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83)
664화 이 흉터가 보이나? (3)
윤상기는 글자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경계를 부쉈다고 판단한 순간에 발목을 붙잡혔다.
치잇.
– 뒤편에 블록이 더 있습니다. 대략 20명쯤 됩니다.
치잇.
“대기해.”
민간인 블록이라는 방식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풍경은 단순히 민간인을 방패 삼는 게 아니라, 감염된 사람들을 내모는 수준이었다. 뭔가 의식이 있어야 두려움을 느낄 텐데, 몽유병 환자들처럼 걸어오는 터라 방아쇠를 당기기가 껄끄러웠다.
미칠 일이다.
총을 쏜다고 해도 쓰러지지 않는 데다, 물을 뿌리자면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 저들의 몸에 폭탄이 감겼다면 공연히 대원들만 희생된다.
“본대 무전기 가져와!”
다가오는 사람들을 노려보며 윤상기가 지시했고, 대원 한 명이 빠르게 다가와 수화기를 내밀었다.
윤상기가 막 수화기를 잡는 순간이었다.
치잇.
– 관광객이다. 유적지에 도착했다. 반복한다. 유적지에 도착했다.
침투조에서 날린 무전이 윤상기를 비롯한 대원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세 개의 건물을 이렇게나 빨리 통과했다고?
치잇.
– 기념품을 획득하면 연락하겠다.
젠장!
침투조가 벌써 도착했는데 엄호해 줘야 할 윤상기가 이러고 있으면 그쪽이 감당해야 할 몫이 더 커진다.
치잇.
“관광객이 유적지에 도착했다. 우리가 엄호하지 않으면 그쪽이 위험해! 트럭에 타고 단숨에 뚫는다! 저격수 먼저 탑승해서 RPG나 폭탄 테러 경계하고, 나머지는 2인 1조로 물을 뿌린다.”
윤상기의 무전을 받은 대원들이 빠르게 트럭에 올라탔다.
한 명은 물을 뿌리고, 옆에 있는 대원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총을 겨눈다.
치잇.
“의식이 없다. 감정도 없고. 여자나 아이라고 방심하지 마!”
철커덕!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벅벅 지른 윤상기가 노리쇠를 다부지게 당겼다.
“출발!”
엔진음을 요란하게 울린 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루한 복장, 삶에 지친 얼굴, 다가오는 사람들은 다른 표현 없이 난민, 그 자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힘겹게 살던 사람들이 삶은 물론이고, 죽음마저 빼앗긴 상태로 다가온다.
총구를 돌리며 윤상기는 눈빛을 빛냈다.
남자, 여자, 노인, 아이, 그중에서도 나이 있는 여자들의 풍성한 옷 속에 숨겨진 다이너마이트는 직접 들추지 않는 한 찾기 어렵다.
어디냐? 어디야?
대원들이 바싹 다가서기 전에 찾아야 한다.
멀리서 원격 버튼으로 터트릴 수 있어서 손에 스위치가 들리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하지도 못한다.
철컥! 철컥!
대원들이 미친 것처럼 눈빛을 번들거리며 소총의 총구를 돌리는 앞에서 대원 한 명이 물이 담긴 팩을 길게 휘둘렀다.
어둠이 깔리는 도로에 물줄기가 엷게 퍼졌고,
“끄아-아!”
아무리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비명과 함께 물을 얻어맞은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져 몸부림쳤다.
치잇.
“저격수! 집중해!”
혹시 비명에 정신이 팔릴까 봐,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에 시선을 빼앗겨 실수가 일어나지는 않을지, 윤상기는 대원들을 바싹 다그쳤다.
***
어두운 하늘에서 내리는 신의 계시처럼 라이트를 번쩍이던 비행기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부룬디의 수도 기테가에 있는 공항에 내려앉았다.
천중명은 방향을 트는 자가용 비행기의 창을 통해 어둠이 깔린 부룬디의 공항을 바라보았다.
