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Blackfield: Deadline RAW novel - Chapter (98)
679화 나는 후회 없다 (3)
지프를 몰던 천중명은 똑똑하게 보았다.
중앙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여러 명과 홀로 반격하던 외로운 사람의 형상이었다.
투두둑! 타다당! 타당! 투두두둑!
빙 둘러싼 적을 향해 악착같이 방아쇠를 당기던 사람의 형체가 바닥으로 널브러질 때 천중명은 지프를 세웠다.
콰응! 콰으응!
멀리서 달려드는 총소리와 폭발음 속에서 천중명은 소총과 수류탄들을 챙겼고, 마지막에 RPG를 어깨에 걸쳤다.
이놈, 저놈 쉽게 쏴 대니까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휴대용 대전차 유탄 발사기는 그 무게가 10킬로그램이다. 그런데도 천중명은 RPG를 어깨에 걸고 총성이 멈춘 곳을 향해 달렸다.
오랜만에 무기를 걸고 달린다.
찢어지는 듯한 어깨의 통증과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걸음을 멈추거나 늦추지 않았다.
‘도깨비 회장을 만든 게 이런 순간까지 예비했던 겁니까?’
이를 악물며 달리는 동안 천중명은 하늘을 향해 원망 가득한 질문을 던졌다.
고통이 끔찍해서일까?
지경을 경영하며 안으로 갈무리했던 도깨비 대원 특유의 눈빛과 표정이 천중명의 얼굴에 선명하게 올라왔다.
처참한 현장에 도착한 천중명은 이를 악물었다.
죽어서도 움직인다는 괴물을 홀로 상대했던 모양이었다.
겨우 알아볼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진 감성원이 중앙에 쓰러져 있었고, 주변에서는 머리통이 부서진 적들이 꿈틀대며 소총을 돌리고 있었다.
천중명은 앞으로 걸어 두었던 소총을 당겼다.
투두둑! 투둑!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먼저 확실하게 움직이는 놈들의 머리와 목을 터트린 천중명은 몸에 걸친 무기들을 바닥에 뿌렸다.
스응.
그리고는 대검을 뽑아 들었다.
죽어서도 움직여?
얼마든지 해 봐.
콰직! 서걱. 서거-억. 서걱.
천중명은 제대로 움직이는 놈들의 손목과 겨드랑이를 끊다시피 깊게 갈랐다.
푹! 푸욱!
아예 팔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어깨에 칼을 박고서 길게 가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튄 피가 천중명의 얼굴과 상체를 뒤덮었다.
모두 열셋이었고, 그중에 셋은 하반신이 날아간 상태였다.
징그럽다. 끔찍하고.
외면하고 싶은 형태의 적을 상대로 천중명은 또 놈들의 옷가지를 찢어 팔을 뒤틀어 묶었다.
“푸-.”
얼굴에 튀어 흘러내린 피를 뱉어 낸 천중명은 그제야 중앙에 널브러진 감성원에게 다가갔다.
강철규에게 보내 달라며 간절한 눈빛을 보였던 늙은 군인이었다. 그와 통화하고서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지었던 남자였고, 불행한 시절의 대한민국을 지키던 특수부대 선배였다.
차마 적의 피가 흥건한 손을 내밀기 미안해서 천중명은 가슴 부위에 손을 먼저 문질렀다. 그런 뒤에 감성원의 상체를 받쳐 들었다.
외롭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렇게 맞이한 최후가 서럽지는 않았을까?
천중명이 품에 안아 든 감성원은 임무를 완수한 대원처럼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투두두둑! 투둑! 투두둑!
아직 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어서 시간을 길게 끌 수는 없었다. 천중명은 감성원의 허리를 어깨에 걸치고 몸을 세웠다. 메고 왔던 RPG는 고리를 잡아 바닥에 끌며 걸었다.
콰으으응! 콰응!
천중명이 들은 것만 해도 열 번이 넘을 정도로 커다란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죽어서도 움직이는 괴물들, 해적들의 수준으로는 절대 구하지 못할 휴대용 미사일의 숫자까지, 이건 단순히 달러와 물품을 노리는 약탈이 아니다.
