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94)
675화 가 보세요 (2)
“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이 길게 늘어선 차량의 중간에서 터졌다.
“따라와!”
소총을 든 곽철호와 대원들이 급하게 달렸고, 눈치 빠른 예멘 남성이 물통을 지고서 뒤따랐다.
벌써 열 번이 넘는다.
“비켜요! 비키라고!”
사고가 일어난 승용차 주변에 몰린 사람들을 밀쳐낸 곽철호와 대원들이 승용차로 달려들었다.
철컥! 철커덕!
총구를 겨눈 승용차의 유리에 피가 튀어서 안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 윤곽만 보이는 사람이 안에서 뒤엉켰고, 그 바람에 승용차가 움찔대듯 흔들렸다.
“열어!”
곽철호의 지시를 받은 대원이 운전석 문을 열었을 때였다.
“와아-악!”
피범벅인 운전자가 고함과 함께 달려들었다.
푸슝! 퍼억! 푸슝! 퍽!
운전자의 이마와 미간이 총알에 터진 직후였다.
비틀거렸던 운전자가 운전석 문을 잡고서 다시금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더 강렬하게 곽철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악!”
푸슝! 퍼억! 푸슝! 퍼억!
이미 열 번 이상 상황을 겪었지만, 이번 운전자가 유독 거칠고, 강렬했다.
“물을 뿌려!”
지켜보던 사람들은 말할 것 없고, 물통을 지고 달려온 예멘 남성조차 머리의 뒤편이 날아간 사람이 달려드는 모습에 얼이 빠진 모습이었다.
푸슝! 퍼억!
“물! 물을 뿌리라고!”
방아쇠를 당긴 곽철호가 고함을 지른 뒤였다.
얼핏 정신을 추스른 예멘 남성이 분무기를 앞으로 내밀고는 스위치를 눌렀다.
치익. 치이이익.
“끄아아-!”
뭐야? 독극물이야?
놀라고 당황한 사람들 앞에서 머리 반쪽이 터진 남자가 바닥에서 굴렀다.
“물 제대로 준비해!”
빠르게 지시한 곽철호가 뒷문으로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끼이이-익.
낡은 승용차의 문이 열리며 늙은 남자가 안에서 내렸다.
빌어먹을!
곽철호가 이를 악물었고,
“꺄아악!”
“우욱!”
지켜보던 여자들이 당황한 비명을 질렀으며, 또 몇 명은 몸을 숙이며 속을 게워냈다.
“아나 악툴르 아흐든(أنا أقتل أحدا)!”
눈이 완전히 뒤집힌 늙은 남자의 손에 들린 건 거칠게 목이 잘린 아이의 머리였다. 두 살? 혹은 세 살?
푸슝! 퍼억! 푸슝! 퍼억!
“물!”
대원의 총에 머리를 맞고 휘청인 늙은 남자가 다시금 상체를 세울 때였다.
“야, 이 새끼야! 물 뿌리라고!”
독이 오른 대원의 눈빛과 욕이 날아가면서 예멘 남성이 분무기를 내밀었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끄아악!”
곽철호는 열린 문 안쪽으로 총구를 돌렸다.
온통 피로 뒤덮인 승용차의 내부에는 머리가 잘린 아이의 몸뚱이와 역시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몸뚱이만 걸쳐 있는 여자가 전부였다.
“우욱! 욱!”
끔찍한 광경과 역한 피비린내에 질린 사람들이 또 다른 감염처럼 연신 헛구역질을 해 대는 앞이었다. 곽철호는 몸을 세웠다. 그리고는 아직 아이의 머리를 손에 움켜쥐고 발악하는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아까 이 영감이 뭐라고 떠든 거야?”
“우리말로 바꾸면 다 죽인다, 정도 됩니다.”
답을 듣는 틈이었다.
버둥대는 늙은 남자의 손에 잡힌 아이의 반쯤 감긴 눈이 곽철호를 스쳐 지났다. 감염자를 막는 도로에서 연달아 벌어지는 참극이었다. 밖으로 가는 도로가 이 정도인데 다마르 안쪽은 어떻게 변했을까?
짧게 주변을 돌아본 곽철호는 대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현장 지킬 테니까, 여기 두 사람 격리하고 가서 검색해.”
“알겠습니다, 대령님.”
대원들이 멀어지면서 그들을 따라붙지 못한 피비린내가 곽철호를 더욱 진하게 휘감고 있었다.
끔찍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검문에 대한 항의는 없어졌다. 대신 서둘러 다마르를 빠져나가려는 사람들과 동행자가 수상하다며 물을 뿌려 달라는 요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더는 위험한데?’
방역복을 착용한 대원들과 트럭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곽철호는 구석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 차동균입니다.
“대령 곽철호입니다. 급하게 보고드릴 사안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 그래. 무슨 일이야?
질문을 받은 곽철호는 처참한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방금 겪었던 참극을 건조한 느낌으로 전했다.
“감염자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 바리케이드가 얼마나 견딜지 모릅니다. 더 큰 문제는 다마르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 곽철호. 돌리지 말고 편하게 말해.
