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88)
669화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이 펼쳐지는 거예요 (2)
상황실에 들어선 강태산은 당직 소령을 향해 경례했다.
안쪽으로 들어서려는 참이었다.
안쪽의 원탁 테이블에서 정장을 입은 남자가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당직 소령에게 짧게 말한 뒤에 강태산을 향해 다가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이었다.
“본부장님?”
“이야기는 들었다. 몸은 괜찮아?”
“어떻게 되신 겁니까?”
“여기에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 편한 장소가 있으면 그리 가자.”
“휴게실이 있습니다. 바깥에 벤치도 있고요.”
어디라도 괜찮다는 투로 김형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는 강태산을 향해 얼른 가라는 투로 당직 소령이 손을 휘저어 주었다.
다시금 경례한 강태산은 김형정과 함께 상황실을 나섰다.
“언제 오셨습니까?”
“어젯밤에. 비행기를 얼마나 오래 탔는지 아직도 머릿속이 붕 떠 있는 거 같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당차 보이던 김형정이 지금은 완전히 체력 떨어진 아저씨의 느낌이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열기가 있지만, 강태산은 휴게실보다 여유로운 넝쿨 아래 벤치로 움직였다.
“마음을 많이 다친 모양이지?”
“그렇게 보이십니까?”
“지금 너랑 똑같은 눈빛을 여러 차례 봐서 알 거 같다.”
똑같은 눈빛이라니?
강태산의 표정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가슴에 담긴 대원을 잃었을 때, 부원장님이 지금 너 같은 눈빛을 했었다. 상처받은 맹수가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 같았지.”
어떤 적을 향해서라도 피식 웃을 부원장이 상처를 억지로 참는다고?
당장 강태산은 그런 강찬의 모습이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럴 때 부원장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쓰다, 달다, 아프다, 그런 말 없었다. 그렇지만, 담배를 참 아프게 피우시는 모습은 분명했다.”
“담배를 아프게 피울 수도 있습니까?”
“혼자서 그렇게 갈무리하느라 그런 거겠지. 석 선생 말로는 가슴에 담은 사람을 잃으면 평생 그렇게 짐으로 둔다고 그러더라. 다른 건 몰라도, 잃은 사람을 비아냥대면 그때는 정말 죽을 짓을 한 거니까 입 잘못 놀리는 인간이 있으면 무조건 말리라는 조언도 들었다.”
석강호의 말이라면 믿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진짜 가슴에 담고서 홀로 아파했다면…….
그래서였나?
강찬 특유의 피식하는 웃음이 매번 다르게 보였던 건.
“이유슬 중사는 알지? 부친을 잃었을 때, 초등학생이었다. 말을 못 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데 부원장님이 계속 살펴 주셨다.”
강태산을 슬쩍 돌아보았던 김형정이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나직하게 들려주었다.
“아빠! 꼭 들어!”
그런 사연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증평 훈련장을 둘러싼 능선을 돌아보는 이유슬 중사의 눈에 그 정도로 아픈 사연이 숨겨진 것도 지금까지 몰랐던 일이었다.
“그렇게 부원장님의 가슴에 담긴 대원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엄지환 요원, 최철한 중사, 강명구 대테러팀 팀장, 누군들 부원장님의 가슴에서 지워졌겠냐.”
강태산은 강찬을 떠올렸다.
그건 그렇고, 김형정이 어떻게 맞춤처럼 딱 맞는 조언을 하는 거지?
강태산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장팔모 소령님에게서 연락받으신 겁니까?”
“당장 출발해야 하는 지원 병력의 지휘관으로 네가 가장 적격인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걱정이라고 하시더라.”
강태산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검은 땅의 지배자라는 닉네임을 얻었고, 강철규를 비롯해 강찬, 석강호, 제라르와 사적으로 통하는 관계가 되었으며, 피식하는 웃음까지 닮으려 노력했는데 현실은 감정 조절을 못 해 지휘관으로 물음표가 붙는 수준이었다.
“아픔을 가슴에 담아. 깊이. 먼저 간 동료와 대원들, 요원들이 바라는 건 너의 분노가 아니라 그들의 희생마저 경험으로 내려가 조국의 발전에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한다는 점도 잊지 말고.”
강태산은 꼼짝도 못 하고 김형정의 말을 들었다.
“부원장님이 대테러팀을 맡고 나서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응징을 목표로 작전에 나섰었다. 그 뒤로 응징이 몇 차례 있었다만, 모두 대한민국, 우리 요원, 우리 지역을 공격한 것에 대한 응징이지, 개인적인 복수는 없었다.”
강태산의 눈을 들여다보았던 김형정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슬픔과 분노에 휩쓸릴 때도 그런 눈빛을 유지해. 그러면 된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잘할 거였는데, 급한 상황이라서 내가 떠든 거지. 이제 장 소령님께 가 봐야지?”
“예, 죄송하지만 바로 일어나겠습니다.”
강태산의 변화를 알아차린 것처럼 김형정이 사람 좋은 미소를 보여 주었다.
***
마음은 급한데 이용우의 전화와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강찬은 곧바로 석강호의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무슨 일이오?
