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74)
655화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해 (3)
영등포 로터리에 들어선 조봉진이 가장 바깥 차선으로 방향을 튼 뒤에 나오는 도로에 들어섰다. 이 도로를 타고 쭉 가면 지하철역이 나오는데, 그 전까지는 극장 하나와 맞은편의 관광호텔을 제외하면 대부분 공장이었다.
도로에 들어선 조봉진은 다시 오른쪽에 있는 첫 번째 골목으로 핸들을 꺾었다.
좁은 골목에 들어선 뒤였다.
초소처럼 보이는 간이 건물 앞에서 덩치 두 명이 승용차를 향해 깊게 상체를 숙였다. 승용차가 지나가고 나면 저 덩치들이 바로 쇠사슬을 이용해 골목을 막는다.
엄청나게 중요한 뭔가가 있는 모양새지만, 실제로 골목 안쪽에는 공장 건물 하나가 전부였다. 그리고 골목 끝은 옹벽으로 막혀 있었고, 그 위가 바로 강변도로였다.
낮에는 차가 많이 다녀서 시끄럽고, 밤에는 거세고 빠르게 달리는 바람에 더욱 요란해서 어지간한 고함이나 소란쯤은 들리지 않는 이점이 있었다.
끼이익.
조봉진이 공장 앞에 승용차를 멈춘 뒤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문을 열어 준 이종환이 강성태와 이병렬을 향해 고개 숙였다. 그리고는 뒤편에서 인사한 덩치들을 향해 “열어.” 하는 짧은 지시를 내렸다.
끄드드등.
비명처럼 들리는 소음과 함께 문이 열리며 문 크기만큼 달려 들어간 빛이 공장 안을 비춰 주었으나 안쪽은 확실히 어둑했다.
강성태가 앞서고, 그 뒤로 이병렬, 이종환이 들어서자 덩치 둘이 곧바로 문을 닫았다.
끄드드등. 쿠응.
“안녕하십니까, 형님.”
밖에서 볼 수 없게끔 앞을 가리고 있던 덩치 열 명이 인사한 뒤에 물러났다. 그러자 밧줄로 상체를 휘감다시피 묶인 채 바닥에 꿇어앉아 있는 두 놈이 강성태 앞에 드러났다.
인정사정 두지 않고 두들긴 모양이었다.
대가리에서 흘러내린 피가 눈과 볼을 지나 턱을 타고 떨어지고, 피가 배어 나오는 눈과 코, 입술은 퉁퉁 부은 상태에서 이리저리 찢겨 있었다.
“많이 상했네. 그래서 뭐 좀 토했어?”
“이 새끼들,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형님.”
고개를 삐딱하게 틀고 살피던 이병렬의 질문에 이종환이 뭔가 엉뚱하게 들리는 답을 내놓았다.
“중국놈들 어지간히 상대해 봤는데 이 새끼들은 아무래도 우리 쪽이 아닌 거 같습니다, 형님.”
“뭐라는 거야? 당연히 저쪽이겠지.”
“그게 아니고, 형님. 생활하던 놈들이 아니라 뭐 비밀경찰, 아니면 정부 쪽에서 일하던 놈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종환의 설명을 듣던 강성태는 곤잘레스 회장의 조언을 떠올렸다. 정보국이 강성태를 노린다던 조언이었다.
광룡에서 삼합회로 이어지더니 이제는 정보국 놈들이 나서서 마약을 팔아 대는 건가?
놈들을 내려다보며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천 원 하는 마약이었다.
이런 걸 정보국에서 나서서 판다면 돈도 돈이지만, 멕시코처럼 사람들을 물들여서 나라가 휘청이게 한 뒤에 손에 쥐겠다는 의도로 보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실제로 멕시코에서는 마약상이 다른 지역을 잡아먹을 때 이런 수법을 사용했다.
강성태는 놈들의 얼굴을 들여다볼 정도로 자세를 낮췄다.
문을 닫아서 지금은 창에서 들어온 빛이 전부였다.
