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92)
673화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3)
원래 다마르에서 남쪽으로 연결된 도로는 한가한 편이었다. 그러나 평화유지군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이후로 밀리기 시작한 차량이 지금은 황톳길에 버려진 뱀처럼 기다랗게 늘어서 있었다.
도로를 자른 것처럼 막아선 바리케이드 양쪽으로 검문을 예멘 정부에서 승인했다는 안내판이 섰고, 그 주변으로 평화유지군 대원이 세 명씩 자리를 지켰다.
끼이익.
수신호를 받은 승용차가 바리케이드 앞에 멈춘 다음이었다.
미화 50달러의 일당으로 고용한 예멘 남성 네 명이 운전석과 조수석, 뒤편의 유리에 다가섰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예멘 남성 한 명마다 평화유지군 대원 두 명이 붙었다.
야간투시경이 달린 헬멧, 회색 군복, 방탄조끼, 허리와 발목에 걸어 둔 권총과 대검, 가슴에 안은 소총의 총구를 아래로 내린 평화유지군 대원들의 모습에서는 정말이지 빈틈이 없었다. 거기에 복면과 고글을 착용하고 있어서 상대방은 눈동자도 확인하지 못했다.
운전석 창을 내린 남자는 불만과 짜증이 가득 올라온 눈매로 다가서는 예멘 남성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인데 이러는 거요?”
“치료가 어려운 감염이 시작돼서 소독하려는 겁니다. 창문을 모두 내리고, 트렁크를 열어 주세요. 안에 타신 분들은 소독할 수 있도록 손을 내미세요.”
고용한 예멘 남성의 설득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 뒤에 선 평화유지군 대원들의 모습에 눌린 모습이었다. 불만을 억지로 삼킨 운전자가 창문을 모두 열고는 차에서 내렸다. 트렁크를 열어 준 그를 따라 평화유지군이 안을 확인한 다음이었다.
“손 내미세요.”
치익. 치이익.
농약 치는 기계처럼 커다란 통을 등에 멘 예멘 남성이 막대처럼 생긴 분사기를 통해 운전사의 손에 물을 뿌렸다. 말이 손에 뿌리는 거지, 분무기를 통해 이슬비처럼 퍼지는 물줄기라 운전자의 얼굴과 목덜미까지 적셨다.
지켜보던 평화유지군이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이쪽도 문제없습니다.”
조수석과 뒷좌석에 탑승한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한 평화유지군 대원이 상황을 보고했다.
“통과시켜.”
수십 대의 차량을 통제하면서 예멘 남성이 알게 된 우리말이었다.
“출발하십시오.”
예멘 남성이 물러나면서 요란하게 운전석 문을 닫은 남자가 바리케이드를 빠져나갔다.
손짓에 따라 다음 승용차가 다가올 때였다.
대원들과 똑같이 무장한 곽철호는 갑갑한 표정으로 줄지어 서 있는 차량을 돌아보았다. 당장 다마르 바깥으로 나가는 차량을 붙잡고 감염자를 찾아내고 있지만, 이건 정말 최소한의 조치였다.
막말로 아무리 도로를 통제한다 해도 야산을 타고 걸어 나가는 감염자를 막지 못한다.
다마르를 완벽하게 통제하려면 얼마나 많은 숫자가 필요할까?
‘이곳에서 끝나야 하는데…….’
예멘과 그중에서도 다마르에는 너무나 잔인한 소망이지만, 지금은 크게 최선이었다.
곽철호가 다시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철컥! 철컥! 철커덕!
“움직이지 마!”
소총을 겨누는 소리와 함께 대원들의 고함이 터졌다.
철컥!
곽철호가 반사적으로 소총을 내렸고, 바리케이드와 주변에서 대기하던 대원들 역시 소총을 내린 상태로 지원하기 위해 움직였다.
“손들어! 손! 손이 보이도록 들어!”
“문 열어!”
간단한 아랍어를 아는 대원 두 명이 외치면서 물통을 멘 예멘 남성들이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
“손을 들고 내려! 한 명씩!”
콧수염에 그나마 깔끔한 셔츠, 정장 바지를 입은 운전자, 조수석에서 내린 히잡 쓴 여성, 그리고 여자아이들 둘,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가족으로 보였다.
“돌아서!”
철컥! 철컥!
그들을 향해 움직이며 곽철호는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소총의 총구를 들이밀면 당황해야 하는데 가장부터 아이들까지 표정이 너무 덤덤했다. 아니, 숫제 변화가 없었다.
“물을 뿌려!”
차에서 내린 일가족을 소총으로 겨눈 상태였다.
뭘 잘못했다고 아이들에게 총구를 겨눠?
가뜩이나 통제에 불만을 품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차에서 내려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치익. 치이익. 치익.
분사기를 손에 든 예멘 남성들이 손을 든 가족을 향해 물을 뿌린 직후였다.
“끄윽! 끄아아-아!”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일가족이 바닥을 굴렀다.
멀쩡하던 사람들이, 그것도 여자아이들을 포함한 일가족이 평화유지군이 뿌린 독극물에 죽어 가는 광경으로 오해하기 꼭 좋은 모습이었다.
