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9)
590화 어떤 경우에도 방심하지 마 (3)
멕시코의 시에라마드레 산맥을 겹겹이 두른 산의 중턱이었다. 산맥의 꼭대기를 따라 차량 한 대가 겨우 갈 정도 폭의 도로가 뱀처럼 길게 이어진 아래쪽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헤아릴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포크레인이 산을 깎고, 바닥을 고르는 작업에 매달리고, 그 과정에서 나온 거대한 돌들을 덤프트럭에 올려놓느라 중장비에서 뿜어진 매캐한 연기와 흙먼지가 자욱했다.
순간적인 회오리를 타고 치솟는 흙먼지,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그 모든 것을 품고도 텅 비어 보이는 널따란 부지는 심지어 웅장한 느낌마저 풍겼다.
“후아-.”
안전모를 쓴 박승양은 공사 현장을 쭉 둘러보고는 감탄처럼 숨을 요란하게 내쉬었다.
“이거야, 이거! 이 냄새. 이게 사람을 미치게 하거든. 어쩌면 좋지? 어? 이거 내가 여기를 어떻게 외면해야 하지?”
“흙과 나무 냄새를 좋아하시나 봅니다.”
째릿.
적당하게 맞장구친 은선곤을 박승양은 서운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물론 느닷없는 박승양의 반응을 은선곤은 이해하지 못했다. 현장을 둘러보는 게 도움 되겠다는 강성태의 판단에 따라 현장을 둘러보던 참이었다.
“은 실장님은 이 돈 냄새를 못 맡는다는 말입니까?”
“돈 냄새요?”
모든 것이 정확하고 분명하게 딱딱 부러져야 하는 은선곤에게 박승양 같은 타입은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부류였다.
“이거? 이거? 이래서야, 원!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라는 이야기는 아시나?”
“그거야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봐라.
돈 냄새가 어쩌고 하다가 논에 풀어 둔 메뚜기보다 심하게 화제가 튀고 있어서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왕비를 피해 쫓겨난 백설 공주가 숲속을 떠돌다가 일곱 난쟁이 집에서 묵어요. 공주인데 빨래도 하고,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허드렛일을 하며 살지요.”
은선곤은 눈가를 좁혀 가며 박승양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집중했다.
“아무리 치워도 일곱 홀아비들이 풍기는 퀴퀴한 냄새가 가시기나 했을까?”
당장 악취가 풍긴다는 것처럼 엄지와 검지로 코를 막은 박승양이 고개마저 절레절레 저었다.
‘아, 머리 아파.’
은선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왜 백설 공주가 그렇게 허드렛일을 하며 지냈습니까?”
“예?”
“이거 봐, 이거! 이러니 말이 통하지 않지!”
툭툭 튀는 화제, 엉뚱한 설명, 이어서 빈 곳을 파고드는 질문에 은선곤은 슬픈 미소를 그리고 말았다.
“돈이 없으니까! 금화나 은화가 있었다면 굳이 일곱 난쟁이의 움막에서 그렇게 지냈겠냐고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은선곤은 실없이 웃고 말았다.
“몰래 사 놓은 빌라 한 채만 있었어도 그곳에서 지냈을 텐데, 그것마저 없었던 거지요, 백설 공주는.”
부동산을 강조하듯 박승양이 공사 중인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헛소리 계속 듣지 말라는 하늘의 배려처럼 손에 들고 있던 은선곤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여보세요?”
못마땅한 기색으로 바라보는 박승양 앞에서 은선곤은 마치 구세주가 전화한 양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께서요? 알겠습니다. 지금 통화하겠습니다.”
회장님이라니?
박승양의 표정과 눈빛이 말로 하는 것보다 선명하게 질문을 던졌고,
“지경그룹 천중명 회장님의 전화라서 통화 먼저 하겠습니다.”
화들짝!
답을 들은 박승양은 펄쩍 뛰듯 놀랐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요? 나 같은 건 저기 덤프트럭에 깔려도 되니까 얼른! 빨리! 우리 천 회장님과 통화부터!”
양손을 펼쳐 밀어 대는 모습으로 박승양이 너스레를 떤 다음이었다.
“예, 회장님. 전화로 인사드립니다. 멕시코 시에라마드레 산맥의 개발을 담당한 한국 컨소시엄 실장 은선곤입니다.”
어쩌면 저렇게 야무지지?
박승양은 당장에라도 은선곤을 안고서 볼에 뽀뽀라도 해 줄 기세였다.
“예, 회장님. 그럼 저희 강성태 회장님께 여쭤보고 일정을 비서실에 문의하겠습니다.”
귀를 은선곤 쪽으로 내밀고 있던 박승양이 이번에는 양손 검지로 본인의 얼굴을 연달아 가리켰다.
“회장님. 옆에 박승양 회장이 멕시코 현지 시찰로 함께 계십니다. 예. 바꿔 드리겠습니다.”
은선곤이 스마트폰을 건네주는 순간이었다. 큼큼, 대며 상의마저 가다듬은 박승양이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받았다.
