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78)
659화 닉네임부터 재수 없어, 이 새끼는 (1)
깨지고 부서진 포장도로를 벗어나기 무섭게 인도와 차도 구별 없이 뒤엉킨 흙바닥이 펼쳐졌다. 꿀렁대는 길을 따라 지프를 몰던 이용우가 핸들을 커다랗게 틀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듯한 막다른 길이었다.
“다 왔다. 준비해.”
아랍 글자를 휘갈겨 놓은 작은 나무 안내판을 가리킨 이용우는 그 앞에 차를 세웠다. 얼핏 보면 주차를 못 해서 어정쩡하게 세운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급하게 빠져나갈 상황에 대비해서 일부러 앞쪽에 여유를 두었다.
이 상태라면 핸들만 바싹 틀면 바로 빠져나간다.
“거기 대시보드 열면 키 하나 더 있거든. 혹시 모르니까 그거 주머니에 넣어 둬.”
지시를 마친 이용우가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고, 허리와 발목에 권총을 건 신동철은 여분의 열쇠를 챙겨 조수석을 나섰다.
“아후!”
긴 운전이 힘들었다는 양, 이용우는 상체를 비틀며 기지개를 켰다. 그 바람에 셔츠가 말려 올라가서 배가 드러났는데, 누가 봐도 영락없이 질 낮은 브로커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거 아무래도 이상한데?”
“뭐가 말입니까?”
“우리가 도착한 걸 알았을 텐데 나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
신동철의 질문에 답한 이용우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람이 다닐 정도의 공간 좌우로 줄줄이 심어 놓은 커피나무, 나무판자로 삼면을 막아서 앞이 뻥 뚫린 창고가 당장 보이는 전부였다.
이용우는 잘 아는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앞이 뻥 뚫린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닥불을 피운 흔적, 주전자, 넓은 철판, 나무 주걱, 조그만 절구, 쪼그려 앉을 때 사용하는 듯한 나무토막이 이리저리 놓였는데 희한할 정도로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하루에 두 번 이상 커피를 마시는 커피 농장에 불이 꺼졌다고?
이용우는 널따란 철판 옆으로 가서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절구 안에 들었던 커피 가루를 집어서 냄새를 맡았다. 찧은 지 며칠 지난 것처럼 습기를 머금었고, 심지어 퀴퀴한 냄새마저 풍기고 있었다.
당했나? 아니면 문을 닫은 건가?
주변을 돌아볼 생각으로 이용우는 허름한 창고를 나섰다.
그 직후였다.
오십 대 남자가 어색한 동작으로 창고 뒤편에서 나왔다.
‘야!’
이용우는 급하게 손을 뻗어서 반사적으로 권총을 뽑으려는 신동철을 말렸다.
나온 남자는 아랍인치고는 체격이 작은 오십 대 남자였다.
이마가 훤히 드러나도록 넘긴 머리를 알록달록한 천으로 감았는데,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약에 중독된 것처럼 흐릿한 그의 눈빛이었다.
“커피콩 좀 사려고 왔는데 누가 책임자요?”
“없어. 가.”
중얼대는 듯한 대꾸를 내놓은 남자가 시선을 피하려는 것처럼 커피나무로 고개를 돌렸다.
“너무하네. 멀리서 왔으니까 커피콩이 없더라도 커피 한잔은 줘야 하는 거 아뇨?”
“없어. 가.”
직전과 똑같은 억양, 같은 대답, 여전히 커피나무를 향한 고개, 눈가를 좁혔던 이용우는 창고 안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주전자를 들었다.
“물도 있고. 커피도 있으니까 내가 만들어 먹을게. 그 정도는 괜찮지?”
“없어. 가.”
아랍어를 모르는 신동철이 경계하는 태도로 남자를 지켜볼 때였다.
이용우는 주전자 뚜껑을 열고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에이, 씨. 벌레가 들었네.”
그리고는 주전자의 위쪽을 잡고서 길게 휘둘렀다.
그늘진 창고를 벗어난 물줄기가 햇살을 안고서 퍼졌고, 앞에 서 있던 남자의 목덜미와 상의에 떨어졌다.
후두둑.
물줄기가 남자의 몸을 적신 직후였다.
“끄으-아아악!”
