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86)
667화 도깨비로 왔으면 당신은 이미 죽었어 (3)
이병렬의 조언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조태완과 박노익은 말할 것 없고, 신강남파 중간 보스들, 그 아래 조직원들의 얼굴과 눈빛에 가득한 자부심을 보며 강성태는 내심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가서 형님들과 동생들에게 술 한 잔씩 따라 줘.”
가르쳐 준 거니까.
이런 경우는 늘 이병렬이 옳았으니까.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강성태가 자리에서 일어서기 무섭게 물을 끼얹은 것처럼 침묵이 달려 나갔고, 삽시간에 넓은 강남의 클럽 안이 고요하게 변했다.
“치곤아.”
“예, 형님.”
이병렬이 부르는 것만으로 의미를 알아차린 최치곤이 강성태의 뒤에 붙었다. 소위 ‘족보’라 부르는 서열에 따라 술을 따라야 한다는 것 정도는 강성태도 짐작하는 일이었다.
양주병을 든 강성태는 먼저 조태완 앞으로 움직였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아후! 내가 우리 보스 술을 다 받는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싹 씻겨 나가는 표정으로 조태완이 술을 받았다. 몸을 돌린 강성태 앞에서 박노익은 또 세상 흐뭇한 얼굴이었다.
“형님 덕분에 저도 보스에게 술을 받습니다.”
“동생이 운이 닿은 거지, 그게 왜 내 덕이야?”
흐뭇한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두고 강성태는 몸을 돌렸다.
‘나도?’
놀란 눈을 하는 이병렬을 향해 강성태는 픽 웃었다.
“빼놓을 줄 알았어? 얼른 잔 들어.”
그때부터였다.
“고생 많았다. 앞으로도 부탁한다.”
“감사합니다, 형님!”
뒤에 선 최치곤이 연신 술병을 가져다주면서 강성태는 홀에 있는 덩치들의 잔에 일일이 술을 채워 주었다. 이게 도대체 뭐라고, 서열이 낮은 덩치들은 일생의 영광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상체를 숙였다.
마지막 덩치에게 술을 채워 준 강성태는 조태완과 박노익 앞으로 움직였다.
“치곤아. 잔 있어?”
“예, 형님.”
최치곤의 잔을 채워 준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식탁에 있는 맥주잔을 잡았다.
콸콸콸콸콸.
남은 술이 거의 들어가면서 찰랑대는 것처럼 맥주잔에 양주가 가득 담겼다.
‘잘하네!’
이병렬, 조태완, 박노익이 흐뭇하게 지켜보는 앞이었다.
“한마디 하겠습니다, 형님.”
“보스가 하면 하는 거지, 그런 걸 왜 물어봐?”
답답한 척했지만, 조태완은 눈가에 묻은 흐뭇함을 지우지 못했다.
강성태는 기다리는 덩치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덕분에 우리 구역에서 약으로 설치는 놈이 없어졌고, 고통받는 사람도 줄었다. 앞으로도 여기 계신 두 분 형님을 따라 지금처럼 부탁한다.”
“예, 형님!”
요란하게 울리는 답을 들은 강성태는 시선을 뒤로 돌렸다.
‘어허! 잘해 놓고 왜 이래? 보스가 마셔야 우리도 마시지!’
조태완의 눈짓을 알아차린 강성태는 잔을 높게 들었다.
“내가 있는 한, 우리 식구와 우리 구역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 그게 신강남파다!”
말을 마친 강성태가 잔을 앞으로 내밀었고,
“보스를 위하여!”
“위하여!”
잔을 높게 든 조태완의 선창을 따라 외친 덩치들이 일제히 잔을 비웠다.
“자, 이제 편하게들 마셔!”
“감사합니다, 형님.”
말 한마디로 덩치들을 풀어 준 조태완이 은근한 시선으로 강성태를 찾았다.