“아이고, 회장님. 이글이글 타오르는 더운 땅에서 나라의 번영과 지경의 수많은 직원을 위해 애쓰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순간순간 변하는 박승양을 지켜보는 현실이 부담스러워 은선곤은 반대편 산을 구경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런 뒤에 그는 마지막으로 시선을 옮긴 곳에서 나직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헬멧과 선글라스, 방탄조끼, 회색 군복을 입은 구르카 용병들이 소총의 총구를 내린 자세로 서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멕시코는 절대 만만치 않아. 어떤 경우에도 방심하지 마.’
그 직후에 은선곤은 강성태가 당부처럼 건네던 경고를 떠올렸다.
***
무전기로 의지를 밝힐 때와는 달리, 막상 앞으로 온 로일은 강태산에게 바싹 붙었다. 찢어서 흩어 놓은 구름, 초승달, 그 아래에서 모닥불의 일렁이는 불빛을 받은 남자들이 비척대며 기어오는 모습이 두려운 눈치였다.
하기야, 머리와 심장이 너덜거리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적은 강태산 역시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총에 맞은 거죠?”
뭐 이런 한심한 질문이…? 그러나 실제로 총에 맞은 사람을 못 봤다면 확인 차원에서 할 수도 있겠다. 답을 바라는 로일의 시선에 강태산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우리 랩에서 추측하기로는, 먼저 강력한 마약으로 이성을 마비시킨 뒤에 심장을 시작으로 블랙헤드의 에너지를 넣는 방식으로 추측하고 있어요. 피를 타고 온몸으로 돌도록요.”
검지로 심장을 찍은 로일이 아래로 내렸다가 머리까지 커다랗게 원을 그렸다.
“그러면 블랙헤드의 에너지가 다 소모될 때까지 저렇게 살아 버둥거리는 거죠. 추측만 했는데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에요.”
처참한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로일은 또박또박 설명을 풀어냈다.
“죽일 방법이 있습니까?”
“이제 겨우 원인을 밝힌 단계라서 아는 게 없어요. 그보다는, 저렇게 당한 사람들에 의해서 원숭이들이 감염되는 거 같아요. 그 원숭이들이 다시 사람에게 비슷한 증상을 전염시키고요.”
심장에 블랙헤드 에너지를 쏘아 넣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원숭이에게 감염된다고?
강태산은 더 질문하지 않았다. 이 아프리카에는 믿기 어려울 만큼 더러운 일들이 많다. 그 탓에 굳이 감염된 이유를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사이, 비척비척,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처럼 머리가 반쯤 날아갔거나 짓이겨진 적들이 강태산이 있는 위쪽을 향해 꾸준하게 팔을 젓고 있었다.
“목을 자르면 어떻습니까?”
강태산이 독한 질문을 건넨 다음이었다. 막사 중앙을 기어오던 남자가 테이블 다리를 붙잡고는 몸을 이끌기 위해 힘을 썼다.
끄드등.
그가 탁자 다리를 힘껏 당긴 직후였다.
콰다당.
탁자가 기울어지며 커피를 타기 위해 올려 두었던 코펠이 아래로 쏟아졌다.
“끄아아-! 끄아악!”
뭐야, 저건 또?
강태산은 말할 것 없고, 로일과 대원들 모두 몸부림치는 남자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한순간, 고통에 몸부림치던 남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죽었나?
강태산이 눈가를 좁히는 사이, 좀 더 확실하게 보고 싶었던 모양인지 로일이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콰악!
“아! 왜 이래요?”
강태산이 덥석 잡아당기는 바람에 왼쪽 어깨를 감싼 로일의 비명과 항변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저 숲에 적이나 저격수가 있었다면 로일 박사의 머리가 저렇게 됩니다.”
강태산은 짧게 시선으로 처참한 몰골로 기어오는 적들을 가리켰다.
“원인을 밝히려는 건 좋지만, 로일 박사 일행을 지키는 게 우리 임무입니다. 조심해 주세요.”
“알았어요.”
당찬 대꾸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연이어 벌어진 사건 때문인지 로일은 순순히 답을 내놓았다. 그와 동시에 로일의 비명을 듣고 날아들었던 시선들이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부터 적들을 상대할 겁니다. 뒤로 물러나세요.”
“죽지도 않잖아요? 어쩌려고요?”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밀려날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 조금 전에 물을 뒤집어쓴 적이 죽은 건지 확인해야 합니다.”
“설마? 목을……?”
앞에 했던 질문을 떠올렸는지 로일이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의 연구와 보고가 저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해 낼 수 있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지켜보게 해 주세요.”
그녀의 말끝에서였다.
“제발요.”
강태산은 ‘Please’라며 간청하는 로일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앞으로 볼지 모를 장면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습니다.”
“각오했어요. 정말 두려우면 숨소리를 들어 볼게요.”
마지막 대답에 강태산은 피식 웃었다. 그런 뒤에 시선을 아직도 버둥버둥 기어오는 적들과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놈에게 돌렸다.
