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71)
652화 위치도 모르면서 출발한다는 거요? (3)
아무것도 모른 척 떠오른 태양이란 놈이 뻔뻔하게 어제와 같은 하루를 선물한 아침이었다.
강찬은 공항 청사 뒤편의 활주로에 섰다.
번듯하게 서 있는 건물, 쭉 뻗은 활주로, 그 안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순조롭게 보이는 저 일상이 AK 소총 한 자루면 박살 난다.
휴대용 미사일이나 폭탄 테러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을지 가늠하지도 못하고.
당연하게 공항 건물에 들어선 사람들은 강찬과 평화유지군을 알지 못한다. 반군을 향해 출발하는 이 모습도 전혀 알 길이 없었다.
AK 소총 한 자루에도 구석에 처박혀 벌벌 떨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대원들이었다. 그리고 AK 소총에서 튀어나온 총알에 맞으면 일반인이나 지금 출발하는 평화유지군이나 모두 목숨을 잃는다.
“다녀오마.”
늙어 버린 강철규를 보며 강찬은 고개만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붙잡고 싶다. 이 양반만큼은.
세계 어디에 던져 놓아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영웅이 주름 가득한 얼굴로 전장에 나가는 모습이 이상하게 강찬의 마음에 걸렸다.
강찬의 눈을 들여다본 강철규가 피식 웃었다.
“이 전투 끝나면 전에 먹었던 불고기 한번 먹을 수 있을까?”
영감이 이제는 가슴 울컥한 농담도 한다.
피식.
강찬과 강철규는 비슷한 느낌으로 웃었다. 그런 뒤에 강찬은 팔을 들어 강철규의 헬멧을 두들겼다.
강찬은 헬멧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팔을 뻗은 강철규는 상체에 있는 상처들을 조심하는 것처럼 정장 입은 강찬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다음은 윤상기였다.
시선이 마주치기 무섭게 강찬과 윤상기는 동시에 웃음을 띄웠다. 장광택을 잡으러 죽어라 달리던 때가 떠올라서였다.
툭툭. 다독다독.
헬멧과 어깨를 서로 다독여 준 다음이었다. 뒤로 서 있던 평화유지군 대원들이 줄줄이 강찬 앞으로 다가왔다.
“중사 박영식!”
“동료로 마주 선 거니까 이럴 때는 관등성명 안 대도 돼.”
“알겠습니다!”
피식 웃는 강찬을 보며 박영식이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강찬을 마주한 대원들이 흔히 보이는 반응이었다.
전설의 부원장이라며?
소문은 엄청나게 들었는데 실제로 보면 강철규의 손자쯤으로 여겨지는 외모고, 심지어 제라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강찬의 모습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강찬을 대하는 강철규, 곽철호, 윤상기의 태도를 보고, 그 뒤에 눈을 마주하게 되면 조금 전의 박영식처럼 받아들였다.
강철규와 윤상기가 인솔하는 A팀 다음으로, 곽철호가 지휘하는 B팀이 강찬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짓 강찬은 내키지 않았다. 함께 가는 것도 아니고, 대원들만 보내는 전투에 뭐 잘났다고 앞에 서서 인사를 주고받겠냐 싶어서였다.
“부원장님과 인사할 기회를 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곽철호와 윤상기가 워낙 진지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강찬은 앞에 선 곽철호의 눈을 들여다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이제는 나이 든 그의 헬멧을 툭툭 두들겨 주었다.
사람 마음 약해지게.
곽철호가 정말이지 보기 좋은 웃음을 얼굴에 담았는데 이번에는 그 모습이 강찬의 가슴에 걸렸다.
편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지금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제라르, 석강호와 킬킬대며 하루를 보낼 테고, 강철규, 곽철호, 윤상기와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며 지내고 있겠다.
염병할.
“강찬 씨는 대한민국을 진심으로 사랑합니까?”
송창욱의 그 한마디에 꽁꽁 묶였다. 그 뒤로 손가락이 부러진 상태에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도 허무하게 죽은 대원부터 미숫가루를 입에 묻힌 채 죽어 간 대원과 대테러팀 대원들까지.
무슨 짓을 해서든 제 배만 채우겠다는 개새끼들이 바글바글한 대한민국이 지금껏 성장한 데는 죽어 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한마디 원망조차 내지 않았던 그런 인물들이 있어서겠다.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엄지환 같은 요원을 포함해서 말이다.
곽철호가 이끄는 B팀과의 인사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다가온 두 사람을 보며 강찬은 또 피식 웃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지?”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와 제가 얻은 경험을 후배에게 전하는 요원이 되겠습니다.”
이용우의 저 뻔뻔함이 밉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든든하게 강찬에게 다가왔다.
헬멧을 쓰지 않은 두 사람을 향해 강찬은 팔을 뻗었고, 어깨를 두드렸다.
“뭐야? 예의를 차리는 거야?”
“아닙니다!”
능글맞은 표정을 지은 이용우가 한 박자 느리게 강찬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 전설의 부원장 어깨를 만졌어!’