시선을 외면하던 남자가 처절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온몸을 비틀었다.
“동철아! 권총!”
이용우는 주전자를 왼손으로 옮겼다. 그리고 신동철이 허리춤에서 꺼낸 권총을 받았다.
철컥! 철컥!
이용우와 신동철이 동시에 노리쇠를 당길 때였다.
조금 전 오십 대 남자가 왔던 창고 뒤편에서 이번에는 젊은 남자와 여자, 아이들이 어색한 몸짓으로 걸어 나왔다.
철컥!
이용우는 대뜸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권총을 겨눴다.
“거기 서!”
이 정도면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커피 농장의 인부들이 분명한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주춤주춤, 권총을 겨눈 상태에서 이용우는 뒤로 물러났다.
“여기에 뭐가 있는데 이러지?”
“왜 그러십니까?”
“고작해야 커피 농장이잖아! 주유소도 멀쩡한데 여기 사람들만 괴물이 된 거고. 뭐가 있으니까 이랬을 거 아냐?”
급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새로 나온 사람들이 바닥에서 경련처럼 몸을 떠는 오십 대 남자 곁을 지나치고 있었다.
더 가까이 오지 못하게.
이용우는 다가오는 주전자에 남은 물을 되도록 넓게 뿌렸다.
햇살을 받은 물줄기가 높다랗게 떴다가 후두둑 떨어졌고,
“끄윽!”
“끄아-악!”
물을 얻어맞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버둥댔다. 그 직후였다. 버둥대는 남자의 배 부위에서 서너 개의 다이너마이트가 삐죽 튀어나왔다.
“형님?”
“봤어! 튀어!”
이용우와 신동철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 틈에서 마흔쯤 되는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젠장!
가슴 앞으로 든 그녀의 손에 들린 스위치를 본 이용우는 있는 힘껏 앞으로 달렸다.
괴물이라면 총을 쏴 봐야 먹히지 않는다.
물도 떨어졌고.
일단 피하는 게 최선인……!
달칵. 콰으으응! 꽈응! 꽈으응!
이용우의 생각을 뚝 자르는 것처럼 거대한 폭발이 세 번이나 뒤에서 터졌다.
콰득!
거대한 쇠몽둥이에 얻어맞은 것처럼 뒤쪽에서 충격이 달려들었고, 배트에 얻어맞은 야구공처럼 몸이 튀어 나갔다.
철퍽! 철퍼덕!
허공에 높다랗게 떠올랐던 이용우와 신동철은 그대로 맨바닥에 처박혔다.
‘동철이…….’
이용우는 악착같이 바닥을 짚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찌이이이이-잉.
쇳소리가 귀를 울리면서 다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또 물속에서 눈을 뜬 것처럼 세상이 뿌옇게 보였다.
“씨바-알.”
신기하지?
욕을 뱉고 나자 거짓말처럼 눈앞이 밝아졌고, 귀도 뚫리는 것 같았다.
“동철아?”
“저는 괜찮습니다.”
흙먼지를 온통 뒤집어써서 회색 인간으로 변한 신동철이 권총을 확인하고 있었다.
끝난 건가?
혹시 몰라서 이용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폭발은 커피나무와 근처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조리 휘감았다. 거기에 다이너마이트를 감은 사람이 두 명 더 있었는지 세 번의 폭발이 있어서 몸뚱이를 온전히 지킨 사람은 아예 없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커피 농장을 노렸다면 증거를 싹 날린 꼴이었다.
“가만? 괴물이 됐는데 무기가 아니라 자살 폭탄 테러를 했다는 거잖아?”
“예?”
“체첸의 검은 미망인.”
반문하는 신동철에게 엉뚱한 답을 한 이용우는 커피나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검은 미망인이 여기 있습니까?”
“일반인은 감염돼도 누군가를 죽여야 할 목적이 없잖아! 그런데도 자살 폭탄 테러 방식으로 우리를 노렸어. 누군가 폭탄 테러를 사주해야 가능한 거잖아?”
“그렇죠.”
신동철의 답이 있을 때, 이용우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체첸의 검은 미망인을 떠올렸다.
“수색할까요?”
“내가 커피나무 쪽으로 움직일 테니까 엄호해.”
“형님?”
