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97)
678화 나는 후회 없다 (2)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마리그가 무너지는 건 우리에게 너무 큰 위기입니다. 공격형 헬리콥터를 포함해 평화유지군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을 투입해 주세요.”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장팔모 소령과 통화를 마친 강찬은 스마트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개새끼들이 진짜 야비하네요. 대장이 예멘을 버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뒤를 노리는 거 아닙니까? 급한 대로 외인부대를 보내면 어떻습니까?”
제라르의 제안이 아니어도 이미 계산했던 일이었다. 입술을 뒤튼 강찬은 스마트폰에 옆에 두었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후-.”
불을 붙이고 난 다음이었다.
“마리그가 지경그룹의 자치구만 아니었다면 벌써 외인부대의 지원을 요청했을 거다. 한국의 기업을 위해 외인부대가 나서면 문바키는 물론이고, 프랑스 정부가 곤경에 빠질 수 있어. 결정적인 순간에 외인부대를 동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강찬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하기는. 부총국장인 대장이 한국 기업을 위해 개인적으로 외인부대를 이용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속이 뒤틀린 얼굴을 하고도 제라르가 현실을 받아들였다.
예멘을 포기하면 감염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테고, 마리그가 무너지면 강찬은 중요한 거점 하나를 잃는다. 어느 쪽이든 하나만 성공해도 적은 만족할 상황이었다.
염병할, 이런 위기를 대비해 평화유지군을 준비했던 건데 엉뚱하게 예멘에 묶여 버렸다.
숨은 놈들이 진짜 감염까지 노렸다는 건가?
강찬이 담배를 종이컵에 넣은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테이블에 놓아둔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러시아로 가는 동안, 도대체 몇 통이나 전화가 오는 건지.
액정을 확인한 강찬은 바로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알로?”
– 문바키입니다, 대장. 예멘에서 활동하는 아프리카 평화군의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지금 보냈으니 직접 확인하셨으면 합니다.
문바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자가 도착했다는 의미로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반응은?”
– 무엇보다 참혹한 모습이라 충격이 큽니다. 영상이 올라온 뒤에 곡물과 원유의 선물 가격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현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고…….
강찬은 눈가를 좁혔다.
이미 감염에 관한 정보가 퍼진 마당에 문바키가 말끝을 흐릴 내용이 더 있을까 싶어서였다.
– 평화유지군이 감염을 퍼트렸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통화를 듣고 있던 제라르가 ‘이게 무슨 개소리입니까?’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강찬 역시 아는 건 없다.
“왜 그런 소문이 도는 거지?”
–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트린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만, 평화유지군이 예멘에서 활동한 이후에 감염이 퍼졌고, 또 단독으로 감염을 막기 위해 검문과 방역 활동을 한다는 게 증거라는 식으로 말이 돌고 있습니다.
“알았다. 변동 사항이 있으면 바로 알려 줘.”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찬은 스마트폰을 옆으로 돌려 제라르가 보기 편하게 놓은 뒤에 문자를 확인했다.
“비켜! 비키라고!”
달려간 건 곽철호와 평화유지군 대원들이었다.
물통을 짊어진 예멘 남성과 승용차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화면에 담겼고, 그 뒤에 옆으로 돌린 영상에서는 앞 유리가 피로 범벅인 승용차가 나왔다.
승용차의 문이 열리고 곽철호가 운전자의 이마를 뚫어 주는 장면과 아이의 머리를 손에 들고나오는 늙은 남자의 영상이 적나라하게 이어지고 있어서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 식으로 터지는 건가?
“후-.”
강찬이 길게 숨을 내쉰 다음이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영상이 시작되었다.
푸슝! 퍼억! 푸슝! 퍼억!
윤상기가 이끄는 평화유지군 대원들이었다.
골목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사격하는 장면이었는데 내용을 모르는 이들 눈에는 대놓고 예멘 사람들을 학살하는 모습이었다.
“물을 뿌려!”