금테로 뒤덮다시피 한 모자와 훈장을 줄줄이 매단 군복을 입은 부룬디의 대통령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이어서 꾸민 것 같은데 도적 떼처럼 보이는 그의 호위대가 시선에 담겼다.
6인 가족 한 달 평균 수입이 우리 돈 2만 원가량인 나라, 평균 기대 수명이 43세, 국민의 70퍼센트 이상이 의료와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나라, 오직 1퍼센트만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 부룬디에 도착했다.
먼 미래를 계산했을까?
아이들을 많이 낳는 것이 미덕이라는, 그래서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태어난 아이 하나둘은 무조건 사망하는 나라에 신은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탕가니카 호수를 깔았다.
만약, 금이나 석유가 아닌 물이 가장 귀한 자원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된다면 부룬디는 어떻게 변할까?
후우우우-웅.
비행기가 멈춰 서면서 건물 앞에 있던 차량이 움직였고, 회담을 위해 준비하던 비서진이 천중명에게 다가왔다. 이제 내려서 부룬디의 대통령과 탕가니카 호수의 발전 계획에 대해 의논할 시간이었다.
천중명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자가용 비행기의 문이 열렸다.
후우욱, 곧바로 후덥지근한 바람과 역한 냄새가 천중명에게 달려들었고, 환영한다는 의미로 양팔을 벌리는 부룬디 대통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탕가니카 호수의 개발 계획?
지금 팔을 벌리는 대통령의 손아귀에 원하는 만큼 집어 주면 끝난다. 부룬디 국민의 삶이 어떻게 되든, 악어의 위협에도 물고기 잡아 살아가는 어부들의 가정이 망가지는 것 눈 감으면 호수의 개발권이야 내일 아침에 천중명의 손에 들어온다.
“어서 오시오.”
“반갑습니다. 천중명입니다.”
시커먼 손등, 회색의 손바닥, 부룬디 대통령의 손을 잡으며 천중명은 그의 눈빛에서 감추지 못한 탐욕을 읽었다.
“갑시다.”
천중명이 제시할 조건을 얼른 듣고 싶어서 마음이 급한 것처럼 부룬디 대통령이 차를 손으로 가리켰다.
‘쉽지 않겠네.’
대기하는 승용차로 움직이며 천중명은 쓴 입맛을 다셨다.
뒷돈을 찔러 넣는 거?
도깨비 회장이 부룬디 국민에게 죽음 이상의 고통을 던지고서 배를 불리자고?
이미 설탕을 비롯한 각종 생필품을 독점 생산하는 대통령과 뒷돈 거래를 할 마음은 천중명에게 없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순간순간 바뀌는 상황이 천중명을 옥죄는데 현실에서 가장 확실한 대안이 바로 이 탕가니카 호수였다.
안 되면 강찬과 다시 의논한다.
“탕가니카 호수가 필요하다는 거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그렇게 묻고 나서 사흘이나 나흘쯤 지나면 부룬디 대통령이 다급하게 “호수를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아니 가져갈 수 있다면 아예 떠 가시오.” 하고 전화할 게 분명했다.
“피곤하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우리 회장님께서 엄청나게 투자를 하신다던데 소말리아는 요즘 어떻습니까?”
“이제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부룬디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흐하하하.”
대화의 끝에서 부룬디 대통령이 만족한 웃음을 터트렸다. 소말리아에 투자한 금액 전부가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올 거라 기대하는 사람의 웃음이었다.
웃음이 지나간 다음이었다.
입가에 묻은 콩고물을 닦아 내듯 손으로 턱을 문지른 부룬디 대통령이 은근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혹시 무슈 강이 이번 방문을 알고 있습니까?”
“다른 통화 중에 잠시 의논했습니다. 부룬디에 지불해야 하는 보상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의견과 더불어 정당한 방법으로 보상하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크흠.”
죽겠지?
급하게 가라앉는 그의 표정을 보며 천중명은 웃음을 삼켰다.
