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70)
651화 위치도 모르면서 출발한다는 거요? (2)
오마르와 자밀라는 아쉬운 박중상의 아랍어 실력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아랍어와 영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들려주었다.
문제는 사연을 듣는 이춘섭이었다.
가뜩이나 이용우에 대한 염려로 눈물마저 보였던 부친에게 아들이 반군에게 쫓겼으며, 살기 위해 옥상에서 뛰어내렸고, 그 뒤에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말을 어떻게 전하겠나.
“옥상에서 뛰어서 2층에 있는 우리 테라스로 떨어졌다고 들었어요. 반군이 뒤쫓는 상황이어서 아버지가 미스터 리를 급하게 숨겼고, 제가 핏자국을 닦았어요.”
자밀라가 이렇게 전하는 내용을,
“테라스 청소하다가 우연히 마주쳤답니다.”
박중상은 줄이고 깎아서 간단하게 전했다. 그 뒤로 이어진 정보총국의 도움, 위험을 무릅쓰고 예멘으로 날아간 이야기 역시 커피를 수입하기 위해서라는 적당한 핑계로 돌렸다.
통역이 뭔가 수상한데?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날리는 자밀라 앞에서 이춘섭은 또 다른 게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중상아. 그럼 네가 말한…, 거 뭐냐, 그게 없잖냐?”
“아무리 급한 마음에 왔다고 해도 처음 보는 아버지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어요? 이라크 사람들이잖아요. 저 사람들은 그런 문제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그건 또 그러네.
고개를 갸웃했던 이춘섭이 진실을 알고 싶은 표정으로 자밀라와 그녀의 부친 오마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상해, 진짜 이상해.
자밀라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눈이 커다란 이라크 여자, 자밀라가 이용우에게 관심이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영악한 자밀라.
확실히 그녀는 통역을 맡은 박중상이 뭔가 내용을 줄이거나 비튼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낸 그녀가 화면을 누른 뒤에 아랍어로 뭔가를 말하고는 이춘섭을 향해 돌렸다.
신기한 세상이었다.
– 당분간 이곳에서 머뭅니다. 한국을 배웁니다. 의견이 어떻습니까?
어딘가 어색했고, 억양이 전혀 담기지 않아서 마치 책을 읽는 듯한 음성이었지만, 자밀라의 뜻을 알아듣기에는 충분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밀라는 스마트폰 액정에 올라온 마이크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게 뭐냐?”
박중상이 여기에서 뭘 어쩌겠나.
이미 자밀라가 통역 앱을 이용한 다음인데.
“저기 마이크 그림 있잖아요. 그걸 누르고 말씀하시면 아랍어로 바꿔서 나올 거예요.”
“그럴 수도 있어? 세상 참…….”
박중상을 돌아보았던 이춘섭이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가져온 다음이었다.
자밀라가 얼른 마이크 표시를 눌렀다.
“여기가 불편하지 않겠어요?”
– 근처 호텔에서 지내겠습니다.
“그렇다면야 내가 뭐랄 게 없지요.”
– 감사합니다.
처음 만난 자리였고, 이미 이 근처에서 지내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될 대로 돼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이용우 이 개새끼야.
“어차피 내일도 뵐 거니까 오늘은 이만 호텔로 가서 쉬시죠?”
“그게 좋겠어요.”
박중상의 제안으로 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고, 밖으로 나섰다.
엉거주춤한 이춘섭에게 공손하게 인사한 자밀라가 차에 타기 전이었다.
“들른 김에 미스터 리의 부인에게도 인사하고 싶은데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피곤할 테니까 오늘은 일단 쉬고, 내일 찾아가는 거로 하죠.”
자밀라의 요구가 추모공원을 찾는 것으로 오해한 박중상이 긴 비행에 지친 두 사람을 배려한 대꾸를 건넸다.
***
신동철과 함께 앉은 이용우는 가장 먼저 예멘의 지도를 펼쳤다.
아차. 순서가 이게 아닌데?
그렇다고 당황할 이용우는 아니어서 농장의 위치를 검지로 찍어 준 뒤에 커피콩을 조사하게 된 이유를 간결하게 들려주었다.
“농장에 도착하면 어떻게 움직이실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고민 중인데 일단 가서 상황보고 결정하자.”
“예?”
놀라기는, 그러나 늘 정확한 임무 수행을 위해 출동하던 군인 신동철에게는 시쳇말로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이용우의 답이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위에서는 뭐라고 하시는데요?”
“능력껏 알아보라고 하시던데?”
이어진 대화의 끝에서 신동철은 눈을 껌벅였고, 이용우는 그런 반응이 재미있다는 투로 픽 웃었다.
“군인으로 가는 게 아니라 요원이야. 현장 요원. 그러면 이해가 쉽지.”
“예에.”
여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표정의 신동철이 뭔가 귀에 걸리는 답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이용우를 어딘가 미덥지 않은 시선으로 살피고 있었다.
