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90)
671화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1)
입술을 뒤튼 강찬은 스마트폰을 집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통화 괜찮아요?
외교관 생활을 오래 하면서 김미영의 말투는 늘 사무적이었다. 김미영 본인의 말로는 강찬을 대할 때 어릴 적의 사근사근함을 보인다는데, 당장 습관처럼 나오는 존대가 사무적으로 들리는 걸 어떻게 하겠나.
– 어려워요? 그러면 나중에 하고요.
“괜찮아.”
– 지금 어디예요?
“여기가 그러니까, 정보총국 근처네. 문바키가 도움이 필요해서 대기 중이고.”
– 내가 주프랑스 한국 대사인데도 파리에 도착해서 연락 안 한 거네요?
“하려고 했어!”
다급하게 답하는 강찬을 제라르가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 나 대사 그만뒀어요. 한국 들어가기 전에 대사님을 뵙고 인사드리러 왔는데 하루 묵고 갈 생각이에요.
“갑자기? 이유가 뭔데?”
– 조금 지쳤다고 생각하면 돼요.
김미영이 지쳐서 그만둔다고?
교체 시기도 아닌데 갑자기?
“임명이 내려온 거지?”
–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그보다 예멘에서의 일을 들었어요. 다친 곳은요?
“멀쩡해.”
–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요. 움직일 수는 있어요?
“많이 다쳤으면 바로 전화 받았겠어?”
김미영이 나직하게 내쉬는 숨소리가 스마트폰을 통해 들렸다.
– 나보다 더 어려 보인다던데, 이러다가 할머니 되면 볼 거예요?
“진짜로 문바키 일 정리되면 연락하려고 했어. 옆에 있는 제라르가 알고 있어.”
– 이제 제라르까지 파네요?
왜 김미영과 통화하면 이렇게 움츠러들까?
– 대사님께서 지옥이 열리는 거라고 표현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고 해서 이번은 넘어가요. 그러니까 일 끝나면 집에 와서 있어요. 또 지난번처럼 나를 노리는 놈들이 있다는 핑계 대면…….
“핑계가 아니었잖아.”
– 아무튼! 내가 정보총국에 입사해서라도 그놈들 전부 죽일 거예요.
여자가 나이를 먹으면 남성 호르몬이 는다더니 김미영이 꼭 그 짝이었다.
– 왜 대답이 없지요?
“알았어.”
이러니 전화를 받으면 주눅 들 수밖에.
도움을 바라는 시선을 던진 곳에서 제라르가 어깨를 들썩이며 양손을 벌려 보였다.
‘이런 건 나도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놈이 보이는 동작의 의미가 선명하게 강찬에게 전달되었다.
– 심하게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만나서 병시중 드는 건 아니잖아요? 스위스에 가서 산책할 정도면 돼요.
“알았어.”
– 아버지께 안부 인사 전해 줘요.
마침내 김미영의 전화가 끊겼다.
“후-.”
넥타이를 바싹 맨 것처럼 목이 졸리는 느낌이어서 강찬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정말 두렵지 않은가?
두 번의 습격과 한 번의 폭발이?
라노크에게 평생 상처로 남은 그의 부인처럼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데?
“내가 좀 그렇지?”
“대장답지는 않죠.”
혼잣말 같은 강찬의 질문에 제라르가 돌직구처럼 꽉 차게 느껴지는 대꾸를 내놓았다.
가만? 그런데 이놈이 너무하는 거 아냐?
강찬이 시선을 든 직후였다.
“대장? 나는 미쉘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대장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제라르가 던진 두 번째 돌직구가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를 뚫는 것처럼 꽉 차서 강찬에게 날아들었다.
“좋겠다, 자유로워서.”
강찬의 뾰족한 대꾸를 들은 제라르가 시선을 창으로 돌릴 때였다.
“더 시간 끌 거 없다. 움직이자.”
장난기를 싹 거둔 음성으로 강찬이 지시를 내렸고,
“위.”
직전과 다르게 제라르가 묵직한 답을 내놓았다.
***
일반 승객들과 달리 이용우는 활주로 쪽에 있는 법무부 임시 사열대를 이용했다.
