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82)
663화 이 흉터가 보이나? (2)
평화유지군 본부에 도착한 김형정은 먼저 방을 배정받았다. 책상, 작은 탁자와 냉장고, 침대, 에어컨, 화장실까지, 나름 갖춘 원룸 수준이었다.
한 시간 뒤에 저녁 식사라니 그때까지는 여유를 얻었다.
“후-.”
나무 책상 앞에 앉은 김형정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긴 비행과 마지막에 이어진 헬리콥터의 진동까지, 머릿속에서 뇌가 따로 떨어져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돌렸던 김형정은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창 앞의 작은 탁자에 앉아 있는 신광선 역시 넋을 빼앗긴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김형정의 시선을 느낀 모양이었다.
창을 통해 연병장을 내려다보던 신광선이 시선을 주었다.
“이게 맞는 거겠지요?”
“조금이라도 후회되면 돌아가도 좋아. 그런다고 원망하거나 탓할 사람 없어.”
“본부장님은 어떠십니까?”
“나?”
대답을 기다리는 신광선을 두고 김형정은 책상 옆의 작은 냉장고를 열었다. 그사이 정신이 좀 돌아왔는지 갈증이 달려들고 있었다. 물병을 두 개 꺼낸 김형정이 하나를 내밀자, 신광선은 대뜸 작은 물 한 병을 모두 비워 냈다.
“하아.”
음료 광고였다면 대박 났겠구나 싶을 만큼 통쾌하게 물을 마신 신광선이 감탄사를 토해 냈다.
“전에도 이랬지. 힘없던 대한민국이 얻은 걸 내놓으라면서 강대국과 산유국들이 으름장을 놓았고, 심지어 테러를 저질렀으니까.”
그야 뭐.
신광선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평화유지군이 왜 생겼는지 아나?”
“그야 전 부원장님이 아프리카를 통합하겠다는 명분으로……?”
고개를 젓는 김형정을 보며 신광선은 입을 다물었다.
“그게 아니었습니까?”
“우리를 주저앉힐 가장 확실한 방법을 피하려고 아프리카에 그 싸움을 끌고 온 거라면 이해가 가나?”
어벙한 표정의 신광선을 향해 김형정이 말을 이었다.
“중국은 말할 것 없고, 일본의 모든 정권이 간절하게 원하는 게 한반도에서의 전쟁이지. 군대 파견을 통해 기득권을 확보하고, 전쟁 후에는 보상이랍시고 땅과 이권을 나눠 먹을 테니까.”
“만약에 말입니다. 정말 한반도의 전쟁을 기획하는 곳이 있다면 굳이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을 신경 쓸 필요 있습니까? 못 할 말로 휴전선 근처에서 국지전만 심하게 일어나도 바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네는 아랍 쪽에 너무 집중했던 모양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일본이든, 중국이든, 아니면 제3의 강대국이든, 수작을 피워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치자. 부원장이 어떻게 행동할 거 같은가?”
“그게 무슨? 원인을 만든 나라에 응징이라도 한다는 말씀입니까?”
신광선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얼굴이었다.
“기록물이 폐쇄되었으니 모를 만도 하지. 하지만, 이전에 부원장님이 보여 주었던 모습이 나름 힘 좀 쓴다는 나라의 정보국에 엄청나게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좋아.”
“응징을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저런 신광선에게 리비아 원전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UIS 지도자 12명을 사살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평화유지군 정보국에 있게 되면 하나둘 알게 될 거다.
강찬이 왜 아프리카에 똬리를 트는지, 그의 계획에 왜 지경그룹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가며 협조하는지, 모두 다.
“이제 가서 좀 쉬지.”
김형정이 권유했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신광선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레벨 원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투로 액정을 확인한 신광선이 고개를 들었다. 사는 게 뭔지, 어제까지 서울에 있던 두 사람이 이질적인 아프리카의 오후를 배경으로 국가정보원장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피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일단 받아 봐.”
“함께 들으시죠.”
작정한 것처럼 신광선은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신광선입니다.”
– 지금 어디야?
예의를 갖춘 신광선의 응대에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거친 질문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 어디냐고 묻잖아? 어디야?
“콩고민주공화국입니다.”
– 뭐? 거기를 왜 갔어?
거듭되는 거친 말투와 무시하는 음성이 신광선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하실 말씀 없으시면 끊겠습니다.”
– 야, 이 사람아! 갈 때 가더라도 인수인계를 확실하게 해야 할 거 아냐! 얼른 돌아와서 업무 인계하고, 거 뭐냐? 그래! 그 직위해제 된 부원장에게 연락 좀 해!
뭐라는 겁니까?
김형정을 향해 시선을 든 신광선의 눈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 여보세요? 왜 대답이 없어?
“전 부원장에게 연락하는 건 제 소관이 아니라 김형정 본부장입니다.”
– 당신하고 같이 있을 거 아냐!
통화를 듣고 있던 김형정은 씁쓸하게 웃었다.