대령이니 장군이니 떼고 예전처럼 편하게 주고받자는 차동균의 뜻이 곽철호에게 건너왔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머리를 잘라서 들고 있었습니다. 입구를 계속 틀어막으면 다마르가 완전히 지옥으로 변할 테고, 그들이 모두 괴물로 변해 달려들면 우리 숫자로는 감당하지도 못합니다.”
– 흐음.
신음처럼 들리는 차동균의 한숨이 암담한 현실을 대신하고 있었다.
– 어떻게 하고 싶어?
“검문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검문을 통과한 뒤에 증상이 나오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겁니다. 이럴 바에는 이곳에 임시 수용소를 만들어서 증상이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지켜보고, 병력을 다마르로 투입해서 정상인 사람들을 구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젠장. 뜻은 알겠는데 지금 병력으로는 어림없어. 대장에게 연락해서 곽 대령의 판단을 전할 테니까 우선 현장을 지켜. 그리고…….
차마 뒷말을 잇기 어렵다는 것처럼 차동균이 잠시 뜸을 들였다.
– 현장 판단해서 도저히 견디기 어렵다고 느껴지면 철수해.
냉정한 지시였다.
다마르와 주변 사람들을 포기하라는 명령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함께 피 흘리던 사이였다.
차동균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곽철호고.
– 다마르가 아니라 예멘을 통제할 병력이 우리밖에 없다.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너와 윤상기 쪽 병력이 희생되면 다음이 없어.
“알겠습니다.”
차동균의 냉정한 명령에 담긴 고통을 이해한 곽철호가 다부지게 답을 내놓았다.
통화가 끝났다.
그사이 운전자와 나이 먹은 남자를 격리한 대원들이 피범벅인 승용차를 도로 바깥으로 밀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곽철호는 길게 늘어선 차량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괴물을 만드는 데 대원들을 지원했던 반군 수장을 제거했다.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지만, 당장은 괴물을 만드는 재료 헬륨3를 파괴했다고 판단했다.
작전을 완수했다고 여긴 순간에 느닷없이 입구를 커다랗게 벌린 지옥이 다마르에서부터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달려드는 느낌에 곽철호는 볼을 씰룩였다.
‘물러설 거 같냐?’
곽철호가 독오른 눈빛으로 기다란 행렬의 끝을 노려볼 때였다.
“후운-나! 훈나(هنا)!”
행렬의 중간에 몰려든 사람들이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며 손짓으로 승용차를 가리켰다.
젠장할!
곽철호가 달리는 순간이었다.
소란에 휩싸인 승용차 안에서 호수로 물을 끼얹는 것처럼 운전석 유리로 시뻘건 핏물이 거칠게 튀었고, 두껍게 흘러내렸다.
***
4차장의 보고를 받고 난 다음이었다.
내내 찌그러져 있던 하동선의 얼굴이 피어났다.
“확실해?”
“러시아 담당 직원의 보고로는 바실리가 분명하답니다.”
“그건 알겠는데 바실리라는 양반이 아직 힘을 쓰는 게 맞냐는 거야?”
“누가 뭐래도 러시아의 실질적인 지배자입니다. 러시아 정보국장인 안드레이 이바노비치도 그의 앞에서는 자리에 앉지 못할 정도로 막강한 실세입니다.”
“흠.”
구미가 당긴 모양이었다.
입맛을 다신 하동선이 턱을 매만졌다.
“초대하는 이유는?”
“중요하게 의논할 게 있다. 국가정보원의 러시아 담당 차장과 직원을 동행해도 좋다. 통역은 필요 없으나 원한다면 동행해도 된다. 이 정도입니다.”
책상 앞에 서서 보고를 마친 4차장을 하동선이 올려다보았다.
“4차장 생각은 어때?”
“원장님. 현 CIA 국장 칼튼 숀도 바실리의 초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만약, 대화가 우호적으로 흘러서 바실리가 손을 써 준다면 VIP의 국빈 방문 정도는 아예 문젯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CIA 국장도 초대받지 못했다?”
나름 조심스럽게 살피던 하동선이 CIA 국장도 초대받지 못했다는 한마디에 눈빛을 반짝였다.
“준비해.”
“어느 수준까지 준비할까요?”
“4차장하고, 직원, 통역은 무조건 가야 하는 거니까 됐고. 이 기회에 인사하면 좋으니까 1, 2, 3차장 모두 가지?”
이미 다 알고 있을지라도 정보국 간부는 최대한 얼굴을 감추는 게 상식인데…….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멈칫했던 4차장이 고개를 숙인 뒤에 몸을 돌렸다.
그 직후였다.
“이제야 좀 급이 맞는 사람하고 만나네.”
문을 열고 나가는 4차장의 등으로 속 빠진 하동선의 후련한 속내가 날아들었다.
***
곽대출은 감성원의 조언에 따라 인원을 배치했고, 주민들을 한데 모아서 구르카 용병으로 둘러쌌다.
