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81)
662화 이 흉터가 보이나? (1)
위고에게 장소를 알려 준 강찬은 승합차를 이용해 공동묘지에 도착했다.
이제 뭘 하면 될까?
핏물이 말라붙어 더욱 끔찍해 보이는 강찬을 태우고 운전했던 정보원이 흘끔거릴 때였다.
승합차에서 내린 제라르가 뒤편에 던져 놓았던 하르트만의 시체를 당겼다. 이유를 짐작한 강찬 역시 놈에게 움직여서 다리를 붙들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강찬은 죽은 자를 모욕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놈은 특별 대우였다. 다른 사람의 죽음마저 빼앗아 버린 하르트만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장례를 치르도록 놔둘 마음은 전혀 없어서 그랬다.
그 외에도 노리는 게 있었는데, 운전해 준 정보원이 떠벌리든, 나중에 시체를 찾는 과정에서 드러나든, 강찬이 한 행동을 적들도 알게 된다는 목적도 있었다.
늦은 오후, 공동묘지에서 검붉은 피를 뒤집어쓴 강찬과 회색을 제대로 털어 내지 못한 제라르가 죽은 남자를 들고 가는 모습이 기괴하게 보였으나, 이런 게 오히려 더 적을 자극한다.
제라르와 둘이서 팔과 다리를 붙들어 공동묘지 안쪽으로 간 강찬은 엉성하게 파 놓은 구덩이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엎어서 던지는 거다.”
“위.”
하나, 둘, 좌우로 하르트만의 몸뚱이를 흔들던 강찬과 제라르가 동시에 놈을 던졌다.
털썩.
거친 소리와 함께 하르트만의 몸뚱이가 바닥에 엎드린 모습으로 처박혔다.
피부색으로 사람의 위아래를 가르던 새끼, 양동식과 대원들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죽음마저 뒤틀어 버린 놈, 엎어진 자세로 묻었으니까 지옥에서 기다려. 나중에 만나게 되면 거기에서도 꼭 이렇게 묻어 주마.
손을 턴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승합차로 움직였다.
소문 나라, 제발.
백인을 위해 일하던 개새끼가 동양인에게 당해서 엎드린 채로 묻혔다는 소문이 돌면 진짜 몸통이나 대가리도 모른 척하기 곤란할 거다.
승합차로 다가간 강찬은 열린 문을 통해 문바키를 살폈다.
아직 어색한 표정을 봐서는 약 기운이 충분히 빠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단 내리게 할까?
강찬이 승합차 건너편에 있는 단층 건물을 바라볼 때였다.
“대장.”
나직하게 부른 제라르가 작은 물병을 여러 개 팔에 담고 다가왔다.
말은 필요 없었다.
재킷을 벗은 강찬은 제라르가 따라 주는 물로 얼굴과 손, 팔뚝을 씻었다. 생수병에서 흘러나온 깨끗한 물이 손에 담기면서 검붉게 변했고, 얼굴을 닦고나서는 아예 핏물처럼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뭔 지랄을 하고 있는 건지?
“푸!”
고개를 든 강찬은 셀 수 없이 늘어선 묘비들을 보며 입가로 흘러내린 물을 뱉었다. 얌전히 죽어 줬거나, 혹은 다예, 제라르와 함께 다른 사람들처럼 부와 권력을 누리겠다고 했으면 이런 끔찍한 괴물과 엉뚱한 죽음들이 없었을까?
염병할.
생각이 달리던 강찬은 묘비들을 보며 욕을 삼켰다.
그럴 수 있었다면 학교에서 일진들과 어울렸을 테고, 외인부대에 가서는 벌써 장교가 됐을 거다.
“뭐가 있습니까?”
강찬이 바라보는 모습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강찬은 질문을 던졌던 제라르를 돌아보았다.
부와 권력을 욕심냈다면 제라르, 다예와는 함께 지내지 못했을 거다.
“너는 어쩌다가 저런 놈들에게 잡혔어?”
