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89)
670화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이 펼쳐지는 거예요 (3)
다급한 피에르 디크루은자는 알고 있을까?
천중명이 도깨비 회장으로 변한다면 파랗게 질릴 새도 없이 정리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천 회장? 원한다면 사회 간접 시설에 대한 투자를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소.”
독재자들은 유독 주먹과 권총을 무서워한다.
정작 그들의 목을 단두대에 거는 원인이 조이고 조이는 끝에 터지는 민심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배짱과 비참한 최후가 자신만은 비껴 갈 거라는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건지, 원.
“천 회장?”
“우리가 제안한 계약서에 서명하십시오. 이 시간 이후로 부룬디의 탕가니카 호수의 개발, 사회 간접 자본의 투자는 전적으로 지경이 맡아서 진행하겠습니다.”
“고맙소. 합의가 끝났으니 여기에서 서명합시다.”
“의회의 승인과 의장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알았소. 30분만 주시오. 내가 의회 의장과 함께 오겠소.”
염병할 삼권 분립은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행정부의 수장이 의회의 승인을 넘어서 의장을 데려오겠다는 말까지 토해 내고 있었다.
“30분이 너무 길어서 그런 거요?”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아!”
멈칫했던 대통령이 은근하게 표정을 바꾸었다.
“그렇다면 30분 안으로 연락할 테니 접견실로 와 주시오. 그곳에서 합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그렇다면 이제 무슈 강에게 전화를 넣어 주시오.”
“계약이 완료되면 하겠습니다.”
“그럼 천 회장이 약속을 지켜 주리라 믿고 가겠소.”
다짐을 남긴 대통령이 급한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본인 딴에는 멋지게 차려입었다고 생각하겠지만, 허리 부근에 불룩 나온 ‘배 둘레 살’과 구겨진 자국이 그의 현재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가 나간 뒤에 천중명은 스마트폰을 들었다.
번호를 누른 다음이었다.
– 여보세요?
“방금 부룬디 대통령이 30분 뒤에 우리 제안대로 서명하겠다면서 갔습니다. 뭐라고 했기에 파랗게 질려 온 겁니까?”
– 알면서 뭘 물어봐? 차라리 내가 낫지. 시간이 있었다면 뜨거워지는 물에 담긴 개구리처럼 꼼짝없이 천 회장의 손에 날아가지 않았을까? 홍콩 물고기나 진광효라는 놈처럼.
참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강찬은.
– 예멘의 상황이 심상치 않아. 가장 답답한 건 감염된 아군과 민간인을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거야. 그나마 감염을 확인할 유일한 방법과 대항할 방법이 물을 뿌리는 거니까 서둘러 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부탁해.
통화를 마친 천중명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강찬이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 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었다.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시설을 서둘러야겠는데?
천중명이 나직하게 숨을 내쉴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주머니에 넣기 전에 받으라는 것처럼 손에 든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 통화 괜찮아요?
“계약을 진행해야 해서 10분쯤?”
– 건강은요?
“괜찮아. 당신은 어때?”
– 휴가를 낼까 해요. 나흘 정도요. 가도 돼요?
“지금 있는 곳의 주차장으로 비행기를 보내 주지.”
뻔뻔하게 들리는 천중명의 답이 건너간 직후였다.
반은 기가 막히고, 또 반은 재미있다는 느낌을 담은 허선영의 웃음이 나직하게 넘어왔다.
***
라노크는 뜻밖의 방문객을 맞았다.
어떤 경우에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목숨을 노리는 인간.
그에게 통보하지 않고 방문하는 사람은 두 부류였고, 오늘 방문객은 전자였다.
자리에서 일어선 라노크가 양팔을 벌리며 맞았고, 볼을 맞대는 인사를 마쳤다.
“이제는 관록이 보이는군요.”
“아직 대사님처럼 여유를 지니지는 못했어요.”
“나처럼 되려면 주름이 잔뜩 붙어야 하는데 괜찮겠소?”
라노크의 짓궂은 대꾸에 김미영이 그건 아니라는 투로 입술을 내밀었다.
“라파엘? 잘 지냈어요?”
“오늘 아침에 이 셔츠에 손이 가더니 마담을 뵈려고 그랬나 봅니다.”
라파엘이 재킷 틈으로 나온 셔츠의 화려한 레이스를 손으로 쓸어내렸는데, 김미영은 미소로 그의 행동을 받아 주었다.
“홍차가 아주 좋습니다.”
“부탁할게요.”
다가선 라파엘이 김미영이 앉을 의자를 밀어 주고는 기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때까지 기다렸던 라노크가 맞은편에 앉았다.
라파엘이 홍차를 따라 준 다음이었다.