피가 흠뻑 튄 얼굴을 하고서 천중명은 차갑게 웃었다.
불행한 시대를 살아온 선배가 죽어서도 움직이는 적을 해결했으니, 이제는 도깨비가 해적들을 밀어낼 차례였다.
‘너희는 절대 몰라. 우리가 어떻게 훈련했고, 어떤 심정으로 그 시간을 견뎠는지.’
지프를 지나친 천중명은 그 길로 마리그로 방향을 잡았다. 지프로 이동하면 편하겠지만, 아무리 총성과 폭발음이 요란해도 엔진음을 완벽하게 숨기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무기와 감성원의 몸을 감당하며 걷는 길이었다. 몸뚱이가 너무하는 거 아니냐며 고통을 뿌려 댔지만, 도깨비 회장이 감당해야 할 세상과 삶의 무게로 받아들였다.
어둠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체첸 용병들이 노리던 길목에 도착했다. 들고 있던 무기를 던진 천중명은 감성원을 내려 나직한 둔덕에 기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신 지금부터 후배들이 어떻게 싸우고 지켜 내는지 분명하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감성원의 얼굴을 향해 다짐을 전한 다음이었다.
사람이 좋게 대해 주니까 해적 따위가 우습게 봐?
곽대출이 치를 떨던 독한 눈매와 강단을 한껏 드러낸 천중명은 RPG를 향해 손을 뻗었다.
***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로 셋이서 오래 버텼다.
투두두둑! 퍼버버벅! 투둑! 퍼벅!
“끄윽!”
그 끝에서 오른쪽에 있던 도깨비 대원이 어깨를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2선으로 갈 수 있겠냐!”
“지랄하지 마!”
걱정하는 동료에게 거친 대꾸를 퍼부은 대원이 이를 악물고 상체를 세웠다.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징그럽도록 악착스럽게 버티는 세 명에게 질린 모양이었다. 아니면 세 명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들이 빙 돌아서 포위할 생각이든가.
줄줄이 달려들던 놈들이 약을 뿌린 직후의 바퀴벌레들처럼 잠잠했다.
짙게 깔린 어둠, 저 앞에서 줄줄이 뒈져 자빠진 해적들의 몸뚱이, 비릿한 바닷바람에 섞인 역한 피 냄새, 뒤편에서 달려오는 총소리와 폭발음, 그 모든 것들이 죽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외롭게 버틴 대원 셋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씨바-알.”
옷을 찢어 어깨를 묶은 대원이 고통을 이기지 못해 욕을 뱉었다. 지켜보고 있는 두 명의 동료 역시 팔과 어깨에 피가 흥건하게 올라와 있어서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다.
“우리 진짜 잘 버티지 않았냐?”
“씨발아! 우리가 도깨비인데, 훈련받은 놈들도 아니고, 해적을 상대로 이 정도는 해야지. 안 그러면 우리 불러 준 부회장님을 어떻게 뵐래?”
어깨를 묶은 대원이 다부지게 대꾸한 다음이었다.
둔덕에 기댄 세 명이 서로를 돌아보고는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나 있잖냐. 부회장님이 불러 준 뒤에 처음으로 우리 마누라 아파트 전세 얻어 줬다. 얼마나 좋았는지 이사한 날 울더라.”
“갑자기 뭔 미친 소리야?”
“감사하다는 거야. 부회장님이 불러 주신 거. 도깨비로 살다가 느닷없이 세상에 나와서 빌빌대던 나를 다시 도깨비로 끝나게 해 주셨으니 감사하다고. 나는 후회 없다.”
“미친 새끼. 뒈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너는 알아서 가라. 나는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부회장님 곁을 지킬 거다.”
여전히 달려오는 총소리와 폭발음 속에서 되지도 않는 말을 주고받던 세 명이 또다시 킬킬거렸다.
안다. 세 사람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다시 적이 달려들면 끝일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철컥! 철커덕! 철컥!