평화유지군이라고 해도 사망자인 신동철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가 꽤 까다로웠다. 또한, 수송 책임자인 이용우가 프랑스 여권을 들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그나마 예복 차림의 평화유지군 여덟 명이 이용우를 호위해 주어서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권을 돌려준 법무부 직원이 바로 앞에 서 있는 수송기에 시선을 주었다. 입국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공항을 나서는 경우라서, 규정상 그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여권을 돌려받은 이용우, 법무부 직원, 그리고 여덟 명의 평화유지군 대원들이 함께 수송기로 움직였다.
“수속이 끝났습니다.”
이용우가 짧게 내용을 전한 다음이었다.
“들어가시죠.”
대기하던 대원이 앞서 움직이면서 그를 따라 함께 수송기 안으로 움직였다.
활주로에 쏟아지던 햇살이 잘린 수송기 내부는 어둑했다. 그래서일까? 텅 빈 수송기의 중앙에 서 있는 커다란 탁자 위에 놓인 신동철의 관이 더욱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이용우는 신동철의 관 정면에서 걸음을 멈췄다.
분위기를 알아챈 법무부 직원이 이용우의 뒤에 멈춰 선 다음이었다. 정중한 동작으로 발을 맞춰 움직인 평화유지군 대원들이 신동철의 관으로 움직여서 네 명씩 마주 섰다.
“차렷! 경례!”
느릿하게 올린 평화유지군 대원들의 손이 모자의 챙에 닿았고,
“바로!”
올라간 만큼이나 느릿하게 내려왔다. 이어서 평화유지군 대원들이 나무함에서 꺼낸 커다란 태극기로 신동철의 관을 완벽하게 덮어 주었다.
하얀 모자, 쑥색 상의, 하얀색 벨트, 줄을 선명하게 세운 흰색 바지에 걸을 때마다 쩔걱대는 쇠 링을 찬 대원들이 신동철의 관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런 뒤에 신동철의 관을 붙잡고서 수송기의 밖에서 기다리는 차량으로 움직였다.
검은색 밴에 신동철을 옮긴 대원들이 뒤편에 있는 차량에 오르면서 출발 준비가 끝났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법무부 직원과 인사한 이용우는 마지막에 서 있던 승용차에 올랐다. 신동철을 태운 검은색 밴, 뒤편에 대원들이 탄 승합차, 마지막으로 이용우가 탄 승용차 모두 평화유지군에서 지원해 공항 공단의 검색을 마친 차량이었다.
“고 신동철 하사는 중앙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고, 우리는 그의 모친께 바로 갈 예정입니다.”
“부탁합니다.”
나직하게 답한 이용우는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사는 거 참 웃긴다.
지프의 조수석에서 떠들다가 잠들었던 신동철이 이렇듯 허무하게 떠난 걸 보면 말이다.
‘씨발.’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웃던 신동철이 떠오른 이용우는 올라오는 욕을 꿀꺽 삼켰다.
***
철컥! 투두둑! 투둑! 투두둑!
최신 무기가 아니라 흔하게 굴러다니는 구형 AK 소총을 겨눈 감성원이 멀리 있는 흙바닥을 터트렸다. 마음 같으면 이쪽을 기웃대는 해적들의 머리통을 터트리고 남았다. 그러나 달려들거나 총을 갈겨 대지 않는 한, 찝쩍대는 민간이라서 지금은 위협 사격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쉽지 않겠는데?”
“뭐 때문에 그러십니까?”
“저놈들 말이야. 아무래도 대대적인 공격을 앞두고 그 전에 정찰하는 느낌이거든.”
“그런가요?”
혼잣말처럼 말을 뱉은 감성원을 향해 도깨비 대원이 짧게 반문했다. 저깟 해적들이 문제가 되냐는 투였다.
“저놈들과는 이미 한번 붙어 봤습니다.”
“그때 적이 몇 명 정도 됐었지?”
“처음 교전할 때가…, 30명 정도였고, 나중에 오두막에서 나온 인원을 다 합치면 백 명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기습했던 거지?”
“예. 납치됐던 여자아이를 구하는 거였습니다.”