굳이 강찬을 팔지 않았어도 부룬디 대통령쯤 얼마든지 상대한다. 그러나 시간이 급해서 강찬을 팔았다.
무엇보다 물이 자원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본능과 어쩌면 물이 다가오는 위험을 막아 줄 유일한 무기가 될 거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
침투조를 이끄는 강철규와 대원들이 목표한 창고에 도착했을 때였다.
투두두둑! 투두둑! 피이이이-융!
적들은 아예 최후를 각오한 모양으로 AK 소총과 RPG를 닥치는 대로 날려 댔다.
투두둑! 퍼버벅! 투둑! 피이이이-이잉!
총소리와 동시에 주변 흙이 터졌고, 빗나간 탄알들이 섬뜩한 소리를 날리며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차라리 산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새에 처박혀 있다면 뒤로 돌든, 위에서 떨어지든 바로 들어갈 텐데, 염병할 창고는 울퉁불퉁한 지형의 중간에 있었다.
투두두둑! 퍼버버벅!
적의 사격이 앞쪽 흙을 터트릴 때 강철규는 좌우를 빠르게 살폈다. 폭파가 아니라 그 안에 있다는 헬륨3를 확보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저 안을 파고 들어가야 한다.
“제가 돌아서 가겠습니다!”
이를 악문 대원이 의견을 냈으나 강철규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적들은 이미 침투조에 대해 알고 대비했던 눈치였다.
세 개의 건물을 뚫고 오는 동안 연락을 받았을 테니, 좌측이나 우측에도 병력을 모아 놓았을 게 분명했다.
오늘은 이만하지?
마치 강철규에게 권하듯 머리와 어깨, 주변으로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에 다시금 적이 갈긴 RPG가 하얀 연기를 날리며 날아들었다.
이렇게 되면 돌격밖에 없다.
그런데 말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엄호 사격을 시작하면 둘이서 달려야 하는데…….”
강철규의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좌우에 있던 네 명이 마치 한 명처럼 동시에 지원했다.
이런 녀석들이 왜 조국에서 밀려나 평화유지군에 왔을까?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군 대원들이?
긴 세월을 흘러왔고,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강철규가 비무장지대에서 달리던 당시와 크게 달라진 건 없어서일까?
눈을 번들거리며 자신을 지정해 달라며 바라보는 대원들을 보며 강철규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순간에 남일규나 진짜 양동식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빛나는 후배들을 지켜 줄 수 있다면, 그래서 이들이 경험을 좀 더 쌓고 나면 아무리 서운하게 대했더라도 조국 대한민국이 위기를 맞을 때, 가장 앞에서 달려 줄 텐데…….
“학장님!”
아파 보이는 웃음을 알아챘을까?
바로 옆에 있던 대원이 강철규를 불렀다.
“양동식 소령님 밑에서 뛰었습니다. 오늘 못 나가면 저는 평생 짐을 짊어지고 삽니다.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이런 녀석들이 왜 아프리카에서…. 왜?
강철규는 일부러 다부지게 보이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엄호 사격을 시작하면 창고 바로 아래로 달린다. 그곳에서 문을 폭파할 거니까 물과 수류탄 챙겨.”
“감사합니다!”
지시를 마친 강철규는 남은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무리하지 마라. 이쪽이 당하면 나와 저 대원도 절대 견디지 못한다.”
“맡겨 주십시오.”
이렇게 당부해도 피가 끓으면 상체를 드러내다시피 사격을 해 댈 거다. 지금까지 세 개의 건물을 뚫고 오면서 봐 왔던 모습대로 말이다.
“준비됐습니다.”
대원의 보고를 들은 강철규는 왼쪽 어깨를 틀었다.
‘해 보자고!’
그쪽에 걸어 두었던 대검이 곧 시작될 전투에 흥분한 것처럼 묵직한 여운을 강철규에게 전해 주었다.
“엄호조, 준비해.”
앞을 노려본 강철규가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치잇.
