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91)
672화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2)
반군과 상대했던 지역은 이미 감염이 시작됐다고 봐야 했고, 괴물이 있었다는 커피 농장 주변은 확인이 급했다. 그 바람에 느닷없이 상황실 역할을 맡은 차동균은 혼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곽 대령. 상황이 어때?”
– 반군이 사용하던 건물을 중심으로 주변을 수색 중입니다만, 아직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조심하고, 특이 사항 나오면 바로 연락해.”
– 알겠습니다.
작전을 마친 곽철호와 윤상기 팀이 다시 현장으로 달려가 수색 중이었고, 석강호는 커피 농장으로 가기 위해 정규군의 이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규군은 언제 출발하는 거야?
꾸물대는 일 처리에 속이 터진 차동균이 애꿎은 전화기를 노려볼 때였다.
“비도 없어, 여기는!”
툴툴대는 석강호의 음성이 차동균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러네!
비가 오면 다 해결되는 거네!
“여기는 언제 비가 옵니까?”
“중동 국가 평균과 비교하면 20퍼센트 수준이라고 보면 맞아. 그 정도로 비가 적어.”
기대를 품고 건넨 질문에 맥이 쭉 풀리는 답이 돌아왔다.
괴물을 만들어 내는 놈들이 이런 점까지 신경 쓴 걸까, 아니면 운석이 떨어진 지역이 하필 유독 비가 적은 곳이었을까?
“진짜 지랄 같습니다.”
차동균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를 내놓은 다음이었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공항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아랍어가 편하지만, 나중을 위해서 영어에 능통한 대원이 수화기를 들었다. 몇 마디를 주고받은 대원이 수화기를 놓고서 시선을 주었다.
“예멘 정부군 1개 대대가 지금 출발한답니다. 도착까지 12시간 정도 소요될 거라는 통보였습니다.”
“그 인원 가지고 어떻게 지역을 통제하겠다는 거야? 그리고 걸어간다냐, 뭐 12시간씩 걸려?”
석강호가 또다시 툴툴댔지만, 더는 어쩌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차 장군. 내가 대원들과 헬기로 가서 농장 주변을 살필 테니까 아프리카에서 지원 병력이 오면 상황에 맞춰 움직여.”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체첸 용병 놈들이 그쪽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거잖아. 막말로 감염을 노렸다면 반군 기지가 있는 곳보다 농장 쪽이 더 위험해. 그러니까 일단 가서 확인하는 게 맞아.”
“조심하십시오.”
말린다고 들을 석강호가 아니고, 말릴 상황도 아니었다.
차동균의 당부를 눈빛으로 받은 석강호가 빠르게 방을 나섰다.
“후-.”
방에 남은 차동균의 기다란 한숨이 예멘에 닥친 끔찍한 재앙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느낌이었다.
***
강태산과 헤어진 김형정은 신광선과 함께 종합정보실로 움직였다.
정보총국, 안느가 운영하는 독립적인 정보 조직, 지경그룹이 지원하는 황성규의 정보팀과 연합해서 새로운 정보실을 꾸리라는 게 강찬의 요구였다.
“보안 카드입니다. 이 카드를 꽂아야만 3급 이상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올라온 정보들은 확인하실 테니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특이 사항으로 오전부터 정보총국에서 중요 정보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종합정보실을 책임지던 대위가 김형정과 신동선에게 보안 카드를 지급하며 이용 방법과 주의 사항, 그리고 특이점을 알려 주었다.
“고마워요.”
“정보실을 이끌어 주실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몇 번이나 건의했었습니다. 이렇게 모시게 돼서 기쁘고, 많이 배우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고 말씀해 주십시오.”
대위와 인사한 김형정은 신광선과 함께 안내된 자리에 앉았다.
첫날이고, 이제 막 인사한 참이니까.
자리에 앉은 김형정은 정보실 내부를 꼼꼼히 돌아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시설이 열악했다.
아무리 믿음으로 뭉친 관계라고 하지만, 영업부서 사무실처럼 뻥 뚫린 공간에서 모든 정보가 오가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꼴이었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김형정의 심정을 알아챈 것처럼 다가온 신광선이 구석에 놓인 테이블을 돌아보았다. 커피 한잔 마시는 데 온갖 정보들이 올라오는 책상을 거쳐 지나가는 구조를 지적하는 눈빛이었다.
“봉지 커피로 할까?”
“가져오겠습니다.”
구석으로 움직이는 신광선을 보며 김형정은 바람 빠지는 사람처럼 웃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동 지역의 사정을 꿰뚫는 정보통 신광선이 특별한 사유도 없이 밀려나 아프리카에서 봉지 커피를 타고 있는 현실이라니.
기가 막혀서 신광선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종이컵으로 정수기의 물을 받던 신광선이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는 김형정을 향해 곤란한 시선을 던졌다.