각오를 세우는 것처럼 세 사람은 노리쇠를 당겼다. 그리고는 적이 달려들 방향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정 안 되면 우리 중 하나라도 살아 있자. 선배님이 오셨는데 셋 다 뒈져 있으면 졸라 망신스럽잖아.”
“씨발. 나는 안 죽을 거니까 너나 걱정해.”
다부진 각오를 주고받은 다음이었다.
투두두두둑! 투두두두두둑!
뒤편에서 기다란 총성이 먼저 울렸고, 이어서 길게 늘어선 적들이 앞쪽에서 튀어나왔다.
“이 개새끼들!”
투둑! 투두둑! 투둑! 투둑!
이를 악문 세 명의 대원은 마지막을 직감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여기까지다!
잘했다!
도깨비로 부끄럽지 않다!
부회장님과 선배에게는 죄송하지만, 진짜 잘 버텼다!
투두둑! 투둑! 투두두두둑!
해적들이 10미터 앞까지 왔을 때였다.
“이 씨발 새끼들아!”
대원 한 명이 상체를 세웠다.
수류탄을 던지려는 놈을 겨냥하기 위해서였다.
투두둑! 투둑! 퍼벅!
수류탄을 든 해적을 해치웠고, 대신 어깻죽지가 터졌다.
“끄윽!”
상체를 비튼 대원이 어쩌지 못한 비명을 질렀고,
“고마웠다, 이 개새끼들아!”
최후를 각오한 대원이 비명처럼 고함을 질렀다.
이왕 뒈지는 거, 한 놈이라도 더 데려간다.
대원의 눈알이 독한 각오로 붉게 물드는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융!
왼편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리며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흰색 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콰으으으-응!
달려들던 해적들의 중간이 커다랗게 터지며 폭발에 휘말린 몸뚱이가 높다랗게 떠오를 때였다.
투둑! 투둑! 투둑! 투둑! 투둑! 투둑!
기계음처럼 정확한 총성이 울리면서 해적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왼편 대각선 뒤편에서 날아든 공격이었다. 당황한 해적들이 어쩌지 못한 상태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연달아 총알을 얻어맞고 널브러지고 있었다.
뭐야, 이게?
혹시 우리 다 죽어서 헛것을 보는 거야?
어깨를 감싼 대원이 끙끙대며 몸을 일으켜 지켜보는 앞이었다.
휘익! 휙!
이번에는 높다랗게 떠올랐던 수류탄이 해적들 틈으로 떨어졌다.
콰응. 콰으으응.
다시금 바닥이 흔들리는 폭발이 터졌고, 이어서 또다시 기계음처럼 정교한 총성이 이어졌다.
이런 기회를 놓쳐?
“일단 갈겨!”
아직 버티는 해적들을 향해 대원들이 연달아 방아쇠를 당긴 직후였다. 어둠에서 튀어나온 형상이 왼편 무릎을 꿇고는 해적을 향해 소총을 겨눴다.
투둑! 툭! 투둑! 투둑! 투둑! 투둑!
총성이 울릴 때마다 경련처럼 몸뚱이를 떨거나 상체가 젖혀진 해적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AK 소총만 훈련한 북한 특수군인가 싶을 만큼 정교한 사격 솜씨였다.
기가 꺾였든, 아니면 다 뒈져서 더는 달려들 인원이 없든, 아무튼 해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지?
어디에서 튀어나왔고?
세 명의 대원이 긴장한 채로 눈가를 좁힐 때였다.
철컥! 철커덕!
탄창을 교체한 형상이 몸을 세우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직후였다.
“회장님?”
대원 한 명이 믿을 수 없다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야?”
함께 있던 대원이 반문을 던진 다음이었다.
끅끅. 끅끅끅.
도깨비 대원들만 알아듣는 특유의 새소리가 울렸다.
이게 말이 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대원들 앞에서 천중명은 몸을 돌렸다. 그런 뒤에 감성원을 어깨에 올리고, RPG를 끌어 가며 대원들을 향해 움직였다.
부슷. 부스슷.
부서지는 흙을 밟아 가며 도착한 곳에서 세 명의 대원은 피를 흠뻑 뒤집어쓴 형상이었다.
“회장님?”