얻어맞은 놈들은 어둠에 얼굴이 휩싸였고, 강성태는 정면으로 비치는 빛에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다.
“흐윽. 흐윽.”
얻어맞아 부은 데다, 흘러내리는 피로 인해 코와 기도가 막힌 모양이었다. 두 놈이 변태처럼 쏟아 내는 숨소리가 가까운 만큼 선명하게 강성태에게 달려들었다.
강성태는 왼편 놈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직후였다.
꿈틀, 퉁퉁 부은 탓에 선만 쭉 그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놈의 눈 안에서 핏물을 가득 머금은 눈알이 강성태를 향해 분명하게 돌아왔다.
분한 기색이었다.
두고 보자는 느낌도 분명히 담았다.
“병신들.”
강성태는 전에 없이 거친 말을 툭 내뱉었다.
멕시코에서 이보다 백 배는 지독한 말종들을 상대하며 살았다. 이런 놈들은 절대 반성 없다. 아직 조직이 구해 줄 거라고, 그 뒤에 강성태에게 잔인하게 복수할 거라는 독기를 품은 놈들은 정말 답이 없다.
“삼합회 부두목이라는 놈부터 하다못해 하부조직인 광룡이 그러더니, 이번에는 아예 정보국이냐? 그렇게 나서서 한다는 짓이 바퀴벌레처럼 숨어들어서 약을 파는 거고?”
꿈틀, 이번에도 겨우 벌어진 눈 틈으로 눈알이 움직였는데 직전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일대일로 붙어 보자, 뭐 그런 느낌이라면 적당하겠다.
“붙어 보고 싶은 모양인데, 너희는 그럴 자격이 없어.”
말을 마친 강성태는 몸을 세웠다.
확실히 알겠다.
이놈들은 누군가 뒤따르고 있어서 곧 도움을 주리라고 믿고 있었다.
“이종환. 우리가 가져온 약 있지?”
“예, 형님.”
“그거 이놈들에게 먹여.”
“알겠습니다.”
멈칫한 뒤에 그만큼 단단하게 들리는 이종환의 대꾸가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에도 강성태는 핏물 가득한 놈들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너희 같은 조무래기 상대할 이유도 시간도 없다. 그러니까 가지고 왔던 약 배불리 먹어. 먹으면서 너희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생각해 보고.”
강성태의 말이 건너간 직후였다.
“이러고 무사할 줄 아니?”
중국어 억양이 담뿍 묻은 우리말을 왼쪽에 있던 놈이 쏟아 냈다.
“이런 씨발 새끼가!”
부웅! 퍼윽!
강성태가 손을 들었을 때는 이미 지켜보던 덩치 한 명이 휘두른 쇠파이프가 방금 지껄였던 놈의 머리통을 때린 다음이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상체를 숙였던 덩치가 물러난 뒤였다.
“커흑.”
비명을 토해 낸 놈이 또다시 선만 그어 놓은 듯한 눈매를 뒤틀어서 강성태를 찾았다.
남의 땅에 약을 풀어서 젊은 사람들을 물들이고, 그렇게 사회를 좀먹게 하려던 놈이 보이는 독기?
“내가 왜 약을 먹이라는 건지 아냐?”
“뭐라니?”
“바퀴벌레를 죽이는 데는 그게 가장 효과가 좋거든.”
휘익! 콰자작!
말을 던진 강성태는 거세게 꿇어앉은 놈의 턱을 올려 찼다.
털써-억.
머리가 불쑥 올라올 정도로 얻어맞은 놈이 바닥에 쓰러져서 꿈틀거릴 때였다.
“먼저 가. 약은 그 뒤에 먹일 테니까.”
어떤 경우에도 강성태를 지키고 싶은 이병렬의 요청이 나직하게 나왔다.
