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96)
677화 나는 후회 없다 (1)
누오라(Nuora)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핀란드의 이나리(Inari) 숲속이었다. 사방이 푸르름으로 둘러싸인 속에 눌러앉은 덕분에 통나무로 만든 주택은 마치 숲의 일부처럼 보였다.
칼튼 숀과 헤어진 중년의 맥퍼슨은 주택의 정면에 깔린 데크에서 젊은 남자와 마주 앉았다. 그런데도 그는 완벽하게 주인을 모시는 하인의 모습이었다.
“오늘 무슈 강이 의지하는 지역 중 한 곳을 공략합니다.”
“그가 러시아로 향한다고 들었는데?”
“물론 그도 곤경에 처할 겁니다.”
“그런가?”
맥퍼슨의 대꾸를 들은 젊은 남자가 만족한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에 울창한 숲과 그 앞에 펼쳐진 잔잔한 호수를 돌아보며 감탄처럼 입을 열었다.
“세상이 참 오묘해. 이렇게 진행되리라고는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으니 무슈 강은 더더욱 알 길이 없겠지. 재미있지 않나?”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잊지 말게. 무슈 강 같은 인간은 절대 포기하지 않아. 악마의 재능마저 이어받아서 제거하기도 어렵지. 우리가 조 단위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투여해 겨우 손에 넣은 능력을 그는 저절로 얻다시피 하지 않았나. 그런 인물은 본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
“주의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젊은 남자가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는 투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말했던 장소가 어딘가?”
“소말리아의 마리그입니다. 지금쯤이면 이미 작전을 시작했을 테니 내일 아침이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그것참. 별것 아닌 땅을 차지하겠다고 버티다 죽다니? 여전히 벌레 수준으로 사는군.”
탄식을 뱉었던 남자가 다시금 궁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분실된 물품의 처리는 어떻게 됐지?”
“이라크에서 분실한 헬륨3가 정보총국의 손에 들어간 건 아쉽지만, 사무실에 남아 있던 커피콩들은 급한 대로 이라크 경찰을 동원해 모조리 파기했습니다. 헬륨3 외에 외부로 유출된 커피콩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의 손에 죽은 게 다행이지. 게르만의 집사라는 닉네임을 믿어 달라던 인간이 오히려 무슈 강에게 정보만 제공한 꼴이 아닌가.”
“죄송합니다.”
“자네 잘못이 아니니 지난 일은 잊고,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더욱 세심하게 살펴.”
대답 대신 맥퍼슨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
곽대출이 3선으로 이동한 다음이었다.
감성원은 자원해서 이 자리를 맡은 세 명의 도깨비 대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체첸 용병이 온다는 말은 들었을 테고, 놈들의 방식을 잠시 알아 둘 필요가 있어.”
경험으로 따지면 발목에도 닿지 못할 정도로 전장에서 살아온 선배의 말이었다. 세 명의 도깨비 대원들이 감성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놈들의 특성상 전면에 나서지 않고, 상황을 지켜볼 거다. 그런 뒤에 승기가 잡히면 달려들어서 잔인한 광경을 만들어 내지. 그게 놈들 특성이니까.”
“해적들이 해결되면 결국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도깨비 대원 한 명의 질문에 감성원은 고개를 저었다.
“숫자에서 우리가 너무 밀려. 그러니 우리가 해적들을 상대하는 동안 바깥으로 돌겠지. 그래서 우리 뒤편이나 2선을 바로 노릴 거다.”
경험은 이런 면에서 무섭다.
만약 감성원이 없었다면, 체첸 용병에게 뒤를 얻어맞을 뻔했다.
“선배님. 그 말씀을 왜 부회장님께 하지 않으셨습니까?”
도깨비 대원의 질문을 받은 감성원이 뜬금없이 하늘로 시선을 들었다. 발전기를 이용해 밝히던 전등마저 모두 꺼 놓아서 마리그의 하늘에는 쏟아질 것처럼 별들이 가득했다.
잠시 하늘을 보던 감성원이 얼굴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나름 독기 충만하다고 자신하던 도깨비 대원 세 명이 움찔했다.
악귀? 아니면 피에 굶주린 살인마?
어둠 속에서도 번들거리는 감성원의 눈빛과 표정은 마주 보기조차 두려울 정도였다.
“비무장 지대에서 적을 상대하던 방식으로 놈들을 해결할 생각이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부탁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적당히 버티다 2선으로 물러나.”
뭐라는 거야?
혹시 전투가 주는 살육에 먹힌 건가?
피, 터지고 찢긴 몸뚱이, 비명, 고함, 총성, 폭발이 뒤엉킨 전투를 경험했던 대원 중에는 상황을 앞두고 이성을 잃는 대원들이 나온다. 도깨비 대원 중에도 있었다. 그런 대원들은 죽음의 한중간으로 뛰어들기를 바랐다. 지금의 감성원처럼 말이다.