마치 어릴 적부터 늘 만나고 싶었던 스타를 만난 팬의 눈과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강찬은 다음으로 다가온 신동철의 어깨를 다독였다.
“하사! 신동철!”
신동철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것으로 인사가 모두 끝났다.
이제 출발하면 저들 중 누가 피를 흘리며 사라질지 모른다.
강찬을 향해 눈인사를 던진 강철규, 윤상기가 움직였고, 그 뒤로 곽철호가 대원들과 함께 걸었다.
헬멧, 방탄조끼, 돌려 내린 소총, 가슴과 허리, 발목에 주렁주렁 걸린 무기와 탄창들, 강찬은 차량을 향해 움직이는 평화유지군 대원들을 묵묵하게 지켜보았다.
***
지하실에서 약에 중독돼 쓰러지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나가면서 이세종은 목숨 걸고 취재하는 기자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JBC는 또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 보시는 원룸에서 값싼 약에 중독된 20대 남녀 다섯 명이 발견됐고, 그중 두 명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마이크를 든 이세종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성의 힘으로 겨우 누른 듯한 표정을 완벽하게 지어내고 있었다.
“여수 경찰서는 JBC의 특종에 따라 중간 판매상을 연달아 검거했고, 그들을 추궁해 마약을 사 간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해 추적했습니다.”
화면에서는 의식을 잃은 20대의 모습이 모자이크 처리돼 나왔고, 이어서 그들을 옮기는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나왔다.
“단순한 호기심과 값싼 유혹에 빠져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생명들입니다. 우리 사회에 스며든 마약, JBC 보도국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약 청정국의 위상을 되찾을 때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엉망이 된 원룸에서 이세종은 잠시 숨을 들이마셨다.
“이상 여수에서 JBC 보도국 이세종이었습니다.”
착 가라앉은 표정과 음성을 끝으로 화면은 스튜디오에 있는 앵커에게 옮겨 갔다.
그 직후였다.
“하여간 참. 국장이 된 데 이유가 있겠지만, 저런 것도 능력이지 싶네. 보스가 했던 말을 어떻게 저런 식으로 돌려 사용하냐?”
객실에서 TV를 지켜보던 이병렬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이세종을 평가했다.
그런 뒤에 그는 강성태에게 고개를 돌렸다.
“보스 지시대로 식구들이 고생해서 찾아낸 놈들이랑 실적을 전부 경찰에게 넘겼으니까 모범 시민 표창은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이 정도가 좋아. 괜히 깡패들이 설쳐서 모든 걸 해결했다고 하면 경찰이고, 검찰이고 앙심을 품을 텐데 뒤도 생각해야지.”
“아효, 누가 뭐라나? 아무튼, 여기도 대강 수습됐고, 이번 일로 약 만지면 어떻게 되는지 충분히 알려 줬으니까 이만 올라가지?”
둘만 있는 객실이라서 말 편하게 하는 게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약 넘긴 놈들은?”
“독종 흉내 내는 거 보니까 어지간해서는 입 열지 않겠더라고. 애들 시켜서 서울에 가져가면 되니까 그렇게 하지?”
잠시 생각하던 강성태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돈 몇 푼 벌자고 죽음을 부르는 약을 팔아 대는 놈들에게 베풀 인정 따위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아, 참. 치곤이 새끼. 테스트 통과했다던데 들었어?”
강성태의 고갯짓을 보고서 몸을 세우던 이병렬이 깜박했던 일을 떠올린 것처럼 입을 열었다.
“뭐야, 그 새끼? 보스에게 말 안 했어?”
“놀라게 할 생각이었나 본데?”
“뭐야? 그럼 내가 입 싼 놈이 되는 거잖아. 서울 가서 치곤이가 진짜 그런 거면 놀란 척해 줘.”
픽 웃은 강성태는 재킷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내려가면 식구들 고생했다고 다독여 줘. 특히 동생들 보는 앞에서 배근이 형님이나 교창이 형님은 꼭 얼굴 세워 주고. 아르윈도.”
“가르쳐 주는 건데 열심히 배워야지.”
강성태의 대꾸를 들은 이병렬이 기가 막힌 표정을 지은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출발 전에 삼치 형님도 한번 들여다보고.”
“그럴 필요 있어?”
“태완이 형님이 만지고 있기는 한데, 보스가 얼굴 내밀면 수습하기 훨씬 쉬워져. 무게감이 다르니까.”
강성태를 향해 조언을 건네던 이병렬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괜히 가서 침대에 누운 양반에게 주먹질할 거 같으면 그냥 두고.”
“생각해 볼게.”
답을 들은 직후에 이병렬의 표정이 바뀌었다.
보스와 함께 움직이는 2인자의 모습과 태도였다.
***
지금까지 마리그는 하라데레 해적들에게 절대 대항하거나 그들을 거스르면 안 되는 지역이었다.
이왕 시작한 일이었다.
하라데레의 해적들에게 납치됐던 소녀를 구출해 온 곽대출은 다음 날 날이 밝기 무섭게 지역 주민들을 불러모았다.
“18세 미만은 글을 읽고 쓸 때까지 지경이 제공하는 일자리에 취업하지 못합니다. 대신, 교육 시설에 아이를 보내는 가정에 매달 미화로 30달러를 지원하겠습니다.”