강성태는 이병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고개를 돌린 강성태의 얼굴과 표정이 어둠에 싸였고, 시선을 받는 이병렬은 창에서 달려드는 빛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 새끼들 믿는 게 있어. 정말 정보국에 속해 있는 놈들이라면 우리를 따라붙은 놈들도 있었을 테고. 깡패들이 아니라서 대놓고 달려들지는 못하겠지만, 뭔가 수작을 부릴 거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빛이 고스란히 담긴 이병렬의 눈이 강성태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수에서 판매상과 피해자 못 찾았다면 우리 진짜 모두 당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그냥 약 먹여.”
“약 먹이면?”
“밀입국이잖아. 약 돌리던 놈들을 우리가 잡았는데 약을 배 터지게 먹고서 죽은 거지.”
“그래도 되겠어?”
“방송 나간 것도 있으니까 괜찮아. 대신 뒤처리 알지?”
깔끔하게 처리하라는 의미를 바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이병렬이 잔인하게 웃었다.
“숨어서 지켜보는 놈들에게 보여 주자?”
“깡패 뭐 있어? 이놈들 처리할 때 달려들면 제대로 붙어 주는 거지 뭐. 저놈들은 저놈들 방식대로,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저쪽이나 우리나 어둠에서 싸우는 건데 우리 구역 먹으러 온 놈들에게 밀리면 자존심 상하잖아.”
“씨발. 이래서 내가 보스를 따를 수밖에 없다니까.”
대화의 끝에서였다.
이병렬이 독특한 표현으로 만족한 심정을 한껏 드러냈다.
“야! 약 가져와!”
그런 뒤에 덩치들을 향해 지시를 던졌다.
***
깊게 잤다.
전날 밤을 새운 탓도 있었고, 무엇보다 도착과 동시에 게르만의 집사라는 놈 대가리를 돌리려면 잠을 자 둘 필요도 있었다.
띵띵띵띵.
착륙 시그널을 들은 강찬이 적을 감지한 것처럼 눈을 떴고, 동시에 제라르가 고개를 들었다.
“후-.”
강찬이 숨을 길게 내쉬며 지금도 매달리는 잠을 털어 낼 때였다.
뚜껑을 돌린 제라르가 물병을 건넸다.
사는 모습이 참 많이 바뀌었는데 담배처럼 이 습관은 못 버렸다. 짧게 자고 난 뒤에 물을 마시고, 남은 물로 얼굴을 닦는 습관 말이다. 습관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하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싸움에 나서기 전 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느낌이었다.
“푸후.”
강찬과 제라르는 거의 비슷하게 물을 마셨고, 남은 물을 손바닥에 부어 얼굴을 닦았다. 석강호가 함께 있었다면 분명 “커흑.” 하며 목에 가래 걸리는 소리를 냈을 거다.
작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다음이었다.
커다랗게 공중을 돈 비행기가 본격적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에 활주로를 달리며 속도를 줄였다.
대형 항공사가 아닌 탓에 강찬을 태운 자가용 비행기는 원형으로 게이트를 구성한 게이트 1 대신 샤를 드골 터미널 2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연락이 없어?
강찬이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순간이었다.
마치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테이블에 올려 두었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 안느입니다. 방금 마지막 통화 위치를 확인하면서 집사가 있는 장소를 정확하게 확인했습니다. 위치를 말씀드리기 전에 중요한 사항을 먼저 보고드립니다.
평소 사무적이던 안느의 음성에 긴장이 더해진 것을 확인한 강찬은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 방금 하르트만 요하스가 사용하는 회선이 예멘의 국제공항과 통화를 마쳤습니다.
젠장!
예멘에 있는 빠스칼은 VIP 라운지를 나선 이후로 강찬을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그는 아직 강찬과 제라르가 평화유지군과 함께 반군을 상대하러 출발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혹시 놈이 배신하더라도 반대로 사용하기 위해 던져 두었던 덫이었는데 이렇게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강찬은 볼이 씰룩이도록 이를 씹었다.
“누가 건 거지?”
– 하르트만 요하스가 걸었습니다. 다만, 통화한 번호가 빠스칼 지부장의 번호는 아니었습니다.