한 팀으로 활동하려면 분위기를 바꿔 줄 필요가 있겠다.
“태산이 팀에 있었다면서? 동기야. 나랑.”
“그러셨습니까?”
약발은 기대 이상이었다.
실제로도 지금껏 보이지 않던 존경의 감정이 신동철의 눈에 담뿍 담겨 있었다.
‘강태산이 아프리카에서는 진짜 먹어 주나 보네.’
그 덕분에 이용우는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에서 강태산이 지닌 존재감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훈련할 때 대위님은 어떠셨습니까?”
“징글징글했지. 나도 진짜 독종이라고 자부했는데 태산이만큼은 못 이기겠다 싶더라.”
“그랬습니까?”
이건 뭐 좋아하는 연예인의 수련생 시절을 듣는 팬클럽 회원도 아니고, 고작 훈련받던 때의 이야기 하나에 이렇게 감동하냐?
“그래서 곽철호 대령님이 너를 선발한 거 같더라. 태산이 팀에 있던 대원이라면 누구보다 임무를 잘 수행할 거라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기는, 나도 그랬다.
어쩐지 강찬을 만났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이용우는 나오려는 웃음을 슬며시 삼켰다.
“도착하면 그곳 상황 봐 가며 내가 상대할 테니까 너는 눈치껏 행동해. 최악은 반군과 교전이 벌어지는 건데, 일단 붙게 되면 뒤 생각하지 말고 밀어붙여. 무슨 말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알아서 판단하라는 지시에도 신동철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어서 더 약을 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출발하기 전에 당부 하나만 더 하자.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아랍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하거든. 그래서 홀로 떨어져도 빠져나올 수 있지만, 너는 어려워. 그래서 말인데, 최악의 상황에서 내가 지시하면 그게 어떤 거든 무조건 따라.”
혼자서 탈출하라는 지시일 수 있다는 점을 신동철은 알아챈 눈치였다. 거기에 동료를 버리는 게 수치라고 배우고 훈련했을 군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이기도 했다.
“신동철?”
“하사 신동철.”
“부원장님께서 나와 너, 둘만 보내서 미안하다고 하셨을 만큼 어려운 임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임무를 맡긴 건 이라크에 헬륨3를 보낸 이유가 그만큼 중요해서겠지. 나는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낼 거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너를 버리고라도 알아낸 정보를 부원장님께 전해 드릴 거고.”
직전까지와 다르게 이용우는 정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고, 이어서 말을 이었다.
“말했지? 군인이 아니라 요원으로 생각하라고. 내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너를 버렸다고 원망할 거면 지금 말해.”
“아닙니다.”
“감정에 따라 내 지시를 받거나, 안 받을 생각이어도 지금 말하고.”
“시정하겠습니다.”
신동철의 눈을 들여다본 상태에서 이용우는 옅게 웃었다.
신동철처럼 군인으로 뛰던 시절이 떠올라서였다.
***
쓰러지지 않겠다는 것처럼 무릎을 짚고 버티는 최치곤의 코와 턱에서 비 오듯 땀이 떨어졌다.
“씨발…….”
통과했다. 마지막 테스트를.
우습지?
훈련을 통과하고 나서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 강성태인 게.
천천히 허리를 편 최치곤은 이를 악물며 달려왔던 언덕을 내려다보았다.
어깨와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아니면 허벅지나 무릎이 나가든가.
지금도 그렇다.
최치곤이 시선을 준 잡풀 무성한 스키장 슬로프 곳곳에서 버려진 것처럼 자빠진 덩치들이 개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지난번에 최치곤도 저랬었다.
훈련 도중에 포기했다고 해서 저 덩치들의 의지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강성태의 말대로 이 훈련을 통과할 근성이 없다면 새로운 도시에서 술과 도박, 약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었고, 여자를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짓을 할지도 모른다.
“편한 생활을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말도 통하지 않는 땅에서 처음 겪어 보는 놈들을 상대로 신도시를 지켜야 하는데, 이 정도 훈련을 통과할 독기와 근성이 없다면 총칼이 아니라 의지에서 먼저 무너져!”
강성태의 표정과 음성을 떠올렸던 최치곤은 “후-.” 하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친구지만 진짜 징그럽네.’
슬로프를 향해 지친 미소를 그리는 최치곤의 심정을 알아차렸을까?
조용하게 다가온 키란이 최치곤을 보며 보기 좋은 미소를 그렸다.
“잘했어.”
그런 뒤에 이제는 능숙해진 우리말로 최치곤을 다독여 주었다.
***
평화유지군 대원이 지키는 의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석강호는 깨어 있었다. 강찬과 제라르를 향해 돌린 얼굴에 아직 힘이 부족했지만 말이다.
“개새끼.”
평소처럼 석강호를 평가해 준 강찬은 곧장 침대 옆으로 움직였다.
“뭐요?”
“뭐가?”