“그렇게 마시고 괜찮겠어?”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럼 내 술도 한잔 받아.”
작은 잔에 조태완이 술을 채워 주면서 분위기가 더욱 살아났다.
술을 함께 마시는 게 이렇게나 좋은 건가?
강성태가 주변을 돌아볼 때였다.
이병렬이 슬며시 상체를 가져왔다.
“조금만 참아.”
“내가 나가면 분위기 깨질 거 같으니까 그대로 있자.”
“됐어. 동생들 편하게 마시라고 빠져 주는 배려도 있어야지. 내가 눈짓하면 태완이 형님과 노익이 형님께만 인사하고 조용하게 나가. 밖에 봉진이가 차 준비했으니까 그거 타고.”
진짜 그런 거야, 아니면 최치곤과의 시간을 만들어 주려고 억지로 이러는 거야?
“됐으니까 가십시오, 보스. 그리고 시간 날 때 건배 연습 좀 해. 태완이 형님 안 계셨으면 다들 잔 내밀고 뻘쭘하게 있을 뻔한 거 아냐. 지방에 가서는 ‘위하여!’라고 외치는 거 절대 빼먹지 마.”
이병렬의 지적이 있고 난 다음이었다.
강성태와 이병렬이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
영어로 된 표기를 읽은 모양이었다.
추모 공원에 도착한 자밀라의 표정이 딱딱하게 변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는 당황했으며, 박중상이 차에서 내린 뒤에는 멍한 얼굴로 뒷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건가요?”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몰라서 이러나?
질문을 받은 박중상이 눈가를 좁혔다.
“여기 추모 공원 아니에요?”
“맞습니다.”
“이용우 씨 부인이…….”
“교통사고였습니다.”
자밀라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오마르 역시 꽤 놀란 눈치였다. 몰랐다고? 그렇고 그런 관계여서 먼저 간 이용우의 부인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려던 거 아니었어?
‘이용우, 너 이 새끼!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냐?’
혹시 한국도 일부다처제라고 씨불인 건가?
관계를 미루어 짐작하던 박중상마저 어안이 벙벙한 상황이었다.
평일이라 오가는 사람이 적었다. 그렇더라도 자밀라와 오마르를 향해 시선이 날아들고 있었다.
“불편하면 다음에 오죠.”
“아니에요. 인사하고 가겠습니다.”
입맛을 다신 박중상은 앞서 걸었다.
거대한 문을 열고 차가운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동안 무거운 침묵이 세 사람과 함께했다.
띠잉.
3층에서 내린 박중상은 책장처럼 놓인 칸을 지나 이용우의 아내 사진이 있는 칸에서 걸음을 멈췄다.
유리 칸막이 안에 담긴 사진에서 이용우의 아내는 부드러운 미소로 박중상과 오마르, 자밀라를 맞이하고 있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사진을 가리킨 박중상이 한쪽으로 물러났다.
눈이 커서 그런가.
자밀라는 정말이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남편분 덕분에 아버지와 제가 이렇게 살아 있어요. 너무 고맙고 미안합니다.”
울음 섞인 아랍어를 박중상은 분명하게 알아들었다.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흘리듯 나온 아랍어는 알아듣지 못했다.
오해했던 것과는 다른 관계였나?
착잡한 심정의 박중상이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나이 든 남자가 내렸다.
“어?”
박중상의 반응에 따라 오마르가 고개를 돌렸다.
걸어오는 남자는 하얀색 꽃다발을 든 이춘섭이었다.
“아버지?”
“어떻게 여기 있어?”
다가온 이춘섭은 침울한 오마르와 눈물 가득한 자밀라를 번갈아 보았고, 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박중상을 찾았다.
“어제부터 이곳에 인사하고 싶다고 해서요.”
“그런다고 여기를 데려오면 어떻게 해, 이 사람아.”
박중상이 뒤통수를 매만질 때였다.