“체첸 용병을 혼자 상대하시겠다는 겁니까?”
대원 한 명이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힐끔 감성원이 시선을 뒤로 돌렸다.
“왔다. 기억해. 적당히 버티다가 물러나.”
붙잡을 틈 따위 없었다.
짧은 당부를 남긴 감성원이 해적이 나타날 거라고 예상했던 왼편을 향해 달렸다.
상체를 숙이고 저렇게 달릴 수 있다고?
심지어 눈 몇 번 깜박이는 사이에 감성원은 어둠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뭐야 이게?
도깨비 대원 셋이 멍한 표정으로 감성원이 달려간 방향을 지켜볼 때였다.
부스슥! 부슥!
뒤늦게 앞쪽에서 거칠게 흙을 밟는 소리가 어둠을 타고 달려왔다.
철커덕!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네.”
“뭔 소리야?”
“우리 셋이서 어느 정도는 해적들을 상대할 거라고 생각하신 거 아니냐?”
노리쇠를 당긴 대원이 동료의 질문에 답하고는 픽 웃었다.
철컥! 철커덕!
그 뒤에 대꾸를 들은 두 대원 역시 AK소총의 노리쇠를 거칠게 당겼다.
그 직후였다.
콰으응! 투타타타타타! 투타타타타!
저 멀리 뒤편에서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중기관총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시작이구나!
세 명의 대원이 앞을 향해 소총을 겨누는 순간이었다.
널따랗게 퍼진 해적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숫자가 부족한 줄은 알았다.
해적이 당연하게 많을 거라 예상했었다. 그렇지만 저렇게나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씨발!”
투둑! 퍼벅! 투두둑! 퍼버벅! 투둑! 퍼벅!
대원 셋이 방아쇠를 당기면서 달려오던 놈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하지만, 모두 잡을 수는 없었다.
투두두둑! 투두두둑! 투둑! 투두둑!
헐렁한 바지, 늘어진 러닝셔츠, 눈만 하얗게 보이는 해적들이 어둠에서 튀어나와 달려드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투둑! 투두둑! 투두둑!
기계처럼 방아쇠를 당겨 해적을 쓰러트리고 있지만, 살아남은 놈들은 이미 30미터 앞까지 와 있었다.
투두두두둑! 퍼버벅! 투두둑! 퍼벅!
놈들도 연신 방아쇠를 당기고 있어서 대원 셋이 몸을 숨긴 앞쪽 흙이 사정없이 터져 나갔다.
이쯤에서 몸을 빼야 한다.
투두둑! 투둑! 투두둑! 투둑! 투두둑!
“와! 와 봐! 이 개새끼들아!”
그러나 대원 셋은 아예 2선으로 갈 생각 없는 것처럼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
피이이융! 퍼어어-엉!
흰색 꼬리를 남기며 날아간 RPG가 해적의 배에 맞으면서 요란한 폭발음이 터졌다.
이 새끼들 해적 맞아?
투타타타! 투다다다다다!
그에 맞서 적들은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를 중기관총을 갈겨 댔고,
피이이융! 피이융! 피이이이융!
숫제 배 전체에 포탄을 실었나 싶었을 정도로 RPG를 연달아 날렸다.
콰으으응! 콰응! 콰으응!
주민들이 대피한 지역을 중심으로 둥글게 방어막을 형성했다.
두 명씩 배치한 방어막 주변이 RPG에 터져 나갔고, 서너 번에 한 번은 폭발에 휘말린 대원들이 뒤로 튕겼다.
피이이이이융! 콰으으응!
방어막 앞이 커다랗게 폭발한 직후였다.
구르카 용병 한 명과 도깨비 대원 한 명의 몸이 뒤편으로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구르카 용병은 이미 죽은 것처럼 보였다.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그 옆에서 쓰러진 상태에서도 겨우 상체를 돌린 도깨비 대원이 악착같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데 조준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저대로 두면 죽는다.
당연하게 저 방어막이 막아 내던 지역이 뚫린다.
“제가 가겠습니다!”
지경 직원들과 주민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에서 도깨비 대원이 고함을 지른 직후였다.
“같이 가! 나머지는 엄호해!”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고함을 버럭 지른 곽대출은 AK 소총을 갈겨 대며 앞으로 달렸다.
타다당! 타다다당! 타다당!
그나마 구르카 용병의 존재가 컸다. 두려움이 없다고 들었지만, 독기나 강단에서도 도깨비 대원들에게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타다당! 타다다다당! 타다당!
사격 솜씨도 대단해서 흩어져 백사장으로 뛰어든 해적들을 놓치지 않았다.
꽈악.
곽대출은 RPG에 당해 쓰러진 대원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웠다.
투두둑! 투둑!