“야, 이 새끼야!”
수색을 대신하겠다는 신동철에게 이용우는 대뜸 욕을 뱉었다.
“엄호나 잘해, 이 새끼야.”
아무렴, 체첸 용병이 있을지 모르는 자리에 신동철을 밀어 넣겠냐.
양손으로 권총을 잡아 아래로 내린 이용우는 창고의 벽에 숨는 것처럼 앞으로 움직였다.
폭발은 참혹했다.
구덩이가 두 개 파였고, 그 안에 상반신이 반만 남은 남자가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며 움직이려 애쓰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
이를 악문 이용우는 나무 벽의 끝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체첸 놈들이 없더라도, 이 사람들을 감염시킨 시설은 어디엔가 있기 마련이다.
커피나무 안쪽을 향해 이용우가 시선을 던지는 순간이었다.
정면 커피나무 틈에서 무언가 어른거렸다. 그리고 그 끝에서 기다란 총구가 이쪽으로 뻗어 나왔다.
염병!
철컥! 타앙! 털썩! 타아-앙! 타앙! 털썩!
이용우가 세 발을 먼저 날렸고,
투두둑! 퍼버벅! 투둑! 퍼벅!
너무나도 익숙한 AK 소총 소리가 커피나무 안쪽에서 터져 나오며 앞쪽 바닥과 머리 위쪽 나무판자를 터트렸다.
타앙! 타앙! 털썩! 타앙!
이용우가 한 놈을 더 잡았을 때였다.
“형님!”
훅, 신동철이 이용우를 덮쳤다.
‘뭐……?’
그 직후였다.
투두두둑! 퍼버버벅! 투두둑! 퍼버벅!
이용우의 왼편에서 AK 소총이 불을 뿜었고, 그와 동시에 신동철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홱, 몸을 뒤튼 이용우는 누운 자세에서 총알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권총을 겨눴다.
타앙! 타앙! 털썩! 타앙! 털썩!
두 놈을 잡았다.
“끄으으-.”
그때 신동철이 상체를 돌려서 창고의 벽에 기댄 것처럼 앉았다.
제대로 배웠다.
철커-억.
가쁜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신동철은 권총의 탄창을 갈고 있었다.
“형님…. 가세요…….”
염병하네!
자세를 낮춘 이용우가 신동철에게 달려들 때였다.
불쑥, 커피나무 사이에서 몸을 세운 놈들이 이쪽을 향해 소총을 겨눴다.
투두둑! 퍼버벅! 투둑! 퍼벅! 투두두둑!
커피나무 사이에서 AK 소총이 터졌고,
타앙! 타아앙! 타앙! 타아-앙!
겨드랑이를 당기는 동안에도 신동철은 연달아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끄으!”
오른쪽 정강이가 후끈하면서 힘이 쭉 빠지는 바람에 이용우는 이를 악물었다.
타앙! 타아-앙! 투두둑! 타앙! 투두두둑!
또다시 두 가지 총소리가 뒤섞여 터질 때,
타앙! 타아앙! 타앙!
이용우는 방아쇠를 당기는 신동철의 뒷덜미를 잡은 상태로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지이이익-.
타앙! 털썩! 타아앙! 털썩! 투두둑! 타앙! 털썩!
끌려 나오는 와중에도 신동철은 적 두 놈을 잡았다. 그리고 그 뒤로 적의 사격은 없었다.
‘이이익-.’
지이이이익-.
이를 악물어 가며 입구에 도착한 이용우는 신동철을 지프에 기대놓았다.
가슴에 두 발, 배에 한 발, 허벅지에 한 발, 폐를 뚫렸는지 신동철은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입가에 피를 머금은 신동철이 눈동자를 들었다.
“요원이라면서요…. 얼른 가서 보고해야…….”
“시끄러워, 이 새끼야. 동료를 버리는 요원은 없어. 닥치고 견뎌.”
신동철의 앞으로 자세를 숙인 이용우는 축 처진 그를 어깨에 걸쳤다.
“조금만 참아!”
그리고는 신동철을 담다시피 조수석에 넣었다.
절뚝이는 걸음으로 지프를 돌아 나온 이용우는 뛰어드는 것처럼 운전석에 올랐다.
부르릉.