“언제 출발이오?”
강찬과 제라르의 표정만으로도 석강호는 출발을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오래 함께했다는 건 어떤 때 무섭다.
특히, 지금 같은 순간에는 유독.
“나는요?”
“그 꼴로 가면 짐 돼.”
이번 석강호의 질문을 받은 건 제라르였다.
“너는 같은 말을 해도 꼭…….”
“내가 대장하고 잘 다녀올 테니까 너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라면에 김치나 먹고 있어.”
“봉지 커피는?”
에이, 속 빠진 새끼.
뾰족한 느낌으로 오간 대화의 끝에서 석강호의 엉뚱한 대꾸가 튀어나왔다.
이렇게 만나면 늘 으르렁거려도 석강호가 위독할 때 제라르의 표정을 강찬은 선명하게 기억한다. 놈이 “위이-.”라며 독하게 내놓은 기다란 대답도.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몸통을 찾은 거 같다.”
“어떤 새끼요?”
“하르트만 요하스라는 놈인데, 지금 안느가 위치를 찾고 있으니까 조만간 잡아야지.”
“얼래? 그럼 위치도 모르면서 출발한다는 거요?”
“예멘 부통령과의 통화 기록을 황성규와 안느가 뒤졌거든. 일단 유럽인 건 확실하다니까 그쪽으로 가려고.”
“프랑스 아니요?”
이럴 때 보면, 돌대가리는 아닌데?
문바키의 실종을 염두에 둔 석강호의 질문에 강찬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런데 대장. 그 집사라는 놈이 전에는 뭐 하던 새끼요?”
“전에 라노크 대사님이 정보총국의 부총국장을 제거했을 때 밀려난 놈이라는데 나도 안느가 보내 준 사진을 통해서 처음 봤어.”
“결국, 마무리를 제대로 못 한 바람에 생긴 일이었구려.”
“별장에서 라노크 대사님을 노렸던 놈 기억하지? 문바키가 제거한 놈. 그놈의 행적과 맞추고 있으니까 걸리는 놈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깡그리 마무리해야지?”
“대장 혼자 힘들어서 어떡하우?”
둘이 가는데 왜?
석강호의 시선을 따라 제라르를 돌아보았던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저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의미를 석강호가 선명하게 얼굴에 담고 있어서였다.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얼른 일어나.”
“알았소. 문바키와 함께 오쇼.”
한 소리 하려는 제라르에 앞서 강찬이 당부를 건넸고, 석강호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답을 내놓았다.
***
커피숍에 덩치들이 바글거리는 모습이 싫었던 강성태는 객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교창, 박배근은 물론, 도착한 덩치들의 숫자에 맞춰 객실을 배정해 주었고, 당연한 일이지만 요금 또한 깔끔하게 지불했다.
이 정도에서 맡기고 출발할까, 아니면 이병렬에게 가 볼까?
약을 가져왔다는 중국놈 둘에게 간 이병렬을 떠올릴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나직하게 몸을 떨었다.
멕시코? 아니면 아프리카?
액정에 올라온 국제전화 표시를 확인한 강성태는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내가 누군지 알겠냐?
대뜸 건너온 질문이었다. 그런데도 강성태는 음성을 듣는 것과 동시에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건강은요?”
– 늘 그렇지.
이 양반은 항상 이렇다. 반가워하는 걸 빤히 알겠는데도 꼭 이렇게 미적지근하게 답한다.
“어디세요?”
– 아프리카에 잡혀 왔다. 너도 온다고 했다던데?
“잡히셨다고요?”
– 네 덕분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분과 연락이 닿았거든. 마침 그분 쪽에서 일을 하나 맡기는 바람에 꼼짝 못 하고 잡혔지. 언제 오냐?
“이곳 정리되는 대로 건너가겠습니다.”
–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대강 들었다. 알아서 잘하겠다만 몸조심해.
“알겠습니다. 가는 대로 뵐게요.”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아직 미소가 남은 얼굴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살면서 꼭 만나고 싶었던 양반, 함께 있으면 이병렬, 최치곤만큼이나 든든한 사람이었다.
감성원을 생각하던 강성태는 그 끝에서 천중명을 떠올렸다.
약속을 지켜 줄 거라 믿었다. 이렇게나 빨리 연락이 닿을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가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또다시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박배근입니다, 형님. 중간 판매상 한 놈을 더 잡았답니다, 형님.
“판매상에게 약 사 간 사람을 찾을 수 있는지 확인해.”
– 알겠습니다, 형님.
스마트폰을 내린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제발 이 정도 선에서 끝나라.
그저 호기심에, 혹은 값싼 약을 손에 넣는 바람에 잠시 유혹에 넘어간 거로. 고작 몇천 원짜리 환각에 빠진 대가로 빼앗기기에는 다들 너무나 소중한 삶이잖아.
창을 향해 고개를 돌린 강성태는 간절한 바람을 조용하게 삼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