
– 혹시 총을 맞은 적이 죽지 않아서 그런 건가요?
로일의 무전이 들어왔다.
뭐야? 알고 있었어? 어떻게?
치잇.
– 절대로 그들과 접촉하면 안 돼요! 좀비 영화 알죠? 그것과 똑같아요!
이해하기 어려운 무전에 강태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게 박사라…….
치잇.
–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이용한 생체실험이 있었어요. 우리는 그걸 조사하기 위해 온 거고요.
이어진 로일의 말을 들은 뒤에 강태산은 그나마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적어도 블랙헤드의 에너지라면 아는 게 있으니까. 그리고 별것 아닌 놈들을 상대하는 데 이렇게 심장이 뛰는 이유도 그렇고.
‘여럿 죽겠지?’
강찬과 석강호, 제라르의 모습이 생각난 강태산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치잇.
– 만약 내 말이 맞는다면, 가까이 가지 않는 한 위험하지 않아요. 내가 그쪽으로 가게 해 주세요.
잠시 생각한 강태산은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치잇.
“로일 박사를 이리 데려오세요.”
치잇.
– 위, 카피땐.
무전을 마친 직후에 막사로 기어들어 온 적이 버둥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