업무 인계가 어쩌고 하는 건 모두 핑계고 결국 강찬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싶어 건 전화였다. 그나마 김형정에게는 미안해서 직접 전화하지 못해서 애꿎은 신광선만 닦달하는 중이고.
“김형정입니다. 함께 듣고 있습니다.”
– 커흠. 그래? 그러면 오히려 잘됐네. 거, 부원장에게 연락해서 말이오. 프랑스에서 중단시킨 정보 교류를 빨리 재개하라고 하고, VIP가 미국을 방문하려는데 국빈 방문 선으로 사전 작업해 달라고 전해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명분을 뭐라고 할까요?”
– 명분? 무슨 명분?
“말씀하신 대로 부원장직에서 직위해제 된 분에게 일을 맡기려면 뭔가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 허, 참!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야? 프랑스야? 미국이야? 나라를 위해 일하는 건데 명분을 따져? 지금 하려는 일들이 얼마나 국익에 도움 되는지 당신이 몰라서 그래?
“후-.”
김형정은 하동선이 들을 정도로 대놓고 숨을 내쉬었다.
“그럴 거면 왜 부원장직을 직위해제 하셨습니까?”
– 뭐? 이 사람이 그런데?
“직위해제 된 부원장님이…….”
– 내 앞에서는 부원장님이 아니라 부원장이라고 해! 존칭 붙이는 법도 몰라?
“직위해제 된 부.원.장.님이 이름값 혹은 목숨을 걸고 일을 해결해도 결국은 원장님의 공으로 돌아갈 거 아닙니까? 다 떠나서 국빈 방문으로 상황을 조절하는 게 직위해제 된 전 부원장의 임무입니까, 아니면 국가정보원에서 해야 하는 일입니까?”
예상하지 못했던 반발에 하동선은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필요하시면 정중하게 부탁하고, 그래도 안 되면 방문해서 간곡하게 매달리십시오.”
– 아니 그런데,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것들이?
“야, 하동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신광선의 눈이 퍼뜩 올라올 정도로 김형정의 대꾸는 극적이었다.
“내가 고개 숙이니까 병신처럼 보이나 본데, 특수부대 출신으로 온갖 죽을 고비 넘겼고, 유니콘 발표회장과 국제빌딩 테러 현장에 있었어.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대원들과 요원들의 심정을 당신 같은 사람이 알기나 해?”
‘아효, 본부장님.’
제발 가라앉히라며 신광선이 양손을 아래로 눌러 대고 있었다.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그랬지? 당신이 그렇게 나라를 위하면 당장 정보원장 그만두고 무보수로 일해 봐. 그러면 내가 반쯤 믿어 줄게. 그리고 아쉬우면 고개를 숙이든, 찾아와서 빌든 해. 이따위 말도 안 되는 전화로 요구하지 말고.”
김형정이 눈짓을 던지자 신광선이 얼른 종료 버튼을 눌렀다.
“뭐 그렇게까지 하셨습니까?”
“됐어. 이렇게라도 선을 그어 놔야 적어도 부원장님을 대할 때는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점을 깨닫지.”
아프리카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더니, 벌컥 감정대로 통화한 게 마음에 걸리는 것처럼 김형정이 물병을 집어 들었다.
***
두두두두두두!
헬리콥터에서 쏟아지는 바람이 커피나무를 거칠게 휘감을 때, 이용우는 커피 농장 앞에 지프를 세웠다.
치잇.
– 당장 눈에 띄는 적이나 시설은 없습니다.
커다랗게 곡선을 그리며 방향을 튼 헬리콥터가 커피나무 바로 위를 날면서 먼저 출입문에 기관총을 건 대원이 보였고, 이어서 차동균의 무전이 날아들었다.
치잇.
“진입한다.”
치잇.
– 엄호하겠습니다.
무전을 주고받은 석강호는 곧장 커피 농장 안으로 들어섰다.
두두두두두두!
석강호와 대원들을 엄호하기 위해 헬리콥터가 주변을 거칠게 맴돌았고, 그만큼 거센 바람이 나무로 된 창고와 석강호 일행을 휩쓸었다.
이용우가 말한 대로였다.
나무 창고 앞에 움푹 팬 자리에는 아직 폭발에 당한 인부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고, 나무 벽에는 뚫린 자리와 신동철이 흘렸을 핏자국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체첸 놈들을 잡은 곳이 어디야?”
“저쪽하고, 저쪽, 두 곳입니다.”
석강호의 질문에 이용우가 걸음을 옮겼다.
‘이 새끼?’
절뚝이는 걸음을 보고서야 석강호는 이용우의 정강이에 총상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저런 다리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운전까지 했다.
철컥. 철컥.
소총을 돌려 가며 주변을 경계하는 대원들 틈에서 이용우가 억울한 듯 고개를 돌렸다. 분명 커피나무가 부러져 있고, 그 주변으로 핏자국마저 선명한데도 말했던 체첸 용병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렴, RPG까지 갈겨 댄 상황인데 동료 시체를 두고 가겠나.
치잇.
“이쪽에는 체첸 놈들 시체가 없어. 그쪽은 어때?”
치잇.