윤상기 나름으로는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대원 한 명이 물을 뿌렸는데,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버둥대는 모습을 보자면 총을 쏜 사람에게 독극물까지 뿌렸다고 오해할 만한 장면이었다.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커피나 한잔하지요.”
연달아 벌어지는 사건들을 정리할 여유가 필요했는지 제라르가 몸을 일으켰는데 당장은 강찬도 달달한 봉지 커피와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강찬이 담배를 다시 꺼내 입에 물었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이러다가 스마트폰이 타 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또다시 진동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한 강찬은 라이터를 든 손으로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이용우입니다, 부원장님.
신동철의 장례식을 맡은 놈이 흥분한 음성으로 전화한 게 이상했는데 이놈은 강찬도 종잡기 어려운 구석이 있어서 내용을 들어 봐야 짐작이라도 한다.
– 이라크에서 커피 중개상으로 활동하던 블랙 요원을 구하면서 커피콩에 숨겨져 있던 헬륨3를 찾아낸 거 기억하십니까?
“그게 왜?”
강찬이 대꾸할 때였다.
종이컵을 두 개 들고 온 제라르가 자리에 앉아 액정에 올라온 이용우의 이름을 확인했다.
– 그곳에 피했던 오마르와 자밀라라는 부녀를 정보총국의 도움으로 한국에 보냈습니다. 그들이 바닥에 흘린 커피콩 중에서 멀쩡한 걸 골라 한국에 가져왔는데 오늘 커피를 마시려고 볶았답니다.
그냥 봉지 커피로 먹지!
기다란 설명에 불쑥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굳이 말을 늘이는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강찬은 듣고만 있었다.
– 커피콩을 볶았는데, 이상한 기름이 흘러나오고 역한 냄새가 났답니다.
“뭐?”
– 커피콩은 상해도 기름이 따로 나오지 않습니다. 역한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혹시 감염과 관련된 반응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서 물을 뿌려 보라고 했는데 멀쩡하다고 해서 가는 길입니다.
이라크에서 직접 활약했던 이용우가 이토록 흥분할 정도라면 분명 뭔가 있을 거다.
“그거 남은 게 있어?”
– 한 주먹 정도 남았답니다. 30분 정도면 도착할 텐데 회수한 다음에 어떻게 할지 몰라서 전화 드렸습니다.
강찬은 눈가를 좁혔다.
헬륨3 말고도 커피콩에 숨겨진 비밀이 더 있었던 건가? 그래서 그렇게 이라크 경찰부터 정보국까지 염병을 떨었고?
“지금 말한 내용이 밖으로 나가면 커피콩을 가져온 두 사람은 물론이고, 너도 위험해. 무기 지닌 거 있어?”
– 없습니다, 부원장님. 회칼이라도 하나 살까요?
염병. 깡패냐?
이상하게 이용우는 결이 다른 다예루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일단 커피콩 확보하는 대로 알려 주고, 그 두 사람과 함께 있어. 내가 러시아에 들렀다가 바로 갈 테니까 그때까지 숨죽이며 지내. 태연하게. 알지?”
– 장례식장에 가야 합니다.
“하루면 돼. 장례식장에 데리고 가더라도 곁에 둬.”
–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급하게 지시한 강찬은 잠깐 한국에 있는 평화유지군 지원단을 떠올렸다. 그러나 만약 커피콩이 정말 중요한 단서가 된다면 어떤 이유에서든 비밀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전화부터 인터넷, 어떤 종류의 통신도 도청될 수 있다. 국가정보원에도 보고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커피콩 이야기는 하지 마. 혹시 내용을 들은 사람은 없어?”
– 아랍어로 이야기해서 알아듣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건 또 그러네.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언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일단 확보하고 연락해.”
– 예, 부원장님.
통화를 마친 강찬은 종이컵을 들어 달달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런 순간에 달달한 커피는 정말 커다란 위로가 된다. 담배와 함께라면 더더욱 더.
찰칵.
“후-”
맞은편에 앉은 제라르 역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대장? 만약 이용우란 녀석이 말한 커피콩에 뭔가 숨겨진 게 있다면 우리도 무기 하나를 얻은 거 아닙니까?”