시동을 건 이용우가 시선을 앞으로 돌리는 순간이었다.
부서진 창고 옆에서 자세를 낮추고 다가오는 놈들이 보였다.
저 새끼들이 진짜!
앞으로 내민 RPG를 본 이용우는 핸들을 있는 대로 틀었다.
부으으응응! 끼기기긱!
이용우가 가속 페달을 있는 대로 밟은 직후에,
삐이이이융-.
섬뜩한 소리가 울렸고,
투두두둑! 퍼서서석! 투두둑! 카가강!
그 뒤에 갈겨 댄 놈들의 소총에 지프의 뒷유리가 산산이 부서졌으며,
끼기긱! 콰으으응!
급하게 핸들을 튼 바로 오른쪽에서 알라의 요술봉이 거칠게 터졌다.
***
오후의 햇살이 바닥에 깔린 카펫과 둥근 탁자, 고풍스러운 의자들, 두꺼운 책들이 빼곡하게 꽂힌 책장을 부드럽게 매만지는 시간이었다.
거실 안은 마치 중요한 회담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셔츠에 정장을 입은 문바키가 현관문을 향해 앉았고, 맞은편에는 역시나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하르트만 요하스가 앉았으며, 그의 뒤로 열 명의 남자가 둥그렇게 서 있었다.
침묵 속에서 하르트만은 탁자에 두었던 권총을 집어 들었다.
달칵.
탄창을 확인하고 밀어 넣은 다음이었다.
철커덕.
노리쇠를 당긴 그가 문바키를 향해 권총을 내밀었다.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무시무시한 지시를 내린 하르트만이 오른손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어서 자신의 관자놀이에 가져갔고, 이어서 엄지를 앞으로 밀었다.
혹시나 문바키가 총구를 돌릴 때를 대비한 것처럼 무기를 든 남자들이 지켜보는 앞이었다.
권총을 받아 든 문바키는 관자놀이에 총구를 붙였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철컥.
분명 탄창을 확인하고 건넸는데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흐음.”
권총을 들고 있는 문바키의 모습에 만족한다는 것처럼 하르트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슈 강을 마주한 뒤에 총국장이 해야 할 임무는?”
“무슈 강의 이마에 권총 발사.”
방금 문바키의 대답을 들었냐는 듯, 하르트만은 양손을 벌리고서 뒤편에 늘어서 있는 남자들을 돌아보았다.
“한 가지 임무만 주입하던 데서 이제는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을 입력하게 되었다. 바로 이거야!”
감탄을 뱉어 낸 그가 다시 시선을 문바키에게 주었다.
“조금 뒤에 무슈 강이 도착한다. 바깥에 선 두 놈을 해결하는 정도야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까 결국 들어서겠지. 이 앞에 있는 놈들까지 해치우고 나서 총국장에게 다가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무슈 강의 이마에 권총 발사.”
확인하는 것처럼 내놓은 하르트만의 질문에 문바키가 아까와 똑같은 답을 내놓았다.
“흐하하! 흐하하하하!”
통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하르트만이 그 끝에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무슈 강이 제거되고, 그의 심복인 제라르 드 미르미에마저 우리 손에 들어온다면, 길었던 계획의 절반이 성공한 것과 같지.”
흡족한 듯 혼잣말을 토해 냈던 하르트만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의 시선을 받은 남자 한 명이 움직여 문바키가 들고 있던 권총을 바꿔 주었다.
“자, 그럼 우리는 무슈 강의 비극적인 최후를 지켜보도록 할까?”
몸을 일으킨 그가 책장을 향해 움직인 다음이었다.
덜컹.
남자 한 명이 책장의 한쪽을 밀어서 통로를 드러냈고, 하르트만과 남자 다섯이 들어간 뒤에 다시금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닫혔다.
새하얀 머리칼과 피부를 지닌 문바키는 문을 바라보는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고, 비슷한 표정의 남자 다섯 명은 현관문을 등진 자세로 둥그렇게 서 있었다.
문바키도 그렇지만, 함께 있는 다섯 명 역시 괴물로 변한 탓인지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문바키의 구두 끝에 닿을 때였다.
문을 향해 있는 문바키의 입 끝이 묘하게 움직였다.
마치 웃는 것처럼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