– 커피 농장 안에 시설물이라고는 지금 서 있는 장소의 나무 창고가 전부입니다.
무전을 마친 석강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헬리콥터에서 시설이 보이지 않을 정도면 이곳에서 괴물을 만든 게 아니라, 무언가 다른 실험을 했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이쪽을 살펴볼 테니까, 이용우 네가 반대편을 훑어. 시설보다는 놓치고 간 장비나 용품이 있는지 확인해.”
“알겠습니다.”
이용우를 보낸 석강호는 대원 한 명과 함께 앞쪽으로 움직였다.
느닷없이 커피를 처먹고 싶어서 나타난 건 절대 아닐 거다.
도대체 무슨 실험을 하려 했던 거냐?
어디로 사라진 거고?
날을 바싹 세우고 주변을 살폈으나 10여 분이 지나도록 걸리는 건 없었다.
치잇.
– 헬리콥터의 연료를 생각해서 돌아가야 합니다.
그때 차동균의 무전이 석강호를 찾았다.
이 정도면 우선 돌아가는 게 맞다.
한 대 얻어맞았으니 두 대 때릴 준비를 해서 다시 오는 게 강찬에게서 배운 방법이었다.
치잇.
“이용우! 헬리콥터로 귀대한다. 입구로 나와!”
치잇.
– 알겠습니다.
이용우의 무전을 들은 석강호는 볼을 씰룩였다.
이를 악문 듯한 이용우의 음성에 담긴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달랑 제라르와 달려간 강찬이 염려되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
***
문바키가 떠난 다음이었다.
강찬은 해가 저물며 더욱 을씨년스럽게 변한 공동묘지 앞 벤치에 제라르와 앉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내 함께 움직였던 정보원이 승합차와 함께 대기하고, 주변으로 정보총국 요원들이 두 대의 승용차에서 주변을 살피는 앞이었다.
찰칵.
“후-.”
강찬은 제라르와 함께 담배에 불을 붙였고,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럴 때면 대장이 무섭습니다.”
이놈이 또 뭔 소리를 하려고?
강찬은 시선만 주었다.
“문바키를 구했으니 그 핑계로 정보총국을 싹 물갈이할 거 아닙니까? 이것도 혹시 계획했던 겁니까?”
“계획대로 된 게 있기는 하냐?”
“로일 박사 일행이 도움을 청할 때부터 준비한 대로 다 된 거 아닙니까? 대가리를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대뜸 하르트만의 목을 돌려 버린 것도 그 이유고요.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맞은 거 두 배로 돌려줘야지.”
대꾸를 건넨 강찬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조금 전까지 그나마 선명하던 연기가 지금은 어둠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가 오래 고개를 처박고 있었던 이유, 이건 한 새끼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반드시 전쟁을 일으키겠다며 여러 놈이 함께 설친 거다. 이번 기회에 그놈들을 모조리 잡지 못하면 이 지랄을 떨어 댄 의미가 없어.”
이미 강찬을 따라 준비했던 제라르는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
“문바키가 잡아내는 놈, 평화유지군이 찾아내는 놈, 그리고 우리가 알아낸 놈들의 목을 모조리 돌려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양동식 소령을 볼 낯이 없어.”
“그래야죠.”
이거 또 들뜨는 거 아냐?
강찬이 힐끔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CIA 대가리인데? 전에 인사했던 놈 기억하지?”
강찬은 아예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무슈 강? 칼튼 숀이오.
“말해.”
– 예멘에서 벌어지는 사태가 심상치 않소.
“내가 지금 바빠. 그러니까 요점만 말해.”
어쩐지 바실리를 연상시키는 대꾸를 뱉어 낸 강찬은 칼튼 숀의 답을 기다렸다.
– 감염이 무차별적으로 번지고 있소.
“감염이 번지다니? 아직은 예멘에 한정된 일인 거로 아는데?”
– 그게 말이오.
제라르와 시선을 맞췄던 강찬은 스마트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봐, 칼튼. 내가 알기로 감염이 번질 경로는 두 가지밖에 없어. 하나는 예멘의 후티 반군. 또 하나는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을 공격했던 특수부대와 반군. 어느 쪽이야?”
개새끼, 대꾸하기 어렵겠지.
로일 박사와 아프리카의 평화유지군을 공격하는 데 뭔가 엮였다는 사실을 토해 내기 뻑뻑할 테니까.
“할 말을 잊었나 본데 생각나면 다시 전화해.”
침묵하는 꼴이 같잖아서 강찬은 대뜸 종료 버튼을 눌렀다.
“대장? 칼튼이 저렇게 대놓고 나설 정도로 감염이 심하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 아닙니까?”
함께 듣던 제라르가 놀라서 물었는데 강찬은 답을 하지 못했다. 제라르의 말대로 CIA 대가리가 손을 썼다는 사실을 실토할 정도라면 짐작하는 것보다 감염이 월등히 강하게 번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움직이자.”
“위.”
완연하게 깔린 어둠 속에서 강찬이 몸을 세웠고, 단단하게 답한 제라르가 기다란 몸뚱이를 벤치에서 일으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