“꺄아-아! 꺄아-악!”
찢어지는 여자아이의 비명이 자극제가 된 모양이었다.
대기하던 차량에서 내린 남자들이 아랍어로 고함을 지르며 바리케이드를 향해 몰려들었다.
“무슨 죄를 지었냐며 항의하는 겁니다.”
대원의 말을 전해 들은 곽철호는 소총의 총구를 하늘로 들었다.
푸슝! 푸슝! 푸슝!
세 발을 갈기면서 달려들던 남자들이 일단 움찔했다.
“따라오라고 해.”
지시를 던진 곽철호는 고용한 예멘 남성들과 함께 바리케이드 앞으로 움직였다.
“끄으으-.”
그 와중에도 바리케이드 너머에서는 처절한 비명을 토해 내는 일가족이 거친 도로에서 몸을 비틀고 있었다.
“물이라고 설명하고 먼저 나한테 뿌리라고 해.”
대원을 통해 지시를 전해 받은 예멘 남성이 커다랗게 아랍어를 떠들며 분무기로 물을 뿌렸다.
“저 앞 사람들에게도 뿌려.”
예멘 남성이 이번에는 바리케이드 앞까지 온 남자들에게 물을 뿌렸다. 몰려 있던 사람이 뭐라고 떠들자 예멘 남성은 자신의 얼굴로 분무기를 돌려 물을 뿌리기까지 했다.
“물을 뿌렸는데 저 가족은 왜 고통을 받는지 묻습니다.”
“물을 두려워하는 전염병이 퍼졌다고 설명해.”
예멘 남성들을 통해 설명을 들은 남자들의 시선에 의문과 불안감이 물결처럼 번지고 있었다.
“끄으으-.”
고작 물을 뿌렸을 뿐인데 저토록 고통스러워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은 덤이었다.
“됐어. 저 가족들 빨리 격리하고, 차량 이동시켜!”
곽철호의 지시가 떨어지면서 방역복에 가스마스크를 착용한 대원들이 움직였다. 먼저 바닥에서 버둥대는 가족의 팔을 잡고서 트럭으로 옮겼고, 다른 대원은 길을 막고 있던 그들의 승용차를 옮겼다.
“끄으! 끄으으!”
어른들도 그렇지만, 눈이 뒤집힌 여자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당장은 저렇게 트럭에 격리하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달려드는 여자아이의 목을 잘라야 하는 참극이 벌어질 수 있었다.
“대장. 치료법이 급합니다.”
곽철호가 소망을 떠올릴 때였다.
감염자가 나온 바람에 차량을 검색했던 대원들이 각자 얼굴에 물을 뿌리며 상태를 점검했다.
***
예멘으로 향하는 수송기 안이었다.
벽에 붙은 의자에 앉은 강태산에게 로일이 다가왔다.
“잠시만요.”
강태산은 시선만 주었는데 로일은 작은 수첩과 펜을 들고 있었다.
“정말 미안하지만, 감염을 통해 움직인 사례들을 직접 확인하지 못해서 자료가 너무 부족해요. 그리고 감염된 분들의 증상과 상태를 정확하게 알수록 다른 사람들을 구할 확률이 높아져요.”
로일의 말뜻은 알아들었다. 그러나 설명해야 하는 대상이 양동식과 동료들이라는 사실에 강태산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도와주세요. 양동식 소령이라는 분과 동료들의 상태를 아는 게 진짜 큰 힘이 돼서 그래요.”
“흠.”
안다.
예멘으로 향하는 이유가 그곳에서 번지는 감염을 막고, 할 수만 있다면 감염 이유와 치료법을 알아내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강태산은 먼저 이를 지그시 깨물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양동식이 쏟아 냈던 말들과 상태를 꼼꼼하게 들려주었다.
“고통은 있는데 감각이 없다고 했다고요?”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특수부대와 증평이라는 곳에서 각각 다르게 사용하는 규율을 상황에 맞춰 외쳤고요?”
“맞습니다.”
질문했던 로일이 메모했던 내용에 중요 표시를 연달아 그렸다.
“처음 반응한 때부터 마지막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죠? 규율을 외쳤을 때까지요.”
“정확하지는 않은데 대략 20분 정도입니다.”
시간을 적어 넣은 로일이 고개를 들었다.
“고마워요. 감염된 이후로도 이성이 남았다는 사실을 안 것만 해도 정말 큰 도움이 돼요. 그 외에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감정이 일어난다는 사실도요.”
“마지막까지 특수팀 지휘관의 모습을 지키셨던 소령님의 의지가 빛날 수 있게, 반드시 치료법을 찾아 주십시오.”
“최선을 다할게요.”
대화를 마친 로일이 수송기 안쪽에 마련해 준 연구팀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그아아아-앙.
수송기는 아무래도 시끄럽고, 투박하게 비행한다.
벽에 붙인 기다란 의자에 앉은 강태산은 팔을 움켜쥐던 양동식과 평화유지군 본부에서 보았던 김형정을 차례로 떠올렸다.
‘가슴 깊은 곳에 담는다. 조금만 더 능력이 있었다면 따위의 핑계를 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지휘관이 된다.’