“숨겨진 게 뭔지 밝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남기는 했지만, 일단 저쪽이 모르는 뭔가를 손에 쥔 건 맞는 거지.”
“연구를 맡기면 말이 새 나갈 수 있잖습니까?”
“잊었냐? 우리가 어떻게 놈들의 계획을 알아냈는지?”
“로일 박사 말씀입니까?”
커피콩에 숨겨진 비밀을 통해 찾아낸 적의 얼굴에 총알을 박아 주고 싶다는 욕심이 솟아난 모양이었다. 강찬의 눈빛을 확인한 제라르가 정말 맛있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
어둠을 덮어쓰고 움직이는 감성원은 똑똑하게 기억한다.
적의 목을 자를 때 독해지던 남일규의 처절한 눈빛과 귀를 뚫어 대던 양동식의 잔인한 눈매를 말이다.
“그러게 왜 비무장왕이 지키는 구역에 발을 디뎌, 이 개새끼들아!”
그들이 왜 그렇게 외치는지, 또 어째서 그토록 잔인하게 적을 상대했는지는 시간이 흐르고서야 깨달았다.
“우리가 잔인해지는 만큼 아군을 지킨다! 알겠냐?”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얼굴로 감성원을 바라보던 선배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오늘은 제가 나섰습니다.’
죽음, 잔인함, 그 어떤 끔찍한 일들은 모두 선배의 몫이라고 배웠다. 그래야 힘없는 조국에서 억울하게 희생되는 후배들이 없다고 들었다.
감성원은 한 마리 들짐승처럼 움직였다.
선배들에게서 배운 이런 능력 덕분에 그 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았다. 덩치가 곰처럼 크고, 팔뚝이 감성원의 허벅지만 한 놈들이 눈치를 살필 정도면 말 다 한 거다.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치열하게 쏴 대는 AK 소총 소리와 뒤편에서 연달아 터지는 RPG 소리가 감성원을 재촉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텨 다오. 보잘것없고, 내세울 거 없지만 선배라는 이름과 책임만은 지키마.’
감성원은 이를 씹으며 어둠을 헤치며 달렸다.
“흐윽. 흑.”
거친 호흡을 삼키는 탓에 내뱉는 숨소리가 울음처럼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감성원은 또 그걸 악착같이 삼켰다.
어디냐? 이쯤 있을 거잖아?
어둠을 뚫고 커다랗게 뒤로 돌았던 감성원은 마침내 목표했던 놈들을 찾았다. 앞으로 펼쳐질 살육을 기대하는 것처럼 둥그렇게 모여앉은 놈들이었다.
대충 헤아린 숫자는 모두 열셋이었다.
‘이 개새끼들.’
체첸 용병들은 대개 수염을 기른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이 강한 남성의 상징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래 놓고 한다는 짓이 지금처럼 뒤에서 숨어 있다가 승기가 잡혔을 때 뛰어나간다.
전장에서 아이, 여자들의 참혹한 시체들이 발견되면 열에 여덟은 체첸 용병이 투입됐다고 보면 된다.
숫자를 확인했으니 최대한 접근할 차례였다.
감성원은 자세를 더욱 낮췄다.
처절하게 배웠다. 비무장 지대에서.
사슴을 발견한 사자, 혹은 호랑이처럼 바닥에 붙어서 움직인다. 살포시 든 발을 바깥쪽부터 조심스럽게 내디디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투두두두두둑! 투둑! 콰으으응! 콰응!
요란한 총성과 폭발음이 어지간한 소음을 모두 삼켜 주어서 상황은 완벽하게 감성원의 편이었다.
건방진 새끼들!
빛나는 우리 후배들을 앞두고 둥글게 모여 앉아?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감성원은 지니고 있던 수류탄을 꺼냈다.
오른손에 수류탄 두 개를 잡는 건 일도 아니다.
왼손으로 두 개의 안전핀을 잡은 감성원은 간절한 심정으로 폭발을 기다렸다.
콰으으으응! 티잉. 팅.