“벽이 뚫리자마자 넷을 해결했더니 하르트만만 보이는 겁니다. 생포하려고 상반신을 넣는데 불쑥 머리에 권총이 달려들지 뭡니까?”
죽은 놈을 고갯짓으로 가리켰던 제라르가 한숨을 내쉬는 강찬을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비겁하게 벽에 바싹 붙어 있어서 못 봤습니다.”
“감이 떨어진 건 아니고?”
“대장이 급하다는 생각에 무리했습니다. 어깨를 다쳤던 것도 있잖습니까?”
뭔가 더 말을 하려던 제라르가 입을 다물었다.
다예에게만큼은 잡혔던 일을 말하지 말라는 당부일 거라는 데 라면과 즉석밥, 김치를 한꺼번에 건다.
뭐라든 됐다.
제라르, 문바키와 함께 살아 있으니까.
“저 안에 뭐가 있나 보고와.”
“위.”
외인부대 시절처럼 답한 제라르가 옆에 있는 단층 건물로 움직일 때, 강찬은 승합차의 옆문으로 다가섰다.
문바키는 아직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코피라도 닦아 줄까?
강찬이 물병을 찾아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단층 건물 안을 살피고 온 제라르가 승합차로 돌아왔다.
“장례를 앞두고 마지막 인사를 하거나 관을 보관하는 장소 같습니다.”
여기 있는 게 나을까, 아니면 차에서 기다릴까?
위고를 통해 요원을 불렀지만, 적이 달려올 수 있었다.
강찬이 다시금 주변을 돌아볼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위고입니다. 요원들이 공동묘지 근처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잠시 뒤에 보일 텐데 혹시 오해하실까 봐 전화드렸습니다.
“믿어도 되겠어?”
– 총국장님 직속으로 사건 당일에 근무에서 배제됐던 요원들 위주로 선발했습니다. 오늘 문제가 생기면 전원 제거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고생했다. 돌아가서 보자.”
– 감사합니다, 부총국장님.
통화를 마친 강찬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정보총국 요원들이 도착한다는 연락이다. 믿을 만한 놈들로 선발했다는데 혹시 모르니까 준비는 하자.”
강찬은 소총을 당겨 제라르에게 던져 주었고, 한 자루를 옆으로 들고 차 앞에 섰다.
아직 요원들이 탄 차가 보이지 않아서 강찬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대장…….”
어색한 동작으로 자리를 벗어난 문바키가 바닥에 놓인 소총을 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괜찮은가?
문바키를 살피던 강찬은 피식 웃고 말았다.
코피를 닦아 줬어야 했다.
명색이 정보총국장이라는 문바키가 코피를 흘린 자국으로 서 있는 게 아쉬워서였다. 하기야 강찬도 피범벅이고, 제라르는 머리칼에 떨어진 회색 가루를 완벽하게 털어 내지 못해서 흉한 몰골인 건 거의 비슷했다.
“조금씩 정신이 돌아옵니다.”
말투는 아직 어눌했지만, 하르트만을 잡은 주택에서보다는 훨씬 또렷했다.
“펜타닐 때문에 죽는구나 싶었을 때, 지하에서 보았던 빛과 비슷한 빛줄기가 달려들었고, 그 뒤는 또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보인 게 대장의 눈이었습니다.”
강찬이 지닌 블랙헤드 에너지에 영향을 받았을까?
생각은 그런데 당장 확실하게 알기는 어려웠다.
“술에서 깨는 것처럼 천천히 기억납니다. 움직이는 것도 조금씩 되고요.”
세상 참.
유물이 어쩌고 하는 소문 때문에 학살당했던 마을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대로 문바키가 구출되었고, 훗날 괴물을 만드는 놈들에게 납치되는 바람에 꼬리를 확실하게 잡았다. 이게 신이 미리 해 놓았던 안배일까, 아니면 인연이 얽히고설키다가 우연이 벌어진 일일까?