구르카 용병을 살폈던 대원이 앞쪽으로 움직여 달려드는 적을 막고 있었다.
“저 새끼들…, 피하십시오…….”
20미터 앞까지 다가온 적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던 대원을 곽대출이 끌어안는 순간이었다.
피이이융! 피이이이융!
섬뜩한 발사음이 들렸고,
“알피지! 알피지-이!”
옆쪽 방어막에서 구르카 용병이 지른 경고가 요란하게 퍼졌다.
“이익!”
대원의 상체를 힘껏 당긴 곽대출은 그를 안다시피 몸을 던졌다.
콰으응! 콰으응!
귀청이 멍한 폭발음이 먼저 터졌고, 이어서 몸뚱이가 들썩일 정도로 바닥이 흔들렸다.
이곳을 뚫겠다고 작정한 공격이었다.
개새끼들.
이놈 구하고 난 뒤에 눈알을 다 파 주마.
“끄으-응.”
꿈틀대듯 일어난 곽대출은 고개를 들었다.
투두둑! 투둑! 투두둑!
“가십시오!”
함께 달려온 대원이 굳건하게 적을 막아 대고 있어서 곽대출은 아래에 깔렸던 대원의 옆구리에 다시금 팔을 집어넣었다.
“부회장님…….”
“버텨, 이 새끼야!”
이를 악문 곽대출이 대원을 힘껏 당기며 대여섯 걸음을 물러난 때였다.
투욱.
끌려오던 대원의 고개가 앞으로 떨어졌다.
삐이이이융! 삐이융!
“알피지-이!”
안타까워할 틈도 없이 곽대출은 다시 몸뚱이를 던졌다.
콰으으응! 콰으응!
‘끄윽!’
허벅지를 타고 달려드는 끔찍한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서도 곽대출은 버적대며 앞을 향해 기어갔다.
길게 쓰러져 있는 대원 곁에서 곽대출은 소총을 앞으로 내밀었다.
철컥!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10미터 앞까지 달려왔던 적들이 곽대출이 갈긴 소총에 얻어맞고는 무너지는 것처럼 고꾸라졌다.
‘씨발! 탄창 교체해야 하는데!’
곽대출의 다급한 심정을 알았을까?
뒤편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두 명의 대원이 곽대출의 좌우로 뛰어들었다.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투두둑! 투둑!
두 명의 대원이 합세하면서 홀로 버티던 대원이 죽음을 각오하고 버티던 지역을 지켜 냈다.
“탄창 교환!”
철컥! 철커덕!
몸을 돌린 곽대출은 비어 버린 탄창을 뽑아내고 주머니에 두었던 묵직한 놈으로 교체했다.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해변으로 뛰어든 적들이 쓰러져 새하얗게 일어나는 파도에 이리저리 쓸리는데, 아직 뒤편 검은 바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배들이 둥실대고 있었다.
삐이이이융! 콰으으응!
구르카 용병이 날린 RPG가 가까운 곳에 있던 배를 터트리면서 물기둥이 커다랗게 솟았고, 그보다 낮게 떠올랐던 해적들이 바다에 처박혔다.
‘이건 절대 물품을 노린 게 아냐!’
투둑! 투두두둑! 투둑!
방아쇠를 당기며 곽대출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지경이 가져온 물품과 달러에 눈이 뒤집혔다고 해도 해적이었다. 상선을 노리고 달려들더라도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도주하는 놈들이 오늘 밤은 아예 목숨을 버린 것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삐이이이융! 콰으으응!
흰색 꼬리를 달고 날아드는 RPG를 피해 상체를 처박은 곽대출은 아예 인상이 굳어진 것처럼 이를 악물었다. 이곳이야 그나마 대응할 숫자라도 있지, 앞쪽은 아예 네 명밖에 없다는 사실이 불쑥 떠올라서였다.
***
철컥! 철커덕!
탄창을 꽂은 천중명이 노리쇠를 당기는 모습이야 그렇다고 친다. 눈치 빠른 직원이 알아서 준비한 방탄조끼와 벨트를 걸친 천중명이 수류탄과 탄창, 대검을 줄줄이 거는 모습에 비서실 직원은 아예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내가 출발하면 바로 공항으로 돌아가세요.”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차마 혼자 가게 두기 미안한 직원이 악착같이 용기를 쥐어짰다.
운전석 앞에 선 천중명이 시선을 들었다.
저런 모습이 있었어?
지금껏 지경그룹을 이끌어 오던 천중명은 어디 가고, 완벽하게 전투 지역 한복판에서 튀어나온 특수 부대원의 표정과 눈빛이었다.
뭔가 말할 줄 알았던 천중명이 옅은 미소를 보여 주었다.
고맙다는 의미로 보였다.
그런 뒤에 천중명이 지프의 운전석에 올랐다.
부르릉! 부아아아앙!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지프를 보며 직원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