“안부가 궁금해서 이곳까지 왔을 리는 없고,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습니까?”
“대사직을 그만두게 돼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안타까운 일이군요.”
김미영의 말에도 라노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기는, 눈앞에 권총을 들이밀어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인물이라서 어지간해서는 속을 들여다보기 어려웠다.
“쉬고 싶던 참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잘된 거죠. 한국으로 가기 전에 대사님을 꼭 뵙고 여쭙고 싶은 게 있었어요.”
“오호?”
과장된 표정을 지었던 라노크가 질문을 기다리는 것처럼 김미영에게 집중했다.
“정보총국에서 예멘을 위험 국가로 지정해서 입국과 출국을 동시에 봉쇄했어요. 알고 계셨나요?”
“조금 전에 연락받았소.”
“왜 그런지도 아시나요?”
짧은 침묵이 흐른 뒤였다.
“그 질문을 왜 무슈 강에게 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예멘의 입국과 출국을 통제한 이유가 국가 안위와 관계된 일이라면 전화하기 전에 미리 알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해직된 부원장과 주프랑스 한국 대사가 왜 그것까지 알아야 하지?
눈가를 좁히는 라노크의 표정이 그런 질문처럼 보였다.
“그 사람이 국가정보원 부원장에서 해직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나서 달라고 부탁하면, 그의 성격상 최소한 따귀는 때리고 시작할 텐데 어느 정도 상황인지 알아야 참으라는 말을 할 수 있어서요.”
그건 또 그렇군.
재미있다는 투로 미소지었던 라노크가 상체를 등받이에 세웠다.
“시가 하나 해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양해를 구한 라노크는 시가의 끝을 커트한 뒤에 라이터를 켜서 불을 붙였다. 고작 시가에 불을 붙이는 동작이었는데, 지금 라노크의 모습은 이상스러우리만치 경건해 보였다. 마치 그의 일생에서 마지막으로 즐기는 시가를 손에 쥔 사람처럼 말이다.
“후-.”
짧은 연기를 토해 낸 라노크가 시선을 가져왔다.
“누군가 사망한 뒤에도 지시받았던 일을 해내기 위해 움직이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막 표현하면 시체가 지시받은 내용을 수행합니다. 그 지시가 누군가를 살해하라거나 파괴하라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잠시만요. 죄송한데 사망한 사람이 움직인다는 건가요? 그것도 지시받았던 일을 해내기 위해서요?”
라노크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문제는 그 증세가 감염을 통해 번진다는 겁니다.”
제법 관록이 붙었다는 김미영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올라와 있었다.
“처음 연구를 진행했던 쪽도 반드시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예멘의 반군과 미국의 특수 부대원 사이에 그 증상이 번지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평화유지군이 예멘에 갔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군요?”
“더는 괴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 에너지를 회수하려던 겁니다. 그런데 감염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묘하게 틀어졌습니다. 먼저 감염을 막아야 하고…….”
시가의 연기를 짧게 뱉어 낸 라노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으로 연구를 지시하고, 괴물을 만들라고 지시한 원흉을 찾아야 하며, 마지막으로 감염을 퍼트리려 하는 조직까지 상대해야 합니다.”
믿기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이려는 것처럼 김미영은 잠시 침묵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런 다음이었다.
“감염을 막는 게 첫 번째 아닐까요? 그렇다면 프랑스만 조치할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알려야 해요.”
“대한민국에 통보하면 출입국을 바로 통제할까요?”
또다시 말문이 막힌 모양으로 김미영은 잠시 끌었다.
“대사님 말씀이 아니었다면 저도 믿지 못했을 테니 증거를 먼저 보여야겠네요. 죽은 사람이 움직인다니…. 그 증상이 퍼진다면 이제껏 알던 것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거예요.”
눈을 감고 들었다면 프랑스에서 태어나 쭉 자란 사람이구나 싶을 정도로 김미영의 프랑스어는 완벽했다.
“물류, 인적 교류, 모든 게 막히게 될 겁니다. 그 외에도 감염된 이후에는 가족과 친척을 비롯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잔인한 방법으로 제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행하지만, 지옥이 펼쳐진다고 보는 게 더 적당한 표현 같습니다. 그리고…….”
냉정한 눈빛으로 라노크가 김미영을 들여다보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세상에 한 명밖에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끝내겠다더니 이러다가는 내가 할머니가 돼서야 볼 수 있겠네요. 최근에 그 사람을 본 적은 있으세요?”
“젊어졌더군요.”
“저보다 더 어려 보이던가요?”
질문을 받은 라노크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살릴 영웅으로 해 두지요.”