놀라는 건 놀란 거고, 그 와중에도 대원 한 명이 끙끙대며 둔덕을 올라와 천중명이 어깨에 올리고 온 감성원을 받았다.
“이런 씨발…….”
처참한 감성원의 상태를 확인한 대원 한 명이 울분을 토해 냈는데 충분히 이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감성원을 먼저 내리고, 이어서 천중명도 둔덕 아래로 내려섰다.
“체첸 용병을 상대하셨는데, 놈들이 죽어서도 움직이는 괴물로 변해 있어서 당하신 거 같다.”
천중명이 나직하게 보았던 상황을 알려 주었다.
투두두둑! 투둑! 투두두둑!
그런 뒤에 아직 총성이 멈추지 않는 뒤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앞쪽에 해적들이 더는 보이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혹시 모르지. 그래서 말인데, 내가 뒤를 까러 가는 동안, 이곳을 지질 도깨비가 필요해.”
‘깐다’와 ‘지진다’는 도깨비들이 사용하는 은어였다.
천중명의 말을 들은 대원 세 명이 피에 굶주린 도깨비가 된 양, 잔인한 미소를 얼굴에 담았다. 가뜩이나 피를 흠뻑 뒤집어써서 완전히 미친 사람들처럼 보였다.
“모가지 따서 올 테니까 그때까지 이곳을 지질 수 있겠어?”
“악!”
대원 한 명이 지른 고함을 들은 천중명이 차갑게 웃었다.
***
탄창을 교체하는 순간에 곽대출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징그럽도록 잘 버텼다.
마구잡이로 날리던 적의 RPG가 확연하게 줄었고, 새카맣게 몰려 있던 해적들의 배도 이제 몇 남지 않았다.
투두두둑! 투둑! 투두두둑!
해변에 몸을 엎드린 해적들의 공격만 막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염병할.
밀고 내려가면 끝장을 볼 거 같은데, 숫자는 오히려 곽대출 쪽이 더 부족했다. 무엇보다 빙 둘러놓은 진지의 3분지 2가 무너져서 지금은 겨우 주민들을 모아 놓은 지역만 지키는 꼴이었다.
부상 따위 상관없다며 이를 갈아 대는 도깨비 대원까지 모조리 총을 들고 버티지만, RPG와 총알이 거의 바닥난 상태여서 이제는 칼을 들고 맞붙는 최후의 싸움만 남았다.
투두두둑! 투둑! 투두두둑!
너희 이제 총알 없지?
확인하려는 듯 몸을 세우고 총질을 해 대는 해적을 향해 곽대출은 총구를 빠르게 돌렸다.
투두둑! 퍼버벅!
개새끼야!
아직 탄창 하나 정도는 남았어!
해적을 해결한 곽대출은 감성원과 대원 셋이 버티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 폭발음이 터지더니 지금은 잠잠했다. 만약, 그쪽이 무너졌다면 잠시 뒤에 앞뒤로 공격을 받을 테고, 그때가 기지의 마지막이 되겠다.
구물구물, 모래사장을 벌레처럼 기어오는 해적들을 보며 곽대출은 이를 질끈 깨물었다. 인생 중반전, 참 멋지게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최후를 각오할 때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평화유지군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돼!”
곽대출이 피를 뒤집어쓴 대원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한 놈이라도 더 죽인다.
이왕이면 이쪽저쪽 모두 죽는 게 현실적으로 최선의 결과다. 그 정도면 달려온 평화유지군이 주민과 주인영을 구해 줄 수 있다.
‘개새끼들. 눈깔을 죄 파 줄 테니까 와 봐.’
곽대출이 이를 악물 때였다.
뒤편에서 나직한 엔진음과 함께 외롭게 보이는 라이트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철컥! 철커덕!
반사적으로 총구를 돌린 곽대출과 대원들이 차량을 겨눈 직후였다.
멈춰 선 지프가 라이트를 세 번 깜박였다. 그런 뒤에 운전석에서 남자가 내렸다.
뭐야? 어떻게?
“쏘지 마! 쏘지 마!”
멍했던 곽대출이 주변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오