“이용우 말이다. 한국에 도착할 때 됐는데 전화를 안 받아.”
– 무슨 일인데 그래요?
“예멘의 반군 지역에서 감염이 시작됐다며?”
– 그게 왜요?
아니, 다른 곳도 아닌 예멘에 있는 놈이 뭐 이렇게 태평해?
불쑥 짜증이 올라왔지만, 지금은 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었다.
“문바키와 통화했다. 반군과 교전했던 우리 대원들이 감염됐을지 모르니까 우선 조심해서 살펴.”
– 아직은 문제없으니까 안심해요.
“야! 감염이 시작되면 돌이킬 방법이 아직 없으니까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증상이 나오는 대원은…….”
– 의심스러운 대원 일곱 명을 우선 격리했소. 한 시간에 한 번씩 검사하고 있는데 아직 특별한 이상은 없는 거요.
몇 명을 격리하고, 시간마다 뭐를 한다고?
테이블에 놓인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든 강찬은 멍한 얼굴로 제라르를 보았다. 스피커폰으로 함께 듣고 있던 제라르 역시 더할 수 없이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 그거 때문에 이용우를 찾았던 거요?
“맞아.”
– 푸흐흐흐. 그놈도 한국 도착 전에 검사했는데 이상 없답디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시간마다 검사하게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내가 들은 게 맞냐?’
‘그런 거 같습니다.’
의문을 던진 강찬을 향해 제라르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검사를 어떻게 했냐?”
– 어허. 너무 바쁘게 다녀서 집중력이 떨어진 모양인데 봉지 커피라도 뜨겁게 한잔해요.
“검사를 어떻게 했냐고?”
– 분무기에 물 넣어서 뿌렸소.
“뭐?”
– 머리가 안 돌아가요?
염병할, 세상.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석강호의 대꾸를 듣는 순간, 세상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 괴물이 되면 물을 못 견디잖소? 학장님부터 나, 차 장군과 곽 대령, 대원들 전체가 분무기를 들고 한 시간 간격으로 뿌리고 있소. 당장 이거보다 확실한 검사 방법이 있소?
“없지.”
강찬은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석강호의 질문에 답했다.
“의심스럽다는 일곱 명은 물을 맞았을 때 고통을 느꼈던 거냐?”
– 목마르지 않은 대원들이오.
“목이 마르지 않다고?”
– 아하, 큰일이네. 생각을 좀 해요. 생각을. 몸에 닿기만 해도 고통을 느끼는데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나겠소?
코너에 몰려서 석강호가 날리는 주먹을 연달아 얻어맞는 느낌, 강찬의 심정이 지금 꼭 그랬다. 그것도 제라르와 둘이서 말이다.
– 출동 끝나고서 지금까지 물을 마시지 않은 대원을 추렸는데 일곱 명이었소. 혹시 몰라서 무기 회수하고, 각자 다른 방에서 대기시켰소.
“물을 마시게 해 봤어?”
– 당연한 거 아뇨? 다들 마시기는 하는데 어쩐지 미적대는 느낌입디다. 그래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소.
강찬은 멍한 표정으로 제라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석강호가 들을 수 없도록 ‘봉지 커피’라고 입술만 움직였다.
– 봉지 커피를 마시려는 거요?
“맞아. 제라르에게 시켰다. 그건 어떻게 알았냐?”
– 푸흐흐흐.
궁금증을 유발하는 타이밍까지, 이게 정말 지금껏 알고 있던 석강호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물을 뿌리는 방법과 대원들을 검사해서 분리하는 건 누가 생각해 낸 거냐?”
– 지금 그게 중요해요?
“누구냐고?”
– 반군을 상대하면서 놈들의 상태를 확인한 곽 대령의 제안이었소.
그럼 그렇지.
묘하게 안심돼서 강찬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감염의 위험을 일차적으로라도 막았다는 생각에 내쉰 숨이지, 절대 사실을 확인하고 안도해서 내쉰 건 아니다.
“이용우와는 언제 통화했어?”
– 한 20분 되우. 입국하기 전에 물 뿌려 보라고 했고, 수송기의 기장까지 모두 확인하라고 했으니까 안심해도 될 거요.
입맛을 다시는 강찬의 앞에 제라르가 잔을 놓아 주었다.
이왕 통화한 참이었다.
이용우에 대한 염려도 줄었고.
강찬은 문바키와 했던 통화 내용, 그리고 평화유지군의 지원에 대해 석강호에게 들려주었다.
– 대장. 어쩌면 정말 징그러운 싸움이 시작될지 모르오.
“뭔 소리야?”
통화의 끝에서 석강호의 음성이 무겁게 깔려서 다가왔다. 히죽대는 것과 달리 긴장을 처먹을 때 내놓는 음성이었다.
– 예멘 말이오. 감염이 시작됐다면 반군이든, 애꿎은 사람이든, 모조리 목을 갈라야 하잖소. 어차피 대장이 듣지 않겠지만, 솔직히 여기 버리고, 지금부터라도 한국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싶소.