야박한 김미영의 평가를 라노크가 얼른 수정해 주었다.
“하루쯤 이곳에서 보내고 가십시오.”
그런 뒤에 뭔가 의미가 있는 듯한 권유를 내놓았다.
***
문바키의 상태를 확인하고 예멘으로 출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홱홱 바뀌면서 호텔이 아예 상황실로 바뀐 느낌이었다.
“부통령. 다른 소리 하지 말고 우선 병력부터 반군 기지로 보내. 평화유지군의 지시에 따르는 거 잊지 말고.”
아랍어가 안 되는 터라, 정보총국 요원 한 명이 테이블에 함께 앉아서 통역을 맡았다.
– 어디까지, 어느 선까지 위험한 겁니까? 정확한 정보를 주셔야 동원할 병력을 결정할 게 아닙니까?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 병력을 보내라는 거잖나.”
– 그 정도로 위험하다면 우선 내가 무슈 강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겠습니다. 함께 있어야 필요한 조치가 뭔지 바로 알 수 있고, 즉각 대처하지 않겠습니까?
요원에게서 질문을 전해 들은 강찬은 볼을 씰룩였다.
그가 건넨 질문에 숨겨진 불순한 의도가 선명하게 느껴져서였다.
“지금부터다. 부통령을 포함한 내각 각료 중 한 사람이라도 예멘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게 누구든 이마를 뚫어 줄 테니 알아서 행동해.”
– 무슈 강? 그런 오해는 우리 관계를 불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불편해? 누릴 게 있으면 깔고 앉았다가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내던지는 게 부통령 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불편하다고? 그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평화유지군도 빼 줄까?”
눈치를 살핀 요원이 아랍어를 지껄였는데, 부통령은 대꾸가 없었다.
“예멘이 있어서 당신이 그 잘난 부통령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반군, 정부군이 있는 것도 예멘이라는 당신의 조국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는 점도 잊지 말고.”
– 크흠.
“만약 내가 예멘을 먹는다면 가장 먼저 도망간 놈들을 끝까지 찾아서 목을 잘라 버릴 거다. 그래야 뒤에서 다른 짓 못 할 테니까. 알아먹었어?”
– 우선 병력을 파견하겠습니다. 어느 분을 찾으라고 할까요?
“차동균 장군이 있다. 그의 지시를 받아.”
받아 적는 모양인지 통역을 맡은 요원이 두 번이나 이름을 불러 준 뒤에야 통화가 끝났다.
“확실하게 전했습니다. 두 시간 안으로 병력을 파견하겠다는 답이 있었습니다.”
“고생했어. 가서 좀 쉬어.”
“감사합니다, 부총국장님.”
정보총국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된 게 일이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요원이 방을 나선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찬의 스마트폰이 또 울었다.
“여보세요?”
– 이용우입니다, 부원장님. 입국 절차를 거치느라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신동철의 이송 때문일 테니 충분히 이해할 만한 사유였다.
“감염이 번진다는 말은 들었지?”
– 한 시간에 한 번씩 물을 뿌리고 있습니다. 혹시 물을 마시기 싫어지면 사람들과 접촉하지 말고 알아서 격리하라는 지시도 받았습니다.
“후-.”
명쾌한 답이었는데 들은 직후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신동철의 가족을 만나야 하는 이용우의 임무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신동철 대원 잘 보내 주고 와.”
– 감사합니다, 부원장님.
풀 죽은 이용우라니.
몇 번 대하지 않았는데도 착 가라앉은 이용우의 음성이 낯설게 다가왔다. 무거운 통화의 종료 버튼을 누른 강찬은 고개를 들었다.
“커피 있어?”
“그렇지 않아도 생각나던 참이었습니다.”
몸을 일으킨 제라르가 구석으로 움직였다.
염병할.
엉뚱한 몸뚱이에 처박아서 징그럽도록 싸우게 했으면 뒤는 좀 편안한 삶을 주든가, 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지랄이지?
상처를 잔뜩 지닌 채 커피를 타는 제라르의 뒷모습을 보며 강찬은 피식 웃었다. 당사자들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김미영과 미쉘, 캐나다에 아예 뿌리를 내린 석강호의 가족들은 또 무슨 죄가 있나 싶었다.
생각이 그래서일까?
우우우웅. 우우우웅.
테이블에 올려 둔 스마트폰이 ‘백설 공주’라는 이름을 올려놓고 몸을 떨었다.
“큰일이네요.”
종이컵을 들고 다가왔던 제라르가 액정을 보고는 볼의 상처를 우그러트리며 씨익 웃었다.
에이, 나쁜 새끼.
입맛을 다신 강찬은 스마트폰을 들고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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