이번에는 이춘섭의 쪼글쪼글한 눈에 눈물이 가득 올라왔다.
“내가 아무리 못된 인간이라고 해도…. 먼저 간 사람한테 미안해서…. 그게 마음에 걸려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눈치를 살피는 오마르와 자밀라 앞에서 이춘섭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내가 죽일 놈이다. 내가 나쁜 인간이야. 미안하다, 아가야. 내가 이런 놈이라서 정말 미안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나이 먹은 오마르가 서러운 울음을 터트린 이춘섭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원.
“아버지? 여기 와서 보니까 이 아가씨와 용우가 별 관계 없나 본데요?”
체격이 그나마 큰 오마르에게 기대 울던 이춘섭의 고개가 홱 돌아왔다.
“그거 뭔 소리냐? 같이…. 그런 관계라고 하지 않았냐?”
“그러니까요. 아닌 모양이에요.”
눈을 끔벅인 이춘섭이 진실을 알고 싶은 눈으로 오마르와 자밀라를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궁금하다고 해도 두 번째 만남에서, 그것도 추모 공원에서 물어볼 내용은 아니었다.
“하효. 이놈 자식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타박인지, 다행이라는 건지, 뜻 모를 혼잣말을 뱉은 이춘섭이 들고 있던 꽃다발을 사진 앞 공간에 올렸다. 그러고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
부룬디 대통령이 제공한 숙소에서 아침을 마친 천중명은 비서진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섰다.
‘내가 이 정도는 돼.’
능력을 보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벽과 바닥은 물론이고, 탁자마저 온통 울긋불긋하게 꾸며 놓아서 집중력이 약한 사람은 멀미가 날 정도로 과한 느낌이었다.
“편하게 쉬었습니까?”
“덕분에 피로가 많이 풀렸습니다.”
“흐하하. 앉으시죠.”
그가 권하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직원들이 다가와 커피를 따라 주었다.
“향이 좋군요.”
“천 회장을 위해 준비한 겁니다.”
곧 있을 협상에 신경이 곤두선 모양이었다.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고개 숙인 부룬디 대통령 피에르 디크루은자가 하얗게 올라온 눈동자로 천중명을 살폈다.
길게 끌 거 없으니까.
달각.
잔을 내려놓은 천중명이 돌아보자, 자리에서 일어난 지경 직원이 제안서를 꺼냈다. 그리고는 궁금해하는 부룬디 대통령 앞에 프랑스어와 영어로 된 제안서를 놓아주었다.
“흠.”
제안서였다. 그런데도 부룬디 대통령은 들춰 보지도 않고서 못마땅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유야 천중명도 빤히 짐작한다.
무엇보다 그가 바라는 뒷돈에 관한 의논은 절대 이런 식으로 자료를 남기지 않아서 그렇다.
그건 대통령 당신 생각이고.
천중명은 태연하게 제안서를 펼쳤다.
“지경그룹은 탕가니카 호수의 개발권을 확보하는 대신 부룬디에 교육과 도로, 전기, 의료 시설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사회 간접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은 한화로 총 7조 3천억 원이고, 1차 투자를 마치면…….”
“아, 잠깐.”
왼팔을 든 부룬디 대통령 피에르 디크루은자가 천중명의 제안을 중간에서 잘랐다.
“우리는 교육 시설을 원하지 않소.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사람들에게는 교육보다 돈이 먼저 아니겠소?”
“도로와 전기, 의료 시설의 건설에는 많은 근로자가 필요합니다.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작업에는 부룬디 근로자를 고용할 계획입니다.”
“흥! 제안은 이게 전부요?”
안에 봉투라도 넣었나 하는 것처럼 고개를 기울여 서류를 살핀 부룬디 대통령이 뻣뻣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이 역시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물론 이건 우리 제안서입니다. 원하시는 게 있으면 고민하겠습니다.”
그래?