감성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복, 습격, 보복전에 있어서 도깨비 대원들은 최고였다. 전투에 대비한 훈련도 제대로 받아서 해적 따위 두려워하지 않을 능력을 지녔다. 그러나 말이다. 도깨비 대원들의 임무 특성 때문인지, 상대가 대대적으로 밀고 들어오기 전에 보이는 패턴을 알아채지는 못했다.
“기습이 아니라 전면전이 되면 상황이 달라져. 밤에 적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철컥! 투두둑! 투둑!
대화를 나누던 감성원이 느닷없이 소총을 겨누고 머리를 내민 해적의 바로 앞 바닥을 터트렸다. 얼마나 소총을 오래 다루었기에 팔 뻗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울까?
“선배님? 원래 소총을 잘 다루셨습니까?”
“원래는 잘 다루지 못했지. 솔직하게는 좀 아둔한 편이기도 했고.”
“선배님께서요?”
고개를 끄덕인 감성원은 잠시 여유가 필요한 사람처럼 멀리 펼쳐진 하늘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날따라 먹물을 부어 놓은 것처럼 캄캄한 밤이었다.
강철규를 따라 비무장 지대에 들어서기 전에 말이다.
적과 마주치면 바로 목을 따 버리겠다고 이를 드러낼 정도로 감성원은 자신감 넘쳤었다. 막상 비무장 지대에서 들어선 감성원은 예상하지 못했던 수풀과 어둠, 긴장에 짓눌려서 훈련받은 동작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비무장 지대에서 적과 마주치면 죽이거나, 죽는 것 외에 없다.
적을 실제로 죽여야 할지 모를 상황도 두려웠는데, 정말 감성원을 짓누르는 건 언제, 어디에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스륵.
옆에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릴라치면, 소복 입은 여자 귀신이 목덜미를 붙잡는 것처럼 먼저 등줄기가 섬뜩했고, 이어서 머리칼이 바짝 곤두섰다.
지금에서야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세상을 삼킨 어둠이 두려웠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거칠게 떨리는 숨을 감성원이 억지로 삼킨 직후였다.
번득,
고개를 돌린 강철규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고, 이어서 그가 검지와 중지로 눈을 가리킨 뒤에 오른쪽 앞쪽을 두 번 찍었다.
그쪽에 적이 두 명 있다는 의미였다.
이런 순간을 위해 피눈물 나게 훈련했었다.
강철규의 지시가 있을 때면 먼저 자세를 낮추고…….
철커-억.
젠장! 염병할! 빌어먹을!
감성원이 든 소총이 무릎에 부딪히면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죽는구나!’
적에게 위치를 들켰다는 생각이 들면서 당장에라도 총알이 날아들 것만 같았고, 다음으로 어찌어찌 살아난다고 해도 나중에 받을 강철규의 질책이 떠올라 감성원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 직후였다.
눈빛을 번득인 강철규가 좌우로 고갯짓을 던졌다.
대답은 없었다.
귀신처럼 보이는 남일규가 왼편으로 움직였고, 오른쪽으로는 양동식 선배가 쥐를 노리는 너구리 같은 모습으로 사라졌다.
이미 소리가 났는데? 어쩌려고?
적이 총을 쏘면 다 죽는데?
맹세할 수 있다.
그때는 진짜 감성원 본인이 죽는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강철규와 남일규, 양동식 선배의 안위를 염려해서 나온 걱정이었다.
‘총알이 날아옵니다!’
감성원의 눈빛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이 병아리 새끼.’
젊은 날의 강철규가 감성원의 눈을 날카롭게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스응.
마른침을 삼키는 감성원 앞에서 강철규는 왼편 등에 꽂아 둔 대검을 뽑았다. 검정 칠을 해 놓아서 어둠에 완벽하게 녹아든 대검이었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어둠 속에서,
꾸륵. 꾸르륵.
새소리가 먼저 울렸고, 그 직후에 강철규가 훅 앞으로 튀었다.
표범? 아니면 살쾡이?
감성원은 강철규의 모습을 제대로 눈에 담지도 못했다. 그리고…….
“끄으-윽! 끄아아아-악!”
처참한 비명이 어둠을 찢으며 퍼졌다.
“그러게 이 개새끼들아! 왜 우리 후배들을 노리냐고!”