주인영의 계획안에 담긴 내용을 발표하기 무섭게 주민들이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돈을 준단다. 한 달 수입이 20달러에 불과한 가정에 아이 한 명당 30달러를.
뭐라는 거지?
진짜로 처음에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확인한 뒤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 주었다.
환호, 가슴에서 일어나는 기쁨을 어떻게 하지 못해 제자리를 펄쩍펄쩍 뛰는 몸짓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다음이었다.
곽대출은 다시 환경 정화 사업에 관해 설명했다.
“남성 근로자에게 8시간 근무하는 조건으로 일당 12달러를 지급하고, 근로자와 교육 시설의 학생들을 위한 식사와 간식을 만드는 여성에게 하루 10달러를 지급하겠습니다.”
솔직히 그냥 이런 제안을 했다면 ‘저것들이 뭘 뺏어 가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라데레에 달려갔던 곽대출이 마이야르를 구출한 뒤였다.
곽대출에게만큼은 믿음이 있었다.
팔을 뻗은 주민들이 “꽉! 꽉! 꽉! 꽉!”이라고 외치며 곽대출의 주변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
황성규는 지경그룹 천중명의 비밀 정보 수장이었다.
과거 CIA에서 일했던 그는 수상한 자본이 한국 경제를 노린다는 확신을 지니고 천중명을 찾았고, 그 음모를 멋지게 부쉈다. 멋지고 통쾌하게. 그러나 그는 이렇게까지 엄청난 임무를 맡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 관광 A팀. 이동 시작했습니다.
– 관광 B팀. 이동합니다.
당장 예멘의 에덴 공항에서 출발하는 평화유지군의 이동에 따른 반군과 정부군, 그 외 정보국의 움직임을 살피느라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이쪽은 된 거 같고.
교환원이 사용하는 듯한 헤드셋을 귀에 건 황성규는 앞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 프랑스 지사입니다.
“AF 여행사입니다. 방금 관광객들이 출발했습니다.”
황성규가 영어로 내용을 건넨 다음이었다.
– 모사드를 포함해 관광객의 이동을 파악한 곳은 없는 거 같네요. 다만, 감시 위성의 방향을 봐서 한두 시간 내로 미국이나 영국의 첩보망에 걸릴 가능성은 있어요. 변동 사항 있으면 바로 연락할게요.
“감사합니다.”
안느와 영어로 통화를 마친 그는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게 말이 되나 싶다.
프랑스의 안느는 감시 위성과 정찰용 무인 비행기를 이용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황성규에게 보내 주고 있었다. 강찬이 원했고, 그에 따라 천중명이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서 손에 넣은 감시 위성과 정찰용 무인 비행기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밖에도 각국 정보국의 통신에 정보총국이 보내오는 자료를 더해서 상황을 판단하고, 그 정보들을 황성규에게 보내 주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첨단 장비를 갖추었다 해도 밑바닥을 훑는 정보원을 빼고서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또한, 정보원들이 보내 주는 정보의 질과 정확도에 따라 비용이 매겨지기 때문에 정보국의 운영이라는 건 그야말로 잔디밭에 물을 뿌리듯 돈을 써야 하는 일이었다.
여기에 황성규는 또다시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의 자체 정보망과 연락한다. 실시간으로 평화유지군의 이동, 전투 상황을 파악하고,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제3 세력의 개입을 파악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아포코 기지를 습격했던 반군과 특수부대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렇지만 예멘에서 이동하는 평화유지군을 습격하는 놈들이 있다면 반드시 잡아 줘.”
안느가 전달해 준 강찬의 지시와 요구였다.
비록 감시 위성과 무인 정찰기가 제대로 활동하기 직전에 일어났던 사건이라지만, 습격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지금도 그들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 건 황성규에게는 치욕이었다.
더구나 소령 한 명을 포함해 평화유지군과 외인부대 대원들이 희생되었다면 거기에는 분명 정보를 담당한 자들의 책임도 분명 있었다.
“우리를 믿고 관광객이 출발했어. 이번에도 습격으로 인한 희생이 발생한다면 우리 목숨으로는 해결 안 돼. 정신 바싹 차리고 관광객들이 도착할 때까지 분 단위로 상황 체크해!”
황성규는 팀장들에게 독한 지시를 전달했다.
야간 투시경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는 흑백 영상 속에서 트럭이 줄줄이 달리고 있었고, 네 명의 팀원이 반경 20킬로미터 안쪽의 움직임을 체크하고 보고한다.
누군가 습격한다면 이번에는 그놈들의 동선을 거꾸로 뒤져서 놈들의 정체를 밝힐 수도 있다.
“감시 상황은? 나오는 놈이 있다면 무조건 동선을 역추적해서 근거지를 찾아내야 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습만 보이면 반드시 근거지를 찾아낼 겁니다.”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은 정말이지 비밀리에 움직였다. 그래서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적이 또다시 기습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나오기만 해라.
무조건 파고들어서 몸통을 잡아 주마.
황성규는 이를 뿌드득 악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