강찬이 나직하게 숨을 내쉰 다음이었다.
떨어지는 태양을 뚫고 다가오는 것처럼 저 멀리에서 도로를 타고 달려오는 승용차와 승합차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정보총국 요원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얼마 남지 않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장례를 마치기 위해 서두르는 행렬로 오해하기 꼭 좋은 모습이었다.
철커덕. 철컥. 철커덕.
태양을 향해 쏴라.
셋이서 달려오는 차량을 보며 노리쇠를 당긴 다음이었다. 공동묘지를 향해 방향을 튼 승용차와 승합차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와서는 강찬 일행 앞에서 멈췄다.
우르르, 내린 요원들이 주변을 삽시간에 둘러쌌고, 그중 세 명이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총국장님.”
잘할 수 있을까?
강찬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총국장의 권한으로 작전명 빛나는 조국의 영광을 시행한다. 코드는 옴 다프리(Homme d’afrique) 2017.”
아프리카의 남자, 2017년이라니?
문바키의 지시를 듣던 강찬과 제라르가 동시에 비슷한 표정으로 피식 웃은 다음이었다.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답을 한 요원이 앞에 대기한 승용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
산을 타고 내려온 안개가 스멀스멀 라노크의 전원주택 근처까지 밀고 와서는 어떻게 테라스에 올라갈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안느와의 통화를 마친 라노크는 시가를 집어 커터로 끝을 잘랐다.
찰칵.
“후-.”
점잖게 불을 빨아들인 그가 만족한 듯 연기를 길게 뿜었다.
연기가 안개처럼 세상에 스며들 때였다.
“홍차를 드시겠습니까?”
라노크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라파엘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축배를 들고 싶은데 당장 자네밖에 없어.”
“제 평생 대사님과 함께 차를 마신 적은 없습니다만, 한 번쯤은 괜찮을 거 같습니다.”
다가와 라노크 앞의 잔에 홍차를 멋들어지게 따라 준 라파엘이 맞은편의 잔을 바로 놓고서 홍차를 채웠다. 앉을 만도 한데 라파엘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서서 잔을 들었다.
재미있다는 얼굴로 그를 보았던 라노크가 마주하듯 잔을 들었다.
“미국의 CIA나 FBI가 힘을 잃은 건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지. 그 뒤로 들어서는 정권마다 그들에게 뒤를 얻어맞지 않기 위해 사사건건 간섭했고, 심복을 심어서 이중으로 감시하는 바람에 독자적 정보활동과 자율성, 그와 동시에 과거에 보여 주던 능력을 한꺼번에 잃었다.”
미소와 달리 홍차를 함께하자고 권한 이유를 설명하는 라노크의 음성은 잔잔했다.
“무슈 강이 정말 무서운 게 뭔지 아나?”
“그분은 안 무서운 적이 없었습니다.”
“하하하하!”
찻잔에 담긴 홍차가 넘칠 정도로 라노크가 통쾌하게 웃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이 그의 의지에 따라 흘러가. 문바키 총국장을 구하면서 이번 납치 건에 관련된 요원들을 철저하게 처벌하게 되었는데, 정권에 붙었던 요원들, 혹은 적의 유혹에 넘어갔던 요원들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나면 정보총국이 진정한 모습을 찾을 걸세.”
“무슈 강이 끝까지 프랑스의 영광을 지켜 주리라 믿으십니까?”
설명의 끝에서 달려든 라파엘의 질문이었다.
라노크의 얼굴에 남아 있던 웃음이 산 아래로 떨어지는 태양처럼 사라졌고, 그 뒤에 깔리는 어둠인 양, 냉정한 눈빛과 표정이 곧바로 피어났다.
“정보의 세계가 아무리 잔인하다지만, 자네만큼은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홍차와 시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관계로 남고 싶다, 라파엘.”
뭔가 깊은 의미가 담긴 라노크의 소망에 라파엘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정중하고 세련된 모양새로 홍차 잔을 내밀었다.