뻣뻣하던 부룬디 대통령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이미 우리 부룬디에는 생필품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종류별로 모두 있소. 그 공장들을 대대적으로 확충하면 더 많은 국민이 혜택을 볼 거요.”
알잖아? 무슨 말을 하는지?
음흉한 눈빛을 던져 가며 부룬디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어려울 거 없소. 사회 발전에 투자하겠다는 금액을 모두 기업으로 바꿔 주시오. 그러면 호수 개발권을 바로 드리지요.”
천중명은 아예 대놓고 픽 웃었다.
“공장을 소유한 기업에 투자를 원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면 대통령과 친인척이 지닌 회사 지분의 90퍼센트를 우리 지경이 가지게 됩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지분을 손대지 않고 투자할 수 있잖소?”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회계를 통제할 권한을 지닌 직원을 파견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내릴 결정은 하나뿐이오.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후-.”
또다시 눈을 희번덕거리는 부룬디 대통령 앞에서 천중명은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피에르 디크루은자 대통령님? 미국에서 공부한 분이라 아실 만한데, 지금 부룬디는 미국과 유럽 연합에서 불법적인 연임에 대한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뭐요?”
“농산물 수출이 막혔고, 의료, 식품의 수입 역시 완전히 막혀서 가구당 굶어 죽는 아이들이 평균 두 명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룬디와 협상하는 것만으로도 지경은 유럽 연합과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고. 독재 정권이 소유한 기업에 투자했다가는 아예 수출길이 막히게 됩니다.”
“내 앞에서 독재라는 말을 함부로 뱉는 거요?”
“유럽 연합이 독재자로 지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이……!”
철컥!
군복을 입었다고 해서 권총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허리에서 빼낸 권총을 앞으로 내민 부룬디 대통령 디크루은자가 이를 악물었다. 그와 동시에 뒤편에 있던 직원들이 소총을 들고서 천중명과 지경그룹 직원들을 동시에 겨눴다.
“멍청이.”
천중명이 영어로 뱉은 욕을 들은 지경그룹 직원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리는 순간이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왜 독재자 놈들은 이렇게 똑같지?”
천중명은 아예 대놓고 같잖다는 감정을 얼굴에 담았다.
“말을 가려서 해! 내 말 한마디면…….”
부룬디 대통령의 고함과 함께 주변에 있던 소총이 위협적으로 달려들었는데 천중명은 눈썹 하나 변하지 않았다.
“잊고 있나 본데, 내가 이곳에서 불리한 처벌, 구금, 부상, 혹은 사망하는 경우, 검은 땅의 지배자가 먼저 날아오고, 그래도 안 되면 무슈 강이 등장합니다. 그걸 원하는 겁니까?”
“크흠.”
다시금 옅게 웃은 천중명이 확인하듯 뒤를 돌아보았다가 대통령을 향해 시선을 가져왔다.
“당신 때문에 굶어 죽은 아이의 숫자가 오천이 넘어. 마음 같으면 검은 땅의 지배자를 불러 심장에 구멍을 뚫어 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부룬디 정국이 또 내전으로 치달을까 봐 참는다. 돌아가 있을 테니, 20분 안으로 결정해서 통보해. 내 방법대로 투자를 받을지, 거절할지.”
“당신 정말 지경그룹 회장 맞아?”
질문을 던진 부룬디 대통령이 천중명의 눈을 들여다본 다음이었다.
“착각하는 거 같은데 부룬디에 투자할 금액이면 소말리아 해변의 바닷물을 담수로 바꾸는 시설을 만들고 남아. 내가 지경그룹 회장이냐고 물었지? 내가 지경그룹 회장으로 온 걸 다행으로 알아. 만약 도깨비로 왔으면 당신은 이미 죽었어.”
“도깨비?”
혼잣말처럼 반문하는 부룬디 대통령을 두고 천중명은 몸을 일으켰다. 탐욕만 남은 인간에게 도깨비니 뭐니 떠들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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