‘뭔데 그러지?’
김형정이 지켜보는 앞에서 종이컵을 두 개 든 신광선이 책상 사이를 걸어 빠르게 다가왔다.
“레벨 원이 전화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 통화했다가는 괜히 말만 돌아. 부원장님께 말씀드려 볼 테니까 그때까지는 모른 척해.”
“알겠습니다.”
마음을 정한 신광선이 손을 뻗어 거절 버튼을 시원하게 눌렀다. 그 뒤에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간 김형정은 창밖으로 펼쳐진 아프리카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감염이 퍼지기 전에 대한민국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싫든, 좋든, 국가정보원과 연락해서 협조하는 게 좋았다. 그 전에 하동선과 불편하게 통화하는 건 분위기만 최악으로 몰 수 있었다.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해야 원만하게 국가정보원을 수습할 수 있을까?
‘설마 때리지야 않겠지.’
강찬의 성격을 짐작하는 김형정은 종이컵의 끝을 씹어 가며 생각에 잠겼다.
***
국가정보원 원장 하동선은 석 달 화장실을 못 간 사람처럼 표정이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당연하게 받는 거로 알던 정보가 한순간에 뚝 잘렸는데, 한밤중에 도로를 달리다가 느닷없이 라이트가 고장 난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진 느낌이었다.
그뿐이냐?
미국 국빈 방문을 원하는 VIP의 요구를 해결하지 못해 몸이 달아 죽을 지경이었다.
“매국노 새끼들도 아니고 말이야.”
분통이 터졌지만, 홧김에 잘라 버린 김형정과 신동선을 불러들이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똑똑.
“들어와.”
노크 소리를 들은 하동선이 밖을 향해 외친 다음이었다.
4차장이 들어섰다.
“무슨 일이야?”
“주프랑스 대사의 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거 하나는 제대로 돌아가나 보네. 그래서 해임된 대사는 지금 뭐 하고 있는데?”
“그동안 도움 줬던 분들에게 인사하고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거야 잘린 사람이 알아서 하면 되는 일이고, 지금 어디 있냐고!”
“정보총국과의 충돌을 우려해서 요원을 붙이지는 못했습니다.”
“하아, 참!”
화는 나는데 또 그걸 뭐라고 하기는 어렵고, 이상하게 분통은 터지고, 하동선은 연신 볼을 씰룩였다.
“저기, 원장님. 프랑스가 예멘을 위험 국가로 지정해서 입국을 완전히 통제했다는 첩보입니다.”
“그건 또 어디에서 나왔어?”
“해임된 김미영 대사가 마지막으로 올린 첩보입니다.”
“별게 다 첩보다. 사유가 뭐라는데?”
“그 부분을 밝히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었다고, 반드시 확인하라는 주석을 달았습니다.”
“아주 장사꾼이야. 같잖은 걸 들고서 흥정도 하네.”
기가 찬 표정으로 웃음을 토해 낸 하동선이 나가 보라는 투로 손을 휘휘 저을 때였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스마트폰이 책상에서 몸을 떨었다.
얼른 나가! 얼른!
급한 손짓으로 4차장을 내보낸 하동선은 빠르게 스마트폰을 들었다. 조국을 위해서는 꼼짝도 않던 인간이 마누라가 해직되니까 전화를 해? 그러게 일찍 움직이지 그랬냐?
이 얍삽한 인간아.
강찬의 이름을 확인한 하동선은 느긋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하동선 원장? 나 강찬이다.
“끄응. 원장인 줄 알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줄도 알아야 하지 않나?”
바라는 게 있다 보니 하동선은 점잖은 음성으로 강찬을 꾸짖었다.
– 피식.
그러나 ‘피식’ 하는 웃음이 들리면서 그에 맞서는 것처럼 이마의 핏줄이 ‘빠직’ 솟구쳤다.
– 시간이 없으니까 우선 들어.
“이봐.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주프랑스 한국 대사는 계속 다른 사람이 맡게 돼.”
분통을 누른 하동선의 경고가 건너간 다음이었다.
강찬의 대꾸가 넘어오지 않았다.
뭐지? 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이 침묵은?
하동선이 눈알을 굴릴 때였다.
– 그러니까 나 때문에 김미영을 대사에게 밀어냈다는 거냐?
“그건 알아서 판단해.”
– 그렇게 하지.
그게 전부였다.
더 뭐라 말을 붙여 보기 전에 통화가 뚝 끊겼다.
전화하는 건 자존심 상하고.
더구나 강찬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망신살만 뻗친 꼴이 된다.
“아니, 그런데 이것들이 진짜!”
스마트폰의 액정을 확인한 하동선이 이를 갈아 댔으나 이미 통화가 끊긴 뒤였다.