이마와 심장을 총알로 뚫려도 버티는 놈들이 커피 물을 뒤집어쓰고 죽어? 그럼 커피를 부으면 아예 녹아 없어지냐?
어둠, 그리고 일렁이는 불빛, 그 속에서 머리통이 터지고, 미간이 짓이겨진 상태로 다가오는 적들을 강태산은 빠르게 살폈다.
치잇.
“내가 내려가서 적의 상태를 확인하겠다. 살로이! 숲을 살피고 수상하다 싶으면 갈겨. 다른 대원들 임의로 판단해서 대응해.”
치잇.
– 위, 카피땐.
무전기로 지시를 마친 강태산은 이준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물이 하나 필요해.”
“예.”
자세를 잔뜩 낮춰 움직인 이준호가 팩에 담긴 물을 가져왔다.
“내가 먼저 넘어갈 테니까 문제가 생기면 지휘해. 알지?”
강태산이 시선으로 로일을 가리켰고,
“알겠습니다, 대위님.”
이준호가 분명하게 답했다.
강태산은 먼저 물이 담긴 팩을 방탄복 안쪽에 넣었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숲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확인하겠답시고 걸어 나가는 건 죽여 달라고 팔다리를 쫙 펴고 서 있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짓이었다.
철커덕.
소총의 노리쇠를 당긴 강태산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후욱후욱.
그 직후에 태산의 귀에 숨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세상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고, 막사 중간에 피워 놓은 모닥불의 불꽃이 사그라지는 모습까지 모든 게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철컥.
소총을 어깨에 걸친 강태산은 담을 타고 넘듯이 옆으로 구른 뒤에 앉은 자세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부스스스! 부스스!
흙더미와 함께 아래로 밀려 내려가는 순간이었다.
“우우-.”
기어오던 적들이 고통에 찬 비명, 아니면 애원처럼 들리는 거북한 울음을 토해 냈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아무리 법이 없는 아프리카라고, 이기고 보는 게 먼저라지만, 사람이 최소한 지켜야 할 무언가는 있지 않냐!
아래로 내려선 강태산은 자세를 한껏 낮추고는 소총을 겨냥한 자세로 앞으로 움직였다. 그나마 심장이 뛰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후욱후욱.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움직임까지 살피며 죽은 적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었다.
“우우우-.”
이마 위쪽의 절반이 완전히 날아간 적 한 명이 강태산을 향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벌렸고,
버석버서-석.
그 옆에 있던 적은 아예 방향을 틀어 강태산을 향해 기어오려 버둥댔다.
철컥.
다가오는 놈을 총으로 겨눴던 강태산은 움직임을 확인하고는 다시 테이블로 향했다. 한걸음에 테이블, 다시 한걸음에 숲을 살피며 가느라 아직 막사의 중간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강태산이 빠르게 숲을 살핀 다음이었다.
– 대위님. 쓰러진 놈들이 대위님을 향해 움직입니다.
이준호의 무전이 강태산의 귀에 들어왔다.
알고 있다. 이미.
마치 물가에 뛰어든 황소를 노리고 몰려드는 악어들처럼 바닥에서 꿈틀대던 적들이 일제히 강태산을 향해 몸을 돌린 채 바닥을 긁어 댄다는 사실을.
누군지 몰라도 이런 짓을 한 새끼는 반드시 죽인다!
그 새끼가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 이 지랄을 떨었든, 그것과 상관없이 반드시 죽이고 만다.
후욱후욱.
숨소리를 듣는 동안,
철컥. 철컥.
바닥을 기어오는 놈들을 번갈아 겨눴다. 쏴 봐야 죽지도 않는 놈들에게 총질을 해 대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는 아깝다.
“우우-.”
대신 바닥을 기어오는 놈들이 몰릴수록 비릿한 피 냄새와 함께 죽은 사람에게서 풍기는 역한 냄새가 강태산에게 달려들었다.
초승달 아래, 일렁이는 모닥불을 의지해서, 악어처럼 몰려드는 적들 사이를 한껏 자세를 낮추고 이동하는 참이었다. 로일이 두 주먹을 꼭 쥐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대원들이 강태산에게 몰려드는 적들을 겨냥하고 있었으며, 살로이를 비롯한 몇은 눈이 벌겋게 되도록 숲을 살피고 있었다.
후욱후욱.
마침내 강태산은 쓰러진 테이블 바로 옆에서 커피 물을 뒤집어쓴 뒤 움직이지 않는 적 앞에 도착했다.
정말 죽은 거냐? 커피 물에?
강태산이 상체를 기울일 때였다.
“절대 접촉하지 마세요!”
대놓고 외친 로일의 고함이 강태산의 뒤에서 달려들었고,
“대위님!”
이준호의 고함이 거의 동시에 터졌으며,
푸슝! 퍼억! 푸슈슝! 퍼버벅! 푸슝! 퍼억!
평화유지군의 총소리가 어둠에 숨어 있던 정적을 사정없이 깨트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