그리고 폭발음이 터지는 순간에 안전핀을 뽑았다.
바로 던지면 놈들이 피할 수 있다. 그러니 체첸 용병 놈들이 피할 그 짧은 시간마저 줄인다.
‘하나, 둘.’
시간을 가늠하며 버틴 감성원은 상체를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수류탄을 힘껏 던졌다.
휘익! 휙!
어둠을 뚫고 올라간 수류탄이 별빛을 안아 연하게 빛나는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갔고,
툭! 투욱!
체첸 용병 놈들이 둘러앉은 안쪽에 떨어졌다.
화들짝, 놈들이 놀라 몸을 뒤트는 순간,
콰으응! 콰으으응!
바닥이 뒤틀리는 충격과 함께 흙더미, 그리고 적들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상체를 처박아 폭발의 충격을 피했던 감성원은 몸을 세우기 무섭게 튕겨 나가는 것처럼 앞으로 달렸다. 그리고는 체첸 용병들을 향해 달렸다.
투둑! 투둑! 투둑! 투두둑!
바깥쪽에 있어서 폭발의 충격이 덜했던 놈들이 감성원의 사격에 머리통이 터지면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와락, 안으로 뛰어든 감성원은 소총을 잡고 있는 놈들의 머리통에 남은 총알을 쏟아부었다.
‘다 잡았나?’
수류탄이 폭발한 자리에서 주변을 빙 둘러보면서도 감성원은 재빠르게 탄창을 교체했다.
철컥! 철커덕!
그리고는 아직 꿈틀대는 놈들의 몸뚱이와 머리통에 꼼꼼하게 총알을 꽂아 주었다. 일단 체첸 용병을 잡았으니 마리그를 지킬 확률이 월등히 높아졌다.
이제는 해적의 뒤로 돌아가…….
‘어?’
분명 머리통을 터트렸는데?
‘염병! 괴물이라더니!’
해적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던 감성원은 재빠르게 소총을 겨눴다.
투두둑! 퍼버벅!
감성원이 빨랐다.
소총을 겨누던 놈의 머리통을 다시금 터트린 직후였다.
타다당! 퍼버벅!
요란한 총성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감성원의 배 부근에서 핏물이 튀어나왔다.
휘청, 몸이 흔들렸는데 감성원은 악착같이 상체를 돌렸다. 그리고는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둑! 퍼버벅!
쏘고서 알았다.
수류탄에 하반신이 날아간 용병 놈이 갈긴 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진짜 죽어서도 움직인다는 거냐?’
무너지듯 무릎을 꿇은 감성원은 그제야 실감했다.
대가리와 심장을 뚫어서 뒈졌다고 생각했던 용병 놈들이 모두 꿈틀대며 총을 잡고 있었다.
하필이면 용병 놈들이 모여 있던 한중간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무릎 꿇은 것처럼 무너진 감성원을 향해 뒈졌어야 할 놈들이 버둥버둥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씨발…….”
누가 이기나 해 볼래?
감성원은 소총을 다시 들었다.
투두둑! 타다당! 투둑! 타다다당! 투두둑!
“끄으-!”
투두둑! 타다다당! 투둑! 타다다당!
몸뚱이가 연달아 터져 나가는 동안에도 감성원은 방아쇠를 멈추지 않았다.
털써-억.
그리고, 그 끝에서 감성원은 엎드린 것처럼 바닥에 처박혔다.
“크르륵.”
강철규와 통화했고, 멋진 후배들을 만났으니 후회는 없다.
마지막 임무가 태극기 걸어 둔 땅을 지키는 일이라는 점에 감사한다. 거지 같은 놈들을 만나서 이렇게 쓰러지지만, 놈들을 모두 걸레로 만들었으니 나머지는 빛나는 후배들이 알아서 처리할 거다.
‘후배들이 뜻을 이루도록 도와주…….’
삶을 마치는 감성원의 바람이 워낙 간절해서였을까?
꺼져 가는 그의 시선에 신이 주는 응답처럼 아련한 불빛이 담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