***
이용우는 예복 차림의 평화유지군 대원 두 명과 함께 벨을 눌렀다.
작은 빌라였다.
삐걱대는 문을 연 김옥자가 눈매를 좁히며 이용우와 예복 차림의 대원 두 명을 보았고, 이어서 공포에 질린 것처럼 마른침을 삼켰다.
“김옥자 님 되십니까?”
“우우?”
그녀가 손을 움직였는데 이용우는 알아듣지 못했다.
“본인이 맞다고 하십니다.”
김옥자가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평화유지군에서 수화를 아는 대원을 보낸 모양이었다. 대원을 돌아본 이용우는 다시 시선을 김옥자에게 옮겼다.
“저는 이용우라고 합니다. 먼저 이런 소식을 전해 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드님인 고 신동철 하사가 작전 중에 사망했습니다.”
김옥자가 번갈아 던지는 시선을 보며 알았다.
반걸음 뒤에 선 대원이 굳은 얼굴로 수화를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
“그럴 리가 없다십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고 신동철 하사는 끝까지 임무에 충실했고, 용감했으며, 마지막 순간에… 제 목숨을 구해 주었습니다.”
이용우의 말을 뒤에 있던 대원이 수화로 전했는데도 김옥자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멍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우아아아-!”
비명 같은 외침을 터트리며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김옥자의 울음은 처절했다.
“우아-! 우우아-!”
“우리 아들이 죽었을 리 없답… 니다. 분명 다시 와서…. 함께 여수에 가기로 했다고…….”
마치 매달리면 신동철이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다는 양, 김옥자는 눈물범벅인 얼굴을 위로 들고서 안타깝게 손을 움직였고, 그 모습을 보며 대원이 힘겹게 뜻을 전해 주었다.
이용우는 자세를 낮춰 울부짖는 김옥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 제가 죽었어야 했는데…….”
늘 뻔뻔하고 당찬 모습을 지키던 이용우의 눈에서도 어쩌지 못한 눈물이 솟았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를 살리려고…. 죄송합니다-.”
말끝에 흐느끼는 이용우를 보던 김옥자가 다시금 “우아아-.” 하는 울음을 터트렸다.
처절한 울음을 터트리며 철퍼덕 주저앉은 김옥자,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흐느끼는 이용우,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두 명의 평화유지군 대원이 볼을 씰룩이며 슬픔을 견디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떨군 이용우의 턱을 타고 눈물이 떨어질 때였다.
“우아-. 우우우-.”
김옥자가 팔을 뻗어 이용우의 목을 안았다.
“고개 들라고…….”
대원의 말을 들은 이용우는 억지로 고개를 들어 눈물범벅인 김옥자를 보았다.
“우우우-.”
“죄송할 거 없다고…. 대신 우리 아들이 아프지…, 않았냐고? 고통스럽지 않았냐고 물으십니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 어머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멋지게 웃었습니다. 죄송… 합니다.”
“으아! 우아아!”
이용우의 목을 안은 김옥자가 가슴에서 터지는 울음을 쏟아 냈다. 굵은 흐느낌을 이용우 역시 쏟아 냈다. 그러면서 슬픔에 몸부림치는 김옥자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
계약서에 사인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탕가니카 호수의 개발권이 지경그룹의 손에 들어왔다.
“제안서에 담은 사항들을 빠르게 이룰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대통령 궁을 떠나기 전 악수를 나누며 천중명이 의지를 전했고,
“무슈 강에게 바로 전화해서 내용을 알려 주시오.”
부룬디 대통령은 나직한 음성으로 개인적인 바람을 건넸다.
간단하게 답한 천중명은 미련 없이 대통령 궁을 나섰다. 그리고는 대기하던 승용차에 올랐다.
“탕가니카 호수 개발과 사회 간접 시설, 특히 의료 시설의 건설을 최대한 서두르라고 지시하세요.”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회장님.”
붉고 파란 경광등을 반짝이는 순찰차를 따라 승용차가 속도를 내고 있었다.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천중명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죽어서도 움직이는 끔찍한 현상이 번지면, 가장 먼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당한다.
아프리카를 개발해 이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바꾸고, 열악한 환경에 던져진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만들겠다며 나선 길이었다. 물론, 그 끝에서 정당하게 돌아올 이익을 기대한 건 있지만, 시작은 전적으로 강찬의 제안을 듣고 나서 움직였다.
왜 이럴까?
발전 계획을 채 수행하기도 전에 저주와 같은 증상이 번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뤄 낼 겁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도깨비 회장은 뚫고 나간다. 그래서 누구나 최소한의 행복을 움켜쥐는 세상을 만든다. 그러라고 강찬을 만나게 했을 거라 믿는다.
시선을 내린 천중명은 단단한 표정으로 앞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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