각오를 삼킨 강태산이 볼을 씰룩일 때였다.
“대위님? 무슨 일입니까?”
“뭐가?”
상체를 기울인 이준호가 나직하게 질문을 던졌다.
“완전 전투에 나서는 눈빛을 하고 있잖습니까?”
“내가?”
“아니면 예멘에서 전사자가 나왔나 싶을 정도입니다.”
아직 멀었나?
“소령님과 동철이를 생각하다 보니까 그랬나 보다.”
“예.”
우습게도 양동식과 신동철의 이름을 들은 이준호의 눈이 독하게 변했다. 그리고는 기울였던 상체를 가져갔다.
“젠장.”
체첸 용병들과 마주친다면 말이다.
놈들이 끝까지 달려들면 간단한데, 덜컥 투항하면 그걸 순순히 받아 줄 수 있을까? 항복한 놈들 속에 신동철에게 방아쇠를 당긴 놈이 있어도?
“후-.”
강태산은 또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양동식과 김형정이 주었던 충고가 떠올라서였다.
***
칼튼 숀은 검은색 대형 SUV를 이용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도착했다. 입구와 통로를 지키는 요원들을 지나친 그는 곧장 코트가 내려다보이는 가장 위쪽으로 들어섰다.
NBA 경기가 열리면 관중들로 북적였을 텐데, 경기가 없는 오늘은 중앙 아래로 놓인 코트와 객석이 텅 비어서 쓸쓸해 보일 지경이었다.
좌석 사이의 통로로 움직인 칼튼 숀은 다리를 꼬고 앉은 중년 남자의 옆자리에 자리했다.
“안드레이의 협조를 얻기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바실리의 눈치를 봐야 할 테니 쉽지 않겠지. 말이 나가기 전에 정리해야겠군.”
칼튼 숀의 나직한 보고를 중년 남자가 편하게 받아들였다.
갈색 머리칼에 콧대가 높았고, 눈매가 깊어서 꽤 입체적인 인상이었는데 사람을 깔보는 듯한 말투와 눈빛을 지녀서 전반적으로 차가운 느낌이었다.
“무슈 강을 제거하려는 것도 실패했고, 헬륨3는 깨끗하게 사라졌으니, 예멘에서 얻으려던 건 모조리 놓친 꼴이군. 그 바람에 게르만의 집사 하르트만 요하스까지 잃었으니…….”
말을 잠시 멈춘 중년 남자가 고개를 돌려 칼튼 숀을 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이지?”
“그보다는 예멘과 그린베레 사이에서 감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흠흐흐.”
“웃을 일이 아닙니다, 미스터 맥퍼슨.”
“그래? 나는 웃음이 나는데?”
씹어 대는 말투야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맥퍼슨의 표정은 칼튼 숀을 완벽하게 얕잡아 보는 투였다.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벌써 무슈 강에게 던져 줬을 자네가 감염 덕분에 목숨을 연명한다는 게 재미있지 않나?”
“내가 그의 손에 잡힌다면 미스터 맥퍼슨도 드러나게 됩니다.”
“드러나기는 하겠지. 그렇지만 나를 찾지 못해. 자네와는 완전히 다른 결말이지.”
느물대는 맥퍼슨의 태도에 눌린 것처럼 칼튼 숀은 대꾸를 내놓지 못했다.
“이렇게 하지. 감염을 퍼트려.”
“미스터 맥퍼슨?”
“아니면 무슈 강에게 달려가든가? 아! 무슈 강이라면 굳이 찾아가지 않아도 알아서 올 테니 기다리는 것도 제법 흥미롭겠군.”
“CIA 국장을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건 아닙니까?”
별 같잖은 소리를 다 들었다는 투로 맥퍼슨이 코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데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를 모르지 않을 테니까 이쯤하고. 선택은 두 가지일세. 내 권유를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독자적으로 행동하든가.”
“감염이 퍼지면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인류가 멸망하는 수준이라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지?”
대뜸 날아든 반문에 칼튼 숀은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잠시 멍하던 그가 겨우 정신을 차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국만 노리는 것과 인류가 멸망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되는 것보다야 낫지 않나?”
차가운 맥퍼슨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칼튼 숀이 눈가를 좁혔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핑계였던 겁니까? 결국, 인류를 청소하려던 예전의 계획을 다시 실현하겠다는……?”
“이봐, 숀. 인간이란 건 말이지. 갖지 못한 것들을 얻기 위해 투쟁하도록 DNA에 새겨져 있어. 혁명, 개혁, 모두 그런 이유지.”
동의하지 않느냐는 투로 고갯짓을 던진 맥퍼슨이 묘한 느낌의 미소를 그렸다.
“풍요로운 생산 시설, 넘치는 에너지, 더 발전할 이유도 없는 과학과 의학을 소수의 사람만이 즐기는 거지. 물론, 생각 따위 없이 명령에 따르는 하인은 남겨 둬야겠지. 이를테면 무슈 강과 그의 하수인들 정도?”
“그런 말도 안 되는…….”
놀라는 칼튼 숀을 보며 맥퍼슨이 음흉한 미소를 그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