예멘 공항 관계자 중에 배신자가 있지 않다면, 게르만의 집사 놈이 빠스칼을 꼬드기려 다른 번호를 이용해 전화했다는 의미였다.
강찬이 시선을 창밖으로 돌릴 때였다.
비행기가 멈췄고, 멀리서 노란색 경광등을 번쩍이는 공항 차량과 앰뷸런스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앰뷸런스를 대기시켜 놓은 상태에서 시간을 끌면 불리한 건 강찬이었다.
“자세한 위치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공항에서 이동 방법은?”
– 대기 중인 앰뷸런스로 빠드휴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고, 이후에는 승용차와 승합차 중 원하시는 차량을 이용하면 됩니다. 참고로 장례식장에서 주택까지 승용차로 20분 거리입니다.
“알았다, 안느. 우선 앰뷸런스로 이동할 테니 정보가 샜다는 내용을 평화유지군에게 알려 줘. 그 외에 보고할 내용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바로 번호를 눌렀다.
“한 통만 더 하고 가자.”
“위.”
제라르에게 양해를 구한 강찬은 스마트폰을 귀로 가져갔다.
***
석강호는 탁자 위에서 울리는 스마트폰을 집었다. 그런 뒤에 액정을 확인하고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뭐요?”
– 집사 놈이 예멘 공항에 있는 누군가와 통화했단다.
강찬의 말을 들은 직후에 석강호의 눈 끝이 꿈틀하며 길게 찢어졌다.
“여기에서 그 새끼와 통화한 놈이라면 한 새끼밖에 더 있소? 콧대가 휜 것부터 마음에 안 들더니 끝내 가가멜 같은 짓을 한 거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여기는 마음 놓으쇼.”
– 일단 들어. 집사 놈이 걸었다는데 빠스칼의 번호는 아니란다. 그러니 빠스칼이 아닐지 몰라. 대신 통화했다면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거로 봐서 수상한 거고. 우선 확인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해.
“대장? 만약 그 새끼가 나불거렸다면 평화유지군이 위험한 거 아뇨?”
혹시 개인적인 통화인가 해서 고개를 돌리고 있던 차동균의 시선이 단박에 석강호에게 달려든 다음이었다.
– 안느가 이미 연락했을 거다.
“아, 그 개새끼!”
– 침착하게 해결해.
“맡겨 두라니까요!”
툴툴대는 석강호의 답을 마지막으로 짧은 통화가 끝났다.
“무슨 통화입니까? 대장 같던데?”
나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차동균이 젊어 보이는 석강호에게 건네기에는 뭔가 어색한 질문과 호칭이었는데 두 사람에게는 또 너무나 당연한 대화였다.
“배신자가 있다는데 우선 확실하게 확인해보라는 거요.”
“아니, 언제까지 그렇게 불편하게 대하실 겁니까?”
“장군이고, 오랜만에 보기도 했고, 뭐 그래서인데 아무래도 이상하기는 하지?”
훌쩍 세월을 넘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말투였는데 차동균은 오히려 마음이 편한 느낌이었다.
“이제야 진짜 석 선생님을 뵌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배신자를 확인하러 가셔야죠.”
석강호의 통화를 들으며 대충 짐작했던 모양이었다.
차동균의 눈빛이 야전에서 뛰던 대위 시절처럼 서늘하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혹시 권총이 있습니까?”
“여기.”
차동균의 질문을 받은 석강호가 침대의 베개 뒤에서 불쑥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는 무슨 김밥 권하는 것처럼 차동균에게 내밀었다.
“하나뿐입니까?”
“밖에 대원에게 말하면 얼마든지 줄 텐데, 배신한 새끼에게 뭐 하러 총알을 써?”
설마 하는 차동균을 향해 석강호가 양손을 뻗었다.
“그냥 돌려주면 되지. 이렇게.”
팔에 걸린 링거줄이 흔들리도록 양손을 홱 감아 보인 석강호가 몸을 빙글 돌리고는 침대에서 내려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