– 관광객! 여행사다! 우리가 유적지 뒤편에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윤상기의 음성이 무전을 타고 달려들었다.
치잇.
– 다시 말한다! 관광객! 유적지 뒤편에 도착했으니 안내에 따라 유물을 확보하기 바란다!
혹시나 늦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윤상기는 악을 써 대고 있었다.
“후-.”
나직하게 숨을 내쉰 강철규는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치잇.
“관광객이다. 안내를 기다린다.”
강철규가 답을 한 직후였다.
치이-잇.
– 오징어 한 마리면 충분하다!
5분 안에 도착한다는 윤상기의 무전이 다급하게 날아들었다.
강철규는 준비를 마친 대원을 돌아보았다.
힘겨운 임무가 수월해졌다는 생각보다는 빛나는 후배를 지킬 수 있다는 심정에서 돌아보았다.
***
뉴욕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집무실이었다.
강찬과 통화를 마친 칼튼 숀은 팔을 뻗어 책상 끝에 놓인 기계의 버튼을 눌렀다. 다중 통화 기계로 스마트폰과 연결만 해 두면 몇 사람이고 함께 통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흥.”
시선을 든 칼튼의 질문에 맞은편 남자는 같잖다는 듯한 웃음을 토해 냈다.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 M자 형태로 탈모가 진행된 앞머리, 굵은 눈썹과 양손에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굵은 목, 떡 벌어진 어깨, 그에 걸맞은 덩치까지, 코웃음을 친 남자는 완벽하게 불곰을 연상시켰다.
“죽여 달라고 머리를 들이민 뒤에 살 방법을 찾아 달라는 사람은 또 처음 보는군.”
느물거리는 표정으로 입을 연 불곰 스타일의 남자가 칼튼 숀의 이마에 시선을 주었다.
이마에 뭐가 묻었나?
불곰 남자의 시선을 알아차린 칼튼 숀이 손으로 이마를 닦아 확인한 다음이었다.
“그의 성격이 그래.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려야 물러서. 그러니 먼저 실토한 자네의 그 이마에 구멍이 뚫리기 꼭 좋지.”
“아무리 그가 아프리카와 정보 세계의 강자라 해도 CIA를 만만하게 보면…….”
“그렇게들 떠들던 사람들이 모두 이마에 구멍이 뚫려 죽었지. 아니면 목이 완전히 돌아가 반대편을 바라본 채로 죽었거나.”
재미있다는 투로 칼튼 숀을 보았던 불곰 남자가 왼손 검지로 눈 끝을 당겼다.
“이 흉터가 보이나? 그와 맞서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나다. 그와의 싸움에서 이 흉터를 얻었고. 교육 과정에서, 그리고 아프리카 UN 기지에서 그에게 맞서고도 이렇게 살아 있는 단 한 사람이 나, 안드레이 이바노비치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가 쉽겠지?”
“나만 움직인 게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계획하고 수행했던 일이오. 그렇게 따진다면 나만 당하지는 않을 거 아니오?”
“당연히 그렇지.”
칼튼 숀의 항변을 안드레이가 커다란 머리통을 끄덕이며 받았다.
“대신 자네가 가장 먼저 입을 놀렸으니 가장 앞에 서야지. 감염이 번지는 장소가 미국인 점도 고민해야 할 테고. 안 그래? CIA 최고책임자 칼튼 숀 국장?”
다급한 칼튼 숀의 항변에 안드레이가 느긋하게 답을 내놓았다.
“아프리카에서 소령을 포함한 평화유지군 대대의 사망, 예멘에서의 전투와 희생, 지금 꼬리를 밟힌 독사가 독이 잔뜩 올라 있는데 거기에 손가락을 넣은 꼴이지. 뺄 수도 없어. 왜? 감염이 미국에서 시작되고 있거든.”
다급한 칼튼 숀을 압박한 안드레이가 비릿하게 웃었다.
‘너는 이미 내 손안에 있어.’
잔인한 미소를 올린 안드레이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