인원이 적지 않았다.
지프와 트럭으로 모았는데, 마리그의 수호신이 된 곽대출이 직접 나선 덕분에 그나마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기지로 돌아온 곽대출이 물을 마실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부회장님. 황성규입니다. 방금 회장님께 보고드린 급한 내용이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이어서 황성규는 해적의 선박들이 마리그 주변에 모여들고, 체첸 용병이 움직였다는 정보를 곽대출에게 전해 주었다.
“감성원 선배님이 지시해 주셔서 일단 준비는 해 두었습니다.”
– 조금만 일찍 알아냈다면 피할 시간이라도 벌었을 텐데,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황 선생님이 있어서 그나마 대비할 수 있는 겁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보통 사람 같으면 겁에 질렸을 내용의 통화였다. 강단이 좀 있다 해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개새끼들이 우리를 우습게 봤다는 거네?”
통화를 마친 곽대출은 불똥이 탁탁 튀는 것처럼 눈빛을 번들거렸다.
“눈알을 전부 파 줄 테니까 이따가 보자.”
곽대출이 엄지를 까닥거릴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스마트폰이 또다시 몸을 떨었다.
액정을 확인한 곽대출은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곽대출입니다.”
– 황 선생과 통화했지?
“지금 막 했습니다.”
곽대출이 시원하게 답했는데도 어쩐 일인지 천중명은 반 박자쯤 늦게 입을 열었다.
– 우선 머릿수에서 너무 밀려. 체첸 용병도 문제기는 한데, 죽어서도 움직이는 괴물까지 그곳에 달려든다면 진짜 어렵다.
“어차피 포위돼서 빠져나가지도 못합니다. 이 기회에 본때를 보여 준다는 생각으로 대응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부진 대꾸를 날렸던 곽대출은 아차 하는 심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포위됐다고 원망하는 거 아닙니다.”
곽대출이 나직하게 핑계를 건넨 뒤였다.
– 말 같은 소리를 해라. 그리고 둘만 있을 때는 좀 편하게 통화하자.
“그래도 되겠어?”
– 아니면?
도깨비 대원 시절로 돌아간 듯한 천중명의 대꾸가 날아들었다.
진짜 오랜만이다. 이런 대화.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좋아서 속 빠진 사람처럼 곽대출은 히죽 웃었다.
“회장님아. 무슨 짓을 해서라도 버티고 있을 테니까 바깥에서 도와줘.”
– 평화유지군에 연락했는데 하필이면 예멘에 집중한 모양이다. 훈련 중인 대원들을 중심으로 꾸려 본다니까 버티고 있어. 나중에 도깨비로 보자.
뭐라는 거야?
다부진 천중명의 대꾸에 잠시 갸웃했지만, 도깨비 대원답게 마리그를 지키고 나서 보자는 뜻으로 이해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은 곽대출은 어둠을 밀쳐내듯 감성원이 있는 곳으로 걸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감성원의 경고와 당부가 없었다면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게 늦을 뻔했다. 어둠 속에 선 감성원에게 다가섰을 때였다. 감성원과 세 명의 도깨비 대원들이 곽대출에게 시선을 주었다.
“주민 대피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고생했소.”
“그런데 선배님? 저놈들이 몰려들 걸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독해진 곽대출의 눈빛을 확인한 감성원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비무장왕, 남일규 선배, 양동식 선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냥 비무장 지대를 지키며 익힌 감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소. 그렇게 살았으니까.”
감성원의 대꾸를 들은 곽대출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천중명도 그랬다.
도깨비 대원 훈련에서 추적조를 피할 때, 천호득이 위험할 때, 또 비슷한 위기가 다가올 때면 감이 안 좋다며 눈빛을 빛내곤 했었다.
“부회장님은 이제 지켜야 할 곳으로 가시는 게 좋겠소.”
감성원이 나직하게 권유하고는 몸을 돌렸을 때였다.
그때 봤다. 곽대출은.
감성원의 왼쪽 어깨에 달린 대검을 말이다.
왜 그럴까?
짙어지는 어둠, 팽팽한 긴장 속에 서 있는 감성원의 뒷모습과 왼쪽 어깨에 외롭게 매달린 대검을 보며 곽대출은 그가 죽음을 각오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입술을 뒤틀었던 곽대출은 주변에 서 있는 세 명의 대원을 돌아보았다.
“이런 곳에 불러서 미안하다.”
“알고 왔습니다, 부회장님.”
그놈들.
대꾸도 참 멋지다.
두려움 없는 눈빛과 표정이 고맙기도 했다.
“선배님 잘 모셔. 이따 보자.”
인사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을까?
고개를 돌린 감성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곽대출을 보고 있었다.
“가 보겠습니다, 선배님.”
“이곳은 안심해도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중하게 고개 숙인 곽대출은 몸을 돌렸다.
2선을 얌전히 지키면서 지휘만 하라고?
걸음을 재촉하면서 곽대출은 히죽 웃었다.
독하게 빛나는 눈빛을 하고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