나직한 양동식 선배의 음성이 으르렁거렸고,
“서울 구경을 시켜 줄 테니까 내일 대가리 찾으러 온 놈들에게 분명하게 말해! 비무장왕이 지키는 곳에 절대 대가리 디밀지 말라고!”
남일규 선배의 잔인한 경고도 들렸다.
가만? 그럼 강철규 선배는?
감성원이 눈알을 굴릴 때였다.
콰드득! 피잇! 콰드드득! 핏! 피이잇!
섬뜩한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마른침 한번을 삼키고 난 뒤였다.
감성원의 왼편에서 사람의 형상이 불쑥 튀어나왔다.
철컥! 콰악!
놀란 감성원이 돌린 총구를 붙든 건 강철규였다.
그의 눈가와 볼, 턱에 튄 피가 한지에 번진 먹물처럼 선명하게 감성원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다 그래. 다들 이렇게 배운다. 다음에는 잘할 거지?”
실수한 감성원을 다독여 주어서일까?
감성원은 터지는 울음을 참기 위해 자꾸만 입술을 삐죽였다.
멍청하게 소총 소리를 울렸다.
얼어붙어서 꼼짝 못 했고.
마지막에 총구마저 들이댄 감성원을 나직하게 달래 주는 강철규의 표정과 음성이 이상하게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는 말 외에는 다른 핑계는 없었다.
“우리가 밀리면 조국을 위해 젊음을 바친 후배들이 목이 잘려 죽는다. 그 후배들을 지키려면 소련과 북한 놈들이 지랄 떠는 것 이상으로 잔인해져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이다. 할 수 있지?”
“하겠습니다-.”
피식 웃은 강철규가 뒤통수를 툭 때린 뒤였다.
피를 뒤집어쓴 남일규와 양동식이 수풀에서 나왔다.
‘다 안다, 이 자식아.’
그리고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감성원을 보며 히죽 웃었다. 피를 잔뜩 뒤집어써서 흉측하게 보이는 얼굴로 말이다.
“선배님?”
과거를 떠올리던 감성원의 시선을 도깨비 대원이 당겼다.
“아! 미안하다. 무슨 말을 하다가 이렇게 됐지?”
“원래 소총을 잘 다루셨냐고 물었었습니다.”
“맞다. 그랬지? 내가 아둔했다는 말은 이미 했고. 아무튼, 비무장왕이라는 분과 남일규, 양동식 선배를 비롯한 선배들께서 이끌어 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벌써 죽어 없어졌을 거다.”
“전설로 떠도는 비무장왕을 직접 보신 겁니까? 그분께 배우셨고요?”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도깨비 대원들을 향해 감성원은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었다.
“저놈들이 우리를 살피는 꼴을 보면 이쪽 상황을 파악하려는 거로 보인다. 우리가 지원하는 물품을 탈취할 수만 있다면 몇 명이 죽든 상관없다는 놈들이다 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라서 애꿎은 주민들이 희생될 수도 있어. 숫자도 제법 될 거 같고.”
“지난번에 습격했었던 해적 마을을 다 털어도 백 명 안쪽일 겁니다.”
“근처에 있는 해적들이 연합해서 달려드는 건지 모르니까 그럴 만한 세력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게 어떨까? 그리고 가는 길에 부회장님께 잠깐 뵐 수 있는지도 물어봐 주겠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성원에게 답을 한 도깨비 대원이 몸을 돌렸다.
그때 선배들의 피 흘리는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이렇게 빛나는 후배들이 생겼다.
철컥! 투둑! 투둑! 투두둑!
후배의 뒷모습을 보던 감성원은 앞쪽을 향해 AK 소총을 갈겼다.
철컥! 철커덕!
탄창을 교체한 다음이었다.
소총을 안은 감성원은 방금 흙바닥을 터트렸던 곳을 노려보았다.
“태극기 걸린 땅과 후배들을 건드리면 내가 지랄같이 잔인해지거든. 적당히들 해라.”
경고를 날린 감성원은 언젠가 강성태에게 보여 주었던 미소를 그렸다. 강성태는 알지 못하겠지만, 남일규를 흉내 내다가 얻은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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