감염이라는 말이 나온 뒤부터 염려하던 상황을 석강호가 떠든 터라, 강찬은 쉽게 답을 내놓지 못했다.
“로일 박사 팀이 출발할 테니까 우선 상황 보자.”
– 알았소.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쪽으로 오지 마쇼. 블랙헤드 에너지가 있어서 안심한다지만, 최악의 상황이라는 게 있잖소? 대장이 감염되면 죽고 죽이는 문제를 넘어서요. 막말로 변해 버린 대장이 날뛰면 그걸 누가 막겠소?
뭐 하냐, 너?
기가 막히게도 석강호의 의견을 함께 들은 제라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20분이 지난 다음이었다.
“출국할 테니 준비하세요.”
한 점 미련 없이 천중명은 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아침 먹었겠다, 회담을 위해 정장 입고 있었겠다, 옷장에 넣어 둔 여벌의 정장과 서류들을 챙기면 끝이라 출발 준비랄 것도 없었다.
“차량 지원을 요청할까요?”
직원의 질문에 천중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냐, 부룬디.
이 순간에도 수십 명의 아이가 영양실조로 죽어 가고, 전체 국민의 40퍼센트가 흙바닥에 돗자리 하나로 버티다가 풍토병을 앓는데, 대통령이라는 인간은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손에 쥐고서도 욕심을 놓지 않았다.
돈에 사로잡히면 다 저렇다. 특히, 부정한 방법으로 들어온 돈맛을 알고 나면 마약 중독자처럼 절대 만족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몸을 일으킨 천중명은 창가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가난과 절망, 죽음이 뒤엉킨 땅 부룬디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에 투자할 돈이면 실제로 바닷물을 담수로 만들 시설을 만들고 남는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속 편하고, 일의 진척도 빠르다.
도깨비 회장이 되어서 이곳을 다시 방문해야 하나?
그렇게라도 이곳을 바꿔?
천중명이 무서운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볼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스마트폰이 울었다.
액정을 확인한 천중명은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천중명입니다.”
– 내용이 급하니까 우선 들어.
전화를 걸어 온 강찬은 대뜸 믿기 어려운 내용을 빠르게 전해 주었다.
– 예멘에서 증상이 퍼졌다지만, 미국의 특수부대 중에도 증상이 퍼지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당장 확인할 방법이라고는 물을 뿌리는 게 전부야.
“물을 뿌린다는 겁니까?”
– 지금은 그래.
천중명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통화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모양으로 직원들이 멀리 떨어진 탁자에 모여 있었다.
“에너지가 있어야 움직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 그걸 밝히기 위해 로일 박사 팀이 출발해. 확인되는 정보가 있다면 바로 알려 줄 텐데, 우선 지경이 관리하는 지역의 출입을 강화해. 들어오는 사람은 천 회장을 포함해 모두 물을 뿌려서 확인하고.
어처구니없는 요구였지만, 다른 사람 아닌 강찬의 지시였다.
지경그룹 천중명보다 보유한 돈이 많은 인물이고, 정보 세계의 최고 자리에 올라선 전설적인 인물이 다급하게 전하는 내용이어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
– 지금 어디에 있지?
“탕가니카 호수의 개발 문제로 부룬디에 와 있습니다.”
– 진행은 어때?
“뒷거래를 요구하는 바람에 결렬된 거 같습니다.”
– 부룬디 대통령이 지금 피에르 디크루은자, 맞지?
“이 건은 모른 척하십시오.”
– 천 회장이 그 호수를 어떻게 개발하느냐에 따라서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 천 회장이 제시한 조건이 뭐야?
“교육, 도로, 의료 시설의 건립입니다.”
– 공평한 제안 맞지?
“부룬디에는 과한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 시간이 정말 촉박해. 일단 끊어 봐.
급하게 끊긴 스마트폰의 액정을 내려다보며 천중명은 옅게 웃었다. 하여간, 정보 세계의 위치도 그렇지만, 직선으로 달리는 것과 일 크게 만드는 건 세계 최고가 아닐까 싶었다.
통화를 마친 천중명의 뒤로 직원이 다가왔다.
“차량이 준비되었습니다.”
“미안한데 차를 한잔 마시고 출발해도 될까?”
“준비하겠습니다.”
“우리 믹스 커피 있어요?”
“있습니다, 회장님.”
지시를 마친 천중명이 창을 내다볼 때, 물 끓는 소리가 들렸고, 잠시 뒤에 달달한 커피 냄새가 방 안을 맴돌았다.
“회장님, 어디에서 드시겠습니까?”
직원의 질문에 천중명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쾅쾅쾅.
부술 것처럼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문이 열렸다.
“천 회장! 조건 없이 탕가니카 호수에 관한 전권을 드리겠습니다! 호수 개발부터 사회 간접 시설에 대한 투자까지! 원하는 대로 모두 하겠소! 그러니 우선 전화부터! 무슈 강에게 전화부터 넣어 주시오!”
뭐라고 했을까?
물끄러미 바라보는 천중명 앞에서 부룬디 대통령 피에르 디크루은자는 마치 저승사자에게서 협박받은 사람처럼 파랗게 질린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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