째-앵.
고급 잔에서 투명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린 다음이었다.
홍차를 한 모금 마신 라노크는 방금 있었던 대화를 잊은 것처럼 시가를 입에 문 채 기회를 엿보는 안개로 시선을 돌렸고, 라파엘은 원래 자리를 찾는 사람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
***
두크두크두크두크!
헬리콥터가 내려앉으며 일으킨 흙먼지가 의사의 집 문과 벽을 때릴 때였다.
경계를 위해 문에 매달려 있던 평화유지군 대원이 헬리콥터에서 뛰어내렸고, 이용우가 집 밖으로 나왔다.
완벽하게 무장한 대원들을 보며 몰려들었던 예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앞에서 석강호는 차동균과 함께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특수부대를 거친 이용우는 차동균을 바로 알아보았다.
손을 들어 경례하는 이용우에게 차동균이 짧게 답례한 다음이었다.
“동철이는?”
“조금 전에 사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씨발.”
석강호의 거친 욕설이 질책으로 들렸는지, 뻔뻔하기만 했던 이용우가 시선을 떨궜다.
염병할.
엄지환을 가슴에 묻은 석강호는 저런 표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뒤편의 주택으로 시선을 주었던 석강호가 한숨을 내쉬며 이용우를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체첸의 용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헬리콥터 소리를 배경으로 이용우가 당시의 상황을 짧게 들려주었다.
어떻게 할까?
의견을 묻는 것처럼 석강호는 차동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헬리콥터로 신동철 대원 보내고, 우리가 확인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흠.”
고개를 끄덕인 석강호는 이용우에게 시선을 주었다.
“저도 가게 해 주십시오.”
“괜찮겠어?”
질문을 받은 이용우의 눈이 실제로 불붙은 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준비해.”
석강호가 고갯짓으로 헬리콥터를 가리켰고, 이용우가 달렸다.
그 직후였다.
신동철을 담은 비닐 팩을 든 대원 두 명이 주택에서 나왔다.
“씨발…….”
고개를 돌린 석강호가 대뜸 욕을 뱉었는데, 차동균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다. 알고 있다. 평화유지군의 숫자는 한정돼 있고, 벌어지는 일은 엄청나서 앞으로도 어떤 희생이 따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더라도 어떻게 전날 보냈던 대원의 죽음을 마주하고 평정심을 지킬 수 있겠나.
두크두크두크두크.
헬리콥터에서 일어나는 바람을 뚫고 움직인 대원들이 신동철을 올릴 때였다. 서둘러 군복과 무기를 갖추고 내리려던 이용우가 볼을 씰룩였다.
“뭐 해!”
그런 이용우를 향해 석강호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감정에 휩쓸릴 거면 내리지 말고 그대로 돌아가!”
그나마 고함이 도움이 됐을까?
볼을 씰룩이면서도 이용우는 신동철이 담긴 비닐 팩을 헬리콥터 위로 당겼다.
에효, 이 새끼야.
안쓰러운 감정을 억지로 누른 석강호가 헬리콥터에서 내리는 이용우를 바라볼 때였다.
“지프만으로는 다 이동하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10분 거리라니까 헬리콥터까지 함께 가죠.”
헬리콥터 소리를 이기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차동균이 의견을 전했다.
“어차피 이용우에게 발각된 상황입니다. 교전까지 있었으니까 어지간한 시설은 모두 폭파시켰을 겁니다. 헬리콥터가 갔다가 다시 올 바엔 차라리 함께 가는 게 낫습니다.”
이를 잘근잘근 깨물던 석강호가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이 차동균을 굳이 부른 이유가 바로 이런 순간 때문이겠다. 그나마 냉정한 판단을 할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서.
“내가 이용우, 대원 두 명과 지프로 이동할 테니까 장군이 헬리콥터에서 경계를 맡아 줘.”
강찬의 뜻을 받아 드는 것처럼 석강호가 냉정한 지시를 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